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122화 인페리 페룸 (1)
마신의 능력을 불러낼 수 있는 횟수가 하루 두 번으로 늘어났다.
대규는 목걸이의 황금 눈동자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끔뻑끔뻑 거리며 커다란 동공으로 대규를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다.
횟수가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지만 이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아포피스 소환 같은 것들은 한 번 쓰는 것만으로도 몹시 위력적이다. 그런 스킬을 한 번 더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그전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능력을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좋았어!’
이제 남은 관문은 키메라 처치.
지옥 끝에 있는 마물 키메라를 쓰러뜨리고 지옥의 금속 인페리 페룸(Inferi ferrum)을 얻어 저승세계를 빠져나가면 된다.
‘참, 저승세계를 빠져나갈 때 스틱스 강의 물 채집도 잊지 말아야지.’
키메라가 얼마나 강할진 모르겠지만 라의 목걸이 스킬을 사용하면 무난하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대규는 저승 세계에 들어와서 목걸이를 이용하는 걸 의식적으로 자제해왔다.
당장 써버려 놓고 나중에 마지막 보스인 키메라를 상대할 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면 답이 없어진다.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 항상 목걸이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럼 빨리 키메라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 참, 그 전에 영웅들의 위치를 확인해야지.’
대규는 지도창을 보았다.
속마음으론 케이른과 아프로디테의 여자 영웅이 물욕의 지옥 유혹에 빠져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길 빌었다.
‘그래도 케이른은 같은 부대의 소속 영웅인데… 너무 심했나?’
아니다.
같은 부대의 영웅이지만 지금은 엄연한 라이벌.
지도창에는 여전히 하얀 점 두 개가 나란히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도 케이른은 아프로디테 휘하 여자 영웅과 같이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뭐야? 왜 움직이질 않지?’
두 개의 하얀 점은 물욕의 지옥 한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반짝이기만 했다.
점이 아직 남아있는 걸로 보아 죽거나 황금으로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저들이 저곳에서 지체될수록 대규에겐 유리했다.
더군다나 물욕의 지옥에서 권력욕의 지옥으로 오려면 마의 산이란 구역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대규는 이번엔 키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지옥의 끄트머리 부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한 붉은 점이 보였다.
녀석이 있는 곳이다.
녀석이 있는 장소는 권력욕의 지옥을 벗어나면 나오는 거대한 동굴이다. 그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빨리 이동하자.’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허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키메라의 동굴 앞에 도착했다.
검은 암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동굴이었다.
대규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굴이 뭐 이래?’
동굴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횃불이 달려 있었다.
게다가 곳곳에 기둥들이 양옆에 일렬로 죽 세워져 있었고 기둥들 위엔 동굴의 암석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돌다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동굴이 아니라 꼭 사원 같았다.
대규는 동굴의 구조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지도창을 켰다.
동굴은 이곳과 지하층으로 구성된 2층 구조였다.
대규가 서 있는 이 층 말고 키메라는 지하층에 홀로 떡 버티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선 이 층의 깊숙한 곳에 가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대규 주변엔 몇몇 개의 작은 붉은 점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잡몹들인 것 같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점은 바로 5미터 앞에 있는 점!
휘릭-
대규는 그쪽을 향해 사슬검을 휘둘렀다.
검의 불꽃이 무언가에 맞는 느낌이 전해졌다.
화르륵!
“끄르르…….”
바라보니 해골이 불꽃에 타 죽어버렸다. 해골은 공략집이 떠오르기도 전에 순식간에 가루가 돼서 사라졌다.
해골 형상인 걸 보니 망자들인 것 같았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마나를 5 흡수했습니다.]
그런데 보관함이 반응하고 있다. 보관함을 보니 레드 등급 젬스톤 2개가 들어 있었다.
‘망자 주제에 레드 젬스톤을 2개씩이나?’
미다스의 손 효과인 것 같았다.
보통 이곳 저승세계의 망자들은 공략집으로 정보를 보면 보상으로 낮은 확률로 레드 등급 젬스톤을 드랍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미다스의 손 젬스톤 추가보상 효과로 레드 등급 젬스톤이 2개 들어온 것 같았다.
저 멀리 보니 빨간 점들이 보였다. 그쪽을 향해 달려가자 해골 형태의 망자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끼리릭!”
망자들은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죽어라!”
아니지, 이미 죽은 망자들이니까 죽으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화르륵!
휘두른 사슬검에서 불꽃이 퍼져 나가며 어두운 동굴을 밝혔다.
망자들은 칼을 맞고 단번에 쓰러져버렸다.
그때 엄청난 울음소리가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키에에에엑!
‘뭐지? 설마 키메라의 울음소리인가.’
빨리 잡몹 망자들을 해치우고 지하층으로 내려가야겠군.
대규는 키메라를 보지 않았지만 대충 어떻게 생겼을지 감을 잡고 있었다.
신화 책에서 그 이미지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키메라는 거인족 최고의 대장 튀폰과 마물 에키드나가 관계해 낳은 괴물이었다.
사실 이 키메라는 거인족이 옛날에 판테온 신들과 전쟁, 그러니까 제1차 기간토마키아를 벌일 때 하나의 무기로 쓰려고 튀폰이 낳은 마물이었다.
키메라는 머리와 몸통은 수사자의 모습이지만 그 옆에 숫염소의 머리가 돋아나 있으며 꼬리엔 꿈틀거리는 뱀의 머리가 달려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수사자와 숫염소의 머리가 있지만 이 마물은 튀폰과 에키드나의 딸(!)이란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신화라니까. 하긴, 이곳에서의 일들도 알 수 없는 일투성이잖아.’
그리스 신화 책에선 한 인간 영웅이 페가수스를 타고 날아가 공중에서 화살로 공격을 해 키메라를 쓰러뜨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 괴물이 어찌된 일인지 이곳 저승 세계에서 지옥이 금속 인페리 페룸을 지키고 있단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녀석을 쓰러뜨리고 인페리 페룸을 판테온 중앙 신전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신화를 읽은 대규는 녀석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보통 사자 머리로 화염을 뿜어대는데 그 화염의 사정거리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녀석을 상대하려면 멀찍이 떨어진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며 그곳에서 공격을 하면 된다.
멀찍이 떨어져서 스킬을 날려대면 녀석은 속수무책으로 상처를 입고 죽어버린다.
‘후후, 공략집 없이도 이렇게 전략을 착착 세워내다니. 나 좀 짱인듯.’
대규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저 멀리 다가오는 망자들을 가뿐하게 쓰러뜨렸다.
‘그런데 이거 내가 남 좋은 일 하는 거 아니야?’
자신이 이렇게 망자들을 다 쓸어버리면 뒤에 쫓아올 케이른과 아프로디테 휘하 영웅은 그냥 이곳을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키메라랑 싸우고 있는데 그들이 도착해서 전투에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괜한 걱정도 들었기에 지도창을 다시 켜봤다.
하지만 여전히 하얀 점 두 개는 물욕의 지옥에서 멈춰진 상태였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문제가 생겼다면 아마 신들이 개입했을 것이다.
대규는 지도창을 끄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저 멀리 망자들이 열 마리 이상 떼거리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일일이 다 죽이기도 귀찮았다.
“레툼 익투스!”
번쩍!
화염이 붙은 검광들이 망자들에게 날아가며 어두운 동굴을 대낮처럼 밝게 비췄다.
화르륵-
키이익!
그 틈을 타 일격의 기운이 망자들의 해골머리를 모조리 꿰뚫었다.
‘좋았어!’
보관함을 확인해보니 레드 등급 젬스톤이 4개나 들어 있다.
평소엔 이런 잡몹들을 해치워도 젬스톤은 잘 나오지 않았다.
‘운 수치가 높아져서 그런 걸까? 잘됐지, 뭐.’
저 멀리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드디어 키메라와 상대를 하게 되는 것인가.
대규는 심호흡을 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온 대규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아!”
눈앞엔 엄청나게 광활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 같았다. 너무 넓어서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이라 그런지 호수의 물은 시커멓게 보였다. 물결도 아주 잔잔했다.
‘그런데 대체 키메라는 어디 있는 거지?’
아무리 둘러봐도 호수뿐,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도창을 다시 켜봤다. 하지만 거대한 붉은 점은 이곳에서 분명히 반짝이고 있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소환의식이라고 치러야 나타나나.’
그 순간,
촤아악!
호수의 물이 높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꼭 거대한 물기둥이 올라온 것 같았다.
그리고 공중에 떠오르는 거대한 마물!
숫사자의 머리와 숫염소의 머리가 대규를 노려보고 있었다.
키메라다.
그런데 생김새가 좀 이상했다.
등 뒤에 돋아난 저 날개는 뭐람? 키메라는 날개를 펼치며 공중을 날고 있었다.
신화책 이미지엔 저런 날개가 없었는데.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키메라(Chimera)
보상: 낮은 확률로 블랙 등급 젬스톤 드롭
특징: 거인대장 튀폰과 마물 에키드나의 자식. 기간토마키아에서 이 마물의 실력을 눈여겨본 제우스는 기간토마키아에서 키메라를 포로로 잡아 인페리 페룸을 지키게 시켰다.
공중전에서 약하다는 약점을 알고 제우스는 키메라에게 독수리의 날개를 붙여 주었음.
보유 스킬: 지옥 화염-사자의 입에서 나가는 검은 불길. 모든 걸 다 녹여버린다.
<키메라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키메라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키메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키메라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이런! 제우스 신이 날개를 달아줬단다.
‘대체 왜 달아준 거야! 공중전을 계획한 게 다 소용없어졌잖아.’
그런데 보상 옆에 인페리 페룸이 적혀있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
‘왜 없는 걸까? 쓰러뜨리면 당연히 나올 줄 알았는데.’
히든미션들의 보석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공략집의 설명에는 이 괴물이 인페리 페룸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페리 페룸은 이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인가?’
일단 저 녀석부터 해치워야 한다.
대규는 호수의 구석진 곳으로 날아가 흑린갑의 투명화를 발동시켰다.
녀석의 눈에 띄지 않은 채 공략 영상을 찬찬히 숙지하고 싶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저놈의 날개까지 달린 걸 보니 만만치 않은 전투가 될 것 같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공략 영상을 재생해봤다.
‘제기랄.’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겠다.
아니, 이 경우엔 사자에 날개를 달아줬단 표현이 더 맞겠지만…….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불꽃을 쏘는 키메라의 모습은 위력적이었다. 저놈의 사자 주둥이에서 나오는 불길은 시뻘건 화염이 아니라 칠흑처럼 까만 화염이었는데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녹여버린다.
그 만큼 화염의 온도가 높다는 뜻.
‘다행히 불카누스의 사슬검 역시 화염계역 검이라 웬만한 화염 공격은 막아낼 수 있다. 닥튈로이의 반지의 마력저항 효과도 있고…….’
하지만 영상으로 알아보니 지금 자신이 지닌 아이템을 총동원 한다 해도 저 화염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틸 순 있겠지.
녀석의 약점은 뱀 대가리, 사자 대가리, 숫염소 대가리 총 세 개의 대가리다. 저것들을 다 베어야 죽는다.
게다가 영상에 따르면 녀석들의 대가리는 기가스들의 가죽보다도 더욱 단단해 단번에 베어버리기도 힘들다고 한다.
최대한 녀석의 공격을 버티면서 스킬을 계속 먹이는 것밖에 답이 없다.
스킬이 적중하면 녀석으로부터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으니 그때 화염 공격으로 깎여나가는 생명력을 보충하면 되겠지.
‘우선 저 날개부터 공격한다!’
날개를 공격해 움직임을 봉쇄해야 녀석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규는 키메라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