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120화 권력욕의 지옥 (1)
텅!
미다스 왕의 얼굴이 사원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마나를 70 흡수했습니다.]
그 순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미다스 왕의 몸이 사라졌다. 하지만 잘린 두 손목은 바닥에 남아있었다.
잘린 두 손목에서 빛이 나더니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작아진 손은 긴 타원형의 보석으로 변했다. 엄지손가락만 했고 호박색의 누런 보석이었다.
보석을 집어 들자 아이템의 설명창이 떠올랐다.
[미다스의 손(전설)]
[황금으로 만들어진 보석. 아티펙트에 장착 시 몬스터를 해치워 보상으로 얻는 젬스톤과 동일한 등급의 젬스톤을 추가로 하나 더 얻게 해 준다. 운 수치가 영구적으로 2 오른다.]
‘이건 어느 아티펙트에 장착할까?’
고민 끝에 닥튈로이의 반지를 선택했다. 사슬검엔 일단 살로메의 보석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방어구나 갑옷에 이 보석을 달기엔 좀… 방어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가장 적절한 반지에 장착하기로 했다. 왠지 반지에 이 보석을 박으면 보석반지 같고 간지날 것 같았다.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꺼내 닥튈로이의 반지와 미다스의 손 보석을 올려놓았다.
보석의 크기는 반지보다 훨씬 컸다.
'뭐, 저것도 모루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
[보석을 장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레이 등급 젬스톤 1개입니다.]
그레이 젬스톤도 올려놓았다. 아직 19개나 남아있으니 널널하다.
[미다스의 손(전설)을 닥튈로이의 반지(성장형)에 장착하시겠습니까? Yes/No]
Yes!
[보석을 장착하기 시작합니다.]
모루 주변에 투명막이 형성됐고 역시 보석이 두둥실 떠오르며 반지의 정중앙으로 날아갔다.
곧 황금빛이 보석에서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
빛이 사라지고 모루 위에는 닥튈로이의 반지만 남아있었다.
반지 가운데엔 타원형의 보석이 작아진 채로 박혀있었다. 하지만 보석은 강렬하게 빛났다.
‘반지 스웩이 장난 아닌데?’
[닥튈로이의 반지(성장형)에 추가 효과가 붙었습니다.]
[적을 쓰러뜨리면 보상으로 얻는 젬스톤과 같은 등급의 젬스톤을 추가로 1개 더 얻을 수 있고 운 수치가 영구적으로 2 상승합니다.]
대규는 상태창을 확인해봤다.
운 수치가 올라있었다.
김대규(세미데우스)
Lv. 3(82.00%)
생명력 3190/3190
마나 735/895
근력 138
민첩 137
지능 137
운 10(+5)
권위 20(+3)
사용가능한 스탯 포인트 : 4
운 수치가 15다.
‘이 정도면 운빨로 모든 걸 다 이룩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운, 악운으로 인한 실패는 하지 않을것 같았다.
‘운빨로 제일 먼저 인페리페룸을 얻어 지옥을 통과했으면… 이럴 때가 아니지.’
대규는 공략집의 지도창을 확인했다.
이제 인페리페룸을 얻기 위해 키메라랑 싸우기까지는 마지막 지옥인 권력욕의 지옥을 남겨두고 있다.
권력욕의 지옥에서 마지막 히든미션을 해결한 뒤 키메라를 재빨리 해치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머지 영웅들의 위치가 궁금했다.
“헐.”
영웅들은 딱 두 명만 살아남아 있었다.
살펴보니 아프로디테 휘하의 여성 영웅 1명과 케이른 뿐이었다.
점이 나란히 같이 붙어서 움직이는 걸 보니 그들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두 번째 지옥인 이곳 물욕의 지옥으로 막 진입한 상태였다.
‘케이른 씨는 좋겠군. 그토록 아름답다고 칭찬하던 아프로디테 소속 영웅과 함께하고 있으니…….’
대규는 장화를 이용해 마지막 세 번째 지옥인 권력욕의 지옥으로 향했다.
물욕의 지옥인 황금 숲을 벗어나자 커다란 절벽 두 개를 이은 기다란 다리가 나왔다.
절벽 주변에는 검붉은 바위산들이 험하게 자라나 있었다.
바위산들은 물욕의 지옥과 권력욕의 지옥 사이에 위치한 중간지점이었다.
곧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떴다.
<이곳은 마(魔)의 산으로 판테온의 신들에게 반항하거나 배신한 존재들이 망자로 들어와 영원히 고통받는 구역입니다.>
‘저건 뭐지?’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멀리 바위산에선 한 남자가 자기 몸의 다섯 배는 돼 보이는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으로 굴리고 있었다.
정상까지 남자가 바위를 힘겹게 굴려 올렸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데굴굴굴.
힘겹게 정상까지 굴린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남자는 한숨을 쉬며 다시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 다시 그 바위를 힘겹게 정상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위가 정상에 올라가자마자 다시 바람이 불었고 바위는 떨어졌다. 남자는 끊임없이 바위를 위로 굴리는 고된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몹시 괴로워 보였다.
‘지옥의 형벌인 걸까? 혹시 시지프스?’
다른 망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 남자는 계속 회전하기만 하는 수레바퀴에 온몸이 매달려 있었다. 수레바퀴에는 검붉은 불길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의 몸은 불길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옥의 괴물은 그 옆에서 수레바퀴를 계속해서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였길래 저런 형벌을 받는 걸까.
방금 전에 보았던 공략집의 내용이 떠올랐다. 신들에게 반항하거나 배신한 존재들이 이곳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고 했었지.
대규는 마침내 다리를 다 건넜다. 그런데 한 중년의 남자가 대규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헉헉… 이보게… 나 좀 도와주게.”
남자는 고목처럼 거의 빼빼 말랐고 피골은 상접해 있었다. 얼굴은 해골에 회반죽을 칠해 놓은 것 같았고 광대뼈 밑은 움푹 파인 상태였다.
“…배고파서 그런데 제발 먹을 것 좀 주게.”
남자가 불쌍해 보였지만 대규는 먹을 것을 당장 갖고 있지 않았다.
보관함에 있는 오시리스 정원의 약초 몇 뿌리가 떠올랐고 그거라도 하나 주려고 약초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그런데 약초가 남자의 손에 닿은 순간 손을 벗어나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목말라…….”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근처에 있는 샘물가로 뛰어갔다.
하지만 남자가 샘물가의 물 쪽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샘물들이 구석으로 달아나 버렸다.
남자가 구석으로 뛰어가자 물은 이번엔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뭐야, 저 남자는?’
그때 차원의 틈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망자 이름: 탄탈로스(Tantalus)
특징: 인간세계의 왕이었으나 신들을 속이고 그들을 시험하려 들어 판테온의 신들에게 분노를 사 저주의 형벌을 받게 됐다. 신들이 정말 전능한 존재인지 시험해 보려는 오만한 마음에서 자기 막내아들 펠롭스를 죽여 그 고깃국을 신들에게 대접했고 이에 열 받은 신들은 그를 지옥의 마의 산에 가두고 영원한 저주를 내려 물과 음식을 못 먹게 만들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신들을 시험에 들게 하려고 자기 아들을 죽이고 고깃국을 만들어 대접해?’
대규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탄탈로스를 바라보았다.
탄탈로스는 좀 전에 대규가 건넨 약초를 잡으려고 열심히 점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약초는 그를 약 올리듯 더더욱 높은 위치로 떠올랐다.
‘저런 녀석한테 주기 아까운 약초다. 어차피 먹지도 못하겠지만.’
대규는 헤르메스 장화로 점프해 약초를 낚아챈 후 보관함에 다시 넣었다.
“…이봐, 나를 도와주게.”
탄탈로스가 울먹이며 말했지만 무시하고 장화를 이용해 날아갔다.
저런 형벌을 받아도 싼 녀석이다.
그런데 신들에게 도전하면 이곳에 갇혀 저런 형벌을 받게 되는구나.
다른 망자들 역시 공략집을 보니 신들에게 반항하거나 신들에게 밉보여 분노를 산 존재들이었다.
‘그래도 어째 좀 으스스한걸.’
대규는 전에 아테나 여신이 거미 아라크네의 팔다리를 다 잘라버렸는 끔찍한 형벌을 눈 깜짝하지 않고 해낸 걸 기억했다.
‘신들은 의외로 잔인한 존재들일지도 몰라.’
최대한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을 행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신이 된다면 어떨까?’
제우스가 수여하는 징표를 세 개 모으면 신이 될 수 있는 시련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신이 된다면 신들이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지려나?
‘일단 빨리 세 번째 지옥인 권력욕의 지옥으로 가자.’
대규는 검붉은 마의 산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권력욕의 지옥.
그곳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산이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산의 꼭대기에는 왕좌 하나가 떡하니 있었다.
그 왕좌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그 밑에 있는 산의 모습이었다.
산에는 망자들이 개미처럼 잔뜩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꺼져! 내가 저 왕좌에 올라갈 거다!”
“어딜 감히! 저 왕좌는 내 자리다!”
피비린내와 무기들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망자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다들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대체 저 왕좌가 뭐라고 저러는 거야? 다들 이미 죽은 망자들인데…….’
하지만 산 아래쪽을 바라본 대규는 망자들의 태도를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산 아래쪽엔 거대한 거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몸통에서 팔이 수없이 돋아나있었고 머리통들도 잔뜩 있었다.
그 팔마다 각각 거대한 채찍을 들고 있었고 그가 팔들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채찍들은 산에 있는 망자들을 내려쳤다.
채찍을 내리칠 때마다 거인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빨리 올라가라! 멍청이들아! 크크크, 물론 저 왕좌에 제일 먼저 앉는 녀석에겐 이 채찍질을 멈춰주마! 하하하!”
그 거인을 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아이가이온(Aigaion)
보상: 아이가이온의 왕관
특징: 권력욕의 지옥을 지키는 거인. 산 아래쪽에서 망자들을 때리며 권력의 왕좌에 올라가게 부추긴다. 힘이 엄청나게 세며 백 개의 팔과 쉰 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다.
보유 스킬: 바위던지기-백 개의 손에서 한꺼번에 바위를 던지는 기술. 하늘에서 바위가 비처럼 쏟아지며 그 위력은 투석기 수십 대를 한번에 가동시킨 것 같다.
<아이가이온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아이가이온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아이가이온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아이가이온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마지막 히든 미션의 보스였다.
저 녀석을 잡으면 마지막으로 남은 보석인 아이가이온의 왕관을 얻게 된다.
‘좋았어. 빨리 해치우자.’
대규는 아이가이온의 공략 영상을 재생했다.
실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괴물이다.
게다가 바위 던지기 기술은 무시무시했다. 백 개의 손에서 일제히 떨어지는 바위 벼락들.
‘저 스킬을 쓰기 전에 약점인 심장을 찌르면 좋겠는데…….’
망자들을 향해 채찍을 신명 나게 휘두르던 아이가이온이 대규를 발견했다.
“이봐, 살아있는 영웅이 여긴 무슨 일이냐? 아, 영웅들끼리의 시합인지 뭔지 그 때문인가 보군.”
아이가이온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하! 기분이다! 그냥 이곳을 통과해라. 난 여기 망자 멍청이 녀석들을 괴롭히기 바쁘니까. 하하하!”
하지만 대규는 아이가이온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싫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뭐라고?”
거인의 목에서 돋아난 수십 개의 머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순간, 대규는 아이가이온을 향해 달려갔다.
타타탓.
사슬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휘리릭-
불이 붙은 사슬 칼날이 아이가이온의 거대한 몸뚱이를 향해 날아갔다.
“이런 무엄한 자식!”
아이가이온은 대규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100개의 채찍이 사슬 칼날을 향해 날아왔다.
처처척!
사슬칼날을 단단하게 감아버리는 100개의 채찍들.
아이가이온은 채찍을 자기 몸쪽으로 잡아당겼다.
“크윽…….”
엄청난 힘에 대규의 몸이 아이가이온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멍청한 녀석! 조용히 지나가면 되는데 감히 나에게 덤벼들다니.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아이가이온이 수십 개의 눈동자로 대규를 바라보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