# 144
144화 중국시장 (2)
그러자 준섭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부사장님은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대규가 반문하자 준섭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양고기의 육질은 부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그 어떤 다른 고기들보다도 훌륭합니다. 그리고 제 요리의 맛은 저의 명예를 걸고 보장합니다. 그자가 절대 혹평하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대규는 전의에 불타올랐고 준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취재 날짜를 잡아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대규는 준섭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레스토랑의 기본 코스 요리로 가도록 하죠. 특히 메인 요리인 양갈비 스테이크에 더더욱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잡지사에는 그렇게 연락 넣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부터 굴라 레스토랑에 가서 직접 요리하고 그가 오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취재 날짜가 잡혔다.
일주일 후 김신각이 굴라 레스토랑에 찾아오기로 했다.
그동안 대규는 최고의 코스요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취재 당일.
대규는 살짝 긴장한 상태로 주방에 있었다.
아무리 요리 실력이 뛰어나도 저명한 평론가가 온다니까 긴장이 안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유명한 평론가를 상대로 음식을 대접하는 건 처음이다.’
탕꼬의 경우 유명한 맛집이었지만 일반인들이 주로 찾는 가격이 싼 식당이어서 김신각 같은 평론가가 올 일이 없었다.
물론 까다로운 손님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평론가가 찾아오는 그것과는 달랐다.
대규는 취재를 위해 모든 식재료도 최상으로 준비했고 다시 한 번 점검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 물론 자신은 상급 요리스킬을 이용해서 요리하기 때문에 맛은 보장하지만 데코레이션이나 플레이팅 같은 다른 테크닉 적인 것들도 수없이 연마했다.
그날 하루는 예약이나 다른 손님들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의 위생 상태와 하우스 와인의 보관 상태, 직원들의 서비스 등도 완벽하게 점검했다.
오후 5시.
김신각은 칼같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메이터 디(Maitre d’)가 김신각을 맞았고, 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입장했다.
김신각의 실제 모습은 잡지의 캐리커처보다 훨씬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키가 몹시 작았으며 살집이 좀 있었다. 얼굴에는 깐깐함과 심술궂음이 뒤섞여 있었고, 턱은 이중으로 접혀 있었다.
게다가 정장 차림에 체크무늬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신각은 메이터 디에게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의 자리는 가게에서도 최고의 자리였다.
통유리 바로 옆의 자리로 음식을 먹으면서 바깥의 풍경도 즐길 수 있는, 최고로 인기가 좋은 자리였다.
신각은 내부의 깔끔한 화이트 톤 인테리어를 보며 낮고 빠르게 홀로 중얼거렸다.
“아주 미니멀한 인테리어군. 이런 것도 좋지만, 전통 양식 레스토랑이라면 로코코(Rococo) 양식의 인테리어가 더 잘 어울릴 텐데 말이야…….”
그러더니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손가락으로 척 올리며 메이터 디에게 거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미니멀리즘과 로코코 양식이 뭔지는 아는가?”
“예, 예?”
메이터 디가 당황하자 신각은 심술궂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니멀리즘과 로코코 양식의 대표적인 키워드를 정리해 말해보게. 고급 양식 레스토랑의 지배인이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메이터 디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짜증을 냈다.
퀴즈쇼에 나온 것도 아니고 왜 자신이 이자에게 미니멀리즘과 로코코 양식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하는가.
곧 신각은 메이터 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직원들의 지적 수준 상태가 엉망이구먼. 체크!’
그는 테이블 위에 곱게 접힌 냅킨을 무릎에 덮으며 생각했다.
‘하긴, 사장이 탕수육인지 뭔지 근본 없는 싸구려 음식으로 시작한 요리사라지. 그럴 만도 하군.’
신각의 입장에선 그런 싸구려 음식이나 만들던 자가 감히 고급 레스토랑인 파인 다이닝 영역을 넘보는 게 솔직히 괘씸하게 느껴졌다.
한편 대규는 주방에서 신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략집으로 그의 거만한 속마음을 속속들이 다 들으면서 말이다.
어디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한번 보자.
대규는 신각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미니멀리즘의 특징적 키워드는 단순함과 간결함이고 로코코 양식의 키워드는 우아한 화려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신각 평론가님, 오늘 이렇게 저희 레스토랑 굴라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반갑소.”
신각은 여전히 거만한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오르되브르(Hors-D’oeuvre)부터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르되브르란 애피타이저와 똑같은 말이다. 본격적인 식사 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해 나오는 음식이다.
김신각은 영어인 애피타이저보다 프랑스어인 오르되브르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준섭에게 미리 듣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
‘흐음, 애피타이저가 아닌 오르되브르로 말하는 걸 보니 기본적인 소양은 있는 자로군. 체크! 하지만 음식 맛은 어떨지 모르지…….’
신각의 이러한 속마음을 읽은 대규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르되브르인 양의 간 무스와 망고 살사입니다. 그리고 글라스 와인입니다.”
대규가 내온 오르되브르는 음식이 아니라 한 폭의 예술 작품 같았다.
촉촉한 빵 위에 양의 간으로 만든 부드러운 무스가 올라가 있었고 그 옆엔 망고의 과육이 들어 있는 주홍빛 소스가 아름답게 흩뿌려져 있었다.
신각이 음식의 플레이팅과 데코레이션에도 까다롭게 군다고 해서 여러 방면으로 궁리해 개발한 것이었다.
신각은 자신 앞에 놓인 오르되브르를 내려다봤다.
‘흠, 생긴 건 나쁘지 않군. 하지만 중요한 건 맛이지.’
무스(mousse)요리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식감이 생명이었다. 게다가 양의 간으로 만든 만큼 고기의 풍미도 간직하고 있어야 했고 더군다나 양의 누린내를 잘 잡아야 했다.
‘상큼한 망고 살사 소스로 누린내를 잡으려 했군. 하지만 그 강한 양의 누린내가 과연 완벽하게 잡혔을까?’
조금이라도 누린내가 나면 혹평 폭격을 퍼부을 준비를 하며 신각은 양 간 무스를 떠먹었다.
번쩍!
“오오…….”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야!’
양의 누린내는 전혀 없었고, 입안엔 고소하고 진한 양의 풍미만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는 무스의 질감은 완벽했다.
그러면서도 상큼하고 톡 쏘는 맛을 내는 망고 살사가 혀끝에 기분 좋은 자극을 줬다.
‘꼭 보드라운 솜사탕 위에서 살사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편 대규는 신각의 속마음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대체 왜 평론가들은 항상 저런 이상한 표현을 읊는 것일까. 그냥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장황하게 설명을 한다.
신각은 글라스 와인도 마셨다.
와인과 무스의 궁합은 완벽한 마리아주(mariage)를 이루고 있다.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무리 성질이 까다롭다 해도 그의 평론 실력은 진짜였다. 이런 맛있는 오르되브르를 먹으니 곧 나올 메인 요리도 빨리 먹어 보고 싶었다.
입안에서 침이 고였지만 그는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으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이런 속마음을 너무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곧 메인 요리인 대규의 자신작, 양갈비 스테이크가 나왔다.
신각은 모든 걸 낱낱이 분석해서 까발려주겠다는 의지로 안경알을 올렸다.
커다란 접시 양 사이드에 양갈비 스테이크는 뼈가 붙은 채 놓여 있었다.
양갈비의 뼈들은 엑스자로 교차하고 있어서 사뭇 웅장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미루스 비덴스의 젖으로 만든 크림소스와 판테온의 콩으로 만든 샐러드도 추가했다.
그는 나이프를 들고 양갈비 스테이크를 칼로 잘랐다.
고기가 탄력적으로 나이프의 칼날을 밀어냈다. 하지만 곧 부드럽게 잘 썰렸다.
신각은 포크로 고기를 찍어 크림소스를 듬뿍 찍어 먹었다.
입안에서 황홀한 마법이 펼쳐졌다.
“오… 오오…….”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여태까지 다른 유명 고급 레스토랑을 질리도록 다녀본 신각이었지만 이런 양고기 육질에 풍부한 소스 맛은 처음이었다.
그는 어느새 체면 따윈 집어던지고 정신없이 양갈비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보통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음미하며 음식의 장단점을 열심히 분석하기 바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너무 맛있어서 스테이크 조각이 자꾸자꾸 입에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스테이크 한 접시를 말끔하게 비워 버렸다.
심지어 배가 다 찼는데도 양고기의 맛이 잊히지 않을 정도였다. 눈앞에서 양고기의 모습이 환영처럼 아른아른 떠올랐다.
‘마법 같은 맛이다!’
그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양 간 무스도 훌륭했지만, 이 양갈비 스테이크는 육 요리의 정점이었다. 어느 하나 트집 잡을 구석이 없는 완벽한 요리였다.
게다가 이 풍부한 풍미의 크림소스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멋들어진 연출이란 말인가!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예술 작품 같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서 거만한 표정은 사라졌다. 그는 메이터 디에게 말했다.
“이렇게 되면 디저트도 빨리 먹어 보고 싶군.”
“곧 내오겠습니다.”
디저트는 판테온의 콩으로 만든 커스터드였다.
커스터드 위에 올려진 휘핑크림 역시 미루스 비덴스의 젖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었다.
신각은 디저트 역시 만족스럽게 먹었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다 마친 그는 레스토랑의 오너인 대규를 불렀다.
아까의 거만한 표정에서 살짝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
대규는 조리복을 입은 채 신각의 앞으로 다가갔다.
신각은 대규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처음 이 가게에 왔을 땐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파인다이닝을 표방만 하는 그렇고 그런 가게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사장님이 탕수육 치킨이라는 서민 음식 가게로 요식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편견도 있었고요. 저는 탕수육 같은 길거리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그의 말투에는 길거리 음식을 깔보는 태도가 박혀 있었고, 대규는 살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신가요?”
“네. 그런 음식을 먹을 만큼 제 혀는 저급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제가 실례했습니다. 이만한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오늘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맛보았습니다. 특히 메인 요리인 양갈비 스테이크의 육질과 크림소스의 풍미는 믿을 수 없군요. 개인적인 견해론 해외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보다 훨씬 더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각은 씩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굴라 레스토랑에 대한 칼럼에선 최고의 평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말을 마친 신각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굴라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그냥 탕수육 따위 같은 길거리 음식 가게는 접고 쭉 이쪽으로 나가는 게 훨씬 나을 텐데…….’
그가 레스토랑을 나가려고 하는데 대규가 다가와 말했다.
“평론가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얼마 후 대규는 요리 한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이 요리를 한입 드셔 보시고 평가 부탁합니다.”
그 접시엔 플레이팅이 완벽하게 된 음식이 놓여 있었다.
크림소스가 휘날리듯 뿌려져 있고 접시 가운데엔 노릇하게 익은 작은 튀김들이 오밀조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각종 스파이스 향신료들이 뿌려져 있었고 푸른 허브 한 줄기가 장식돼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신각의 코를 사로잡았다.
“이건 뭡니까?”
그러자 대규는 씩 웃으며 말했다.
“주방장의 특별 메뉴입니다.”
겉으로 봤을 땐 생선요리인 것 같았다. 흰살생선을 살짝 튀겨서 식감을 더한 요리 같기도 했고.
하지만 생선의 향은 아니었다.
고소하고 풍미가 진한 것이 닭고기의 향이었다.
“고급 중화요리인 유린기(油淋鷄)를 변형시킨 요리로군요. 굴라에선 양고기만 취급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일단 드셔 보시지요.”
김신각은 포크로 닭고기 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