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126화 중국 시장 조사
말을 마친 제우스 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리석 계단 위로 올라갔다.
영웅들과 신들은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제우스 신이 사라지자 곧 남아있는 신들도 한 명 한 명씩 계단을 올라 퇴장하기 시작했다.
신들이 다 퇴장하자 주변 배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신을 차리니 대규는 오피스텔로 돌아와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어.’
대규는 침대에 누워서 승전 기원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저승 세계를 다녀오다니. 앞으로 그곳에 또 갈 일이 있을까.
‘참, 그걸 꺼내 봐야지.’
몸을 일으킨 뒤 보관함을 불러냈고 그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금 남아있는 양구이와 샐러드였다. 만찬의 음식들을 조금 싸 온 것이다.
현실에서 먹어보면서 찬찬히 식재료를 분석하고 이와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관함에 음식을 넣을 땐 뷔페에서 락앤락 용기에 음식 적립해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그 오크 녀석들에 비하면 양반이지.’
오크 들은 아예 대놓고 통닭구이니 뭐니 하는 모든 음식들을 보관함에 통째로 욱여넣었다. 오크들이 사는 마을에 가면 이런 맛있는 음식이 없다나.
‘하여튼 웃긴 녀석들이야. 저승 세계에서의 일도 그렇고. 그래도 나름 한 부대의 대장군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녀석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대규는 보관함의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에 식재료 분석과 요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사흘 뒤에 갑옷을 찾으러 오라고 했지.’
대규는 이제 현실에서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은 준섭이 한국으로 돌아온다. 중국 진출 시장조사를 마치고 오는 것이다.
준섭에게 시장조사 브리핑을 들은 뒤 강원도 목초지에서 키울 양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양들이 먹을 네잎클로버는 충분했고 빨리 미루스 비덴스를 사육하고 싶었다.
다음 날 대규식품 본사 영등포 사무실.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이내 준섭이 들어왔다.
중국에 갔다 온 동안 준섭의 얼굴은 몹시 좋아진 것 같았다.
“중국 음식들 덕분입니다. 출장 가 있는 동안 여러가지 다양한 음식들을 많이 먹고 왔습니다.”
준섭과 대규는 사무실에 있는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사장님, 시장조사는 어땠습니까? 중국은 탕꼬와 대규식품이 진출할 만한 환경이던가요?”
대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준섭은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긍정적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대규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사장님,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상보다 대규식품의 다이어트&탕꼬 도시락의 반응이 중국에서도 꽤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생각했던 것 보다 웹드라마 ‘환골탈태’가 호응이 좋은 것 같습니다. 채아 양의 인기도 중국에서 고공행진 중이구요.”
준섭은 태블릿 PC로 몇 개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이건 제가 중국 출장 가서 직접 찍어온 사진들입니다.”
중국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대형 광고판 사진이었는데 광고판에는 블루핑크 채아의 모습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이건 중국의 유명한 의류 스파 브랜드 썬마(Semir)의 광고판입니다. 이 브랜드는 몇 년 전부터 한류스타들을 떼로 등장시켜 브랜드 홍보를 하기로 유명하죠.”
“호오, 그렇군요.”
“이종서, 김우비 등이 이 브랜드의 유명한 남성 모델들인데… 이번에 채아 양도 이 브랜드의 모델이 됐답니다. 드라마의 성공이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대규는 손가락으로 태블릿 PC의 화면을 넘기며 사진들을 봤다.
광고판에 나온 익숙한 한국의 아이돌 스타의 모습들을 보니 꼭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거리 같았다.
그중에서도 한 사진이 대규의 눈길을 끌었다.
식료품 가게의 전경이었는데 가판대에는 우리나라 제과 회사에서 만든 과자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심지어 포장지에 한글로 제품명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청우식품에서 만든 ‘우리 밀로 만든 당근 비스킷’.
그냥 우리나라에서 파는 과자처럼 생겼다.
“이런 것도 팝니까?”
대규가 묻자 준섭이 답했다.
“예. 더군다나 중국에선 한국 과자와 식품, 음료수가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답니다. 그래서 요즘 이렇게 한국 식품들이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허어…….”
한국의 음식들이 이제 이런 식으로도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장님, 그러니 우리 대규식품도 중국에 진출하기 용이할 듯싶습니다.”
“그런 것 같군요.”
다른 거리의 풍경에도 한국 열풍이었다. 심지어 우리나라 의사들이 개업했다는 성형외과가 중국에서 아주 인기라고 했다.
“요즘엔 우리나라 의사들이 중국으로 진출해 병원을 내는 일도 있답니다.”
대규는 준섭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하지만… 대규식품이 진출해서도 잘할 수 있을까요? 해외 스케일이 되니까 저도 좀 떨리네요.”
그러자 준섭은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웹드라마의 성공으로 대규식품의 도시락들이 확실히 중국 한류 마니아 층의 눈을 사로잡은 건 사실입니다. 중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선 다들 그 도시락에 대해 묻는 글이 폭주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한국에 놀러 와서 그 도시락을 먹어본 중국 관광객들이 경험담까지 남겨 더더욱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에 봤던 채아의 연예프로그램 방송 이후 중국에서의 도시락 소문은 더욱 뜨거워졌다고 했다.
“요즘엔 중국인들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예능 연예프로그램들도 다 보거든요. 이런 상황이면 진출해도 폭삭 망할 것 같진 않습니다. 게다가…….”
준섭이 말끝을 흐리며 눈을 반짝이자 대규는 궁금해서 물었다.
“뭐죠? 뭐가 더 있는 겁니까?”
“…사실 제가 중국에 갔을 때 현지에서 몇 군데의 유통업체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대규식품의 도시락을 수출할 생각이 없냐구요.”
그 말을 들은 대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은 정말로 도시락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의 해외진출!
항상 바랐던 일이지만 이렇게 실제로 기회가 찾아오니 믿기지 않았다.
준섭은 대규를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장님, 저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중국에 대규식품의 지사라도 차리고 싶지만… 그건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구요.”
그건 그렇다.
아직 대규식품의 대표 레스토랑인 탕꼬도 전국에 다 프랜차이즈를 내지 못했다. 탕꼬들은 경기,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이제 막 충청권을 점령해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해외에 있는 지사를 차리는 건 엄청난 자본이 드는 일이다.
지금 지니고 있는 자본금과 투자금만으론 무리였다.
준섭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 도시락 사업으로 일단 중국에 진출해 돈을 벌고 동시에 중국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도 높이고 싶습니다. 그런 뒤에 중국으로 본격 진출을 한다면 훨씬 용이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웹드라마가 이렇게 호황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부사장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락 온 업체들은 괜찮은 곳들인가요?”
대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준섭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미 뒷조사는 다 해봤습니다. 업체들은 모두 나름 인지도도 있고 재무구조나 기반도 탄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곳은 수입 식품들만 전문적으로 수입 유통해 파는 곳이라 가장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결정할까 생각 중입니다.”
“잘됐군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도시락의 중국 진출 건은 부사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요즘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사장님도 수고하십시오.”
준섭이 태블릿 PC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려 하는데 대규는 그를 붙잡았다.
“저기… 부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님?”
대규는 준섭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양 100마리만 구해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양 100마리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준섭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사실 준섭은 그전부터 대규의 행동을 살짝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저번엔 강원도의 임야 땅을 사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양을 구해달라니.
“사장님, 그건 대체 왜…….”
대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재료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고기 자체가 메뉴가 되는 건 나쁘지 않았다.
왜냐면 몇 년 전부터 한국엔 양고기 음식들이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양고기 음식은 인기가 없었다.
일단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있었고 그 누린내를 지우기 위해선 아주 강한 향신료를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먹는 향신료 중엔 그렇게 강한 것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중국 음식인 양꼬치가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양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이 많아졌다.
양꼬치엔 칭타오, 란 유행어도 생길 만큼 확실히 이제 양고기 요리는 한국에서 대중적인 메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준섭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장님, 그렇다면 정육이 돼 있는 고기를 공급받는 게 낫지 않나요? 굳이 왜 직접 사육을…….”
대규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식재료를 직접 키우는 게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장담하는데… 제가 키운 양은 육질이나 맛이 다른 양들에 비해 몇 배나 뛰어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정말입니다.”
준섭은 확신에 차서 말하는 대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렇게 확신을 보일 정도라면…….
준섭은 몹시 냉철한 사람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강력한 확신을 보였다면 절대로 설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렸을 것이다. 크나큰 확신을 할수록 오히려 닥쳐올 리스크를 보지 못하거나 무시해 위험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은…….’
대규는 달랐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음식, 요리에 관련해선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특히나 그가 확신을 보여서 행동으로 옮겼을 때 뭐든지 실패한 게 없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규가 만든 음식들은 모두 엄청난 맛을 자랑했다.
마약이라도 뿌린 것처럼 미친 듯이 맛있는 맛!
백반 사업을 중간에 접게 된 것 역시 그 반찬이나 메뉴를 다양하게 개발하기 힘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 맛 자체가 없어서 접게 된 건 절대 아니었다.
결국 준섭은 이렇게 대답했다.
“흐음… 알겠습니다. 한 번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00마리면 되는 겁니까?”
“예. 일단 그렇게 해주십시오, 부사장님.”
대규는 말을 이었다.
“절 믿고 이렇게 따라줘서요. 고맙습니다. 그만큼 제가 보답하겠습니다.”
“하하, 사장님. 전 항상 사장님을 믿고 있습니다.”
준섭은 대규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준섭의 눈동자에선 대규를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웹드라마 ‘환골탈태’의 조회수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기사도 떠올랐다.
-웹드라마 ‘환골탈태’, 역대 최대 조회수 기록! 한채아의 몸값도 수직 상승 중.
-‘환골탈태’, 드디어 공중파 방송사에서 방송하기로 전격 결정!
공중파 방송사 MBS에서 2편으로 편성해 방송하기로 했다고 했다. 웹드라마가 이처럼 성공해서 공중파 방송이 되는 건 보기 드문 성공 케이스였다.
그 바람에 대규식품의 도시락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에 공중파 방송 결정된 ‘환골탈태’에 나오는 도시락이 대체 뭐길래?
-‘환골탈태’ 도시락, 블루핑크 전원이 사랑하는 마성의 도시락!
그 효과로 대규 식품의 도시락들은 왕창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벌써 블로그들엔 다이어트 도시락의 비포 애프터 비교 후기까지 올라왔다.
특히나 젊은 여성들이 많은 여대에선 오티나 엠티 등 학교 행사 시 다이어트 도시락을 대량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규는 강원도의 목초지에서 준섭이 사온 양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메에에~”
털이 풍성한 양들은 새끼 양부터 성년기 양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목초지에 풀리자마자 그들은 네잎 클로버를 열심히 뜯어 먹기 시작했다.
“메에에에~”
양들은 기분 좋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며 클로버를 뜯어 먹었다. 대두콩을 심어놓은 곳엔 접근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 놨다.
‘그런데 얼마나 네잎클로버를 먹여야 양들이 미루스 비덴스로 변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