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화 오리온 (2)
오토스는 자신의 눈을 향해 날아오는 아레스의 대검을 보고 놀라서 항아리의 뚜껑을 닫아 버렸다.
챙!
항아리 안쪽에서 대검이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크,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군.”
그렇게 항아리 내부엔 암흑이 찾아왔다.
알로아다이 형제, 기간테스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는 아레스가 갇혀 있는 청동 항아리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레스가 갇혀 있는 항아리는 평범하게 생긴 청동 항아리였다. 몸통 부분은 둥그렇게 생겼고, 그 위에는 작은 뚜껑이 덮여 있었다.
하지만 이 항아리는 거인족의 고대 마법이 담긴 항아리고 그 크기를 자유롭게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거인 형제들은 이 항아리를 암석 안에서 무한히 늘려 아레스를 유인해 가둘 수 있었다.
청동 항아리 안에서 난폭한 소리가 들렸다.
챙! 챙!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아레스가 안에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오토스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저 무식한 녀석! 하마터면 한쪽 눈을 잃을 뻔했잖아.”
오토스는 거대한 주먹으로 항아리의 뚜껑을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 그러자 항아리는 곧 잠잠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동생 에피알테스가 말했다.
“형, 조심해! 저 자식이 비록 멍청하고 단순무식한 놈이지만 힘 하나는 장난 아니라구. 빌어먹을, 저 자식 덕분에 우리 거인 병사들이 몇 명이나 죽어 나간 거람?”
에피알테스는 목을 암석의 균열 틈으로 목을 내밀고 밖을 바라봤다.
산 아래쪽엔 아레스가 해치운 거인 병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도 저 병사들이 졸병이라 다행이다. 정예군 50명은 아직 무사히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형, 곧 정예군들을 투입해야 될 거야. 저 난폭한 녀석을 돕기 위해 지원군이 오고 있거든.”
그 말에 오토스는 청동 항아리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우스 신이 다른 신들에게 녀석을 도와주라 전언이라도 보냈나 보군. 그래 봤자 저 난폭한 아레스 녀석의 평판은 판테온 신들 사이에서도 바닥… 도와주러 오는 지원군이 얼마나 있겠어?”
그러자 에피알테스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구부리며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의 이거, 있잖아. 그 섹시한 애인.”
“그 얼굴 반반한 여신 계집 아프로디테 말이군.”
“형, 반반하다고 과소평가하면 안 돼. 아프로디테는 나름 여신이라서 실력은 뛰어나.”
그 말을 들은 오토스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여자의 약점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지. 흐흐.”
“설마 형은 그녀에게 오리온을 보낼 작정이야?”
“그래.”
오토스의 말에 에피알테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툭 내뱉듯이 말했다.
“흥! 오리온 그 녀석은 거인답지 않게 잘생겨서 짜증 나는 놈이라구.”
“너 설마 오리온을 질투하는 거냐? 크크… 하지만 그 여자는 잘생긴 남자에겐 아주 환장을 하고 달려든다고. 오리온을 투입하면 아주 효과적일 거다.”
그러자 형제 옆의 청동 항아리가 다시 한 번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토스는 항아리를 향해 비열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하! 네 녀석의 애인 얘기를 하니까 기분이 나빠진 거냐?”
말을 마친 오토스는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오리온! 이리 들어와라.”
쿠구궁-
굉음이 나며 형제 앞에 있는 바위 암석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대한 인영 하나가 보였다.
10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인간의 형상을 한 거인이었다.
그는 튼튼한 금속 갑옷을 입고 있는 인간 남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절세미남이었다.
조각같이 잘생긴 그의 모습을 보며 아우 에피알테스는 툴툴거렸다.
“저 자식은 거인 주제에 왜 저렇게 잘생긴 거람! 칫!”
거인 오리온은 오똑한 콧날에 푸른 눈,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금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외관만 보면 거인족이 아니라 판테온에 산다는 정령이나 신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오리온은 공손한 목소리로 형제에게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목소리마저 완벽했다.
오토스는 오리온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오리온, 너에게 맡길 임무가 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오리온은 형제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명령을 받들 준비를 했다.
“지금 당장 거인 정예군 50명과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무리를 박멸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더 내리실 명령은 없습니까?”
“참, 그리고 그중에서 여신 아프로디테는 절대 죽이지 말고 생포해 이곳으로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출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리온은 멋진 금발을 휘날리며 떠났다.
에피알테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툴툴거렸다.
“다시 봐도 정말 잘생겼어. 볼 때마다 잘생겨서 짜증 나. 그리고 저 윤기 나는 금발은 뭐람! 난 태어날 때부터 쭈글쭈글한 피부에 대머리였는데!”
“그래도 어쨌든 우리가 오리온보다 계급이 높은 상위 거인종이다. 녀석은 죽을 때까지 우리의 명령을 들어야 해.”
“그나마 좀 위로가 되는군. 그런데 형, 왜 아프로디테를 죽이지 말고 생포해 오라고 한 거야?”
그러자 오토스는 음흉한 목소리로 아우의 물음에 대답했다.
“흐흐흐… 아우야, 너는 참 순진하구나. 판테온에서도 그토록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포로로 삼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아니냐!”
“역시 형이야! 하긴, 우리 거인족엔 아름다운 여자가 없지. 다들 눈동자가 하나뿐인 외눈박이거나 거죽이 짐승처럼 거칠 거나… 으웩!”
“그 여신을 포로로 삼아 이런 짓 저런 짓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구나. 흐흐…….”
“케케케…….”
형제는 신이 나서 아프로디테 여신을 포로로 삼아 온갖 음탕한 짓을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놓인 청동 항아리가 다시 난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토스는 항아리의 집어 든 뒤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몇 차례 거세게 흔들어 대자 곧 항아리는 조용해졌다.
어느새 아프로디테 여신과 영웅들은 펠리온 산 앞에 도착했다.
아프로디테는 거대한 산 앞에서 배회하고 있는 아레스의 적마를 발견했다.
적마는 아프로디테를 알아보고 그녀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적마의 갈기를 쓰다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착하지··· 너의 주인은 어디로 갔느냐?”
“히히힝!”
적마는 비통하게 울며 산 위에 있는 암석을 바라봤다.
거대한 암석의 상층부엔 커다란 균열이 나 있었다.
여신은 그 암석의 균열이 누가 만든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런 무식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애인 아레스밖에 없었다.
아레스는 아무래도 알로아다이 형제들이 사는 저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갔다가 이미 위기에 처한 것 같았다.
아레스 휘하의 오크 대장군들이 여신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알로아다이 형제는 바보가 아니다. 아마 이곳에 오리온과 정예군들을 벌써 풀어놓았을 테지. 다들 전투태세를 갖추라!”
스륵-
척척척.
영웅들은 모두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든 뒤 사방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둘러봤다.
아직 산 주변은 조용했다.
대규는 공략집으로 지도창을 띄웠다. 적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그들의 앞에 우뚝 솟은 산속에 빨간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조심하십시오! 산속에 적들이 매복해 있습니다!”
푸슉-
휙휙휙-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산에서 화살이 수없이 날아왔다.
그런데 일반 화살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화살들은 까만 불길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당에 닿자마자 모든 걸 녹여 버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화살!’
아프로디테 여신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인들 주제에 매복하다니. 머리 꽤나 굴릴 줄 아는구나.”
말을 마친 그녀는 팔을 척 들었다.
그러자 영웅들의 머리 위로 투명한 방어막이 생겨났다. 불꽃 화살은 그 막에 닿자마자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여신은 손을 든 채 소리쳤다.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저 화살은 알로아다이 형제의 마법이 깃들어 있어서 맞으면 그 부위가 녹아내리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니 막 안을 벗어나지 말아라. 대신 막 근처로 쳐들어오는 녀석들을 차례로 물리쳐라. 처음에는 일반 병사들이 들이닥칠 테니 상대하기 힘들지 않을 거다!”
그 말에 영웅들은 막 가장자리 쪽으로 나가 본격적인 전투태세를 취했다.
“오리온이 등장하면 내가 그를 상대하겠다. 그럼 모두 정렬!”
아프로디테가 외치자 그녀 휘하의 영웅들은 일렬로 척척척, 서기 시작했다.
대규와 케이른, 지영을 포함한 아테나 부대 영웅들도 무기를 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막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타타탓!
마침내 불꽃 화살과 함께 산속에서 무언가가 떼를 지어 나와 점프했다.
마치 비상하는 새 떼를 보는 것 같았다.
대규가 그것들을 바라보자 공략집이 떴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알로아다이 형제들의 거인 병사
보상: 낮은 확률로 레드 등급 젬스톤 드랍
특징: 힘이 세고 마법이 담긴 무기들을 사용한다. 그들의 물리적 공격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어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방어력뿐만 아니라 마법 저항력도 필요하다.
<알로아다이 형제들의 거인 병사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알로아다이 형제들의 거인 병사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알로아다이 형제들의 거인 병사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알로아다이 형제들의 거인 병사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아무래도 저 불꽃 화살들 역시 마법이 담긴 무기의 일종인 것 같았다.
이제 병사들은 영웅들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키키키!”
“크에에에!”
영웅들은 녀석들이 보호막 근처까지 오면 도륙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규는 이 틈을 타 녀석들의 공략 영상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쒸익, 쒸익-”
“헉헉-”
‘이건 무슨 민망한 숨소리지?’
뒤를 돌아보니 우르크와 가로쉬, 두 명의 오크 장군들이 내는 숨소리였다.
‘그런데 저 녀석들 왜 저래?’
그들의 모습은 평소와 좀 달랐다. 눈빛은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었고,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송곳니가 툭 튀어나온 그들이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서서히 번지고 있었고, 무기를 쥔 팔뚝엔 핏줄이 꿈틀거리며 튀어나오고 있었다.
“으흐흐… 좋다, 좋아……. 전투다…….”
“흥분된다… 전장의 냄새…….”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들로부터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인 거대한 배틀 엑스를 척 집어 들더니 보호막을 빠져나가 돌진해 오는 거인 병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아프로디테 여신이 당황해서 외쳤다.
“여봐라! 당장 동작을 멈춰라!”
하지만 그들은 여신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여전히 적군을 향해 달려 나가며 이렇게 소리쳤다.
“우어어어! 형제들이여, 우리 뒤를 따르라! 자랑스러운 아레스 부대의 영웅들이여!”
그러자 막에 있던 고블린과 오우거 영웅들 역시 무기를 쥐고는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쿠워어어!”
“취릭- 취리릭!”
각자의 괴성을 질러 대며 그들은 두 오크 장군을 따라 맹렬하게 적군에게 돌진했다.
불꽃 화살들은 사정없이 그들의 몸을 향해 떨어졌다.
화살을 맞은 부위의 피부가 녹아내려 갔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크하하! 이 정도는 버텨 내야 진정한 전쟁 영웅이지!”
대규와 다른 영웅들은 막 안에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선봉에 선 두 오크는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리만치 민첩하게 몸을 움직였다.
타탓!
휘릭-
무거운 배틀 엑스의 도끼날이 사선을 가르자 대여섯 마리의 거인 병사의 목이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검붉은 피가 도끼날을 흠뻑 적셨다. 그런데 곧 도끼날은 그 피를 흡수해 버렸다.
‘저 무기는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