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133화 아레스 주둔지로 파견 (2)
대규와 케이른을 비롯한 아테나 부대의 영웅들은 오크 대장군들을 따라 아레스 신의 지휘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내부의 구조는 아테나 여신의 천막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안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윽!’
대규는 저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비릿하고 고약한 냄새가 천막 안쪽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천막의 중앙에는 아레스 신이 평소 앉는 자리인 왕좌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물론 그 왕좌는 지금 비어 있었다. 아레스 신이 이곳에 없다는 가로쉬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문제는 이 고약한 냄새가 왕좌에서 풍겨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왕좌는 녹슨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곳곳에 검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그리고 등받이 가장자리엔 다양한 크기의 해골들이 주르륵 둘러싸고 있었다.
케이른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속삭였다.
“아레스 신은 자신이 베어 버린 적의 머리를 왕좌에 달아 전리품으로 챙기는 걸 즐긴다. 정말 취향 한 번 고약한 신이라니까.”
전쟁의 광기와 피를 사랑하는 신다웠다.
가로쉬와 우르크는 신이 없는 빈 왕좌를 보며 깍듯하게 경례를 했다. 이 두 오크는 망나니 같아 보여도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에 대해선 충성심이 엄청난 것 같았다.
“그런데 아레스 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대규가 묻자 가로쉬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레스 신께서는 먼저 알로아다이(Aloadae) 형제들과 싸우러 가셨다.”
알로아다이 형제란 단어가 가로쉬의 입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케이른과 켄타로우스 영웅들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일었다.
하지만 지영과 대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크들을 바라봤다.
인간인 그들은 알로아다이 형제를 잘 알지 못했다.
‘예전에 신화 책에서 한 번 이름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기간테스에 속하는 거인들이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케이른을 비롯한 다른 영웅들이 긴장한 표정인 걸 봐서 만만한 상대의 거인들은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맨날 허세를 부려대고 무식하게 달려드는 오크 대장군 둘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알로아다이 형제란 녀석들은 심상치 않은 상대인 것 같았다.
우르크가 아테나 부대의 영웅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의 부대와 우리 부대는 알로아다이 형제인 오토스(Otos)와 에피알테스(Ephialtes)의 부하들을 무찌르면 된다. 그 두 형제는 우리 위대하신 아레스 신이 직접 해치울 것이다.”
알로아다이는 두 형제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을 지칭하는 별명인 듯했다.
하지만 우르크의 말을 들은 대규와 케이른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크 대장군들은 꼭 자신의 아래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듯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특히 케이른을 비롯한 켄타로우스 영웅들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듯했다.
켄타로우스 영웅들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오크 자식, 꼭 자기가 상관인 것처럼 건방지게 명령하잖아?”
“우리가 자기들을 도와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좀 더 예의를 지키라고!”
그러자 우르크가 거대한 송곳니를 바드득 갈며 툭 내뱉었다.
“닥쳐라, 수인 녀석들아. 말 피가 섞인 잡종들 주제에 말이 많다!”
잡종, 이란 단어를 듣자 케이른을 포함한 모든 켄타로우스 영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표현은 켄타로우스 족들에 몹시 모욕적인 말인 것 같았다.
케이른은 우르크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입조심해라, 이 괴물 자식들아.”
그러자 오크 대장군 둘과 천막 안으로 따라온 몇몇 고블린, 오우거 영웅들이 공격적으로 이를 바득 갈기 시작했다.
스륵-
척! 척!
어느새 그들은 각자 무기들을 꺼내 전투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서로 도와서 전투를 하긴커녕 큰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긴박한 공기가 천막 안을 휘감고 있었다.
그때 천막 입구 쪽에서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다들 벌써 도착했나 보구나.”
그 목소리에 모두 천막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온몸에서 황금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여성이 서 있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었다.
‘그런데 옷차림이 뭐 저래?’
대규는 민망한 나머지 차마 여신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전에 판테온 중앙신전에서 열렸던 승전 기원 파티에서 그녀는 온몸이 비치는 얇은 천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터라서 그런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저걸 갑옷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녀의 갑옷은 은은한 황금빛이 감도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비키니 아머였다.
특히 하의 쪽은 미니스커트가 아니라 완전 수영복 같이 생겼다. 게다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까만색의 부츠는 또 뭐람.
‘저런 걸 입고 정말 전투를 할 수 있는 건가?’
대장군처럼 황금갑옷을 차려입은 아테나 여신과 너무 비교됐다.
여신 뒤에는 아름답게 생긴 여자 영웅들 열댓 명이 서 있었다. 그녀들 역시 민망한 노출 수위의 갑옷들을 걸치고 있었다.
고블린들과 오우거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여신과 여자 영웅들을 바라보기 바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느껴지는 위엄 때문인지 좀 전에 지영에게 했던 것처럼 감히 대놓고 치근덕거리진 못했다.
가로쉬와 우르크 두 오크 대장군은 아프로디테 여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하지만 공손한 목소리와 달리 둘의 표정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대규 옆에 있던 케이른의 눈동자가 커졌다.
“실비아!”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 바로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영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전에 승전기원파티에서 케이른과 눈이 맞았던 여자 영웅이었다.
실비아는 케이른과 눈이 마주치자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케이른은 아테나 여신의 천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넋 나간 멍청이 같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레스의 해골 왕좌 근처로 다가갔다.
고블린과 오우거들은 여신이 걸어갈 때마다 넋을 잃고 바라봤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 시선을 즐기는 듯 더욱 요염하게 걸어갔다.
곧 그녀는 아레스 신의 왕좌에 앉아 다리를 꼬고 모든 영웅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가로쉬가 단호한 목소리로 여신에게 말했다.
“그 왕좌는 아레스 신께서만 앉을 수 있는 왕좌입니다. 아레스 신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앉아선 안 됩…….”
“빡빡하게 굴지 말게. 아레스 신도 내가 앉았다고 하면 뭐라고 하지 않을 걸세. 호호. 그나저나 왕좌의 피비린내가 상당히 섹시한 걸. 역시 내 애인 아레스다워.”
여신은 가슴을 앞쪽으로 쭉 뺀 뒤 가로쉬를 쳐다봤다.
그 바람에 그녀의 하얗고 풍만한 가슴골이 출렁거리며 흔들렸다.
그녀는 가로쉬를 향해 매혹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내 애인 아레스가 알로아다이 형제들에게 바로 쳐들어갔다지? 정말 전투만 벌어지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니까. 아레스는 분명 고전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제우스신께서 우리를 이곳에 지원군으로 보내신 거고.”
그러자 우르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도 아레스 신을 말렸지만…….”
저 호전적이고 단순무식한 오크 녀석들이 말릴 정도라면 그 적은 아레스 신이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적이란 소린가?
대규는 혼란스러워서 케이른에게 물었다.
“대체 알로아다이 형제는 얼마나 강한 겁니까?”
하지만 케이른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여자 영웅 실비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규는 케이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러자 그가 몹시 당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응? 아, 나는 절대로 그녀의 가슴을 훔쳐보지 않았어! 정말이야! 그녀가 소지하고 있는 장비들이 몹시 좋아 보여서…….”
횡설수설 변명하는 그의 말을 끊으며 이렇게 물었다.
“아레스 신이 싸우러 갔다는 알로아다이 형제들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 저 단순무식한 오크들이 말릴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녀석들이란 거죠?”
“예전에 아레스 신은 알로아다이 형제에게 덤벼들었다가 크게 패한 적이 있어.”
“그게 정말입니까?”
신이 패할 정도라면 꽤 강력한 거인들이다.
케이른은 말을 이었다.
“믈론 싸움 실력이나 힘으로나 아레스 신이 녀석들보다 한 수 위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레스 신은 강하긴 해도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성격이지. 그게 독으로 작용했던 거야. 제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알로아다이들은 그런 아레스 신의 성격을 간파하고 그의 자존심을 긁으면서 살살 유인해 그를 청동 항아리에 가둬 버렸다.”
그러자 아프로디테 여신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청동 항아리! 아레스가 거기 갇혔던 일은 정말 재밌었어, 호호.”
여신은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고 고블린과 오우거 영웅들은 흘끔흘끔 그녀의 늘씬한 다리를 훔쳐보기 바빴다.
하지만 여신은 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여신은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레스는 그때 그 항아리에 1년 동안 불쌍하게 갇혀 있었지. 나와 헤르메스가 가서 꺼내 주기 전까진 말이야. 그 항아리에서 나올 때 아레스의 초췌해진 표정이란… 너무 귀여웠지! 호호호.”
그러자 가로쉬와 우르크가 발끈하며 여신에게 말했다.
“갇힌 게 아니라 그 형제 녀석들이 비겁한 수를 쓴 겁니다. 그리고 귀엽다니요. 우리 아레스 신을 모욕하는 발언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어쨌든 얘기를 들어보니 아레스 신은 이후 알로아다이 형제에게 큰 복수심을 품고 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시작되고 다시 한번 그들에게 성급하게 전투를 하러 달려간 것 같았다.
물론 알로아다이 형제들은 아레스 신의 성격을 이용해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아레스 신의 위기를 예상하고 젊은 신들에게 도와주라 전언을 돌린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신들은 아레스의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도와주길 꺼렸다.
아테나 여신의 경우 상당히 관대한 축에 속했다. 도와주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구색이라도 맞추려고 대규와 케이른을 보냈으니 말이다. 아프로디테를 제외한 다른 신들, 혹은 그들의 부하들은 이곳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저 아프로디테 여신이 이곳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이렇게 나선 것은 아마 아레스 신과 애인 사이여서 그런 것 같았다.
그때 아프로디테 여신이 왕좌에서 일어나 대규와 영웅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머, 너는…….”
그녀는 대규 옆에 서 있는 지영을 발견하고는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지영은 여신이 다가오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지영의 경우 아테나 여신 말고 다른 신은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그 여자 인간 영웅이로구나. 나는 차원의 틈에서부터 너를 눈여겨봤다.”
“감사합니다.”
지영은 기간토마키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 자신을 원하는 신 중 아프로디테가 있었던 사실을 기억했다.
여신은 지영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 정도의 미모에 실력이면 아테나 여신 부대보다는 우리 부대가 훨씬 잘 어울릴 텐데… 안 그런가? 그 부대엔 시커먼 남자들만 있고 말이다.”
여신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대가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니 그대를 내 직속 부하로 들이지 못한 게 아쉬워지는구나. 만약 전투 도중 마음이 변한다면 언제든지 나의 부대로 찾아오거라. 그대라면 언제든지 받아 줄 터이니.”
여신은 지영에게 싱긋 웃어 보인 뒤 다른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알로아다이 녀석들을 쳐부수러 가기 전에 작전을 짜도록 하자. 지금 녀석들,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는 정확히 어디 있는가?”
그러자 우르크는 잔뜩 구겨진 표정을 지은 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흥, 아레스 신이 없으니 완전 당신께서 이곳 대장 행세를 하려 하는군.”
물론 여신의 귀엔 절대 들리지 않았다.
가로쉬 역시 기분은 나빴으나 속마음을 싹 숨기고 여신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녀석들은 지금 펠리온 산에 있습니다. 아레스 신 역시 펠리온 산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적의 병력과 이쪽의 병력 규모는 어떻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