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139화 알로에다이 형제 (2)
번쩍!
펑!
하늘에서 불빛과 굉음들이 쏟아졌다. 여신은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렀고, 거인 오토스는 손에 든 거대한 검으로 여신의 공격을 막아 냈다.
에피알테스는 그 주변을 빙글빙글 날며 땅 위에 있는 영웅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대규는 저 멀리 날고 있는 에피알테스를 보며 생각했다.
‘저 녀석을 상대하려면 공중전에 능해야겠군.’
케이른에게 소리쳤다.
“케이른! 영웅 중에서 공중전이 가능한 자들을 일단 뽑아야 합니다. 공중전으로 녀석을 땅으로 끌어내린 뒤 모두가 힘을 합쳐 공격하면 아마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네 말이 옳아.”
일단 대규 자신은 공중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저 오크 두 마리도 신묘한 보법을 지니고 있으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셋이면 모자라지 않을까?’
그러자 아프로디테 수하의 여자 영웅들이 대규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도 가능해요.”
말을 마치자 그녀들의 등 뒤에서 은은한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곧 등에선 투명한 곤충의 날개 같은 것들이 돋아났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유리같이 생긴 날개였다.
아쉽게도 켄타로우스 족은 공중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공중전을 치를 인력이 그럭저럭 모인 것 같았다.
대규는 케이른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저 위로 올라가서 에피알테스 녀석을 공격해 지상으로 떨어뜨리겠습니다. 그 이후 모두 녀석에게 달려들어 공격을 퍼부으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때 지영이 대규에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대규 씨, 저도 가능해요.”
“예?”
대규가 반문하자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공을 날 수 있는 스킬이 있어요.”
그건 그도 알고 있었다. 대규는 아테나 여신의 부대에서 공략집으로 지영의 레벨을 확인했을 때 그녀가 지니고 있는 보유 스킬도 역시 보았다.
스킬 전설의 날개.
하지만 그 스킬은 허공을 날게 만들어 주는 대신 지속 시간이 5분 정도로 짧았고, 그에 비해 마나 소모량은 엄청났다.
“꼭 싸우고 싶어요.”
그녀는 다른 영웅들을 보며 덧붙이듯 이렇게 말했다.
“…피해를 끼치진 않을게요.”
그녀의 눈빛은 결연했고 대규는 살짝 고민했다.
거인 정예군과 일대일로 싸워도 밀리지 않는 지영이었다. 하지만 에피알테스는 거인 중에서도 상위종인 거인 대장 기가스였다.
그런데 오크 가로쉬가 갑자기 끼어들어 이렇게 외쳤다.
“이봐, 형제! 그녀의 전투 의지를 짓밟는 건 최고의 영웅 칭호를 받은 자가 할 짓이 아니다!”
그는 대규에게 팍 쏘아붙인 후 자신의 오른손에 침을 퉤, 뱉었다.
그리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자신의 뻣뻣한 머리를 그 손으로 깔끔하게 넘겼다.
아무래도 자기 딴엔 멋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가로쉬는 지영의 앞으로 다가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의 표정은 사뭇 긴장한 것 같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 자매! 자매는 정말 훌륭한 영웅이오. 나는 그대에게 크게 감동 받았소!”
“감사합니다.”
지영이 고마움을 표시하자 녀석은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그럼 우리 함께 싸웁시다!”
말을 한 가로쉬는 끄응, 하는 이상한 신음을 내더니 한동안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대규는 가로쉬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빨리 전투를 해야 합니다.”
이윽고 가로쉬는 결심한 듯 지영을 향해 자신의 손을 척 내밀었다. 공교롭게도 좀 전에 머리를 넘기기 위해 침을 뱉었던 손이었다.
지영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자신도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를 했다.
그러자 주변에 서 있던 고블린, 오우거 영웅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가로쉬 대장이 여자한테 고백해서 성공했다!”
심지어 몇몇 고블린들은 취릭거리면서 지영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취릭- 형수님이 생겼군요! 형수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대체 저 일련의 행동에 고백이 어디 있다는 거지?’
그러자 우르크는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대규에게 말했다.
“오크들이 같이 싸우자고 말하며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건 일종의 고백 행위다. 그런데 그녀는 악수를 했으니 가로쉬의 마음을 받아들인 거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영 씨는 그냥 뭣도 모르고 예의상 악수를 한 거…….”
그때였다.
괴생명체를 타고 있던 에피알테스가 낮게 하강해 영웅들 쪽으로 돌격해 오고 있었다.
괴생명체는에 달려있는 추악하게 생긴 주둥이에서 검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이곳 펠리온 산에 처음 쳐들어왔을 때 비처럼 쏟아졌던 불꽃 화살과 같은 검은 불꽃이었다.
“빌어먹을! 모두 피해!”
영웅들은 재빨리 피했다. 하지만 검은 불길은 가장 앞에 서 있던 지영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그녀를 덮쳤다.
“크크크! 죽어라, 영웅 계집!”
에피알테스는 사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가로쉬가 지영 앞을 가로막으며 검은 불꽃을 온몸으로 막기 시작했다.
“크윽! 자매, 빨리 피하시오!”
그의 우람한 두 팔이 불꽃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가로쉬는 불꽃을 뱉어내는 괴생명체의 아가리를 향해 오른손의 배틀 엑스를 던졌다.
휘리릭-
하지만 아깝게도 도끼날은 생명체의 입술을 스칠 뿐이었다.
그래도 꽤 효과가 있었다.
“꾸에엑!”
괴생명체는 주춤했다가 다시 한번 검은 불꽃을 뿜어냈고, 가로쉬는 다시 맨몸으로 그걸 막아 냈다.
그때 지영이 검은 불꽃 속으로 뛰어들었다.
타타탓!
그 모습을 본 대규는 튀어 나가 말리려 했다. 하지만 뒤이어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검을 불꽃들은 그녀의 몸 주변을 피해 가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몸 주변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라도 쳐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의 몸은 신들처럼 황금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하압!”
그녀는 높게 점프한 뒤 괴생명체의 주둥이를 향해 쌍검들을 주저 없이 찔러 넣었다.
푹!
“끄에엑!”
괴생명체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에피알테스는 똥 씹은 표정을 지은 뒤 저 멀리 하늘 위로 달아나 버렸다.
곧 지영은 쓰러진 가로쉬를 끌고 영웅들에게 왔다.
어느새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황금빛은 사라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대규가 묻자 지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거 덕분이에요.”
그녀의 손에는 푸른 열매 한 알이 놓여 있었다.
그건 아테나 여신이 전에 부대에서 그녀에게 보상으로 하사했던 올리브 열매였다.
대규는 그때 봤었던 올리브 열매의 효과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비의 올리브 열매]
[아테나 여신이 직접 기른 신비한 올리브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복용하면 5초간 불사 상태 무적 상태가 된다.]
“이 올리브 열매 덕분에 누구보다도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었어요. 이제 1개 남았네요.”
얼마 후 가로쉬는 정신을 차렸고, 지영은 그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마세요. 난 무식하게 싸우는 남자는 딱 질색이니까.”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가로쉬는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 같은 얼굴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겠소, 자매…….”
그러자 그녀는 가로쉬에게 상급 생명력 회복 포션을 하나 툭 던졌다.
그걸 받은 가로쉬는 이제 주인에게 칭찬받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며 포션을 먹고 상처를 회복했다. 그걸 본 우르크는 못마땅하다는 듯 홀로 중얼거렸다.
“크윽… 오크 대전사가 저런 표정을 짓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내심 부러워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대규는 저 멀리 달아난 에피알테스를 바라봤다. 녀석의 탈것인 괴생명체가 상처를 입은 지금이 녀석에게 공격을 퍼붓기 적당한 시점인 것 같았다.
그는 영웅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전투를 시작합시다.”
대규와 오크들, 아프로디테 여자 영웅들과 지영은 하늘로 올라갔다.
아프로디테의 여자 영웅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투명한 날개가 반짝이는 것이 꼭 요정 같았다.
저 앞에 괴생명체를 타고 날아가는 에피알테스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지영이 괴생명체의 주둥이에 먹인 공격 탓인지 녀석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좀 느려진 것 같았다.
대규는 영웅들에게 말했다.
“저 괴생명체의 날개를 공격해 녀석을 추락시킵시다.”
하지만 틈만 나면 녀석은 주둥이에서 검은 불꽃을 발사했고 영웅들은 주춤거리며 다가가지 못했다.
저 불꽃을 그대로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가로쉬의 모습을 보고 똑똑히 배웠기 때문이다.
그사이 녀석든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래선 못 잡는다!’
대규는 선발로 달려나가 재빨리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가까이 가자 괴생명체에 대한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데몬(Demon)
보상: 낮은 확률로 블랙 등급 젬스톤 드랍
특징: 알로아다이 형제들이 타고 다니는 몬스터 괴조. 날개가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물리적인 공격으론 상처를 낼 수 없다. 마법을 품은 스킬로 공격해야 한다.
보유 스킬: 악마의 화염-모든 걸 녹여 버리는 검은 불꽃을 적을 향해 발사함. 알로아다이 형제들은 이 불꽃으로 화살을 제조해 병사들에게 보급한다.
<데몬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데몬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데몬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데몬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역시 저 검은 불꽃은 그 화살의 불꽃과 동일한 거였다.
공략 영상을 보니 저 괴상하게 생긴 데몬의 약점은 날개였다.
일단 저 단단한 금속으로 이뤄진 날개를 잘라 버리면 녀석은 추락해 버리고, 덩달아 에피알테스도 지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전에 공격해야 할 곳이 있었다.
바로 저 주둥이 깊숙한 곳에 있는, 저 무시무시한 화염을 발사하는 목젖!
저놈의 쉴 새 없이 뱉어 내는 화염 때문에 다른 영웅들은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다. 일단 녀석을 공격하려면 저 목젖부터 제거해야 했다.
게다가 대규로선 녀석의 목젖을 제거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악마의 화염을 뱉어내는 데몬의 목젖은 같은 화염계열 무기인 불카누스의 사슬검에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사슬검에 데몬의 목젖을 장착하면 사슬검의 화염이 악마의 화염으로 변해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따라서 저 목젖은 내가 차지해야 한다!’
대규는 있는 힘을 댜해 녀석에게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에피알테스가 데몬에게 명령했다.
“크윽! 데몬, 화염을 쏴서 녀석을 녹여 버려라!”
명령을 받은 데몬은 대규를 향해 악마의 화염을 발사했다.
그때 닥튈로이의 반지와 함께 대규가 입은 황금 눈물 갑옷이 빛나기 시작했고, 이내 대규의 몸에서 전체적으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반지뿐만 아니라 갑옷에서까지 마력 저항 효과가 발동한 것이다.
검은 불꽃은 대규의 몸에 닿는 순간 사르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물론 온몸에 작열하는 불꽃의 후끈한 기운은 여지없이 느껴졌다.
생명력도 10% 정도 깎였지만 이 정도가 어딘가!
‘마력 저항 효과가 그전에 비해 말도 못 할 정도로 강해졌잖아!’
그 모습을 본 에피알테스는 놀라서 외쳤다.
“뭐야, 저 자식은!”
겨우 영웅 주제에 데몬의 악마 화염을 막아 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당황한 틈을 타 대규는 순식간에 데몬 앞으로 날아갔다.
녀석이 아가리를 벌리고 다시 불꽃을 발사하려 했다.
“어림없다!”
대규는 재빨리 사슬검을 채찍처럼 만들어 녀석의 주둥이 속으로 휘둘렀다.
휘리릭-
사슬검의 칼날들이 주둥이 속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사슬날들은 녀석의 목젖을 휘감았다.
“캑캑!”
데몬의 흉측한 주둥이는 괴롭다는 듯 숨을 캑캑거렸다.
그때 사슬검의 손잡이에 박힌 붉은 기운이 대규의 몸으로 흡수됐다.
살로메의 보석이 녀석의 생명력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좀 전에 녀석의 화염으로 깎인 생명력이 빠르게 복구됐다.
그래도 목젖은 쉽게 절단되지 않았다. 단단한 근육질로 이뤄진 것 같았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힘이여, 솟아라!”
촥!
데몬의 주둥이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