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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114화 (114/294)

# 114

114화. 승전 기원 파티 (2)

가시가 돋힌 건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피스키스는 대규의 손을 꾸욱 잡았다. 물기가 배어 나와 축축했다.

하지만 대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피스키스는 그런 대규를 보고 당황했다.

있는 힘을 다해 쥐었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다니.

물론 대규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정말 하나도 안 아팠다. 그만큼 자신의 육체가 강해진 걸까? 이번에 내 차례다.’

대규는 있는 힘껏 그의 손을 쥐었다.

피스키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얼굴에서 진땀이 흘렀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손을 놔줬다.

“그럼 자리에 앉으시지요.”

피스키스는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영웅들도 각자의 자리에 착석하고 있었다.

얼마 후, 대리석 홀 끝 계단에서 신들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맨 처음 내려온 신은 대규도 본 적이 있는 헤르메스였다. 그는 그리스식 토가를 입고 있었다.

헤르메스가 계단을 내려오자 테이블에 앉은 영웅들은 박수를 쳤다. 그중에서도 저 멀리에 앉아 있는 영웅 한 명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헤르메스 부대의 영웅인 것 같았다.

뒤이어 아폴론, 그리고 그와 똑같이 생긴 백금 발의 여신이 내려왔다. 공략집으로 보니 그의 쌍둥이 남매 아르테미스 여신이었다.

그 둘의 부대 영웅들 역시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 둘은 정말 똑같이 생겼군.’

그 뒤를 이어 대규와 케이른의 상관인 아테나 여신이 내려왔다. 여신은 전에 판테온의 신전에서 봤을 때처럼 하늘하늘한 토가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여신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고, 케이른과 대규 역시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그 뒤에 해골을 온몸에 주렁주렁 걸치고 빨간 망토를 입은 남신이 거칠게 걸어 나왔다.

약간 사납게 생긴 얼굴이었고, 드러난 팔뚝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때 테이블에 앉아있던 오크 정령 둘이 일어나 소리쳤다.

“우오오오!”

“아레스 님께 영광을!”

그들은 아주 난리법석을 떨어 댔다. 심지어 나이프로 황금 컵을 챙챙 시끄럽게 두들기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다른 신들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오히려 아레스는 그 모습을 보고 창피해하기는커녕 몹시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다음에 내려온 남신과 여신의 모습을 보고 대규는 깜짝 놀랐다.

여신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금발에 속살이 비칠 듯이 얇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볼륨감 있는 가슴에 잘록한 허리의 몸매를 지니고 있었으며, 허리엔 금속으로 만든 아름다운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

얼굴은 관능적이면서도 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신이라서 분명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경건한 마음이 들지만 그와 동시에 심장이 쿵쿵 뛰고 기분이 묘해졌다.

‘이거 왜 이러는 거지…….’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신 이름: 아프로디테(Aphrodite)

특징: 우라노스의 피가 바다에 흘러들어 가 생겨난 사랑과 미의 여신. 판테온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그녀의 현혹 마법은 판테온 제일로 상대방이 그녀의 허리띠를 보면 발동된다.

<아프로디테 신은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아프로디테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을 할 수는 있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역시 아프로디테 여신이었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대규는 그녀의 허리띠를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리띠에서 시선을 떼자 가슴이 쿵쿵거리는 게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여신을 따르는 아름다운 여자 영웅 둘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리고 아프로디테 옆에 있는 남신도 심상치 않게 생겼다.

여자처럼 기다란 장발 머리에 약간은 초점이 흐린 듯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엔 포도나무 덩쿨관을 쓰고 있었으며 코와 양 볼은 은은하게 붉었다.

꼭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차원의 틈 공략집-

신 이름: 디오니소스(Dionysus)

특징: 제우스가 인간 여자와의 관계에서 낳은 신으로 포도주의 신이자 기쁨과 광란, 황홀경의 신이다. 세상의 모든 쾌락을 즐기며 도덕률을 무시한다. 그의 부대 영웅들은 그를 신처럼 보시며 광란의 축제를 벌인다.

<디오니소스 신은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디오니소스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을 할 수는 있습니다.>

<디오니소스 신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그 부하로 보이는 영웅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들의 외관 역시 특이했다. 그들은 기괴하게 생긴 붉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디오니소스를 마지막으로 젊은 신들은 모두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러자 아테나가 영웅들에게 말했다.

“오늘 승전 기원 파티에 온 영웅들이여! 환영한다! 이제 우리의 어버이 세대 신들이 오실 것이다. 모두 경배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라.”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계단을 따라 세 명의 남신들이 내려왔다.

거대한 삼지창 트라이던트를 든 덩치 큰 신과 검은 투구에 검은 망토, 검은 토가를 빼입은 호리호리한 신, 그리고 곱사등이에 구부정한 난쟁이 같은 신이었다.

공략집으로 파악하니 차례로 포세이돈, 하데스, 헤파이스토스였다.

포세이돈이 내려오자 대규 옆의 어인 피스키스는 기립박수를 치는 것도 모자라 포세이돈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포세이돈 신이시여! 황송하옵니다!”

그다음엔 헤라 여신과 데메테르 여신이 내려왔다.

이제 신들의 테이블은 한가운데 제일 휘황찬란하고 커다란 의자만을 비워 둔 채였다.

그 자리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의 자리 같았다.

그 순간,

번쩍!

대리석 홀에 천둥이 친 듯 섬광이 번쩍였다.

콰지직!

계단 위쪽에서 작은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벼락 소리가 가시자 그곳에 거대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러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신들조차도 다들 일어났다. 대규와 케이른, 그리고 다른 영웅들의 몸은 저절로 숙여졌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우스의 몸에선 황금빛이 매우 밝게 뿜어져 나오고 있어서 몹시 눈이 부셨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빛은 다른 신들에 비해 몇 배는 강렬했다.

그는 곱슬머리에 턱에는 수염이 자라 있었고, 눈빛은 맹수처럼 몹시 강렬했다.

어깨에는 전에 아테나 여신의 지휘사령부 천막에서 봤던 독수리가 앉아 있었다.

제우스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가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대규의 심장은 쿵쿵 울렸다.

경이로움과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을 휘저었다.

대규는 그와 감히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흘끔 고개를 들었다.

제우스에 대한 공략집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곧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신 이름: 제우스(Zeus)

특징: 판테온 최고의 신이자 신들의 왕, 아버지. 그가 지닌 황금 벼락은 판테온 최강의 무기로 그 어떤 괴물들도 대적해내지 못한다.

<제우스 신은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제우스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을 할 수는 있습니다.>

<제우스 신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카오스(Chaos)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메시지창에 떠오른 내용이 다른 신들과 조금 달랐다.

‘카오스 등급?’

처음 보는 아이템 등급이었다.

신화 등급 위에도 더 상위 등급이 존재할 줄이야.

확실히 신들의 왕이자 아버지라 그런지 그와 대적하려면 훨씬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 것 같았다.

‘대적은 무슨… 이렇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는데.’

어느덧 계단을 내려온 제우스는 테이블의 가운데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널따란 대리석 홀에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승전 기원 파티에 참석한 신, 영웅 모두 환영한다. 다들 잔을 채우도록 하라!”

그가 그렇게 말하자 신기하게도 모든 잔에 포도주가 가득 채워졌다.

그는 자신의 잔을 들며 근엄하게 말했다.

“이번 기간토마키아 승전을 위해 건배부터 하도록 하지. 다들 잔을 들라.”

척, 척, 척.

그의 한마디에 신들과 영웅들은 일제히 잔을 들었다.

심지어 아레스 신 소속의 망나니 오크 정령들도 얌전하게 잔을 들었다. 확실히 신들의 왕 제우스의 위엄이 엄청나긴 한가 보다.

제우스는 잔을 들고 축사를 이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특히 최근엔 나의 자랑스러운 딸 아테나가 포르피리온 전투에서 승리했다. 승리를 축하하고 앞으로 더한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건배를 하도록 하겠다. 판테온에 승리의 영광을!”

제우스가 건배사를 제창하자 신과 영웅들이 일제히 따라 외쳤다.

“판테온에 승리의 영광을!”

“판테온에 승리의 영광을!”

챙!

잔들이 맞부딪혔고 신과 영웅들은 꿀꺽꿀꺽 술을 마셨다.

어느새 테이블 위엔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럼 마음껏 마시고, 먹도록 하라!”

제우스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영웅들은 테이블 위의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대규는 자신 앞에 차려져 있는 성찬을 바라보았다.

메인 요리인 허브를 뿌린 생선 구이가 보였다. 그러자 음식에 대한 설명창이 떠올랐다.

[판테온의 스페셜 생선구이]

[재생력이 뛰어난 전설의 생선 피쉬야를 잡아 판테온 최고의 쉐프들이 만든 생선구이. 먹으면 1시간 동안 자가 치유 능력의 치유 속도가 두 배 빨라짐.]

모두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 술인 포도주 역시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판테온의 포도주]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없는 마법의 포도주. 혈류를 원활하게 돌게 해 몸을 가볍게 만들고 1시간 동안 민첩성을 다섯 배 늘려 줌.]

대규는 열심히 음식들을 먹었다.

어느새 영웅들은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규들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들었다.

그들 중 거의 인간 출신은 없는 듯했다. 다들 어인에 오크 정령, 엘프 정령 등 인간과 다른 이족(異族)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는 판테온 세상의 이야기라 대규로선 거의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대규는 이야기에 끼어드는 대신 열심히 음식을 맛보며 공략집을 이용해 식재료들을 분석했다.

공략집이 분석해 준 식재료들을 읽은 뒤 머릿속에 꼼꼼하게 기억했다.

‘현실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은 써먹어야 하니까…….’

그때 신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해골을 주렁주렁 단 전쟁의 신 아레스였다. 아레스는 거만한 말투로 젊은 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당연히 나의 영웅들이 가장 힘이 세고 위력적이다. 우리 부대는 샌님 같은 아폴론 네 녀석의 부대와는 다르거든.”

아폴론은 그 말을 듣고 나름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폴론은 아레스를 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웃기는군! 광기에 찬 전쟁광 주제에. 이봐, 아레스. 전쟁은 광기만으로 하는 게 아니야. 나처럼 전략 전술을 짜서…….”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디오니소스가 아폴론에게 핀잔을 줬다.

“그래서 아폴론, 너의 부대가 이번에 거인 녀석들을 잘 막아 냈느냐? 소문에 의하면, 힘들게 이겨 냈다던데. 하하!”

이번엔 아테나 여신이 디오니소스에게 톡 쏘아붙였다.

“디오니소스여, 너의 군대는 기간테스들 사이에서 이렇게 소문이 났다지. 전투에서도 술 냄새를 풍기는 판테온의 부대! 오늘은 좀 작작 마시도록 해라.”

그러자 이번에는 아레스가 아테나 여신을 향해 씨근덕거렸다.

“흥! 이번에 한 번 승리했다고 우쭐하기는…….”

그 말에 아프로디테가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아레스여, 승리라도 하고 말해라. 게다가 너의 영웅들은 너무 추악하고 게걸스럽다. 적어도 우리 아름다운 영웅들 정도는 되어야지…….”

“웃기는군! 너의 영웅들은 전사가 아니라 웃음을 파는 계집들 같다.”

그 말을 들은 아프로디테의 표정이 구겨졌다.

신들의 말싸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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