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1화. 판테온의 음식 (1)
꺼낸 네 잎 클로버를 목초지에 심었다.
흙으로 뿌리들을 덮자마자.
파아앗!
‘뭐지?’
뿌리를 감싼 주변의 흙들이 단단하게 뭉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판테온의 흙을 목초지에 뿌렸을 때 뿜어져 나왔던 은은한 빛이 네 잎 클로버 주변에서 다시 퍼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대규는 계속해서 네 잎 클로버를 바라봤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식물이 쳐다본다고 크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판테온의 식물인데 다른 식물들과 달리 빠르게 번식하지 않을까?’
대규는 그런 희망을 품고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목초지로 순간 이동해 클로버들의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해가 뜨자마자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를 신고 목초지로 이동했다.
목초지에 도착한 대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으아악!”
너무 놀라서 뒤로 나자빠지기까지 했다.
하룻밤 사이 그 넓은 목초지의 3분의 1이 미루스비덴스의 네 잎 클로버로 뒤덮여 버렸다.
“미, 미친 거 아니야? 무슨 곰팡이도 아니고…….”
대규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네 잎 클로버 한줄기를 꺾어 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꺾은 지 30분도 안 돼서 줄기에서 새로운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난 번식력이었다.
이 정도의 번식력이면 양들을 엄청 많이 키워도 식량이 축날 일은 없겠다.
‘하지만 이 넓은 목초지에서 네 잎 클로버와 양만 기를 수는 없지.’
다른 식물들도 가져와서 파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시리스의 정원엔 현실의 요식 사업에서 쓸 만한 풀들이 거의 없었다. 공격력 몇 % 상승, 회피율 몇 % 상승 등으로 전투에만 유리한 효과를 지닌 풀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외관도 다들 특이하게 생겼다.
‘판테온에 한번 가 보는 건 어떨까?’
대규는 저번에 불카누스의 사슬 검 제작을 위해 판테온에 갔을 때를 기억했다. 그때 분명 상업 구역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음식을 먹어 보면 판테온엔 어떤 식재료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분명 식물의 씨앗이나 종자를 파는 농원, 혹은 씨앗 소매상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가 보자.’
대규는 보관함에서 차원의 열쇠를 꺼내 쥐었다.
곧 목초지 가운데 판테온으로 갈 수 있는 포탈이 열렸고 그는 재빨리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오랜만에 온 판테온은 변한 게 없었다.
분수대가 있는 광장은 여전히 북적거렸고 하늘은 맑았다.
평화로운 고대 그리스 광장의 거리 모습.
대규는 우선 식당부터 가 보기로 했다.
신들의 도시 판테온에서 파는 음식들은 그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헤르메스 신의 조형물이 있는 상업 구역 입구로 들어가자 전에 봤던 식당이 저 멀리 보였다.
그런데 식당뿐만 아니라 상업 구역의 상점 앞에 줄지어 선 먹을거리 노점상들도 보였다.
‘길거리 음식들인가.’
그때 어린아이 모습을 한 반신반인과 정령들이 한 노점상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앙! 실타래다!”
“난 오늘 한 박스 사 먹어야지~”
대규 역시 호기심이 일어 그들을 따라 노점상으로 갔다.
그곳에선 은빛으로 빛나는 실 같은 게 둘둘 말린 실타래같이 생긴 음식을 팔고 있었다.
꼭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축소된 것 같았다.
그 음식을 가만히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신의 실타래>
<가격: 2제르>
<신들이 먹는 꿀을 가늘게 늘여서 둘둘 말아 놓은 간식. 하나 먹으면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다. 우울증에 효과가 좋다.>
‘단순히 느낌상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아니면 정말 우울증 약처럼 효과가 있는 것일까?’
노점상 주변에 정령들이 남녀노소 바글바글 몰려 있는 걸 봐서는 엄청난 인기 상품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가격란에 적혀 있는 2제르는 뭘까. 저런 화폐 단위는 본 적이 없었다.
여태까지 알고 있는 화폐 단위는 젬스톤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레이 등급 젬스톤은 현금으로 1,000만 원에 달할 만큼 그 가치가 높다. 실타래 과자를 하나 사겠다고 젬스톤을 지불할 수는 없다.
대규는 2제르의 가치가 궁금해서 손끝으로 그 글자를 눌러 봤다.
<제르는 판테온에서 통용되는 화폐 가치입니다. 그레이 젬스톤보다 낮은 가치의 화폐입니다. 그레이 젬스톤 1개는 1만 제르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1제르는 현금으로 1,000원 정도의 가치란 것이다.
저 실타래 과자는 개당 2제르.
‘그런데 제르를 어떻게 만들지?’
그러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판테온의 상업 구역 초입에 위치한 은행에 가면 그레이 젬스톤을 제르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지도창을 키니 상업 구역 초입에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점이 하나 보였다. 은행이었다.
대규는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은행이라기보단 꼭 신전처럼 생겼다. 상점들 사이에서 새하얀 대리석 지붕이 우뚝 솟아 있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청동문 옆에는 염소 인간들이 창을 들고 지키고 있다.
‘은행이니까 경호원이 있어야겠지. 현실 은행의 청경 정도 되려나.’
대규는 염소 인간들을 지나 청동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넓은 대리석 홀이 나왔다.
“……!”
눈앞의 광경을 보고 놀랐다.
그곳엔 20명이 넘는 정령이 기다란 카운터 뒤편의 높은 의자에 앉아 각자 업무를 보고 있었다. 놋쇠 저울로 동전의 무게를 재거나 확대경을 끼고 보석 등을 감정하고 있었다.
“이리 와서 순번표를 받으세요.”
청경(?)으로 보이는 염소 인간이 대규에게 번호가 적힌 나무패를 내밀며 카운터 옆 전광판에 숫자가 떠오른다는 걸 알려 줬다.
곧 자신의 순번이 전광판에 뜨자 대규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은행원 정령이 입가에 친절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젬스톤을 제르로 환전하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얼마나 환전하실 겁니까?”
대규는 카운터 위에 그레이 젬스톤을 하나 꺼냈다. 그러자 정령은 현미경을 꺼내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즘 워낙 위조 젬스톤으로 사기를 치는 녀석들이 많아서요. 흐음, 이건 진짜 젬스톤이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령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곧 커다란 자루를 들고 돌아왔다.
“9,900제르입니다.”
정령의 말을 들은 대규가 반문했다.
“예? 그레이 젬스톤 1개는 1만 제르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100제르는 환산 수수료입니다.”
‘그렇군. 근데 100제르면 현금으로 10만 원인데 이거 수수료치고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하지만 이곳은 현실과 다른 판테온의 세계. 대규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자루 속의 동전을 하나 꺼내 봤다.
청동색의 동그란 동전엔 거대하고 웅장한 신전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공략집을 보니 동전 한 개가 1제르인 것 같았다.
정령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됐습니다, 손님. 다른 용무는 없으신가요? 우리 은행은 최고로 안전해서 영웅들도 계좌를 많이 이용한답니다. 특히나 젬스톤을 넣어 놓지요.”
“왜죠? 영웅들은 각자 보관함이 있을 텐데…….”
그러자 정령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젬스톤은 판테온의 이곳저곳에서 쓰이거든요. 따라서 우리는 그걸로 여러 투자를 하지요. 요즘은 불경기라 이율이 높진 않지만… 잘만 넣어 두시면 연이율 20%는 보장해 드립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규는 보관함에 제르 자루를 넣고 은행을 나섰다. 자루엔 실타래 값 2제르를 제외한 나머지 9,898제르를 넣어 뒀다.
그리고 다시 노점상으로 향한 뒤 실타래를 하나 구입했다.
그것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생긴 건 꼭 인사동 등지에서 파는 꿀타래 과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은은한 빛이 퍼져 나오는 것만 제외하곤 말이다.
‘게다가 꿀타래와 달리 아주 미세한 끈적임조차 없어.’
대규는 실타래를 입에 넣어 씹어 봤다.
파사사삭!
얇디얇은 꿀 실들이 입안에서 부서지며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달콤함이 미뢰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입안에 달콤한 꿀의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사업상의 걱정이나 근심들이 서서히 사라져 갔고 모든 게 다 잘될 것만 같은 긍정적인 기분이 팡팡 샘솟았다.
어느새 입꼬리는 한없이 위로 올라갔고 근심 걱정은 먼지만큼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
이렇게 환하게 웃어 본 게 얼마 만인가!
대규의 웃는 모습을 본 주변 꼬마 정령들이 킥킥거렸다.
대규는 실타래를 삼킨 뒤 노점상에 진열돼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거 좋은데. 현실에서 힘들 때마다 하나씩 먹으면 좋겠어.’
추가로 실타래를 10개 더 구매했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식당에 가서 식재료들을 알아봐야지.’
대규는 재빨리 식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아주 맛있는 냄새가 코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까이 왔다는 신호였다.
대규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일전에 대규에게 사기 쳤던 상점의 주인과 비슷하게 생긴 돼지와 비슷한 모습의 정령 웨이터가 대규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목소리가 다른 걸 보니 아무래도 상업 구역엔 이 차이니즈 오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의 불쾌한 일이 떠올라 괜히 차이니즈 오크 웨이터로부터 거리를 두게 됐다.
자리에 앉자 메뉴판이 보였다. 메뉴판을 본 대규는 좀 실망스러웠다.
‘뭐야, 이게… 현실 세계의 식당하고 별다를 바가 없잖아?’
메뉴판에는 현실의 양식당에서 자주 본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 스프…….
솔직히 판테온이라 특별한 음식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다, 어쩌면 잘된 걸지도 몰라. 나는 현실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구하러 왔잖아!’
방금 먹은 실타래 효과인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대규는 잠깐 고민하다 지중해식 샐러드와 버섯 크림 파스타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차이니즈 오크 웨이터는 신속하게 주방 쪽으로 향했다.
대규는 그 사이 식당을 둘러봤다. 몸에서 은백색의 빛을 내뿜는 반신반인들과 다른 정령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몸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신들도 한 테이블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반신반인, 정령들과 달랐다.
외모도 훨씬 출중했고 뭔가 존재 자체가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자리는 식당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VIP 등급 자리였다.
웨이터들도 대규에게 했던 것보다 훨씬 공손하고 깍듯하게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신들 역시 그런 대우가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꼭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부잣집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세미데우스와 신 사이에도 계급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곳도 계급 사회인 건가? 하긴, 애초에 이 판테온이란 곳은 인간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샐러드가 먼저 나왔다.
지중해식 샐러드는 토마토, 오이, 양파, 올리브, 로메인 상추 등이 듬성듬성 섞여 있는 샐러드에 시큼한 드레싱이 얹어져 있었다.
그리고 콩이 빙 둘러져 있었다.
외관마저 현실에서 파는 지중해식 샐러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토마토나 오이, 양파 같은 야채들도 현실과 똑같았다.
콩 역시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대두콩과 똑같이 생겼다.
대규는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서 먹어 봤다.
‘맛있다!’
차갑고 상큼한 식감에 정신이 확 드는 것 같았다.
대규는 샐러드를 계속 먹었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거 무슨 효과라도 지니고 있는 음식인가?’
그러자 설명창이 떠올랐다.
[레스토랑 굴라(Gula)의 지중해식 샐러드]
[비타민이 풍부한 이 샐러드를 먹으면 간의 피로 회복 능력이 80% 향상됨.]
‘그럼 재료들을 하나씩 살펴볼까?’
대규는 공략집을 통해 샐러드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들의 성분을 하나씩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선 오이와 토마토 등 야채들을 먼저 살펴본 대규는 깜짝 놀랐다.
비타민이나 미네랄, 영양 함유량이 현실의 야채들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높았다.
게다가 모든 영양분의 흡수율은 90% 이상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파는 고가의 천연 비타민과 미네랄보다도 훨씬 높은 흡수율이었다.
‘판테온의 음식은 모두 이런 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