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화. 승전 기원 파티 (3)
젊은 신들은 각자 자신들이 지휘하고 있는 영웅들이 가장 뛰어나다고 뽐내며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영웅들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감히 신들의 말싸움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데 제우스는 그들의 말싸움을 흥미롭다는 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보다못해 이렇게 소리쳤다.
“여봐라, 시끄럽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 앞에서 무슨 소란들이냐!”
그러자 젊은 신들은 입을 다물었다. 얼마 후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에게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이시여, 그대께서 직접 가려 주십시오.”
그러자 포세이돈이 다시 소리쳤다.
“무엄한지고!”
그때 제우스가 포세이돈을 막으며 아테나에게 말했다.
“아니다. 계속 말해 보라.”
아테나는 고개를 숙이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청했다.
“그대께서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영웅을 지닌 신이 누군지 공정하게 결정해 주십시오.”
아레스 역시 벌떡 일어나서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우리 중 누가 최고의 영웅을 거느리고 있는지 신들의 아버지께서 직접 가려 주십시오!”
“시끄럽다!”
포세이돈이 아레스를 향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엔 헤르메스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포세이돈에게 말했다.
“포세이돈 님께서도 혜안을 발휘하셔서 함께 판단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시면 참으로 영광입니다.”
혜안이란 말에 포세이돈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얼마 후 제우스가 젊은 신들에게 말했다.
“좋다, 결정해 주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그는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는 영웅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젊은 신들의 영웅들은 만찬을 다 마쳤는가?”
젊은 신 소속 영웅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서 내려놓은 채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젊은 신들의 영웅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나오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젊은 신 소속 영웅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일사불란하게 일어나 신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테이블엔 포세이돈 휘하의 영웅 피스키스와 몇몇 사람만 남아 있다.
인장을 보니 하데스와 헤라, 그리도 데메테르 여신의 영웅들이었다.
헤파이스토스와 제우스의 휘하 소속 영웅은 테이블에 한 명도 없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니 아무래도 영웅들이 아니라 신들을 지휘하는 것 같았다.
‘그럼 헤파이스토스는? 흠… 대장간의 신이라 대장장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건가.’
판테온 상업 구역에 있는 대장장이 파베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들의 테이블 앞에 선 영웅들은 총 열한 명이었다.
헤르메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소속 영웅은 각 1명씩,
아테나, 아레스,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소속 영웅은 각 2명이었다.
“간만에 영웅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기분이 좋군.”
제우스는 입가에 호기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토록 가까이서 제우스를 보니 좀 전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위압감이 대규를 짓눌렀다.
마치 자신이 거대한 바위 앞의 한없이 작은 먼지 같은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제우스는 젊은 신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너희들의 소원대로 누가 최고의 영웅을 거느리고 있는지 판단해 주마. 그러기 위해선 여기 있는 하데스에게 부탁을 하나 해야겠군. 하데스여, 가능하겠는가?”
그러자 검은 투구를 쓴 하데스 신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네. 이거 간만에 재밌는 구경거리가 벌어지겠는걸.”
무슨 말일까.
영웅들은 더욱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데스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웅들이여, 그대들은 나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 세계를 통과해야 할 것이다. 가장 빨리 통과하는 자에겐 최고 영웅의 칭호를 내리겠다.”
이렇게 말한 그는 젊은 신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그대들에게도 공정한 처사가 되겠지?”
“좋습니다.”
젊은 신들은 불만 없는 목소리로 입을 모아 대답했다.
하지만 영웅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승 세계를 통과하는 미션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상관인 신들의 자존심 싸움을 위해서 말이다.
다들 기분은 불편했지만 아무도 겉으로 이를 내색할 수는 없었다.
감히 신에게 대들었다가는 심한 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런 영웅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했는지 제우스는 영웅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영웅들이여, 너무 불만을 갖진 말거라. 신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영웅들을 무의미한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하데스의 저승 세계를 통과하는 자에겐 최고의 영웅 칭호 말고 두 가지의 커다란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보상이란 말에 영웅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커졌다.
“헤파이스토스, 이리로 와 보게.”
“알겠습니다.”
제우스의 부름에 헤파이스토스는 구부정한 몸을 움직여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제우스는 영웅들에게 고개를 들라고 명한 뒤 이렇게 말했다.
“다들 여기 있는 헤파이스토스가 어떤 신인지는 알고 있겠지? 우선 첫 번째 보상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저승 세계를 통과해 오는 영웅에겐 여기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그자에게 직접 갑옷을 한 벌 지어 줄 것이다.”
헉.
영웅들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그도 그럴 것이 판테온 최고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드는 갑옷이란다.
헤파이스토스는 신들이 사용하는 무기만을 주로 만드는 대장간의 신이었다. 웬만한 영웅들은 그가 만든 무기를 사용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제우스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 갑옷은 당연히 신화 등급이 되겠지. 제작 허가증은 나 제우스가 직접 내릴 것이다.”
제우스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그의 인장이 박힌 허가증이 허공에서 생성됐다.
그걸 본 영웅들의 표정은 180도 달라졌다. 불만 가득하고 시들했던 눈빛은 어느새 다들 흥분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대신 그대들은 저승 세계를 통과하면서 갑옷의 재료가 될 아이템들을 모아 와야 한다. 그 재료들은 하데스의 저승 세계에 산재해 있다. 한마디로 그대들이 해야 하는 임무는 저승 세계를 빠르게 통과하며 갑옷의 재료가 될 아이템들을 모아 오는 것이다. 그 아이템들은 다음과 같다.”
그러자 영웅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갑옷의 주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페리 페룸(Inferi ferrum), 플레게톤의 불, 스틱스의 물]
“그리고 두 번째 보상은…….”
제우스는 말을 잇는 대신 손뼉을 짝짝, 두 번 쳤다.
그러자 허공에 뭔가가 생겨났다.
‘저것은……!’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익숙한 물건들이었다.
바로 판테온의 시련을 겪었던 아이룸나 신전에서 봤던 운명의 실과 바늘, 그리고 천이었다. 천들에는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저게 지금 왜 여기에?’
궁금해하고 있는데 제우스가 말을 이었다.
“임무를 가장 먼저 완수한 자의 이름 옆에 ‘징표’ 하나가 수놓아져 기록의 신전에 기록될 것이다.”
‘‘징표’라는 게 뭐지?’
‘저건 대체 무슨 보상인 걸까. 그냥 기록의 신전에 기록만 되는 것 아닌가?’
대규가 생각하기에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제작해 주는 갑옷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보상 같았다.
그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그 내용을 본 대규는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징표란, 신들의 왕 제우스가 경탄할 만한 공적을 이룬 존재에게 수여되는 일종의 표식입니다.]
[제우스 신이 수여하는 징표를 기록의 신전에 세 개 모으면 신이 될 수 있는 시련(제우스의 시련)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신이 될 수 있는 시련? 그걸 통과하면 정말 신이 될 수도 있는 건가?’
‘신이 되는 건 머나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대규는 다른 영웅들의 표정을 둘러봤다.
그들 역시 깜짝 놀란 얼굴이었고 눈빛은 흥분으로 반짝였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지금이라도 기권하고 싶은 자는 기권해도 좋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도 기권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젊은 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저승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각자의 신과 영웅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젊은 신들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각자의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테나 여신이 대규와 케이른에게 다가왔다.
“대규, 케이른,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런데…….”
여신은 저쪽에서 오크 정령들에게 요란스레 사기를 북돋워 주는 아레스 신을 째려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 전쟁광 녀석의 추악한 부하들한테만은 절대 지지 말아다오. 참, 그리고 이걸 꼭 챙겨 가도록 하라.”
여신은 케이른과 대규에게 각각 이상하게 생긴 황금 동전과 작은 유리병 두 개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대규가 묻자 여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승으로 들어가려면 이 동전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병은 갑옷의 재료가 될 물과 불을 담을 수 있다. 그럼 행운을 빈다.”
다른 신들도 영웅들과 거의 대화를 마친 것 같았다.
그때 제우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준비는 됐는가. 그럼 저승 세계로 향하도록 하지. 참, 이건 어디까지나 신들의 변덕으로 일어난 일이니 저승 세계에서 만일 죽음을 당하게 되어도 부활한다. 하지만 죽으면 이곳으로 부활해 돌아오게 된다. 한마디로 실격 처리되고, 탈락된다고 보면 된다. 그럼 하데스여, 저들을 저승 세계로 안내하도록 하시게.”
“알겠습니다.”
검은 투구에 검은 토가를 입은 하데스 신이 영웅들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이리 따라오라.”
하데스 신은 영웅들을 이끌고 신전 밖으로 나갔다.
신전 앞의 낭떠러지 앞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포탈이라도 열어 주려나?’
하지만 대규의 기대와 달리 하데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저승의 입구다.”
설마…….
대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봤다.
“저승 세계는 이 낭떠러지의 아래쪽에 있다. 참고로 이 낭떠러지는…….”
하데스가 허공에 대고 가볍게 손짓을 하자 옆에 놓인 커다란 바위가 움직이더니 둥둥 떠올랐다.
휙.
바위는 낭떠러지의 허공에 떠 있다가 바로 떨어졌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바위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데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대장장이들이 이곳에 무거운 모루를 떨어뜨렸을 때 그 모루가 9일 밤낮 계속 떨어져야 도달하는 곳이 바로 나 하데스의 저승 세계다.”
9일 밤낮이라면 어느 정도 깊이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럼 모두 행운을 빈다.”
말을 마친 하데스는 신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들어가자마자 신전의 문을 굳게 닫혀 버렸다.
영웅들은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때 아레스의 오크 정령들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흐흐, 그렇단 말이지…….”
타탓!
그들은 하늘 높이 점프했다. 그리고 발을 빠르게 움직여 허공을 걷기 시작했다.
휙, 휙, 휙.
그러더니 그들은 절벽의 외벽을 달리듯이 뛰어 내려갔다.
실로 신묘한 보법(步法)이었다. 벌써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촤라락.
이번에는 대규의 옆쪽에서 밝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프로디테의 여자 영웅들의 몸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
얼마 후 그녀들은 아름다운 하얀 비둘기로 변신했다.
‘신체 변신 스킬?’
비둘기 두 마리는 곧바로 절벽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역시 각 부대의 최고 영웅들다운 실력이었다. 케이른 역시 눈을 감고 무슨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방법이 있지!’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헤르메스의 장화!
타타탓.
대규는 발을 구른 뒤 낭떠러지로 점프했다.
그리고 빠르게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어느새 주변엔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은 보이지도 않았다.
새하얀 비둘기 두 마리를 제쳤고, 저 멀리 벽을 타고 달리는 오크 정령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 대규는 오크 정령들도 제쳤다.
심지어 저 아래쪽으로는 좀 전에 하데스가 던진 바위가 떨어지고 있었다.
‘좀 더 속력을 내 볼까.’
대규는 속도를 더욱 내 수직 낙하했다. 바위도 제쳤고, 이제 명실상부하게 선두였다.
하지만 바닥은 보이지도 않았다.
모루가 9일 밤낮 떨어져야 도달한다는 건 과장이 아닌 듯했다.
지도창을 켜서 확인해 보니 겨우 반도 내려오지 못했다.
대규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 멀리 아래쪽에서 짙은 보랏빛이 보였다. 드디어 바닥에 도달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