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113화. 승전 기원 파티 (1)
하지만 대규는 크림소스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어느새 크림탕꼬 한 접시를 다 비운 직원들은 대규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거 정말 너무 맛있어요. 분명 기존 크림 탕꼬랑 맛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은데…….”
“앞으로 이 소스를 쭉 쓰면 안 될까요? 크림탕꼬를 이 소스로 바꿔서 리뉴얼하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이거 먹으니까 온몸에 힘이 돋는 것 같아. 꼭 장어라도 먹은 것처럼 말이야…….”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대규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맛있어요?”
“네!”
“그럼 한번 부사장님에게 건의해 보도록 하죠.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해 주세요.”
준빌딩을 나오며 대규는 생각했다.
‘그럼 앞으로 판테온의 상점에서 계속 이 젖을 구매해야 하는 건가? 아니지, 미루스 비덴스를 기를 수 있으면 그 젖을 목초지에서도 계속 공급받을 수 있잖아.’
빨리 준섭에게 이 모든 걸 말한 뒤 양들을 사서 목초지에서 길러야겠다. 하지만 준섭은 어제부터 도시락 해외 진출 시장조사를 하느냐고 중국에 잠깐 나가 있는 상태였다.
대규는 준섭이 한국에 돌아오면 양 구매 관련한 얘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보다 다음번 소환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석 달에 한 번 소환되는 전투 참전이야 한참 남았지만 아테나 여신은 일주일 뒤 대규와 케이른이 판테온의 중앙 신전에서 승전 기원 파티에 초대된다고 했다.
그 일주일 후가 바로 오늘 밤이었다.
‘승전 기원 파티라… 정장이라도 입고 가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리스 시대의 정장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갑옷을 입고 가면 되겠지.’
* * *
그날 밤이 됐고, 대규는 갑옷과 장비들을 갖췄다. 나름대로 파티에 참석한다고 해서 샤워도 깨끗이 했다.
얼마 후 주변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자 자신은 낭떠러지 앞에 서 있었다.
낭떠러지 너머에 커다란 신전이 보였다.
‘저 신전은!’
대규는 보관함에서 전에 은행에서 바꿨던 제르 동전을 하나 꺼냈다.
동전에 그려져 있는 신전과 똑같이 생긴 신전이었다.
‘이게 판테온의 중앙 신전을 새겨 넣은 것이었구나.’
중앙 신전은 아테나 여신의 신전보다 훨씬 커 보였다. 낭떠러지 너머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야 하지?’
자신의 발밑은 천 길 낭떠러지다.
‘나한텐 헤르메스의 장화가 있잖아.’
장화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승전 기원 파티에 초대받은 영웅인지 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허공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흘러나왔고, 대규의 몸을 천천히 스캔하기 시작했다. 하긴, 명색이 신들이 모여 있는 중앙 신전인데 아무나 들여보낼 수는 없는 거겠지.
[아테나 여신 부대 소속 세미데우스, 김대규]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비아락테아(Via Lactea)가 열립니다.]
‘비아락테아가 뭐지?’
글자를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비아락테아는 신들이 모여 있는 중앙 신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중앙 신전은 신들의 고대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어 순간 이동이나 비행 마법으로 들어가려 하면 마법 공격을 받게 됩니다.>
<오직 비아락테아 길을 따라 걸어야 중앙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헤르메스의 장화로 날아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대규가 서 있는 곳의 낭떠러지 가장자리부터 빛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바밧.
낭떠러지와 신전 사이에 하얀빛 줄기가 다리처럼 생겨났다. 빛의 폭은 약 1미터. 한 명이 겨우 걸어갈 수 있는 너비였다.
대규는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턱.
단단한 벽돌길을 밟는 느낌이었다.
대규는 천천히 중앙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옆을 보니 또 다른 빛줄기 다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신전 사방에 수많은 빛줄기 다리가 생겨났다가 없어졌다. 자신 말고 다른 영웅들이 다릴 건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나와 케이른 말고, 다른 부대의 영웅들도 초대받았을 테니까…….’
얼마 후 대규는 빛의 다리 비아락테아를 완전히 건넜다.
신전이 있는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건너온 빛의 다리는 사라져 버렸다.
“어어, 너도 지금 도착한 거냐?”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켄타로우스 장군 케이른이 서 있었다. 그는 왼손에 일전에 아테나 여신에게 보상으로 받은 메두사 방패를 보란 듯이 들고 있었다.
대규는 케이른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신전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고 계신 겁니까?”
“다른 부대 영웅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어난 대규 역시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다른 영웅들의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케이른의 시선은 한곳에 꽂혀 있었다.
저 멀리 두 명의 여자 영웅들이 비아락테아를 막 건너오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뾰족한 귀, 그리고 풍성한 금발 머리를 한 여자 영웅들이었다.
멀리서 봐서 그런지 공략집은 뜨지 않았다.
‘그런데 갑옷이 뭐 저래?’
보통의 갑옷은 단단한 금속으로 온몸을 다 가려야 하는데 그녀들이 입은 갑옷은 무슨 미니스커트에 상의는 비키니 비슷한 형태였다.
갑옷이 아니라 그냥 금속으로 만든 비키니 같았다.
“대체 저들은 누구입니까?”
대규가 케이른을 보며 물었다. 케이른은 그녀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아프로디테 여신 휘하의 영웅들이지. 그 부대는 원체 아름다운 여성 영웅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오랜만에 눈 호강하는군, 흐흐.”
케이른은 아저씨 같은 웃음소리를 흘린 뒤 혼잣말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부대엔 정령이고, 인간이고, 세미데우스고 90% 이상이 남자라 남자밭이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아프로디테 여신의 휘하로 갈 걸 그랬다니까.”
“예?”
대규가 반문하자 케이른은 바로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니, 농담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아프로디테 부대의 영웅들을 넋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아재 같은 성격이었나.
대규는 그런 케이른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전투에서 훌륭한 전사로서의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동네 아저씨처럼 약간 친근하게 느껴졌다.
대규 역시 다른 부대의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멀리 있어서 공략집은 뜨지 않았지만, 확실히 조금씩 특색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몹시 요란스럽게 다가오는 남자 영웅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도 몸이 은백색으로 빛나는 걸 보니 대규와 같은 세미데우스였다.
그런데 몸집은 거의 2미터에 달했고, 덩치가 몹시 컸다.
‘인간이 아닌가?’
그들의 송곳니는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멀리서도 보일 만큼 거대했다.
그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부대의 영웅 자식들이군!”
“크하하, 모두 비리비리한 것 좀 봐!”
케이른뿐만 아니라 다른 영웅들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케이른은 경멸스러운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저 망나니 녀석들도 왔군.”
그것보다 저 패션은 뭐람?
그들은 까만색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딱 봐도 단순한 하급 가죽 갑옷이 아니었다.
두껍고 단단한 비늘로 만든 것 같은 갑옷이었고, 목에는 해골들을 주렁주렁 목걸이처럼 달고 있었다.
우악스러운 손에는 거대한 배틀 엑스(Battle ax)를 들고 있었는데 도끼날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녀석들은 아프로디테 수하의 여자 영웅들에게 가서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흐흐. 이봐, 몸매가 아주 쌈빡한데! 우리랑 같이 노는 게 어때?”
그러자 여자 영웅들은 똥 씹은 표정을 지은 뒤, 그들을 무시하며 중앙 신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은 위협적으로 배틀 엑스를 꺼내 휘두르며 외쳤다.
“저 걸레 같은 계집애들이! 야, 뭘 봐? 구경났어?”
그들은 주변의 영웅들을 째려본 뒤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케이른에게 물었다.
“저들도 영웅입니까? 하는 짓이나 생긴 건 완전 몬스터인데요.”
“휴… 아레스 신 휘하 영웅들이다. 오크 정령이고 완전 망나니들로 유명하지. 아레스 신의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저런 녀석들이 그 부대의 영웅이 될 수밖에…….”
신화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아레스는 전쟁의 신이었다. 하지만 지략, 전략, 전술 등이 잘 융화된 전쟁의 여신 아테나와 달리 아레스는 전쟁의 광기에 미친 신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 오크 정령들을 보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어쨌든 신의 성향에 따라서도 군대의 분위기나 영웅들의 성격이 각자 다 다른 것 같았다.
“그럼 우리도 슬슬 들어가지.”
케이른은 말발굽을 다그닥거리며 신전 쪽으로 향했고, 대규 역시 그를 따라갔다.
신전 안은 무지하게 넓었다.
엄청나게 넓은 대리석 홀이 나타났고, 천장은 몹시 높았다. 영등포 본사 빌딩이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홀 끝에 있는 장대한 대리석 계단은 위층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홀 한가운데는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수천 개의 촛불이 테이블을 밝히고 있었다.
테이블 위엔 황금 접시와 받침 달린 술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대리석 계단 앞쪽에는 또 다른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홀 중앙에 놓인 테이블보다는 길이가 짧았지만, 테이블 위에 비단이 깔려 있고 보석이 박힌 접시들이 놓여 있었으며, 의자들도 등받이가 매우 높았다.
대규가 그 테이블을 바라보자 케이른이 말했다.
“저곳은 신들이 앉는 상석이다. 우리는 이쪽에 앉으면 돼.”
그는 홀 중앙의 테이블 중 구석에 위치한 두 자리를 가리켰다. 그들의 의자엔 아테나 여신의 인장이 박혀 있었다.
대규는 자리에 앉은 뒤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봤다.
옆자리의 의자엔 특이하게 생긴 인장이 박혀 있었다. 물고기와 삼지창이 그려져 있는 푸른 인장이었다.
‘설마 바다의 신, 포세이돈?’
그때 푸른 피부의 사나이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갑옷 위로 드러난 그의 목 옆엔 아가미가 달려 있고 얼굴은 생선 비늘 같은 걸로 덮여 있었다.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정령 이름: 피스키스(piscis)
특징: 포세이돈 휘하의 어인(魚人)족 장군. 물 계열 마법 능력이 뛰어나고 물에서 숨을 쉴 수 있음. 자신이 모시는 포세이돈 신에 대한 긍지가 높고 바다에 있는 생물들을 사랑한다.
그때 케이른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오! 피스키스, 오랜만이야. 역시 포세이돈 부대에선 자네가 올 줄 알았어.”
“케이른이잖아. 반갑군.”
둘은 악수를 했다. 피스키스라 불린 물고기 인간 영웅의 손가락 사이사이엔 물갈퀴가 나 있었다.
케이른은 피스키스에게 대규를 소개했다.
“이쪽은 나와 같이 온 우리 아테나 여신 부대의 영웅 김대규야. 대규, 이쪽은 포세이돈 부대의 영웅, 어인 피스키스다.”
그때 대규의 이름을 들은 피스키스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잠깐… 이 자의 이름이 김대규라고 했나?”
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적대감이 섞여 있었다.
기분이 나빠진 대규는 피스키스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네가 그 녀석이로군. 포세이돈 님의 아들인 카리브디스를 쓰러뜨리고 이빨을 가져갔다는!”
맞다. 판테온의 시련에 나왔던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는 포세이돈의 자식이었지.
그는 대규에게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민 뒤 이렇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하지만 반갑다는 말과 달리 그의 목소리엔 잔뜩 가시가 돋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