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119화 물욕의 지옥
보석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바라보니 아이템 설명창이 떴다.
[살로메의 보석(전설)]
[무기에 이 보석을 장착하면 공격 적중시 적의 생명력을 5% 흡수한다. 무기를 제외한 방어구나 아티펙트에 보석을 장착할 경우 자가치유능력이 10% 향상한다.]
전에 공략집으로 봤던 것과 똑같은 설명이다.
대규는 보석을 집어 든 뒤 검집에서 불카누스의 사슬검을 꺼냈다.
이 보석을 얻기 전부터 이것을 사슬검에 장착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가치유능력을 10% 향상시켜주는 것도 좋지만 무기에 장착해 적의 생명력을 흡수해오는 게 훨씬 낫다.’
생명력 흡수는 적의 생명력을 빼앗아오면서 자신의 것으로 채울 수 있다.
자가치유능력의 경우 시간당 생명력과 마나를 스멀스멀 올려주지만 생명력 흡수는 적의 생명력이 많을 수록 한번에 많은 양을 흡수할 수 있다.
따라서 대규는 사슬검에 살로메의 보석을 장착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문제는 사슬검에 보석을 장착하는 건데…….’
대규는 보관함에서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꺼냈다. 이런 건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사용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모루를 꺼내자 설명창이 떠올랐다.
[모루를 사용해서 살로메의 보석을 아이템에 장착할 수 있습니다. 살로메의 보석과 장착할 아이템을 모루 위에 함께 올려놓아 주십시오.]
[보석을 장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레이 등급 젬스톤 1개입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그레이 젬스톤은 20개. 널널하다.
‘좋았어.’
대규는 모루 위에 살로메의 보석과 불카누스의 사슬검, 그리고 그레이 젬스톤 1개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모루 위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살로메의 보석(전설)을 불카누스의 사슬검(신화)에 장착하시겠습니까? Yes/No]
Yes!
[모루가 보석을 장비에 장착하기 시작합니다.]
메시지창이 사라지자마자 사슬검과 보석, 그리고 그레이 젬스톤을 둘러싼 투명막이 형성됐다.
얼마 후 살로메의 보석이 두둥실 떠오르며 사슬검의 손잡이 위쪽에 가로로 뻗은 검의 가드(Guard) 부분으로 날아갔다.
번쩍!
살로메의 보석에서 눈부신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대규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얼마 후 빛이 사라졌고 모루 위엔 불카누스의 사슬검만 남았다.
“우와.”
검을 보자마자 탄성이 터져나왔다.
가드 부분에 붉은 살로메의 보석이 떡하니 박혀있었다. 어떻게 박혀 들어간건지는 몰라도 만져보니 아주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검을 집어 들자 다음과 같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살로메의 보석(전설)이 불카누스의 사슬검(신화)에 성공적으로 장착됐습니다. 그로 인해 사슬검에 추가 효과가 붙었습니다.]
[공격이 명중하면 적의 생명력 중 5%를 흡수합니다.]
이제 이 검으로 공격하면서 상대방의 생명력도 빼앗아올 수 있다.
‘그럼 빨리 다음 지옥으로 향해야 해. 아직도 해야 할 미션은 2개나 남아있으니까.’
다른 영웅들은 어느 정도 지옥을 통과하고 있는지 확인도 해야 했다.
지도창을 키고 영웅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반짝이는 하얀 점들 5개가 막 애욕의 지옥 입구로 들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왜 5명밖에 없지?’
이번 지옥의 시합에 참가한 건 총 11명의 영웅.
대규를 제외하면 10명이고 이미 죽어버린 오크 정령들을 빼면 8명이어야 한다.
‘설마 강을 건너오면서 3명이 죽은 건가?’
하긴, 플레게톤의 강불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플레게톤의 강불을 지난 후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기억을 잃은 영웅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대규는 하얀 점들을 손끝으로 눌러봤다. 정확히 누가 탈락했고 누가 남았는지 알고 싶었다.
아프로디테 여신 휘하의 아름다운 여자 영웅들 2명과 케이른, 그리고 디오니소스 신 휘하의 영웅 1명, 헤르메스 신 휘하의 영웅 1명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애욕의 지옥에서 망자들의 유혹에 무사히 통과하면 곧장 물욕의 지옥으로 진입할 것이다.
‘이들이 쫓아오기 전에 빨리 다음 지옥으로 가야 해.’
애욕의 망자들이 그들에게 강력한 유혹을 펼치길 바라며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로 빠르게 날아갔다.
두 번째 지옥인 물욕의 지옥은 애욕의 지옥보다 한층 더 지하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풍경은 몹시 이상했다.
‘뭐야, 이곳은… 분명 숲속은 숲속인데…….’
애욕의 지옥과 비슷하게 숲속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무들과 수풀들은 모두 다 황금빛이었다.
온 식물들이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이거 설마 진짜 황금은 아니겠지?’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물욕의 지옥에서 나는 식물들은 100% 순수한 황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공략집의 메시지창을 본 대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황금이란 말이야?’
히든미션 정보에 따르면 이곳을 다스리는 망자는 미다스 왕이었다.
대규는 미다스 왕의 신화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디오니소스 신에게 좋은 일을 베풀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아진 디오니소스 신은 그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다.
물욕에 눈이 어두웠던 미다스 왕은 만지면 뭐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되는 손을 달라고 했고 신은 그 소원을 이뤄줬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빈 그 소원 때문에 파멸하게 된다.
음식과 마실 것들을 잡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해버려서 결국 굶주림에 시달리게 됐고 심지어 자식들도 다 황금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미다스 왕은 죽어서 이곳으로 와 물욕의 지옥을 다스리게 됐구나.’
그를 해치우면 나오는 보상 미다스의 손 역시 물질적인 보상과 연관이 있는 아이템이다.
적을 쓰러뜨리면 나오는 젬스톤과 같은 등급 젬스톤을 추가로 한 개 더 지급하고 운 수치도 올려준다.
‘그럼 빨리 미다스 왕을 찾아가자.’
대규는 노란 마크가 표시된 곳을 향해 달려가려다가 바로 옆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바라봤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였다.
심지어 장미의 줄기 부분엔 가시 대신 반짝이는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박혀있었다.
‘여기 있는 꽃들 몇 송이 꺾어서 현실로 가져가기만 해도 엄청 부자 되겠다.’
신기한 마음에 황금 장미를 한 송이 꺾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규가 장미 쪽으로 손을 가져가자 공략집이 갑자기 떠올랐다.
<물욕의 지옥에서 나는 황금에 손을 대면 손을 댄 자는 황금으로 변하게 됩니다.>
멈칫.
동작 그만.
‘뭐야, 장미를 꺾으면 내가 황금동상이 된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장미에 손을 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대규는 아쉬운 얼굴로 주변의 황금 풀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답지만 그럼 뭐하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럴 시간 없어. 미다스 왕한테 빨리 가자.’
대규는 반짝이는 노란 물음표 마크를 향해 움직였다.
대규가 도착한 곳은 숲속 한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사원이었다.
사원은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에 계단이 설치돼 있었다.
꼭 잉카제국 유적지 같은 곳에 있을 법하게 생겼다.
공략집의 지도를 보니 미다스 왕은 저 사원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대규는 사원으로 빨리 걸어 들어갔다.
사원 가운데엔 황금으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었다. 그리고 왕좌 주변엔 황금으로 만들어진 동상들이 여러 개 있었다.
왕좌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황금 옷에 황금 신발을 신고 있는 남자.
미다스 왕이었다.
그 역시 살로메처럼 온몸에서 안개처럼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망자라서 그런 건가.’
대규가 그를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망자 이름: 미다스(Midas)
보상: 미다스의 손
특징: 생전 물욕이 넘쳐났던 인간 세상의 왕. 황금손을 신에게 얻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파멸하고 지옥에 와 물욕의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가 됨. 신화등급의 무기로만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
보유 스킬: 황금손-손에 닿는 것을 무조건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스킬
<미다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미다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미다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미다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재빨리 공략 영상을 재생했다.
보유 스킬 황금손은 무시무시했다. 신화 내용처럼 미다스 왕의 손에 닿으면 모든 게 황금으로 변했다. 전투 중에 저 손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상대방은 황금으로 변해버린다.
‘설마 왕좌 주변에 있는 황금동상들… 미다스 왕이 변하게 만든 걸까?’
무조건 전투에 돌입하면 저놈의 나쁜 손들을 잘라버려야 한다.
손이 잘리면 황금손 스킬은 봉쇄되고 다른 수를 쓸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왕좌에 앉아있던 미다스 왕이 입을 열었다.
“…너는 망자가 아니구나.”
“그렇다.”
“망자도 아닌 녀석이 왜 나를 찾아왔느냐? 게다가 물욕의 지옥 함정에도 걸리지 않은 것 같고…….”
미다스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대규에게 묻자 대규는 차갑게 말했다.
“네 녀석이 갖고 있는 보석을 받으러 왔다.”
“미다스의 손 말이냐? 네 녀석이 대체 어떻게 그 보석의 정체를 알고 여기까지 왔지?”
“그건 알 거 없다.”
그러자 미다스 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웃기는 녀석이군. 그럼 널 해치워주마.”
말을 마친 미다스 왕은 어느새 대규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뭐가 이렇게 빨라?’
어느새 그는 두 손을 쫙 펴서 대규의 얼굴을 움켜쥐려고 했다.
타타탓!
대규는 몸을 돌려 그의 두 손을 피했다. 하지만 왕의 손은 대규 뒤에 세워져 있는 기둥을 잡았다.
스스슥.
기둥이 순식간에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왕은 귀신처럼 두 팔을 앞으로 뻗은 뒤 다시 대규를 향해 달려왔다.
몸을 숙여 피했지만 그의 손이 흑린갑 끝자락을 스쳤다.
번쩍!
그 순간 닥튈로이의 반지가 빛나기 시작했다. 반지의 마법저항력이 발동된 것이다.
스스슥.
투명한 보호막이 대규의 몸 주변에 쳐졌다. 그 모습을 본 미다스 왕은 당황했다.
이때가 기회였다. 빨리 저 못된 손목들을 뎅겅 쳐버려야 했다.
대규는 다가오는 손목들을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레툼 익투스!”
수십 개의 불꽃을 품은 검광들이 칼날 끝에서 맹렬하게 뿜어져 나갔다.
화르륵!
그러자 미다스의 왕은 두 손을 모은 뒤 쫙 벌렸다. 꼭 장풍이라도 쏘는 것 같은 자세였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서 이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번쩍!
‘저게 뭐야?!’
검광들을 감싸고 있던 불꽃들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곧 검광들은 공중에서 황금으로 변하더니 힘을 잃고 사라져버렸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하지만 괜찮다.
가장 중요한 건 암습하는 일격의 기운이니까.
수십개의 검광들이 황금으로 변한 사이 일격의 기운은 미다스 왕의 손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뎅겅!
공격이 명중했다.
그 순간 사슬검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정확히는 검의 가드 부분에 박힌 살로메의 보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붉은 기운은 미다스 왕의 심장 부분으로 스며들었다.
“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미다스 왕.
그런데 그 순간 대규의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생명력을 흡수한 건가?’
5%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 양인 진 모르겠다.
하지만 대규의 몸에선 힘이 넘쳐났다.
미다스 왕은 잘린 손목을 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
두 손들은 꿈틀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잘린 손목에서는 피 대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은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이제 저놈의 못된 손목은 잘라버렸으니 전투는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대규의 마음속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다시 한 번 공격을 명중시켜 생명력을 빼앗아야겠다.’
타탓.
대규는 발을 굴러 하늘 높이 점프했다. 바로 아래 미다스 왕의 정수리가 보였다.
“흐라압!”
사슬검을 머리 위로 높게 쳐든 뒤 있는 힘껏 내리쳤다.
불꽃을 품은 검날이 미다스 왕의 머리를 정확히 노리며 날아갔다.
서걱-
[애욕의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 미다스 왕과 싸워 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