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121화 권력욕의 지옥 (2)
질질질.
대규의 발이 서서히 아이가이온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힘이여 솟아라!”
스킬명을 외치자 온몸에서 근육에 에너지가 솟아나며 힘이 실렸다.
팔에 있는 힘을 줘 사슬검을 당겼다.
찌지직-
사슬검을 겹겹이 감싸고 있던 가죽 채찍들이 서서히 찢어지는 게 보였다.
화르륵-
곧 사슬검의 불꽃이 가죽 채찍들에 옮겨붙었다. 시뻘건 불카누스의 화염은 순식간에 채찍들을 휘감아버렸다.
그 광경을 본 아이가이온은 재빨리 채찍을 거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다수의 채찍들은 이미 불이 붙어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크윽, 네 녀석… 대체 정체가 뭐냐!”
말을 마친 그는 아직도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채찍들을 왕좌가 있는 산 쪽으로 던져버렸다.
“끄아악!”
“으아아!”
산에 있던 망자들은 채찍에 붙은 불길을 사정없이 맞았다. 얼마 후 산 전체가 불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망자들은 몸에 불이 붙자 산에서 다들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자 아이가이온은 오히려 큰 목소리로 사납게 외쳤다.
“시끄럽다! 어차피 죽은 것들이 좀 뜨거운 게 그리 대수냐!”
그리고 대규를 돌아보며 이를 갈기 시작했다.
“이 자식, 죽여버리겠다!”
아이가이온은 백 개의 팔을 허공을 향해 쳐들었다.
‘빌어먹을.’
녀석은 보유 스킬인 바위 던지기를 쓰려고 하고 있었다. 대규는 재빨리 녀석의 심장부 쪽으로 날아갔다.
바위덩어리들을 소환해 던지기 전에 가까이 다가가 녀석을 공격할 심산이었다.
우르릉! 쾅쾅!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엄청난 굉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대지의 진동에 잠깐 멈칫한 사이 녀석은 어느새 백 개의 손에 각각 바윗덩어리들을 소환해 냈다. 녀석의 손에 잡힌 바위덩어리는 거의 대규의 몸뚱이만 했다.
“죽어라!”
후두두둑!
백 개의 바윗덩어리들이 대규의 머리를 향해 운석처럼 낙하했다.
휙.
고개를 들어 바위들을 바라본 뒤 사슬검을 높게 쳐들었다.
검의 궤도를 따라 불꽃이 춤을 췄다.
“비산의 결계!”
번쩍!
화르륵-
대규 주위 반경 5미터에 투명한 막이 형성됐고 화염구를 품은 검광들이 막 안에 있는 바위들 위로 맹렬하게 떨어졌다.
쩌억!
화염구 검광은 바윗덩어리들을 단번에 파괴해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투명한 막 바깥쪽에 있던 바위들은 막에 닿자마자 저 멀리 튕겨져 나가 땅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났다.
어느새 모든 바위는 가루가 돼버렸다.
투명한 막과 검광들이 사라지자 대규의 주위에는 바위가루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거의 낮은 산 정도의 높이였다.
그 순간,
푸슉!
쌓인 바윗가루 한가운데를 뚫고 나오는 거대한 거인의 손!
방패로 막을 틈도 없이 거대한 손은 대규를 가격했다.
스스슥-
대규의 몸을 감싸고 있는 흑린갑의 비늘들이 빳빳이 서면서 거인의 주먹을 감쌌다.
“크윽!”
하지만 충격은 컸다. 비늘들이 막아줬지만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다.
상태창을 생명력을 보니 반절 이상이 깎여 있었다.
‘크윽, 엄청난 위력이다. 힘이 엄청나게 세다는 공략집의 정보가 맞았어.’
대규는 하늘 높이 점프를 했다. 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자 고통이 다시 번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리고 사슬검을 높게 쳐들었다.
레툼 익투스 스킬을 시전해 녀석에게 명중시킨 뒤 살로메의 보석 효과로 녀석의 생명력도 흡수할 심산이었다.
딱 봐도 덩치가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살로메의 보석이 전체 생명력의 5%만 흡수할 수 있지만 녀석이 지니고 있는 전체 생명력에 비하면 그 정도도 엄청난 양일 것이다.
‘녀석에게 데미지도 주고 생명력도 흡수해 버리겠다!’
어느새 대규의 몸은 왕좌가 있는 산꼭대기 정상만큼 높게 올라갔다.
발밑에선 아이가이온이 지닌 수 십 개의 머리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규는 그 머리들을 향해 사슬검을 휘두르며 거세게 외쳤다.
“레툼 익투스!”
불꽃을 품은 검광들이 녀석의 몸뚱이를 향해 날아갔다.
“크아악!”
거인은 괴성을 내지르며 거대한 백 개의 팔을 쳐들어 검광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공격은 저 검광들이 아니다.
진짜 일격의 기운은 녀석이 검광들을 막아내는 사이 수십 개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서걱-!
대여섯 개의 머리들이 거인의 목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검의 가드에 박힌 살로메의 보석이 붉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은 일격의 기운이 베어버린 거인의 목 부분으로 스며들었고 이내 사슬검과 거인의 목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남겨진 머리들이 합창하듯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으, 시끄러워.’
그때 검 손잡이를 쥐고 있는 대규의 손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어?”
놀라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거인의 목과 연결된 붉은 기운이 검을 쥐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반절도 더 깎였던 생명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명력 2523/3190]
붉은 기운이 손으로 흡수될수록 생명력은 더욱 차올랐다.
아무래도 물욕의 지옥에서 미다스 왕을 상대할 땐 지금처럼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어서 직접적으로 붉은 기운이 몸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단순히 몸이 가벼워지고 힘이 차오르는 효과만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빴던 호흡이 점점 안정을 되찾았고 온몸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확연히 줄었다.
상태창을 보니 생명력은 대략 1,000이 좀 넘게 올랐다.
‘살로메의 보석은 상대 생명력의 5%를 흡수하니까 이걸 계산하면…….’
녀석의 생명력은 대략 20,000이 넘는다는 결론이 난다.
‘무지막지한 녀석이군! 그래서 레툼 익투스를 맞아도 저렇게 쌩쌩하구나.’
하지만 쌩쌩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대규는 레툼 익투스로 계속 공격해서 녀석의 힘을 빼놓은 뒤 심장을 가격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마나는 자가치유 능력 덕분에 천천히라도 차오른다.
타탓!
대규는 녀석의 등 뒤쪽으로 점프했다.
뒷목 위쪽에도 수십 개의 머리들이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심지어 그 머리들은 고개를 180도 돌려 대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대규의 위치를 알아챈 아이가이온은 백 개의 팔을 휘둘러 대규를 붙잡으려 했다.
'쉽게 잡힐쏘냐.'
휙- 휙-
대규는 이리저리 몸을 돌려 날아가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녀석의 팔들을 피했다.
“레툼 익투스!”
“끄윽!”
이번엔 녀석의 어깨에 명중했고 다시 살로메의 보석이 반응했다. 생명력이 거의 풀로 차올랐다.
“레툼 익투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이온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녀석은 다시 한 번 팔들을 쳐들고 바위 던지기 스킬을 쓰려 했다.
하지만 아까보다 확실히 팔을 쳐드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대규는 그가 바윗덩어리들을 소환하기 전에 그의 다리 쪽으로 사슬검을 날렸다.
휘리릭-
서걱!
칼날의 불꽃이 춤을 추며 녀석의 두꺼운 다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기우뚱-
쿵!
균형을 잃은 아이가이온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지옥의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지금이다!
그가 배를 내밀고 누워서 버둥거리는 틈을 타 대규는 그의 몸을 밟고 올라가 심장 쪽으로 달려갔다.
“이, 이 쥐새끼 같은 영웅 자식이!”
수많은 팔이 대규를 잡으려고 버둥거렸다.
타탓.
대규는 장애물 달리기는 하는 것처럼 팔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심장 쪽으로 전력질주했다.
심지어 진로를 방해하는 못된 팔들은 사슬검으로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화르륵-
팔들은 불이 붙어 힘없이 잘려나갔다. 약 10m 앞에 녀석의 심장 부위가 보였다.
녀석의 왼쪽 가슴 대흉근은 상당히 발달된 상태였다. 아마 쉽게 찌를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대규는 다리를 있는 힘껏 박차며 사슬검을 머리 위로 힘껏 치켜들었다.
쭈욱.
사슬검의 칼날이 길게 늘어갔다.
“흐라압!”
마지막으로 레툼 익투스를 시전했다.
검신 끝에서 불타오르는 검광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대규는 일격의 기운이 담긴 검광이 녀석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이 들고 있는 사슬검의 칼날로 있는 힘껏 녀석의 가슴을 찔렀다.
“끄으으윽!”
사슬검의 칼날이 불꽃을 휘날리며 가슴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단단한 근육 때문인지 몹시 뻑뻑했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찔러 넣었다.
이마에서 슬슬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푸슉-
곧 녀석의 가슴 안쪽에서 뭔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손끝으로 전해졌다.
어느새 검이 뚫고 들어간 가슴 부위엔 불이 붙기 시작했고 녀석의 몸은 심장 주변부부터 새카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얼마 후 아이가이온은 검은 안개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헉헉… 드디어 해치운 것인가.”
대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딱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아이가이온이 사라진 곳에는 작은 물건 하나가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왕관 모양의 작은 보석이었다.
보석을 집어 들자 공략집에서 봤던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아이가이온의 왕관(전설)]
[왕관 모양의 보석으로 이를 아티펙트나 무기에 장착하면 권위가 영구적으로 3 오름. 아티팩트에 장착시 아티팩트에 랜덤으로 옵션이 추가됩니다.]
‘그럼 이 보석을 어느 아이템에 장착하는 게 좋을까?’
랜덤으로 옵션이 추가된다고 하니 뭘 선택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것보다도 지금 지니고 있는 아이템들은 하도 옵션이 추가돼서 빵빵한 상태잖아.’
불카누스의 사슬검은 생명력 흡수 능력을 추가로 얻게 됐고 닥튈로이의 반지는 젬스톤 추가 보상 능력을 얻었다.
게다가 네메시스의 방패를 일전에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을 덧대 큰 방어력을 갖추게 됐다.
그때 대규의 눈에 하나의 아이템이 들어왔다.
바로 목에 걸린 라의 목걸이였다.
하루에 한 번 이집트 마신들의 능력을 빌려올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목걸이.
‘만약 이 목걸이에 옵션이 추가된다면 어떨까?’
스킬 사용시간을 좀 더 늘려주거나 할지도 몰랐다.
사실 현재 이 라의 목걸이는 맘 편히 사용하기 애매한 아이템이었다.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횟수제한이 걸려있는 것도 문제였고 권위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능력이 제한되는 것도 좀 그랬다.
그래서 목걸이를 지니고 있지만 쉽사리 이 목걸이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오시리스의 정원 출입 말고는 말이다.
‘한 번 라의 목걸이에 이 보석을 장착해볼까? 가능하겠지?’
대규는 결심을 굳힌 뒤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꺼냈다.
목걸이를 목에서 벗어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목걸이 펜던트 부분의 검붉은 눈동자가 대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눈동자였다.
대규는 모루 위에 목걸이와 왕관 모양의 보석인 아이가이온의 왕관을 올려놨다.
그러자 메시지창은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장착 비용으로 그레이 젬스톤 1개를 올려놓으라고 말했다.
비용인 그레이 젬스톤 1개도 올려놓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모루가 보석을 장착하기 시작합니다.]
우우웅.
모루 주변에 투명한 막이 쳐지고 곧 왕관 보석은 목걸이의 검붉은 눈동자 쪽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황금빛 왕관 보석은 검붉은 눈동자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검붉은 눈동자의 동공이 가늘어지며 세로로 쭉 수축됐다.
수축된 동공은 보석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다. 마치 보석을 조금씩 잡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으으… 징그러운 광경이군.’
파바밧!
엄청난 광휘가 모루를 감싸 안았다. 얼마 후 곧 빛이 사그라들었고 모루 위엔 라의 목걸이 하나만 올려져 있었다.
대규는 모루 위에 있는 목걸이를 손으로 집었다.
“이거 목걸이가 왜 이래?”
목걸이의 외관이 좀 변했다. 펜던트 부분의 검붉은 눈동자가 황금색 눈동자로 변한 것이다.
마치 부리부리한 부엉이의 눈동자를 보는 것 같았다.
‘옛날보다 더 섬뜩해 보이는데…….’
목걸이를 집어 들자 메시지 창이 떴다.
그때 대규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아이가이온의 왕관(전설)이 라의 목걸이(전설 권위+3)에 성공적으로 장착됐습니다. 그로 인해 목걸이에 추가 효과가 붙었습니다.]
[마신들의 능력을 불러낼 수 있는 횟수가 하루에 두 번으로 늘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