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아레스 주둔지로 파견 (1)
여신은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는다. 대장이 부대를 비울 순 없으니 말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레스를 직접 도와주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럴 만하지.’
대규는 승전 기원 파티에서 아레스 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요란스럽고 입도 거칠었으며, 게다가 전쟁터에서 머리만 굴리는 겁쟁이라고 아테나 여신을 무시했다.
“대규, 케이른.”
여신이 이름을 호명하자 대규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케이른도 그제야 멍한 표정을 거두고 아테나를 바라봤다.
“그대들은 이 부대 최고의 실력자다. 그대들이 몇 명의 영웅을 선별해서 아레스의 부대로 가길 바란다. 물론 아레스 신을 도와주되 목숨을 다해서 도와줄 필욘 없다.”
“알겠습니다.”
“이곳 영웅들이 모두 갈 순 없으니, 그대들이 생각하기에 훌륭한 자들을 뽑아 가길 바란다.”
여신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케이른은 자신들의 일족 켄타로우스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규는 일전에 포리피리온 전투에서 같이 참여했던 장군과 영웅들 위주로 뽑기로 했다.
그때 지영의 모습이 보였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뭐야?’
요즘 한동안 못 봐서 몰랐는데, 그녀의 얼굴은 그전에 비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갑옷과 장비들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그녀로부터 풍겨져 오는 기운 자체가 남달랐다.
게다가 저 눈빛.
자신을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는 고요하면서 차분했지만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꼭 발톱을 숨기고 있는 독수리 같달까.
‘처음 이곳 아테나 여신의 주둔지로 함께 왔을 때만 해도 저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호기심이 일어 대규는 공략집으로 지영의 레벨을 확인해 봤다.
‘헉, 벌써 레벨이 80이라고?’
깜짝 놀랐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단 말인가.
‘하긴, 나도 단기간에 인간의 한계 레벨을 돌파하고 세미데우스가 됐잖아. 내가 할 말은 아니지.’
그래도 자신은 공략집이 있었다.
자신이 판테온의 시련을 통과하고 포리피리온 전투에 참여하는 사이, 그녀 역시 매우 성장한 것 같았다.
그때 지영이 입을 열었다.
“저도 가겠어요.”
대규는 지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결연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위험합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대규는 승낙하지 않았다.
그녀가 뛰어난 영웅인 건 알지만, 아직 인간이다. 이곳엔 정령들과 세미데우스인 영웅들도 많았다.
사사로운 정만으로 그녀를 데려갈 순 없었다.
그러자 케이른이 옆에서 말했다.
“데려가도 될 것 같은데. 그녀 정도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네?”
대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케이른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아테나 여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신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지영은 비록 인간이고, 심지어 여성이지만 훌륭한 영웅이다. 데리고 가도 좋다.”
“…알겠습니다.”
대규는 지영에게 천막의 한쪽으로 가라고 눈짓을 했다.
그곳엔 대규와 케이른이 뽑은 다른 영웅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이들이 아레스 신 부대 지원군으로 갈 정예군이었다.
케이른이 뽑은 켄타로우스 족 영웅 12명, 세미데우스 및 정령 영웅 6명, 그리고 지영까지 총 19명이었다.
여기에 대규와 케이른까지 합치면 21명이다.
“그럼 최대한 빨리 다녀오도록 하라.”
여신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레스의 부대를 승리로 이끌 필요도 없다. 그냥 위기에서 도와주기만 하고 후딱 다시 돌아오거라.”
여신의 얼굴엔 아직도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대규와 케이른, 그리고 나머지 영웅들은 아테나 여신에게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여신은 허공에 손짓하며 포탈을 열어 뒀다.
지지잉-
영웅들은 포탈 안으로 하나둘 들어갔다.
포탈을 타고 도착한 곳은 아레스 신 부대의 주둔지였다.
포탈에서 나온 대규는 깜짝 놀랐다.
주둔지 자체는 아테나 여신의 주둔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구조였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헤르메스 신의 주둔지에 갔을 때도 그 구조는 똑같았다.
하지만 주둔지를 걸어 다니는 병사, 영웅들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취릭- 아테나 여신님의 부대에서 오신 영웅들이시군요. 취리릭-”
이상한 쇳소리를 내며 한 영웅이 다가왔다.
그 영웅의 피부는 녹색이었고, 귀는 뾰족했다. 하지만 얼굴은 몹시 흉측하게 생겼다.
게다가 어딘지 야비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얼굴이었다.
‘영웅이 아니라 완전 몬스터같이 생긴 몰골이잖아.’
하지만 그는 멀쩡한 갑옷과 무기를 걸치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정령 이름: 메이폴(Maypole)
특징: 고블린 족으로 호전적이고 피를 보면 흥분한다. 아레스 신 부대의 보병, 일반 병사들은 주로 이 고블린 족들로 구성됨
고블린이란다.
그뿐만 아니었다. 주둔지를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모두 다 괴상하게 생긴 몰골이었다.
심지어 잿빛의 거대한 몸뚱이에 무식하게 큰 곤봉을 쥔 녀석들도 있었다.
공략집으로 살펴보니 오우거 정령이란다.
‘고블린에 오우거라니… 진짜 판테온 신의 부대 맞아?’
하긴, 승전 기원 파티에서 봤던 그 대장군 두 명도 오크 정령이었지.
고블린, 오우거, 오크… 모두 호전적인 성격의 종족이었다. 피와 전쟁의 광기를 사랑하는 아레스 신다운 부대였다.
“크어어어!”
“우오오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대규와 케이른, 그리고 다른 영웅들은 거대한 함성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우락부락한 오크들과 고블린, 오우거 병사들이 원을 그리고 빙 둘러싸고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 대규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쿠구궁!
커다란 굉음이 그곳으로부터 터져 나왔고,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어어어! 형제, 이번엔 봐주지 않는다.”
“웃기는군! 형제가 전력으로 덤벼도 날 이기지 못할 것이다!”
다가가 보니 오크 정령 두 명이 나무 테이블에서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바로 대장군 가로쉬와 우르크였다.
“우오오오!”
다른 괴물 정령(?)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심지어 얍삽하게 생긴 고블린 한 마리는 환호성을 지르는 정령들에게 말했다.
“걸어요, 어서 돈들 걸어!”
그러자 다른 정령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쳐 댔다.
“나는 가로쉬 대장군님께 50제르!”
“쪼잔하게 50제르가 뭐냐? 사나이답게 1,000제르는 걸어 줘야지!”
심지어 한낮인데도 구경꾼들 중에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자들도 있었다.
대규는 그 광경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았다.
이게 정말 신의 부대 주둔지 풍경이란 말이야?
그때 대규를 발견한 우르크가 외쳤다.
“어어? 네 녀석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가로쉬는 우르크의 팔목을 기세 좋게 넘겨 버렸다.
쿵!
우지직!
넘어간 우르크의 팔목이 테이블과 부딪히자 단단한 나무 테이블에 금이 쩌억 가 버렸다.
“내가 이겼다! 으하하하!”
“형제, 이건 취소다! 빈틈을 노리고 덤벼들다니, 비겁하다!”
“져 놓고 변명이 많구나! 오크 정령답지 않다.”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야말로 오크 정령답지 않다!”
그들은 이제 저희끼리 말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전에 사라졌던 기억은 제대로 다 돌아왔나 보군.’
대규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아테나 여신의 부대에서 지원을 나왔습니다. 아레스 신은 어디 계십니까?”
그러자 가로쉬가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레스 신은 지금 이곳에 안 계신다.”
그는 두꺼운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아레스 신이 주둔지에 없다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자 우르크 역시 똑같이 손가락으로 코를 파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부대에서도 지원군들이 올 때가 됐는데 말이야.”
‘이 녀석들, 태도가 뭐 이래?’
저희를 도와주러 타 부대에서 지원군이 왔는데, 고맙게 맞이하긴 커녕 코딱지가 파고 있다니.
그러자 대규와 케이른 일행을 안내한 고블린 정령 메이폴이 능청스로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취리릭- 대장군님들, 안 그래도 이제 곧 속속들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 다른 고블린 정령들이 대규와 케이른 일행에게 다가왔다.
“취익- 취리릭-”
그들의 녹색 얼굴은 몹시 상기된 표정이었다.
정확히 고블린들은 일행 중 지영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은 지영을 빙 둘러싸고 혀를 날름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취익, 취리릭- 여자다, 여자!”
“태어나서 여자는 처음 봤어! 취익!”
“예쁘다. 너, 내 색시해라. 히히, 몬스터 고기는 배부르게 먹여 줄게. 취리릭-”
심지어 고블린 녀석 중 한 명은 지영을 향해 음흉한 표정을 지어 보인 뒤 털이 숭숭 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취리릭… 예쁘다…….”
심지어 녀석은 자신의 무기인 단검을 꺼내 칼날 끝으로 지영이 입은 갑옷 표면을 음탕하게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대규는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가로쉬에게 소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예의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때 비명 소리가 들렸다.
“크억! 어억!”
지영은 고블린의 단검 잡은 손을 움켜쥐고는 팔꿈치로 녀석의 얼굴을 세차게 가격했다.
타격은 단검을 방향을 바꿔 놓았고, 칼날은 커다란 아치를 그렸다.
휙-
지영은 고블린 녀석이 들고 있는 단검의 끝이 정확히 정확히 녀석의 왼쪽 갈빗대 사이를 향하게 조종했다.
턱!
그리고 녀석의 손을 세게 때렸다.
모든 게 간결했고, 단순한 동작이었다. 물이 흐르는 듯 유려하게 춤추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칼날은 고블린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끄아악!”
갑옷에 박힌 단검의 모습을 본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물론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었다. 그냥 위협용으로 살짝 찌른 것이었다.
“이, 이익…….”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 대던 다른 고블린들은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대장군인 오크 정령 가로쉬와 우르크를 바라봤다. 하지만 오크들은 말리긴커녕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영과 고블린들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고블린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분명 인간 여자들은 몹시 약한 존재라고 배웠다.
“취릭- 인간 여자 주제에! 봐줬더니!”
고블린 중 한 마리가 들고 있던 무기인 곤봉을 높게 쳐들었다.
지영은 딱 한 차례 녀석을 때렸다.
퍽!
그녀의 주먹은 정확히 녀석의 목덜미를 강타했다. 너무나도 정밀한 타격이었다.
‘경동 맥동 공격!’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가 가격한 부위 경동 맥동은 목에서도 모든 신경들이 만나 다발을 이루고 있는 급소였다. 그곳을 맞은 고블린은 픽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 명이나 당하자 나머지 녀석들은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지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고블린들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가볍게 탈탈 털었다.
‘원래 저렇게 실력이 뛰어났나? 맨날 검만 휘두르는 모습만 봐서 잘 몰랐는데… 이건 거의 호신술의 달인 수준이잖아.’
케이른과 다른 영웅들 역시 지영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우르크와 가로쉬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로쉬가 껄껄 웃으며 대규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너희 부대엔 정말 훌륭한 영웅들이 많구나! 기쁘다!”
‘기쁘다고? 아군인 고블린 병사들이 두 명이나 거품을 물고 쓰러졌는데?’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르크의 행동이었다.
그는 지영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정말 훌륭한 여성 영웅이다! 암컷 오크 정령보다 훨씬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하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나서 지영의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는 게 아닌가!
지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가만히 있었다. 이건 좀 전의 고블린들처럼 추행이 아닌, 정말로 호의와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참을 만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이제 두 오크 대장군은 대규와 케이른에게 말했다.
“그럼 지휘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