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화 애욕의 지옥
대규는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 재빨리 지옥으로 통하는 구덩이로 향했다.
“이봐, 같이 가!”
우르크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귀찮아졌다. 히든 미션은 혼자 해야 하는데.
대규는 장화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곧 지옥으로 통하는 거대한 싱크홀 같은 구덩이가 보였다.
구덩이의 지름은 대략 100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대규는 그 안으로 잽싸게 날아들어 갔다. 그런데 등 뒤에서 우르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멈춰봐. 제발 같이 가자구!”
‘뭐야?’
뒤를 돌아보니 우르크는 저승 세계로 들어올 때 봤던 그 신묘한 보법으로 대규를 따라잡고 있었다.
장화의 스피드를 따라잡다니. 다시 봐도 대단한 보법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첫 번째 지옥인 애욕의 지옥에 들어서게 됐다.
그런데 지옥의 풍경은 몹시 평범했다.
‘지옥이라고 해서 시커멓고 음침한 느낌이 날 것 같았는데…….’
이곳은 오히려 그냥 평범한 숲속 같았다. 햇빛도 찬란하게 들어왔고 녹색의 풀들도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하지만 대규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애욕의 지옥, 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닐 것이다. 분명 유혹적인 것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판테온의 시련에서 겪었던 목욕탕 여자 악마들이 떠올랐다.
‘그보다도 빨리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망자를 찾아내 싸워야지.’
히든미션을 하기 위해 지도창을 켜서 망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등 뒤에서 우르크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여기 정말 기분 좋은 곳인걸!”
고개를 돌려보니 우르크는 숲속에 벌러덩 누워있었다. 입은 헤 벌리고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말이다.
녀석의 주위엔 나비 날개 같은 것이 달린 어여쁜 정령들이 모여있었다. 그녀들은 우르크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멋있으신 오크 전사님…….”
“너무 잘생겼어요.”
우르크는 그 말에 더욱 호기롭게 웃으며 정령들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하! 정말 예쁜 계집들이구나! 특히나 넌 몸매가 아주 죽여주는걸. 만지는 기분이 난다!”
기억은 다 사라져도 여자를 밝히는 저놈의 호색한 성질은 여전한 것 같았다.
정령 중 한 명이 대규를 바라보며 유혹적으로 말했다.
“세미데우스 영웅 나으리도 이리 오셔요.”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애욕의 망자
보상: 낮은 경험치, 낮은 확률로 레드 등급 젬스톤 드랍
특징: 생전에 애욕을 과하게 부려 파멸해 이곳 지옥으로 끌려온 망자. 망자가 됐지만 아리따운 정령의 모습으로 위장해 이곳에 오는 자들을 영원히 유혹한다. 유혹된 상대방은 애욕을 끓어올라 온몸이 불타 없어진다.
<애욕의 망자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애욕의 망자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애욕의 망자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애욕의 망자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공격 영상을 재생하자 아리따운 정령의 모습이 끔찍한 해골로 변해버렸다.
‘저게 진짜 모습이군.’
영상에 따르면 유혹에 넘어간 상대는 심장부가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불길은 심장에서 시작돼 오장육부를 다 태워버리고 최종적으로 온 육체를 다 불태워 죽게 된다.
거센 애욕의 불길이랄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쉽게 해치울 수 있다.
약점은 정수리 부위로 해골들의 머리를 검으로 산산조각내면 저들은 죽는다.
아리따운 정령으로 둔갑한 애욕의 망자는 이제 대규의 코앞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대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라.”
그때였다.
“어어?! 이거 왜 이래! 으아아악!”
망자들에 둘러싸여 있던 우르크의 심장 부위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 심장… 심장이 뜨거워… 커허허헉!”
심장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이제 그의 몸 전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불길로 번져갔다.
불길은 우르크를 점점 집어삼켰다.
이제 녀석을 둘러싸고 있는 망자들은 본래 해골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살려줘! 크흐흑!”
애욕에 넘어간 영웅의 최후였다.
“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우르크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죽어서 중앙 신전으로 부활한 것 같았다.
저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비장하게 불길 강 속으로 뛰어들었던 가로쉬가 떠올랐고 대규는 한순간 저 오크 듀오가 측은해졌다.
‘그래도 알아서 떨어져 나갔으니 다행이다. 맘 편히 히든미션을 할 수 있겠어.’
이제 해골로 변한 망자들은 대규에게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걱-
사슬검날들이 해골들의 골통을 깨부쉈다. 대규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사슬검에 붙은 불꽃들이 사방에 튀었다.
망자들을 다 쓰러뜨린 뒤 지도창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물음표의 위치를 주시했다. 저곳이 이곳 애욕의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 살로메가 있는 곳이다.
타타탓!
장화를 이용해 그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살로메가 있는 곳은 숲속의 깊은 곳이었다. 대규가 달릴 때마다 아리따운 정령으로 위장한 망자들이 그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영웅님…….”
“닥쳐!”
사슬검을 열심히 휘두르자 망자들은 해골로 변해 파스스 쓰러졌다.
서걱- 서걱-
망자들을 베어낼수록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 다른 영웅들도 카론의 배를 타고 저승 세계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냥 이 지옥을 통과하기만 해도 되지만 자신은 히든미션까지 추가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없어!’
그러니 최대한 시간을 절약해서 모든 미션을 신속하게 해치워야 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지도창에 표시된 노란 물음표 마크가 가까워졌고 저 멀리 누군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의 몸에선 은색 빛이나 금색 빛이 뿜어져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세미데우스나 정령, 혹은 신은 아니었다.
대신 그녀의 몸에선 거무스름한 안개 같은 기운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절세미인이었지만 얼굴에서 왠지 모를 표독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얇은 가운 같은 옷을 겹겹이 입고 있는데 가운의 어깨 한쪽이 흘러내려와 하얀 쇄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망자 이름: 살로메(Salome)
보상: 살로메의 보석
특징: 생전에 춤으로 남자들을 홀렸던 무희이자 요부. 죽어서 망자가 돼 이곳 애욕의 지옥을 다스린다. 그녀의 춤은 몹시 관능적이고 아름다워 남성들은 바로 홀림.
보유 스킬-일곱 베일의 춤: 춤으로 상대방을 현혹한 뒤 그 틈을 타 암습한다. 춤을 본 상대방은 넋이 나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살로메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살로메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살로메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살로메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재빨리 공략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에서 그녀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겹겹이 입은 가운들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벗으며 관능적인 몸짓으로 상대방을 유혹했다.
꼭 스트립 댄서를 보는 것 같았다.
상대방이 유혹에 팔려 넋이 나간 사이,
휙!
서걱-
품에서 단도를 꺼내 던져 상대방의 경동맥에 정확히 명중시킨다.
‘암습이 거의 닌자 수준인걸.’
다행인 건 저 춤은 유혹계열의 스킬이라는 것.
닥튈로이의 반지가 어느 정도 스킬을 막아줄 수 있다. 속는 척하다가 이쪽에서 먼저 그녀를 암습하면 될 것이다.
대규는 살로메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망자가 아니구나.”
“그렇다.”
“영웅들이 저승에서 시합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대는 욕정을 시험하는 망자들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그냥 이곳을 통과하기만 하면 될 터. 굳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냐?”
이렇게 묻는 살로메에게 대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보석을 얻기 위해서다.”
말을 마친 뒤 사슬검을 꺼내 들고 재빨리 달려들었다.
휘리릭-
사슬검의 칼날들이 채찍처럼 늘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유연하게 허리를 꺾어 사슬 칼날들을 피했다.
춤추는 무희답게 엄청난 몸놀림이었다.
“너는 영웅이 아니라 순 강탈자로구나.”
그녀는 멀리 달아난 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닥튈로이의 반지가 마력저항력을 발휘해 막아줄 테니 춤을 한 번 구경해볼까.
스르륵-
아름다운 몸놀림이었다. 유혹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동작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잘 보면 몹시 유연한 검술 자세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걸친 가운을 하나씩 벗는 것은 달랐지만.
어느새 그녀는 옷을 한겹 한겹 벗으며 대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반지의 마력저항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서히 넋이 나갔다.
‘이러면 안 되지!’
대규는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춤은 잘 봤다.”
휘리릭-
불붙은 사슬검이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갔다.
타탓!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점프해 허리를 활처럼 굽히며 아슬아슬하게 사슬검을 피했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무용 동작을 보는 것 같았다.
‘예술인걸.’
사슬검의 불꽃은 그녀의 몸을 스치기만 했다. 하지만 불꽃은 곧 그녀가 입은 가운 자락에 붙었다.
살로메는 당황하거나 부끄러운 표정도 없이 바로 가운을 벗어버렸다.
그리고는 높게 점프해 가슴 속 단도들을 표창처럼 날렸다.
휘릭-
대규 역시 민첩성을 발휘해 단도들을 잘 피해냈다.
“좋은 몸놀림이구나.”
계속해서 둘은 서로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빨리 그녀를 쓰러뜨리고 두 번째 지옥으로 향해야 한다.
대규는 그녀의 빈틈을 노렸다. 몇 합이나 지났을까. 그녀의 몸동작에 드디어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규는 그녀의 가슴팍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어 스킬을 날렸다.
“레툼 익투스!”
살기를 품은 수십 개의 불꽃 검광들이 그녀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꺄아악!”
아무리 몸놀림이 유연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오는 검광들과 일격의 기운은 피할 수 없었다.
일격의 기운은 그녀의 복부에 명중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녀의 가운이 불타기 시작했고 그녀는 치명상을 입었다.
“으윽.”
그녀는 다른 단도들을 꺼내 대규에게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사이 대규는 그녀의 등 뒤로 이동해 그녀의 등을 향해 검날을 내리쳤다.
서걱-
그녀의 몸에선 피 대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얼마 후 살로메는 사라졌다.
[애욕의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 살로메와 싸워 이겼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마나를 70 흡수했습니다.]
메시지창이 사라지자마자 온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레벨이 오른 것이다.
‘좋았어!’
김대규(세미데우스)
Lv. 3(36.00%)
생명력 3190/3190
마나 865/895
근력 138
민첩 137
지능 137
운 8(+5)
권위 20(+3)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 4
‘그래 봤자 이제 겨우 레벨 3이라니…….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세미데우스부턴 레벨 올리기가 힘들잖아. 게다가 스탯 포인트도 4나 쌓였고.’
대규는 지금 당장 스탯 포인트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 줄 모르니 일단 킵해두기로 했다.
‘스탯 포인트 모으는 재미도 꽤 쏠쏠한걸. 꼭 돈 모으는 것 같구 말이야.’
그때 그녀가 있던 곳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템이 나타난 것 같았다.
얼마 후 빛은 사라졌고 그곳엔 붉은 빛이 나는 주먹만한 보석이 한 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것이 꽤 아름다웠다.
“우와, 꽤 큰걸.”
첫 번째 히든미션의 보상 살로메의 보석을 얻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