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129화 미루스 비덴스 (2)
어느새 직원들은 꼬치에 꿰인 양고기들을 화로에 굽기 시작했다.
곧 양꼬치에서 기름이 떨어졌고 지글지글 익어갔다.
얼마 후 직원들은 익은 양꼬치를 먹기 시작했다.
“헉! 완전 맛있어!”
“존맛, 꿀맛!”
심지어 젓가락으로 꼬챙이에 꿰인 고기를 빼서 먹지 않고 원시인처럼 꼬챙이를 들고 우적우적 씹어 먹는 직원도 있었다.
양의 누린내를 싫어한다는 직원은 순식간에 다섯 개의 꼬치를 먹은 뒤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돼! 이거 누린내가 하나도 안 나. 향신료가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데…….”
부사장인 준섭 역시 양꼬치를 먹고는 놀랐다.
대체 이 양고기는 뭐지?
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육질 역시 여태까지 먹어왔던 양고기와 확연히 달랐다. 부드러우면서도 씹을 때마다 탄력이 있고 고소한 풍미도 훌륭했다.
한마디로 입에 쩍쩍 붙는 맛!
“칭타오 없어? 양꼬치엔 칭타오지!”
어느새 직원들은 양꼬치에 어울리는 맥주를 사 오겠다며 건물 밖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양꼬치 뿐만 아니라 다른 메뉴들도 인기 짱이었다.
양전골 역시 양고기 특유의 풍미가 우리나라식의 매콤한 전골 국물에 섞여 들어가 기막힌 맛을 내고 있었다. 고명으로 추가한 들깨가루가 신의 한수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준섭의 눈을 잡아끈 건 베이크드 빈스와 크림소스가 곁들여진 양갈비 스테이크였다.
스테이크의 육질은 훌륭했다.
‘이건 고기 자체가 질이 다르다… 대체 사장님은 어디서 이런 고기를 구한 거지?’
분명 자신이 대규에게 구해다 준 양들은 평범한 양들이었다.
준섭은 스테이크를 씹으며 대규를 바라보았다.
대규가 양을 100마리 구해달라고 했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100퍼센트 확신에 차 있었던 모습으로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다.
결국,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준섭에게 증명해 보였다.
‘무슨 마법같은 일을 벌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 양고기 요리는 최상이다. 사업 아이템으론 전혀 단점이 없다. 게다가 사이드메뉴인 이 콩 요리도 훌륭하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아!’
찰칵찰칵.
직원들은 이제 음식들을 마구 사진 찍어 자신들의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라운 반응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으와아! 완전 대박!”
직원 중 한 명이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고 대규는 놀라서 물었다.
“대체 왜 그래요?”
그러자 그 직원이 자기 옆에서 열심히 양꼬치를 먹고 있는 다른 직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장님! 부사장님! 얘 눈 좀 봐요.”
다들 그 직원의 눈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대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러지? 그냥 정상적인 눈인데.’
그러자 소리친 직원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 사장님하고 부사장님은 모르실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자식이 요즘 맨날 게임에 빠져서 살거든요. 맨날 밤새워서 게임하고 출근해서 항상 병든 닭처럼 다크서클이 눈 아래까지 내려왔는데… 지금 그 다크서클이 사라졌어!”
그러자 양꼬치를 먹고 있던 그 직원이 놀라서 물었다.
“정말이야? 내 다크서클이 사라졌다고?”
손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본 그는 놀라서 외쳤다.
“우왓, 진짜잖아!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피곤해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 피곤함도 사라졌어.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가?”
그러자 다른 직원이 핀잔을 주며 말했다.
“그럼 오늘도 밤새 게임할 거냐?”
“아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눈앞에 있는데 그까짓 게임이 대수냐? 사장님! 양꼬치 더 없어요?”
그런데 다른 직원들 역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몸이 점점 뜨거워지지 않니? 꼭 보양식을 먹은 것처럼…….”
“나 약간 감기 기운 있었는데 기침도 사라졌어. 기분 탓인가?”
“요새 피곤해서 어깨가 뭉쳤는데 근육통이 좀 약해진 것 같아.”
“근데 먹는 걸 멈출 수 없다! 사장님, 여기 양 전골도 한 접시 더 주세요!”
직원들은 시식회에 나온 요리들을 모조리 먹어버렸다.
준섭 역시 대규의 양갈비 스테이크를 먹을수록 자신의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가벼운 운동을 한 것처럼 온몸이 상쾌했고 평소 과도한 업무로 뭉쳤던 근육들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그런데 그전에 대규가 만들었던 크림소스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냈었다.
‘음식이 약물도 아니고 아픈 신체를 치료한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식회가 끝나자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에 쩌들었던 직원들의 모습은 한결 밝아졌다. 꼭 일주일간 휴가라도 다녀온 것처럼 말이다.
준섭은 자신이 다 비워버린 양갈비 스테이크 접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게다가 이 양고기… 먹을수록 느끼는 거지만 정말 훌륭한 육질이다.’
준섭은 옛날 대기업 외식사업부에서 일했을 때 여러 종류의 고기들을 먹어보았다.
하지만 이 양고기는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종류의 고기 중에서 육질이 가장 부드럽고 풍미가 좋았다.
특A급 한우보다 훨씬 훌륭했다. 입안에서 고기가 사르르 녹고 육즙이 팡팡 터지는 그 느낌이란!
게다가 누린내는 없애고 양고기 특유의 감칠맛은 잘 살렸다.
그래서 더욱 중독적으로 손이 가고 다 먹은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여운이 남았다.
이 정도 육질을 지닌 고기를 계속 공급할 수 있다면 다른 식당에 비해 월등한 장점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양꼬치나 양갈비 스테이크처럼 불에 익혀 먹는 고기 요리의 경우 불을 다루는 요리사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고기의 질 역시 사업의 성공 여부를 크게 좌우한다.
‘그렇다면 이 고기는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 아이템이다!’
준섭은 빈 그릇을 치우는 대규를 보며 생각했다.
‘사장님은 이를 예상하고 양들을 구해 달라고 한 건가?’
곧 시식회가 완전히 끝났고 직원들은 다들 퇴근했다. 메뉴개발실엔 준섭과 대규만 남아있었다.
대규가 준섭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러자 준섭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요리도 훌륭했지만 이 양고기 자체가 아주 훌륭했습니다. 다 먹은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날 정도입니다. 이 정도 육질의 고기를 계속 공급할 수만 있다면 뭘 해도 사업은 성공할 겁니다.”
그 말에 대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부사장님이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됩니다. 사실 새로운 사업은 이 양고기를 기본으로 하려고 하거든요. 탕꼬가 탕수육 치킨을 기본으로 하는 것처럼요.”
“생각하시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 있으십니까?”
“1인 양꼬치 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1인 양꼬치요?”
“네.”
대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메뉴를 개발하며 고민을 많이 했다. 가장 대중적으로 잘 먹히는 양고기 요리는 대체 뭘까?’
근래 몇 년 동안 양꼬치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하지만 혼자서 먹기는 힘들었다.
양꼬치의 경우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화로에 구워 먹곤 한다. 애초에 테이블과 화로도 그런 식으로 설치가 돼 있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엔 1인 야끼니쿠집도 많고 심지어 1인 곱창집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고기를 구워 먹는 건 여럿이 모여서 같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혼밥, 즉 1인 식사를 하는 인구들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증거로 1인 식당 혼밥탕꼬의 매출은 점점 늘고 프랜차이즈를 원하는 가맹주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양꼬치를 주메뉴로 하는 1인 식당을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 봤다.
일단 양꼬치는 기본적으로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구워 먹는 것이기 때문에 프랜차이즈를 한다 해도 질 좋은 미루스 비덴스 고기를 본사에서 공급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양꼬치에 곁들일 특제 소스, 미루스 비덴스의 젖으로 만든 크림소스도 공급할 예정이다.
다른 가게들의 경우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잡기 위해 산초 등의 강력한 향신료를 소스로 쓰지만 누린내가 없는 미루스 비덴스 양꼬치엔 과한 향신료가 필요 없다.
향신료 대신 특제 크림소스를 만들어 식당만의 고유 오리지널 소스로 개발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미루스 비덴스 양꼬치는 판테온의 식재료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신체 개선의 효과도 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 게 알려지면 손님들은 저절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대규는 자신이 했던 이 모든 구상을 준섭에게 줄줄이 설명했다.
물론 판테온의 재료란 사실과 신체개선 효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설명을 들은 준섭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사안인 것 같습니다. 전의 백반 사업보다 훨씬 메뉴 구성도 간편하고 특제 크림소스라는 차별화된 아이템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준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전에 사장님이 뜬금없이 양을 구해달라고 했을 때는 그 의중을 알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사장님의 행동을 좀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걱정스러운 맘도 들었습니다.”
“이해해요.”
“하지만 오늘 정말 놀랐습니다. 양고기가 이 정도로 맛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장님의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고기의 질이 너무 훌륭합니다. 이 세상의 고기가 아닌 것 같은 환상적인 맛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고기가 아니긴 하지.
준섭의 말에 약간 가슴이 뜨끔했다.
그런데 준섭의 입에서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이 정도 육질이라면 단순히 양꼬치 식당을 여는 거 말고 좀 더 고급화 전략을 써도 될 것 같습니다.”
“고급화 전략이요?”
“네. 특히 제가 먹었던 양갈비 스테이크는 제가 먹어본 스테이크 중 최고였습니다. 특급 호텔의 스테이크에 견주어 봐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준섭은 대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의 고기를 갖고 단순히 양꼬치 가게만 하는 건 아깝습니다. 고급화 전략을 써서 파인다이닝(Fine-dining) 레스토랑을 열어도 될 것 같습니다.”
파인다이닝이란 외식 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개념이었다.
‘훌륭하다’라는 뜻의 파인(Fine)에 ‘정찬’이라는 뜻의 다이닝(Dining)이 결합된 단어로 일반적인 패스트푸드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고급스러운 개념으로 통하고 있다.
풀코스 요리나 메인 요리에 에피타이저, 사이드 디시를 곁들이고 충실한 와인 리스트를 갖춘 식당이 주로 파인다이닝으로 불린다.
이러한 파인다이닝이 요즘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남들과 다르고 더 맛있는 음식을 찾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다.
게다가 SNS로 인한 군중심리와 호기심, 소비자들의 높아지는 눈높이와 고급 음식에 대한 매력 증가 역시 인기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대규는 좀 떨떠름했다.
항상 요리를 하면서 자신의 음식을 모든 사람들이 즐기길 바랐다. 하지만 파인다이닝의 경우 요리 가격이 몹시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내고 오직 구매력이 있는 일부 소비자들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애초에 처음으로 대규가 개발한 메뉴인 탕꼬도 탕수육 치킨이라는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자 준섭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장님, 넓게 보셔야 합니다. 탕꼬나 양꼬치로 충분히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앞으론 돈 많은 소비자를 사로잡을 고급 요리로도 영역을 확장시키잔 겁니다. 게다가 곧 대규식품이 중국에 진출하게 될 텐데 저는 이 파인다이닝 사업이 앞으로 중국 시장의 상류층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상류층 고객들!
그들은 우리나라 부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일례로 우리나라 부자들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고급 휴양지를 찾지만, 중국 부자들은 아예 섬을 통째로 구입해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 버린다. 그 정도로 부의 수준이 남다르단 얘기다.
그런 그들을 고객으로 만들면 대규 식품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할 것이다.
“그러니 이 양고기로 서민층을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양꼬치 사업과 상류층을 겨냥한 파인다이닝 양갈비 스테이크 사업을 동시에 벌이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