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128화 (128/294)

# 128

128화 미루스 비덴스 (1)

헤파이스토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대규는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대가 부럽도다. 아테나 여신은 정말 아름답지. 황금 갑옷을 입고 창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아아…….”

‘왜 저러지.’

선반에 수없이 쌓인 여신 모습의 피규어들도 그렇고 정말로 좋아하는 건가.

‘뭐, 신들 사이에 로맨스가 있을 수도 있지.’

그리스 신화 책을 읽어보니 신들 사이엔 별의별 감정싸움들이 분분하곤 했다. 당장 승전기원파티의 저승 시합도 그들의 다툼으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어쨌든 갑옷은 정말 감사합니다.”

대규는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자 헤파이스토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다. 나도 간만에 무구를 제작할 수 있어서 몹시 즐거웠다.”

말을 마친 헤파이스토스는 다시 망치가 놓인 자신의 모루로 향했다. 망치를 집어 들고 열심히 금속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규가 말했지만 이미 그의 귀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열의에 찬 표정으로 금속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의 이마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금속 위에서 치직 타올랐다.

그 광경을 보니 그가 곱추등의 추한 몰골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다.

한 가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상당히 멋있는 법이다.

‘나도 열심히 일해야지.’

대규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것보다 빨리 이 갑옷을 입은 채로 전쟁터에서 적을 상대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하지만 다음 소환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조금만 참자.

그 전까지는 양들을 미추스 비덴스로 키워 요리를 개발해야 한다.

대규는 조용히 움막 대장간을 나섰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대규는 강원도의 목초지에 와 있었다. 목초지엔 여전히 클로버들이 자라나 있었고 양들은 열심히 그것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런데 양들의 모습이 이상했다. 몇 주 전부터 양들의 외관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생긴 건 보통 양과 비슷했는데 덩치는 1.5배 정도 더 커졌다. 게다가 털들도 더 풍성하고 곱슬곱슬하게 자라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오늘 그들의 몸에선 은은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규는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한 마리의 양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보통 양들은 주변에 다가가면 특유의 누린내가 났다. 본래 양 100마리를 준섭에게 받아 처음 이곳에 풀어놨을 때도 양들의 몸에선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냄새가 서서히 줄더니 지금은 전혀 나지 않았다.

양을 바라보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미루스 비덴스(Mirus bidens)]

[아폴론의 목장에서 사육하는 전설의 양. 이 양고기의 육질은 뛰어난 체력 증진 효과를 지니고 있어 이 고기를 먹으면 그 양에 따라 근력, 체력이 상승함. 추가로 정력도 오름.]

[한 번 이 미루스 비덴스로 만든 음식을 먹은 자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그 음식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된다.]

옛날에 아폴론의 연회에 갔을 때 양갈비 스테이크를 보고 나왔던 메시지 창의 설명과 동일했다.

그때 양갈비 스테이크의 경우 먹으면 5시간 동안 근력과 체력이 오른다고 했었다.

아마도 섭취하는 고기의 양에 따라서 근력, 체력 등이 상승해 유지되는 시간이 다른 것 같았다.

정말로 누린내가 다 사라진 것인지 양의 복슬복슬한 몸에 대고 코를 킁킁대 봤다.

역한 냄새는 나지 않는 대신 기분 좋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냄새였다.

대규가 자신의 몸에 코를 갖다 대자 양은 간지러운지 메에메에, 하고 울었다.

그럼 미루스 비덴스의 젖부터 한 번 얻어 보자.

전에 본 설명에 따르면 미루스 비덴스의 젖은 보신 효과가 탁월했다. 크림소스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먹였을 때도 그 효과는 아주 탁월했다.

대규는 암컷 양을 찾아 젖을 짜보기로 했다.

양의 배 밑에는 탐스러운 젖꼭지들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영화에서 봤던 현란한 핑거발레로 소젖을 짜는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그렇게 해야 하나.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미루스 비덴스의 젖을 짜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젖을 쥔 뒤 손에 힘을 주며 살살 돌리면 됩니다.>

공략집이 젖 짜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정말 만능이다.

대규는 가장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꼭지를 손으로 감싸 쥔 뒤 서서히 힘을 줬다.

그리고 젖 아래쪽엔 빈 유리병을 댄 뒤 살살 돌렸다.

쭈우욱-

하얀고 걸쭉한 젖이 나왔다.

‘성공이다.’

냄새는 몹시 신선하고 고소했다. 신나서 열심히 젖을 짜고 있는데,

쭈욱-!

“으앗!”

젖 줄기가 얼굴을 강타했다. 차갑다.

대규는 그것을 닦는 대신 혀로 핥아먹었다. 이게 얼마나 귀한 젖인데.

'그런데 이렇게 날로 젖을 먹어도 효과가 있을까?'

그때 바로 명치 부근이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뜨거워졌다. 심장 박동도 빨라졌고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았다.

판테온의 상점에서 파는 젖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바로 짜낸 신선한 젖이라 그런 것 같았다.

대규는 1리터짜리 유리병에 젖을 가득 채운 뒤 목초지에서 한가롭게 네잎 클로버를 뜯고 있는 새끼 양 한 마리를 눈여겨봤다.

미루스 비덴스로 음식을 만들어 육질과 맛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요리하려면 기왕이면 새끼 양(lamb)이 좋겠지.’

성숙한 양일수록 육질은 질겨지기 마련이다.

대규는 클로버를 뜯고 있는 새끼 양에게 다가갔다.

“메에에~”

새끼 양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규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곧 닥칠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니 녀석을 죽여 요리한다는 게 살짝 망설여졌다.

‘아니야. 이런 거로 불쌍해할 거면 애초에 탕꼬 만들 때 쓰였던 닭들도 불쌍해했어야지.’

대규는 보관함에서 무한히 늘어나는 가방 인피니투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새끼 양을 넣었다.

그리고 네 잎 클로버도 왕창 넣어줬다. 마지막 식사라도 든든히 하라는 배려의 의미였다.

도축과 발골 작업은 본사의 메뉴개발실에 가서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더 있지.’

대규는 저 멀리 울타리가 쳐진 구역을 바라보았다.

판테온의 대두콩을 수확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대두콩들은 현실 세계의 대두콩들과 달리 한 달만 지나면 수확을 할 수 있었다.

2주 전, 대규는 자라나는 줄기들과 잎을 잘 솎아줬다.

대두콩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자라났다. 2주 만에 잎사귀들이 무성히 자라나 무슨 밀림의 수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줄기와 잎들을 솎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규는 콩들을 심어놓은 목초지로 향했다.

“우와아.”

줄기엔 수없이 많은 콩깍지가 달려 있었다. 대규는 콩깍지 하나를 똑 따서 까봤다.

안에는 대두콩들이 알알이 꽉 차 있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몹시 향긋했다.

‘정말 일반 대두콩과 별 차이가 없잖아.’

하지만 콩이 지니고 있는 효능은 완전 다르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판테온의 대두콩]

[판테온의 대두콩은 기본적으로 간의 피로회복 능력을 50% 향상시켜줌. 다른 재료들과 같이 섭취할 경우 피로회복 능력 점점 더 상승함. 영양분 흡수율은 90% 이상이다.]

판테온의 레스토랑에서 봤던 설명과 일치했다.

‘이 콩으론 뭘 만들어야 할까?’

뭐든 다 만들 수 있다.

콩은 정말 다방면으로 쓰이는 식재료이니까 말이다.

발효를 시켜 메주로 만들면 장의 재료가 된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 심지어 간장까지 만들 수 있다.

간장은 영어로 소이 소스(Soy sauce)라고 하는데 그 소이(Soy)는 우리나라 말로 대두콩을 뜻한다.

‘이 콩을 이용해 장을 만들어 지금 탕꼬 식당에서 쓰고 있고 프랜차이즈 업체에도 공급하고 있는 입소문 양념을 제조한다면?’

이제 탕꼬의 음식들은 단순히 맛만 있는 게 아니라 피로회복 능력도 향상시키는 신체개선 효과까지 얻게 된다.

‘정말 신세계로군.’

대규는 기쁜 마음으로 콩깍지들을 따 보관함에 넣은 뒤 본사의 메뉴개발실로 돌아갔다.

메뉴개발실의 커다란 도마 위엔 어느새 발골된 양고기가 놓여 있었다.

도축과 발골 작업은 그전에도 해봐서 어렵지 않게 했다. 대신 죽기 직전 대규를 뚫어져라 바라봤던 새끼 양의 눈동자가 좀 가슴 아프긴 했지만 말이다.

뼈를 발골하고 내장들을 처리한 뒤 고기들을 부위별로 발라냈다.

대규는 그중에서 갈빗대에 붙은 갈빗살을 따로 골라내 향신료로 밑간한 뒤 스테이크로 구워봤다.

치지직-

불판 위의 고기가 익어갈수록 몹시 맛있는 냄새가 개발실을 메웠다.

아폴론의 연회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츄르릅.

냄새를 맡기만 해도 벌써부터 입 안에서 침이 줄줄 고였다. 정말 한 번 맛보면 벗어날 수 없다는 마성의 식재료답다.

소스는 미루스 비덴스의 젖으로 만든 크림소스를 곁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판테온의 대두콩으론 양식 요리에서 사이드메뉴로 많이 나오는 ‘베이크드 빈스(Baked beans)’를 만들기로 했다.

장을 만들 수 있는 메주는 나중에 따로 만들기로 했다. 왜냐면 메줏덩이를 만들어 놓고도 10일 정도 꾸덕꾸덕하게 말려야 하고 그 뒤엔 짚을 깔고 덮어서 따뜻한 온돌방이나 보일러실에 2주 정도 둬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일단은 미뤄두기로 했다.

베이크드 빈스를 만드는 건 간단하다.

먼저 콩들을 물에 불린 뒤 삶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팬을 올린 뒤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아 마늘 향을 낸다. 이후 팬에 껍질 벗긴 토마토를 넣고 뭉개가면서 익혀준다.

팬 안에서 토마토가 익어 가면 각종 향신료를 넣고 간을 맞춘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삶은 콩을 넣어 살살 조려주기만 하면 된다.

곧 베이크드 빈스를 곁들인 크림소스 양갈비 스테이크가 완성됐다.

판테온의 식재료만을 써서 처음으로 만들어본 요리였다.

‘냄새만 맡아도 아주 환장하겠군.’

여태까지 만들었던 탕수육 치킨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대규는 양갈비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잘라 한 입 먹어봤다.

번쩌억!

장님이 눈을 뜨듯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 맛은……!

허겁지겁.

저도 모르게 미친 듯이 갈비 스테이크 한 접시를 비워 버렸다.

‘완전 맛있다!’

맛뿐이 아니었다.

먹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솟아났다. 상태창을 보니 정말 체력과 근력이 올라가 있었다.

“대박이다.”

대규는 양갈비 스테이크 말고 다른 메뉴들도 개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양고기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요리는 상당히 많았다.

중국의 양꼬치와 양갈비구이도 있었고 일본의 경우엔 ‘칭기즈칸’이라고 해서 양고기를 야채와 함께 철판 위에 구워 먹기도 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과 야채를 불판에 구워 먹듯이 말이다.

대규는 미루스 비덴스로 여러 요리를 시도했다.

양꼬치, 칭기즈칸, 양고기 카레, 양고기 불고기, 양고기 전골…….

그리고 날을 잡아 준섭과 직원들을 불러 시식회를 열기로 했다.

시식회 날.

영등포 메뉴개발실에 직원들과 준섭이 한데 모였다.

“이게 무슨 일이래?”

“사장님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셨다는데.”

직원들은 저희끼리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메뉴인지 알아?”

“양고기래.”

“우웩! 나 양고기 싫어하는데. 그 누린내 진짜 싫어서 나 먹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우리 사장님이 요리한 건데 맛있지 않을까?”

얼마 후 대규는 카트에 여러 음식을 실어서 날라왔다. 양꼬치부터 스테이크, 카레, 전골 등 다양했다.

다들 호기심에 카트 쪽으로 다가갔다. 양고기 누린내를 싫어한다는 직원도 호기심에 다가갔다.

그런데 그가 양고기를 살펴본 뒤 대규에게 말했다.

“어? 이거 정말로 양고기 맞아요, 사장님?”

“맞습니다.”

직원은 꼬치가 꿰인 꼬챙이를 들고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놀라서 외쳤다.

“그런데 왜 누린내가 하나도 안 나지? 사장님, 저 그 누린내 때문에 양고기 근처에도 못 가거든요. 그런데 이건 냄새가 하나도 안 나! 대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