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131화 양꼬치와 굴라
그 말에 리 메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어…….”
말을 더듬으며 잇지 못하는 그녀에게 대규는 몹시 젠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이 가게 사장입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중국인 관광객들은 서빙된 탕꼬를 향해 젓가락을 들었다.
리 메이 역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접시 쪽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런데 이건 무슨 냄새지?’
킁킁.
그녀의 콧속으로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향기가 파고들었다. 공산당 당원인 남편을 따라 중국에서 몇 번 갔던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에서나 맡을 법한 맛있는 향기였다.
‘말도 안 돼! 이런 허름한 한국 짜가 꿔바로우 식당 주제에.’
그때 다른 일행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띵 호우~”
“띵 호우~ 정말 맛있다!”
찰칵! 찰칵!
심지어 일행들은 이제 미친 듯이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 메이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지, 지금 뭘 하는 거야?”
“리 메이, 자기도 한번 먹어봐~ 이거 정말 맛있어!”
리 메이는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 젓가락으로 원조 탕꼬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흥, 그래 봤자 한국의 짝퉁 꿔바로우 잖아. 그 맛이 거기서 거기…….’
번쩍!
탕꼬를 입에 넣는 순간 그녀의 눈이 뜨였다.
파사삭-
튀김옷이 입안에서 경쾌하게 부서지며 고소한 향을 내뿜었다.
이윽고 곧 부드러운 닭고기에서 팡팡 터져 나오는 고소한 육즙의 향연!
리 메이는 자기도 모르게 미친 듯이 탕꼬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이 맛은 대체 뭐야? 중국의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잖아!’
그녀들은 순식간에 탕꼬 다섯 접시를 비운 뒤 추가 주문을 했다.
리 메이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다.
“자이 게워 이거(하나 더 주세요). 게이 쩌거 바(이걸로 주세요).”
그녀는 크림 탕꼬를 주문했다.
대규는 미루스 비덴스의 젖으로 만든 특제 크림소스를 얹은 탕꼬를 요리해 선보였다.
크림 탕꼬를 먹은 그녀들의 얼굴에선 어느새 거만함과 오만함은 싹 사라졌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으며 칭찬하기 바빴다.
“이 크림소스 정말 맛있어!
“중국의 크림 새우요리보다 훨씬 맛이 진하고 좋은걸.”
한참을 먹어대던 중 일행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먹을수록 몸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지 않아?”
“맞아!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여태까지 쇼핑, 관광하러 돌아다니느라 다리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멀쩡해졌어. 근육들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야.”
“다음 일정이 스파 마사지 체험인데 이 정도면 취소해도 될 것 같아.”
“그래도 관광 일정인데 해야지~ 꺄르르.”
그녀들은 그 이후에도 추가 주문을 세 번이나 더 했다.
대륙의 위엄을 느끼게끔 만드는 엄청난 식성이었다.
이제 그녀들은 음식을 다 먹고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녀들은 계산하러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고 리 메이는 카드를 꺼내며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계산이요.”
대규는 그녀의 카드를 받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계산 전에 먼저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뭐죠?”
처음에 그녀들의 주문을 받았던 직원을 카운터로 데려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직원에게 사과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까 주문받을 때 얼 바이우라고 폭언을 한 거 말입니다.”
리 메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언성을 높였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어머, 정말 웃겨! 여기 음식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서비스가 완전 엉망이네!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요?”
가게에 CCTV가 설치돼 있다곤 하지만 음성까진 잡지 못한다. 그 점을 알고 있으니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거겠지.
‘적반하장이로군. 이 방법까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대규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증거 여기 있습니다.”
핸드폰 화면엔 직원에게 주문하는 리 메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일부러 핸드폰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다.
직원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얼 바이우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탕꼬 안에 똑똑히 퍼졌다.
“으, 으…….”
그녀는 당황해서 말도 잇지 못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까 봐 혹시 몰라 공략집을 이용해 그 모습을 핸드폰에 저장해 버렸다.
그 화면을 본 나머지 중국인 여자들이 리 메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 메이, 자기가 잘못했네… 어서 사과해.”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주변 손님들이 쳐다보고 있어. 빨리~”
리 메이는 카운터로 온 직원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중국말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깐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훌륭한 음식 정말 잘 먹었습니다.”
좀 전과는 다른 한껏 공손한 태도였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맛있게 먹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대규는 그녀의 카드를 받아 들며 말했다.
“전부 다 해서 8만 5,000원입니다.”
그러자 다른 중국인 여자 중 한 명이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팁이에요. 좋은 음식을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이렇게 중국에서 탕꼬가 유행인지 잘 알게 됐어요.”
중국인 여자들은 나가면서 대규에게 한 마디씩 탕꼬 칭찬을 하며 나갔다.
“정말 맛있어요!”
“중국 요리보다 훨씬 좋아요. 최고!”
그녀들의 말을 들은 대규는 기분이 좋아졌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탕꼬는 더더욱 유명해졌다. 한류를 좋아하는 젊은 층들 뿐만 아니라 입맛이 까다로운 중장년층에게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또한 크림 탕꼬의 신체개선 효능이 암암리에 퍼지면서 더욱 찾는 손님들이 늘었다.
중국의 유명 여행 잡지엔 탕꼬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심지어 크림 탕꼬에 대해선 이런 내용이 실렸다.
당신의 몸에 복을 불러들이는 기적의 한국 음식! 크림소스 탕꼬!
그 기사가 나간 이후 젊은 층들보다도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 심지어 노년층들도 탕꼬를 먹으러 찾아왔다.
대규는 호호백발의 중국 할아버지가 크림 탕꼬를 시켜먹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준섭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중국인들 사이에선 크림 탕꼬가 중국 몸보신 음식의 대표 격인 당나귀 고기만큼 좋다고 소문이 난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는 편인데… 중국인들은 더 심한 것 같군.’
게다가 수출되기 시작한 다이어트 도시락과 탕꼬 도시락도 탄력을 받아 마구 팔리기 시작했다.
새로 오픈할 1인 양꼬치 식당과 양갈비 스테이크 파인 다이닝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사장님, 양꼬치와 양갈비 스테이크 파인 다이닝까지 오픈한다면 중국 관광객들도 더욱 몰릴 것입니다. 여기서 인기를 얻으면 중국 현지 진출도 용이해질 것이구요.”
준섭이 영등포의 사무실에 찾아와 대규에게 말했다.
대규는 날을 잡고 1인 양꼬치 식당과 양갈비 스테이크 레스토랑 건물을 찾았다.
오픈까진 아직 좀 남았지만, 그간 내부 공사 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확인하고 싶었다.
두 곳 다 인테리어는 거의 끝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대규는 이곳들의 인테리어도 준섭에게 맡겼고 준섭은 착착 일을 해냈다.
정확히는 준섭이 밑에 데리고 있는 직원 중 인테리어 담당 직원들이 한 것이지만 말이다.
1인 양꼬치 집은 혼자서 먹는 사람들을 위해 기다란 바 형태의 테이블을 설치했고 자리마다 1인 화로를 설치했다.
물론 2인이 와서 먹을 수 있게 작은 테이블도 몇 개 설치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본 2인 이상의 손님은 받지 않는 걸 가게의 원칙으로 정했다.
상호명은 뭘 할까 고민하다가 ‘신지(神地) 양꼬치’로 하기로 했다.
메뉴도 기본 양꼬치구이, 갈비 양꼬치구이 두 개로만 한정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규가 미루스 비덴스 젖으로 개발한 특제 크림소스를 제공하니 메뉴가 아주 간소화되고 좋았다.
판테온의 대두콩에 간을 짭조름하게 해서 볶은 걸 사이드 메뉴로 결정했다. 기존 양꼬치 집에 있는 볶은 땅콩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라 차별화가 됐다.
인테리어는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무난해 썩 마음에 들었다.
다음으론 청담동 쪽에 있는 양갈비 스테이크 파인 다이닝이었다.
이곳 상호는 ‘굴라(gula)’로 정했다. 대규가 전에 방문했던 판테온의 레스토랑과 동일한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판테온의 식재료를 접하고 영감을 얻어 이 메뉴들을 개발했으니 그걸 기리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준섭과 함께 레스토랑의 건물 안에 들어선 대규는 깜짝 놀랐다.
“우와아!”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엔 고급스러운 하얀색 린넨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내벽은 깔끔하게 화이트 톤으로 통일했다.
한쪽 벽면은 아예 통유리가 설치돼 밖의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천장은 널찍한 아치형이었고 그 한가운데엔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설치돼 있었다.
촌스러운 중세시대 스타일의 부담스러운 비주얼이 아니라 깔끔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그런 디자인의 샹들리에였다.
“엄청나군요.”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대규가 넋 나간 듯 말하자 준섭이 웃으며 말했다.
“저 샹들리에에 신경 좀 썼습니다. 유럽 물품만을 수입해 취급하는 업자를 통해 구했죠.”
“좋아요, 아주 좋아요!”
대규는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레스토랑 건물을 나섰다.
앞으로 더욱 발전할 자신의 사업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대규가 열심히 양고기 사업을 준비하는 사이 다음 소환 날짜가 훌쩍 다가와 버렸다.
승전 기원 파티 이후 처음으로 소환되는 것이다.
대규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새로 받은 황금 눈물 갑옷을 입고 소환되길 기다렸다.
어서 빨리 이 갑옷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판테온에서 괜찮은 식재료들이나 뭐 현실에 도움될 만한 게 있으면 가져와야지.’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대규는 현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미루스 비덴스의 네잎 클로버를 발견했고 목초지를 구입해 양들을 키워 미루스 비덴스로 만들었다.
그리고 판테온에서 대두콩을 사와 심어 효과를 톡톡히 봤다.
게다가 도시락의 중국 진출!
지금은 미루스 비덴스를 활용한 양고기 메뉴들을 개발해 새로운 식당들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소환에선 현실에 도움이 되는 보상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주변이 흐릿해지면서 포탈이 열렸다.
스스스-
대규는 그 안으로 발을 희망차게 디뎠다.
정신을 차리니 아테나 여신의 주둔지였다.
대규는 지휘사령부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대체 무슨 전투가 벌어질까?’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장군들과 영웅들, 병사들이 있었다. 왕좌엔 아테나 여신이 앉아있었다.
대규가 들어서자마자 여신을 제외한 모두는 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뭐지?’
그때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들에게 받은 최고의 영웅 칭호를 알아본 장군, 영웅들이 당신을 존경하기 시작합니다.]
‘그랬군.’
고개를 조아리는 영웅 중에는 지영의 모습도 보였다.
처음엔 분명 그녀와 같이 차원의 틈에서 시작했었는데 저토록 아랫사람처럼 고개를 조아리니 기분이 좀 묘했다.
대규는 왕좌에 앉은 아테나 여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신은 짜증 나는 일이라도 있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여신의 표정 때문인지 영웅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단 한 명의 영웅만 빼놓고 말이다.
대규와 함께 승전기원 파티에 초대받았던 켄타로우스 영웅 케이른은 멍청이같이 혼자 실실거리며 얼빠진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파티 이후 그 아프로디테 여자 영웅과 열심히 만남을 지속 중인 것 같았다.
이윽고 아테나 여신이 입을 열었다.
“끄응… 제우스 신으로부터 긴급 전언이 왔다.”
여신은 골치 아프단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멍청한 아레스가 기간테스 들과 무턱대고 싸우러 갔다가 오히려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는구나. 그래서 제우스 신께서 다른 젊은 신들에게 아레스를 도와주라고 독수리를 통해 전언을 보내셨다.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도 지원을 가야 할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