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오리온 (3)
피를 흡수한 도끼날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날은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크크… 형제들이여, 이제 진정한 전투의 시작이다!”
가로쉬가 외치자 아레스 신 부대의 영웅들은 또다시 괴성을 지르며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눈앞의 적들을 미친 듯이 도륙해 댔다. 부상을 입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쉴 새 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의 입가엔 광기 어린 잔인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두 오크의 모습이 월등하게 눈에 띄었다.
피를 흡수한 배틀 엑스의 도끼날은 사정없이 적군의 정수리, 심장, 사지를 찢어 놓으며 더더욱 많은 피를 흡수했다.
그럴수록 도끼날들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병사들은 더 많이 죽어 나갔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친 보호막 속에 있던 다른 영웅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아레스의 부대 영웅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거인 병사들의 시체는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가로쉬와 우르크는 온몸에 적군의 피를 잔뜩 묻힌 채 아프로디테와 다른 영웅들이 있는 보호막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몸과 얼굴 곳곳은 불꽃 화살들을 맞아 녹아내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형제의 싸움 방식입니다. 어떻습니까, 하하!”
오크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산 위의 암석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네 녀석들이 모시는 신답게 단순무식한 방식이로구나!”
그 목소리를 들은 오크들의 표정은 사납게 구겨졌다.
“누구냐!”
가로쉬는 암석 위를 바라보며 포효하듯 외쳤다.
그곳에는 거대한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암석 위에서 내려와 영웅들의 앞에 척 섰다.
몸집으로 봐선 분명 거인족인데 생긴 건 몹시 잘생겼다.
대규는 처음에 그 남자가 정령이거나 혹은 신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그의 외관은 수려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선 그 어떤 빛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떠오른 공략집을 보니 그의 정체는 거인족이었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오리온(Orion)
보상: 낮은 확률로 블랙 등급 젬스톤 드랍
특징: 거인족 사냥꾼. 절세 미남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사랑과 질투의 대상이다. 용모뿐만 아니라 싸움 실력도 월등해 현재 알로아다이 형제의 심복 부하로 있다. 그의 철퇴에는 어둠의 마법이 깃들어 있다.
보유 스킬: 지진-철퇴를 휘둘러 땅을 가격하면 땅이 갈라질 정도의 높은 강도의 지진이 일어난다.
<오리온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오리온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오리온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오리온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대규는 그가 들고 있는 철퇴를 바라보았다.
눈길을 끌 정도로 특이하게 생긴 무기였다.
보통 철퇴라 하면 긴 막대기 끝에 쇠로 만든 단단한 구가 달려있고 그 구에는 삐죽삐죽한 가시들이 달려 있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의 거대한 철퇴에는 가시 대신 이상한 것들이 잔뜩 달려 있었다.
바로 사냥개의 머리들!
둥그런 구 곳곳에 박혀 있는 사냥개의 머리들은 으르렁거리면서 이를 갈고 있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오리온을 보자마자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호오, 소문대로 정말 미남이로구나. 호호호!”
그러자 오크들은 기분 나쁘다는 듯 이빨을 갈면서 적대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흥! 생긴 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주제에 얼마나 싸움을 잘한다고……. 안 그러냐, 우르크 형제?”
“저게 뭐가 잘생긴 거냐! 솔직히 내 눈에는 가로쉬 형제가 남자답고 훨씬 잘생겼다. 여자들의 보는 눈이란 정말이지 이상하다……. 쯔쯧!”
저 오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오리온은 남자인 대규가 봐도 정말 잘생긴 미남이었다.
대규는 오리온과 아군이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 잽싸게 오리온의 공략 영상을 재생했다.
저 희한하게 생긴 철퇴의 공격 영상이 상당히 궁금했다.
영상을 보니 철퇴의 공격은 상당히 놀라웠다.
오리온이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철퇴 끝에 달린 사냥개들은 목이 쭉쭉 자유자재로 늘어나 주변의 적들을 잔인하게 물어뜯어 버렸다. 사냥개들의 머리는 최대 2~3미터까지 늘어나는 것 같았다.
사냥개들은 한 번 물은 적은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어뜯어 버린다.
‘가시가 달린 일반 철퇴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게다가 보유하고 있는 지진 스킬도 만만치 않았다.
저 철퇴로 땅을 가격해 지진을 일으키면 거인족이 아닌, 몸집이 작은 일반 영웅들은 균형을 잃고 주춤한다. 그 빈틈을 노려 오리온은 철퇴를 휘둘러 상대방을 공격한다.
‘다행히 나는 헤르메스의 장화가 있으니까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지진의 영향은 받지 않겠군.’
그때 아프로디테 여신은 오리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호, 오리온 네 녀석은 내가 직접 상대할 것이다. 영광인 줄 알 거라.”
쿠구궁!
굉음이 들리면서 여신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녀의 키와 몸집은 오리온만큼 거대해졌다.
전에 기가스 포르피리온과의 전투에서 아테나 여신 역시 적장 포르피리온을 상대할 때 저렇게 몸이 커졌다.
신들은 전투할 땐 상대방의 크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자신의 몸집을 늘릴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런 노출이 심한 갑옷을 입고 몸집이 커지니 보이는 광경은 참으로 민망했다.
고블린과 오우거 영웅들은 그녀의 거대한 두 다리 사이로 우르르 몰려들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취릭- 취리릭!”
“오오…….”
그들은 신음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며 몹시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켄타로우스 족 영웅들은 짐짓 점잖은 선비인 척 헛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몰래몰래 고개를 위로 올리며 훔쳐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여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오리온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호, 그럼 시작해 볼까.”
“전투를 받아들이지.”
타탓!
말을 마치자마자 여신과 오리온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고블린가 오우거 일당들은 여신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몹시 아쉬워하며 각자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쉬워할 틈은 거의 없었다.
저 멀리 영웅들을 향해 달려오는 정예군 거인 50명의 모습이 보였다.
“형제들이여! 전투를 준비하라!”
오크 정령 우르크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새로운 전투를 할 생각에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벌써부터 전장의 광기가 오크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어어어!”
아레스 신 부대 영웅들은 다시 한 번 괴성을 질러 댔다.
케이른 역시 다른 영웅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우리도 준비하자!”
척척-
아프로디테 여신의 영웅들과 아테나 여신의 영웅들 역시 전투태세를 취했다.
대규 역시 불카누스의 사슬검을 빼 들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전투가 임박하자 전투 감각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적들의 발소리, 숨소리, 무기를 꺼내는 소리 등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돌격!”
가로쉬의 외침을 필두로 영웅들은 달려 나갔다.
곧 거인 정예군들과 영웅들은 맞부딪혔다.
대규는 오크 장군 둘과 함께 아군의 선발대 쪽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케이른은 아프로디테 부대의 영웅 실비아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눈앞에 바로 거인 정예군이 보였다.
오크들은 눈을 번뜩이며 정예군을 향해 배틀 엑스를 힘껏 휘둘렀다.
“크하하! 죽어라!”
휘릭-
그런데 우르크의 도끼날이 대규의 팔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뭐 하는 겁니까!”
하지만 그는 사과 대신 이렇게 웃을 뿐이었다.
“크하하하!”
이미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대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미친놈들, 말 그대로 전쟁에 미쳤구나.’
하지만 오크들의 실력 하나는 끝내줬다.
그들이 배틀 엑스를 휘두를 때마다 정예군들의 몸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대규는 거인 정예군의 공략 영상을 습득하기 위해 하늘 위로 날아올라 갑옷의 투명화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발밑의 전쟁터에서 싸우는 아군과 적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거,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걸.’
아레스 신 부대의 전투 모습과 아테나 여신 부대, 그리고 아프로디테 여신 부대의 전투 모습은 각자 상이했다.
일단 아레스 신 부대는 몹시 단순무식했다.
“크하하하!”
“취릭, 취릭!”
그들은 두 오크 장군들을 필두로 피를 흘리면서도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러 댔다.
부상당하거나 쓰러지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저 정도로 겁을 상실하려면 대체 맷집이 어느 정도인 걸까.
그에 비해 대규가 속한 아테나 여신 부대의 영웅들은 상당히 절제하며 싸운다. 무기를 휘두르는 동작 하나하나가 절도 있고 침착했다.
특히 케이른을 포함한 켄타로우스 족 영웅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지영의 모습이었다.
“하압!”
그녀는 절제된 동작으로 쌍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기를 보니 차원의 틈에서 처음 받았던 메티스의 쌍검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무기였다.
검날이 재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며 적들의 급소를 정확하게 찔렀다.
정예군 하나가 뒤에서 달려들자 그녀는 몸을 낮춰 공격을 피한 뒤 순식간에 녀석의 뒤로 돌아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끄으으…….”
정예군은 등에 큰 상처를 입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영의 눈동자엔 어느새 두려움이나 공포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저 무식한 아레스 신 부대의 영웅들처럼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건 아니었다.
그녀의 쌍검은 차가운 카리스마를 품고 정예군을 공격했다.
레벨 80인 인간인데도 거인 정예군과 일대일로 싸워서 밀리지 않다니, 그녀는 자신처럼 공략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꼭 인간 버전의 아테나 여신을 보는 것 같다. 대체 그녀는 얼마나 노력한 걸까.’
경이로운 마음도 살짝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프로디테 여신 휘하 영웅들의 전투방식도 사뭇 달랐다.
그녀들 역시 무기들을 절제 있게 휘두르는 건 비슷했지만, 여성들로 이뤄져서 그런지 몸동작이 훨씬 부드럽고 유연했다.
정예군 거인 한 명이 케이른의 애인(?)인 실비아를 공격해 왔다.
“크크크… 아름다운 계집이구나!”
실비아를 향해 정예군 거인의 칼날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허리를 활처럼 유연하게 굽혀 몸을 돌렸다. 아크로바틱한 것이 전투가 아니라 꼭 아름다운 체조, 혹은 무용 동작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발레를 하듯 발끝으로 사뿐사뿐 걸으며 자신의 칼로 적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노렸다. 그녀의 칼이 급소를 찌르려는 순간,
우르릉! 쾅쾅!
거인의 정수리에 푸른 벼락이 내리쳤고 그의 머리통이 처참하게 박살 나 버렸다.
실비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케이른이 서 있었다.
“실비아, 너는 내가 영원히 지켜줄게~”
‘웩, 전투 중에 저게 뭐 하는 거람.’
그래도 이번 적군은 거인 정예군들인지라 좀 전의 일반 병사와는 달랐다. 영웅들은 거의 정예군 1명을 상대로 3명씩 붙어 싸우고 있었다.
지영처럼 일대일로 싸우는 영웅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가로쉬나 우르크 같은 대장군급 영웅들은 홀로 2명의 정예군을 상대하고 있었다.
영웅들이 위력적인 스킬을 써서 공격하려 해도 정예군들 역시 실력자라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럼 나도 이제 슬슬 실력을 발휘해 볼까.’
공략 영상을 빠르게 숙지한 뒤 대규는 전쟁터 한가운데로 날아가 착륙했다.
이참에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은 새 갑옷 황금 눈물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특히 분신을 만들 수 있는 옵션을!
공략 영상을 봤지만 정예군이라고 일반 병사에 비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것 말고 특별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물론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 역시 마법을 품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그건 닥튈로이의 반지와 이 갑옷의 마법저항력이 어떻게든 버텨 주겠지.’
황금 눈물은 마법 저항력 50% 상승에 회피율, 반사 데미지까지 갖추고 있었다.
전쟁터에 착륙하자마자 곧 대여섯 명의 정예군 거인이 대규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분신 옵션 발동!
스스슥-
순식간에 대규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옆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