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화 저승의 강 (2)
화르륵!
뛰어내린 가로쉬의 온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플레게톤의 불길이 든 유리병을 배 안으로 던지며 소리쳤다.
“받아라!”
“가로쉬!”
“끝까지 살아남아서 꼭 최고의 영웅 칭호를 획득해라. 아레스 신님께 영광을!”
말을 마친 가로쉬는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용암 강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척!
엄지 손가락을 척 치켜들며 서서히 가라앉는 가로쉬.
‘뭐야, 터미네이터냐…’
대규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가로쉬를 바라봤지만 우르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외쳤다.
“형제! 내가 꼭 최고의 영웅 칭호를 획득해 형제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
죽어도 부활해서 중앙 신전으로 간다니까.
이제 가로쉬의 몸은 완전히 가라앉아버렸다. 대규는 자신의 손에 들린 유리병과 그 안의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템 설명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플레게톤의 불]
[망자의 영혼을 태워서 정화시키는 플레게톤 강의 불길. 모든 존재를 태워버릴 정도로 엄청난 열기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화염 공격에 대해 매우 높은 저항력을 지닌다. 이 불길로 금속을 달궈 제련하면 금속에 높은 마법저항력이 담기게 된다.]
그런데 더더욱 땀이 났고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처음 강에 진입했을 때보다 목도 훨씬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우르크는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카론에게 물었다.
“이봐, 영감! 대체 다음 강까진 얼마나 남은 거냐?”
“버르장머리 없는 오크 녀석아. 이제 곧 도착한다.”
곧 거대한 아치형의 다리가 나타났고 불길의 강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번 강은 일반적인 강물의 모습이었다. 서늘한 강물이 찰박찰박 거리며 배에 부딪혔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네 번째 강인 망각의 강 레테(Lethe)에 진입했습니다.]
불길의 강 플레게톤을 벗어났는데도 너무 목이 탔다.
우르크는 거대한 손을 강물에 담근 뒤 강물을 퍼서 게걸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크와, 시원하다! 이제 좀 살 것 같군.”
대규 역시 그를 따라서 물을 마시려다가 공략집의 내용을 보고 멈칫했다.
<망각의 강 레테의 강물엔 기억 상실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강물을 음용한 자는 모든 기억을 잃게 됩니다.>
정말 너무 목이 타서 마시고 싶었지만, 의지를 발휘해 참았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군.’
플레게톤 강에서 열기와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끼게 만들고 레테에 도착하면 바로 이 강물을 마셔 기억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아무래도 이 강의 순서는 신이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때 우르크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긴 어디지? 난 누구지?”
그는 대규에게 다가와 멀뚱멀뚱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이봐, 넌 누구냐? 혹시 내가 누군지 알고 있냐?”
그 모습을 본 뱃사공 카론은 킬킬거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크크, 오크 녀석! 모든 걸 다 잊어버렸군.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우르크는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딜 다 왔다는 거야?”
카론은 배를 둑의 가장자리에 대며 말했다.
“드디어 저승의 입구에 도착했단 말이다.”
둑 앞쪽에는 거대한 검은 문이 세워져 있었다. 문 주변에는 보랏빛 자수정들이 박혀있었고 검은 문은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 거대한 짐승이 몸을 웅크리고 졸고 있었다.
‘저것은……!’
낯이 익은 괴물이었다.
차원의 틈, 그리고 제 1타르타로스에서 봤던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 개 케르베로스!
하지만 그때 봤던 케르베로스보다 훨씬 몸집이 컸다.
곧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저승의 케르베로스
특징: 저승을 지키고 있는 괴물 개로 하데스가 소유한 몬스터다. 하데스의 허가 없이는 죽일 수 없다. 저승을 들어가는 자에겐 관대하지만 저승을 마음대로 나가려는 자는 사정없이 물어뜯어 죽여버린다.
차원의 틈과 제1 타르타로스의 케르베로스는 이 케르베로스를 본따서 만들어졌다.
<본 몬스터는 신의 허가 없이는 해치울 수 없는 몬스터입니다.>
아무래도 이쪽이 원조 케르베로스인 것 같았다.
‘제1 타르타로스의 케르베로스가 진짜 본체인 줄 알았는데…….’
케르베로스의 세 개 머리는 잠에 빠져 있었다. 기분좋은 꿈이라도 꾸는 듯 가르릉 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코까지 골고 있었다.
대규는 지옥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오크 정령 우르크 역시 대규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오며 외쳤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같이 가자구!”
기억을 잃은 뒤 우르크는 연신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대규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참으로 난감해졌다.
‘혼자 다니고 싶은데… 대놓고 꺼지라고 말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대규는 따라오는 우르크를 무시한 채 척척 혼자 걸었다.
얼마 후 거대한 이정표가 눈에 보였다.
이정표엔 천국, 지옥, 하데스의 궁 총 세 개의 장소가 표시돼 있었다.
지금 구해야 하는 재료는 스틱스의 물과 인페리페룸 두 가지다.
스틱스의 물은 분명 스틱스 강의 물일 것이다.
대규가 신화 책에서 읽어 아는 바로는 스틱스 강은 저승 주위를 아홉 번 돌아서 나가는 거대한 강이다.
공략집의 지도창을 키고 강의 위치를 확인해봤다.
스틱스 강은 저승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저승을 빠져나가는 출구 쪽에 위치해 있어서 저승을 빠져나갈 때 마지막으로 채집할 수 있었다.
‘그럼 인페리 페룸부터 구해야겠군. 그런데 대체 인페리 페룸이 뭐지?’
나머지 불과 물은 대충 짐작이 가는 데 인페리 페룸은 이름만으론 무엇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공략집으로 인페리 페룸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인페리 페룸(Inferi ferrum)>
<하데스의 저승 세계에서만 나는 저승의 특수한 금속. 이 금속을 주재료로 이용하면 신화등급 이상의 무구(武具)를 만들 수 있다.>
갑옷의 주재료가 되는 금속이었구나.
공략집의 지도창으로 인페리 페룸이 있는 위치를 알아봤다. 인페리 페룸은 천국, 하데스의 궁이 아닌 지옥에 위치해 있었다.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수 없이 지도창으로 지옥의 모습을 확인했다.
지옥은 이 깊숙한 저승 세계보다도 더욱 깊숙한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거대한 싱크홀 같은 게 저승의 땅에 위치해 있었고 그 안쪽이 지옥이었다. 지옥은 구덩이는 거대한 깔대기 모양의 형상이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차례로 3개의 고리, 즉 지옥들이 등장한다.
공략집으로 알아보니 첫 번째 고리는 애욕의 지옥, 두 번째 고리는 물욕의 지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리는 권력욕의 지옥이었다.
그 지옥들을 모조리 차례로 통과하면 맨 마지막에 인페리 페룸을 지키고 있는 괴물 키메라가 나타난다. 인페리 페룸을 얻기 위해선 그 키메라를 쓰러뜨려야 했다.
키메라 역시 신화 책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기간테스 중 가장 최고봉이었던 튀폰(Typhon)의 자식 중 한 명으로 염소와 사자, 뱀이 한데 뒤섞인 것 같이 생긴 괴물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지옥들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통과한 뒤 제일 먼저 키메라를 해치우면 인페리 페룸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때 지옥을 표시한 지도창에서 노란 물음표 마크들이 반짝이며 떠올랐다.
그 물음표 마크들에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건 히든미션을 상징하는 표시!’
히든미션은 판테온에서 헤라클레스를 찾으러 갔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대규는 물음표 마크 세 개 중 하나를 손끝으로 눌렀다. 첫 번째 지옥인 애욕의 지옥에 위치해 있는 마크였다.
-히든미션1-
장소: 하데스의 첫 번째 지옥 고리 애욕의 지옥
조건: 세미데우스 이상 영웅 가능
미션 내용 : 애욕의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 살로메와 싸와 이겨라 (0/1)
보상: 살로메의 보석
각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는 아무래도 보스 몬스터인 개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살로메의 보석이 뭘까?’
항목을 터치하자 그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살로메의 보석(전설)>
<무기에 이 보석을 장착하면 공격 적중시 적의 생명력을 5% 흡수한다. 무기를 제외한 방어구나 아티펙트에 보석을 장착할 경우 자가치유능력이 10% 향상한다.>
꽤나 유용해 보이는 아이템이다.
상대방의 생명력을 5% 흡수한다고 하면 그 양이 매우 적어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앞으론 생명력이 높은 적들이 대거 출현할 것이다. 그들의 생명력에서 5%는 무시할만한 양이 아니다.
게다가 옛날에 상점 주인이었던 차이니즈 오크에게 받은 아이템, 공격의 명중률을 높여주는 크리티걸 오일과 함께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아니면 굳이 무기에 장착할 필요 없이 방어구에 장착해 자가치유능력을 향상시켜도 좋고.
대규는 나머지 히든미션들도 살펴보앗다.
-히든미션 2-
장소: 하데스의 두 번째 지옥고리 물욕의 지옥
조건: 히든미션1를 성공한 영웅
미션 내용: 물욕의 지옥을 다스리는 망자 미다스 왕과 싸워 이겨라(0/1)
보상: 미다스의 손
미다스 왕의 이름은 들어봤다. 욕심을 부려 무엇이든 만지면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손을 얻게 됐지만 오히려 그 손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고 자식들마저도 황금으로 변화시켜 결국 불행해졌다는 왕이었다.
‘그 왕이 지옥에 가게 됐구나.’
지옥의 이름부터가 물욕의 지옥인 걸 보니 미다스 왕과 되게 어울렸다.
보상이란 미다스의 손도 왠지 황금이나 물질적 부에 연관된 것일 것 같았다. 설명을 보았다.
<미다스의 손(전설)>
<황금으로 만들어진 보석. 아티펙트에 장착 시 몬스터를 해치워 보상으로 얻는 젬스톤과 동일한 등급의 젬스톤을 추가로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운 수치가 영구적으로 2 오른다.>
‘젬스톤 추가 지급?’
그 설명을 본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현재 젬스톤의 등급은 점점 올라갔지만 몬스터를 해치워도 나올 확률 역시 점점 희박해졌다.
하지만 이 보석이 있으면 젬스톤을 더욱 빠르게 모을 수 있다. 희귀한 블랙 등급 젬스톤도 지금보다 훨씬 빨리 모을 수 있다.
‘이건 정말 유용하겠는데.’
마지막 히든미션도 궁금해졌다.
대규는 마지막 남은 노란 마크를 손끝으로 눌렀다.
-히든 미션 3-
장소: 하데스의 마지막 지옥 고리 권력욕의 지옥
조건: 히든미션 1, 2를 수행한 영웅
미션 내용: 권력욕의 지옥을 다스리고 있는 거인 아이가이온과 싸워 이겨라 (0/1)
보상: 아이가이온의 왕관
아이가이온은 망자가 아니라 거인인가 보군.
보상인 아이가이온의 왕관을 손끝으로 눌러봤다.
<아이가이온의 왕관(전설)>
<왕관 모양의 보석으로 이를 아티펙트나 무기에 장착하면 권위가 영구적으로 3 오름. 아티팩트에 장착시 아티팩트에 랜덤으로 옵션이 추가됩니다.>
‘아티팩트에 랜덤으로 옵션이 추가된다는 건 뭐지?’
추가 이팩트가 발생한다는 말 같았다.
‘하지만 권위가 3이나 추가된다니!’
빨리 권위를 30 달성해 마지막 하나 남은 마신의 스킬인 ‘죽음의 지배’를 빨리 시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히든미션이니까 아무리 랜덤 옵션 추가라도 나머지 아이템들보단 이팩트가 훨씬 좋을지도 모른다.
이 히든미션의 보상들은 모두 보석 형태인 것 같았다. 대규는 이 세 개의 보석이 몹시 탐이 났다.
‘이 미션은 해야 한다!’
미션에 대해 알고 있는 영웅은 분명 자신밖에 없을 터.
그때 걸걸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이봐, 뭘 그렇게 혼자 허공을 바라보는 거야?”
뒤에서 쫓아온 우르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다, 저 녀석이 있었지. 히든미션을 하려면 저 녀석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우르크는 대규의 속내도 모르고 이정표의 글자를 읽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천국? 하데스의 궁? 잠깐… 하데스라면 죽음의 신 아니야!”
갑자기 그는 거대한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죽음의 신은 무서워… 죽는 건 무섭다구!”
아까 배에서 오크는 전쟁과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다 허세인 것 같았다.
저렇게 보니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아레스 신 밑의 대장군이니 실력은 뛰어날 터.
‘하지만 저 녀석과 같이 갈 순 없다. 어떻게든 떨쳐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