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화 중국시장 (1)
식당 오픈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 상황을 보니 한 달 안에 무사히 오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에서의 도시락 사업 역시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탕꼬에 더욱 많이 오기 시작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탕꼬와 도시락에 대한 소문이 슬슬 퍼지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어느 날, 준섭은 대규의 사무실에 한 리스트를 들고 왔다.
“이게 뭡니까?”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 굴라 레스토랑에 들여놓은 하우스 와인 후보들입니다. 일단 이렇게 골라봤습니다. 사장님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요.”
좋은 와인을 들여놓는 것도 메뉴개발의 일환이었다.
양갈비 스테이크는 나름 고급스러운 메뉴였고 그에 걸맞은 주류를 배치하는 것도 메뉴 개발자가 할 일이었다.
대규는 준섭이 건넨 리스트에 있는 와인들을 살펴봤다.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등 원산지가 다양한 와인들이 적혀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게 잘 구비돼있고 가격들도 합리적인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와인의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
이 리스트엔 적어도 50개가 넘는 와인들이 병 이미지 사진들과 함께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정보만 나와 있어서 이 리스트만으로는 와인을 고르는 것이 힘들었다.
대체 이 와인들 중에서 자신의 양갈비 스테이크 요리와 기가 막히게 궁합이 좋은 와인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모두 시음이라도 해볼까?’
하지만 50개나 되니 그것도 큰일이었다.
결정 장애가 올 지경이었다.
대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와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공략집의 메시지 창이 떠오른 것이었다.
<공략집이 양갈비 스테이크와 궁합이 잘 맞는 와인을 고르는 중입니다.>
<선별작업이 끝나면 와인 리스트를 낮은 가격대 순으로 정렬합니다.>
<…0%… 20%… 50%…….>
공략집이 이런 것도 해준단 말인가.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얼마 후 눈앞에 다섯 개의 와인들이 세부정보와 함께 정렬됐다.
<양갈비 스테이크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와인들입니다.>
대규는 준섭이 건넨 리스트에서 공략집이 보여준 다섯 개의 와인들을 탁탁 찍어내며 말했다.
“이것하고 이것, 저것, 저것, 그리고 이것을 준비해 두세요.”
그 모습을 본 준섭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시음하지 않으셔도 됩니까? 혹시나 해서 50개의 와인들 모두 다 시음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두려고 했는데…….”
“괜찮습니다. 절 믿으세요.”
준섭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대규를 가만히 바라봤다.
항상 대규를 볼 때마다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다시 그에게서 엿보였다.
저 자신감을 보인 대규가 이상한 결정을 내린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가 내린 결정은 100%, 아니 200% 들어맞아 항상 성공했다.
준섭은 이번에도 의심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와인들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양꼬치 식당과 레스토랑은 순조롭게 오픈이 진행됐다.
대관령의 목초지에서 미루스 비덴스도 잘 키웠고, 그들의 젖도 무리 없이 공급해 크림소스를 대량으로 만들었다.
판테온의 대두콩 역시 잘 수확되고 있었다.
얼마 후 드디어 양꼬치 식당과 레스토랑이 오픈을 했다.
신지 양꼬치라 적혀 있는 간판은 명물 거리에서도 아주 환하게 눈에 띄었다.
1인 양꼬치 식당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최근 중국요리가 유행을 타서 신촌에도 몇몇 양꼬치 집들이 있었지만 대규의 신지 양꼬치처럼 1인 양꼬치 집은 이곳밖에 없었다.
개인화로를 두고 혼자 양꼬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산초나 향신료를 찍어 먹는 기본 양꼬치와 달리 미루스비덴스의 젖으로 만든 특제 크림소스가 꽤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얼마 후 SNS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더더욱 몰려들었다.
모 맛집 사이트의 ‘혼밥 하기 좋은 식당’ 게시글에 등재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선 신지 양꼬치에 대한 후기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신촌의 신지 양꼬치 가 봤음? 거기 크림소스 진짜 맛있지 않냐. 대체 뭘 넣고 만든 건지…….
-근데 그거 탕꼬 사장이 운영하는 거라며? 근데 맛있긴 하더라. 거기 양꼬치 먹고 나면 다른 양꼬치 집 못 가게 됨.
-ㅇㅇ. 육질의 급이 다름! 특상 한우 에이쁠쁠쁠러스 먹는 기분임. 게다가 기분 탓인지… 묘하게 중독성도 있어서 먹고 집에 오면 다시 그 양고기의 육질이 떠오름.
-사스가 탕꼬 사장! 정말로 음식에 마약이라도 넣는 것인가……. ㄷㄷㄷ
게다가 먹고 나서 감기가 나았다는 등, 신체 개선 효과를 보고 놀란 손님들의 후기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기 양꼬치 먹고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을 타 먹어도 안 떨어지던 감기가 거기서 양꼬치 먹으니까 싹 났다.
-미친. 무슨 음식을 먹고 감기가 낫냐? ㅋㅋ 이러다가 양꼬치를 먹고 나서 앓던 암이 나았습니다, 할 기세네. ㅋㅋ
-헐! 님도 그럼? 저도 그랬음! 묘하게 양꼬치를 먹었는데 삼계탕이라도 먹은 것처럼 온몸에서 열이 나고 그날 밤에 잠도 못 잤음. 덕분에 여자친구가 좋아했음.^^
-윗댓 새끼 여친도 없으면서 주작하는 거 뻔히 보이네. ㅗ
단순히 맛있다는 그것보다도 몸에도 좋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신지 양꼬치엔 손님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준섭은 이에 가맹점 문의가 빗발칠 걸 염두에 두고 미리 프랜차이즈 사업을 착착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진출 사업도 계획해 두고 있었다.
준섭의 계획을 들은 대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양꼬치가 중국에 진출해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본래 양꼬치란 음식은 중국이 원조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쪽 사람들은 중국에 있는 원조 양꼬치를 더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러자 준섭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중국에 이 특제 크림소스는 없습니다. 이 크림소스 양꼬치는 이제 대규식품만의 오리지널 음식입니다. 사장님이 현지화를 잘하셨다고나 할까요.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카레도 그런 케이스지요.”
카레는 본래 인도의 요리였다. 하지만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고 또 영국에서 일본의 해군으로 건너가게 됐다.
일본에선 인도의 카레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변형시켰다. 야채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밥과 함께 먹는 카레라이스 형태로 다시 창조해 냈다.
게다가 돈가스에 카레를 끼얹어 먹는 돈가스 카레 등도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레, 하면 바로 일본식 카레라이스를 연상한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카레는 이제 오히려 외국으로 역수출되고 있었다.
“저희 역시 일반 양꼬치가 아니라 사장님의 특제 크림소스로 변형 및 재창조시킨 양꼬치 요리입니다. 게다가 사장님이 기르신 이 양고기는 제가 먹어왔던 그 어떤 양고기들보다 훨씬 육질이 고급이고 맛도 훌륭합니다. 이런 양고기는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먹어본 손님들은 하나같이 고기가 중독성이 있다고 하는군요.”
그 중독성이 바로 미루스 비덴스 고기의 장점이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밝은 목소리로 준섭에게 말했다.
“부사장님이 양들을 더욱 공급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목초지에서 잘 키워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굴라 레스토랑 쪽은 어떻습니까?”
대규가 묻자 준섭이 대답했다.
“레스토랑 역시 아주 순조롭습니다. 일부러 최고급 호텔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조리사로 고용했습니다. 그런 고급화를 강조하면서 마케팅을 펼치고 있구요.”
준섭에게 들어 보니 레스토랑의 평가 역시 좋았다.
특히 양갈비 스테이크의 맛이 훌륭하고 음식과 와인이 아주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아직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확 유명해지진 않았다.
“양꼬치 식당의 경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니까 일반인들에게도 접근성이 높아 빨리 유명해지지만 이런 파인다이닝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하나 생겼습니다만…….”
준섭이 말을 흐렸다.
“무슨 일이죠?”
대규가 묻자 준섭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음… 좋다고 봐야 할지 좀 고민되는 기회입니다. 잘만 되면 제대로 마케팅을 할 수 있지만 약간의 리스크가 있어서…….”
“대체 뭡니까?”
준섭은 대답 대신 태블릿 PC를 꺼내 화면을 보여줬다.
거기엔 웬 잡지의 표지 화면이 떠 있었다. 잡지 제목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Moreau de roi]
표지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무슨 요리 사진이 찍혀 있었다.
준섭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파인다이닝 관련 잡지입니다.”
“오호, 그렇군요.”
“종이 잡지뿐만 아니라 이렇게 태블릿 PC를 이용해 이북(e-book)으로도 볼 수 있죠.”
대규는 태블릿을 들고 잡지를 살펴봤다.
잡지엔 여러 파인다이닝 식당들이 소개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몇몇 식당들은 대규가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 유명 셰프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좋은 마케팅 기회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준섭은 잡지에 기재된 한 칼럼을 가리켰다.
거기엔 안경을 끼고 까탈스럽게 생긴 한 남자의 얼굴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었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김신각의 특별한 테이블]
준섭은 칼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칼럼입니다. 이 남자는 김신각이라고 꽤 유명한 음식 평론가죠.”
“그런가요?”
“기분 나쁠 정도로 솔직한 평론을 해대서 말이 많습니다만, 평가 실력 하나는 끝내줍니다.”
대규는 기분 나쁠 정도, 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준섭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평론가가 호평한 가게는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빠르게 소문이 나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혹평을 받으면 가게에 파리가 날릴 정도로 폭삭 망한다는 소문이 돌곤 합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대규는 칼럼에 실린 글을 읽어봤다.
공교롭게도 그 잡지 호에 실린 칼럼은 혹평이었다.
‘요리는 평판대로 공을 들인 것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고기 육질에 훈연의 향이 과하게 배어 있었다. 훈연의 향을 조절하는 건 기본적인 요리의 기술이다. 이를 보니 요리 주인의 조리 테크닉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최상의 재료를 갖다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리사의 기본기 역시 중요하다. 이 고기 요리는 훈연의 향을 조절하지 못해 본래 고기가 지닌 육질과 풍미를 살리지 못했고 그저 그런 프레타포르테 류의 음식이 돼 버려서 심히 유감이다.’
‘만약 이 가게의 오너가 이 기사를 읽는다면 부디 깊이 반성하고 조리 테크닉을 더욱 갈고닦길 바란다.’
대규는 준섭에게 물었다.
“이 레스토랑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그러자 준섭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칼럼이 나오자마자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이건 거의 인격모독 수준 아닌가요?”
“이 김신각이란 평론가가 성질은 이상해도 요리를 평가하는 그 실력 하나는 진짜입니다. 적어도 그는 진상 파워 블로거들처럼 이것저것 이상한 거로 트집을 잡아 억지로 끌어내리거나 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식으로 혹평하다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나름 식당의 오너도 메뉴 개발하느냐고 고심에 고심을 기했을 텐데.”
대규는 잡지에 그려진 김신각의 캐리커처 얼굴을 봤다.
묘하게 재수 없게 생긴 것이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다.
그러자 준섭이 말했다.
“문제는 이쪽 잡지사에서 먼저 취재 요청이 왔다는 겁니다.”
“예?”
“저희가 수락하면 김신각이 조만간 굴라 레스토랑에 찾아올 것입니다. 솔직히 좀 리스크가 있는 기회이긴 합니다만… 그냥 거절할까요?”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 업계에 다 소문이 나겠죠. 그래도 혹평을 받는 그것보다는 나을 듯싶습니다.”
대규는 칼럼에 그려진 김신각의 캐리커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락하세요. 그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해 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