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110화. 아테나의 선물 (2)
“끝이 아니라니요?”
대규가 묻자 준섭이 대답했다.
“이런 TV 프로그램에 나오면 인터넷 기사가 폭발적으로 뜨기 시작합니다.”
준섭은 태블릿 PC로 인터넷 검색창에 ‘다이어트 도시락’이라고 쳤다. 그러자 수없이 많은 인터넷 기사들이 좌르르 떴다.
대부분 한낮의 TV 연예 관련 기사들이었다.
블루핑크, ‘저희는 퍽퍽 살이 아닌 사르르 살 샐러드 도시락으로 몸매 관리해요.’
블루핑크가 완전 반한 다이어트 도시락, 대체 어떤 맛이기에?
리포터도 반한 그 맛, 곤약이 입안에서 탱탱 춤을 추는 블루핑크 도시락, 요즘 ‘대세’.
기사 내용에는 블루핑크 멤버들이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진들이 줄줄이 떴다. 심지어 대규식품 도시락에 관련된 기사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준섭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낮 TV 연예 방송이 나간 직후 다이어트 도시락의 주문량이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정말인가요? 이거 블루핑크 한채아 양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겠네요.”
“심지어 블루핑크의 팬클럽 쪽에선 앞으로 이 도시락만 구입하겠다고 합니다.”
대규는 다이어드 도시락 관련 인터넷 글들을 봤다. 다이어트 도시락은 이제 탕꼬 도시락만큼 엄청 팔리고 있었다. 특히나 20~30대 여자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가 많았다.
벌써 여성 유저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에선 도시락 시식 후기들이 마구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연예인 홍보 효과가 대단하긴 하구나.’
대규는 태블릿 PC를 준섭에게 건네며 말했다.
“좀 있으면 성형외과나 헬스클럽 광고 사진처럼 다이어트 도시락 비포-애프터 사진까지 올라오겠는데요? 안 그래요, 부사장님?”
“그러게 말입니다.”
태블릿 PC를 받는 준섭은 대규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부사장님, 제가 강원도 쪽에 넓은 임야 땅 좀 구하려고 하는데요. 사적인 땅이 아니라 회사 소유의 땅으로 쓰려고 합니다. 그걸 좀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강원도 임야 땅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의아해하는 준섭에게 대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땅에서 직접 식재료를 길러 공장에 공급하려고 합니다.”
“예? 직접 식재료를 기른다구요?”
“네. 질 좋은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돼서요. 그리고 전에 부사장님도 드셨던 건강 차와 집밥 백반에 들어갔던 식자재를 만들 농산물과 축산물을 직접 기르고 키울 땅을 확보할 겁니다.”
“아아…….”
대규는 준섭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식약청의 허가가 난 식물일 경우 강원도의 땅에서 제가 직접 기른다면 원산지 표시는 국내산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요즘 AI 조류 독감이다, 뭐다, 흉흉해서 조만간 탕꼬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닭고기를 구하기 힘들어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은 계속 발생하겠죠. 그러니 차라리 안정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식자재를 직접 길러 수급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흐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원도 땅을 좀 알아봐도 될까요?”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사장님.”
준섭은 흔쾌히 허가를 했고 대규는 당장 강원도의 넓은 임야 땅을 알아보기로 했다.
* * *
며칠 동안 강원도 땅을 조사해 보던 대규는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 목초지로 해발 1,000m에 면적은 약 300만㎡.
당장 차를 몰고 강원도로 달려갔다.
도착한 대관령 목초지는 푸르렀다. 짙푸른 하늘 아래 초록빛 언덕들이 일렁이며 또 다른 대해를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목초지 위를 불어 가고 불어오는 바람조차 초록빛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저 멀리엔 풍력발전을 위해 돌아가는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보였다.
대규는 명당의 눈으로 땅의 등급을 확인했다.
‘A등급!’
명당의 눈으로 보니 광활한 목초지에 울창한 숲, 깨끗한 계곡까지 품고 있어서 동식물을 기르기에 최상의 땅이었다.
게다가 주목할 만한 점은 향후 목장을 관광지로 개발시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80% 이상으로 나왔다.
‘아마도 저것 때문이겠지.’
대규는 고개를 돌려 목초지 바로 옆에 우뚝 솟은 거대한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대관령 일대 최고의 봉우리인 선자령(仙子嶺)이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대관령 일대 목장들은 목장 체험, 트랙터 마차 체험 등을 하면서 돈을 엄청 벌어들이고 있다지.’
어쩌면 자신도 나중에 그런 사업을 벌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은 동식물 식자재 공급부터 생각하자.’
대규는 목초지 꼭대기로 올라갔다.
탁 트인 시야가 시원했다. 꼭 초록빛 풀의 파도가 물결치는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곳이야말로 현실 세계가 아니라 신들이 사는 곳인 판테온처럼 느껴졌다.
대규는 바로 이 목초지를 계약해서 사 버렸다. 그리고 기분 좋게 서울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오시리스의 정원에 들어가 심을 수 있는 약초들을 살펴볼 차례다.
사실 대규는 여태까지 전체 정원을 다 돌아본 적이 없었다. 정원은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전에 들어갔을 때 공략집의 지도창을 띄워 보니 거의 여의도 정도의 면적이었다.
어차피 정원에 들어가면 현실의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몇 시간이고 자유롭게 있어도 된다.
따라서 이번에 들어가면 넉넉히 다 둘러볼 작정이었다.
대규는 오피스텔 거실 소파에 앉아 목에 건 라의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목걸이의 검붉은 눈동자가 빛나더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능력을 빌려올 마신과 그의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오시리스의 정원 출입을 선택했다.
[오시리스 신이 흔쾌히 정원 출입 스킬을 빌려줍니다. 상태창의 보유 스킬란에 가 보면 정원 출입 스킬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마신의 능력을 빌려올 기회가 소진됐습니다.]
대규는 정원 출입 스킬을 시전했다.
스스슥.
주변 풍경이 바뀌었고 곧 풀들이 가득한 녹색 정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규는 지도창을 켰다.
오색 찬란한 빛들이 여기저기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정원에 심어져 있는 식물들이었다.
식물의 종류만 거의 수십 가지가 넘었다.
이 중에서 현실에서 별 탈 없이 기를 수 있는, 그러면서 요식 사업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식물들을 골라내야 한다.
대규는 정원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 *
‘정말 무지 넓군.’
대규는 정원을 30분째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대규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종류는 꽃부터 열매, 새싹, 나무 등 다양했다.
꼼꼼히 관찰해 본 결과, 이 정원의 식물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 현실 세계에선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예 특이한 식물들.
예를 들면 오시리스의 거대한 붉은 고사리 같은 것이다. 붉은 고사리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식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규의 눈앞에 보이는 나선형의 조그만 검은 풀들 역시 현실에서 전혀 본 적 없는, 이 정원 세계만의 특이한 풀이었다.
‘이런 식물들은 현실 세계에서 기를 수 없겠어.’
기른다고 해도 식약청의 허가가 난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요식 사업의 재료로 쓸 수는 없다.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이 있다.
바로 두 번째 종류의 식물들.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종류의 식물들과 외관은 똑같이 생겼는데 특이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전에 채집했던 매혹의 미니 죽순의 경우 크기가 작을 뿐이지 현실의 죽순과 똑같이 생겼다. 이 정도라면 식약청의 죽순 기준에 들어간다.
그뿐이 아니다.
대규는 여태껏 자신이 채집한 두 종류의 식물들을 바라보았다.
콩나물 네 가닥과 송이버섯 네 개.
이것들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콩나물, 송이버섯과 똑같이 생겼다.
우선 콩나물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저항의 콩나물]
[이 콩나물을 복용하면 화염 마법에 대한 마력 저항력이 1% 상승한다.]
겨우 1%? 애걔? 싶지만 저 콩나물을 한 가닥이 아니라 나물로 팍팍 무쳐서 매일매일 먹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마 근성 스킬을 사용한 것처럼 마력 저항력은 꾸준히 오를 것이다.
다음은 송이버섯 묶음이다.
이 버섯은 정말 냄새마저 현실의 송이버섯과 똑같았다.
‘근데 송이버섯 엄청 비싸지 않나? 이거 재배해서 팔기만 해도 돈 엄청 벌 수 있겠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버섯의 효과다.
[크리티컬 송이버섯]
[송이버섯을 먹고 스킬을 시전하면 스킬의 위력이 두 배로 증가한다.]
전투할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이들의 효과가 사업에 요긴하게 쓰일 만한 효과는 아니란 것이다.
‘뭐 좋은 거 없을까…….’
그때 대규의 눈에 작은 식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네 잎 클로버!
“우왓!”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네 잎 클로버는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식물이다.
이곳의 네잎 클로버는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을까? 혹시 모르지. 운 수치를 왕창 높여 줄지도.
대규가 그 잎을 만지자 놀라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미루스 비덴스의 네 잎 클로버]
[판테온에서 사는 신비의 양 미루스 비덴스는 이 네 잎 클로버의 잎만 먹고 자란다. 심지어 일반 양도 이 네 잎 클로버를 꾸준히 먹으면 미루스 비덴스와 동일한 육질을 지니게 된다.]
‘바로 이거다!’
대규는 아폴론의 연회에서 먹었던 미루스 비덴스의 양 갈비 요리를 떠올렸다.
그 환상적인 맛!
다시 생각해도 입안에 침이 절로 고였다.
솔직히 그 양고기 맛을 곱씹으면서 대규는 아폴론의 농장에 몰래 들어가 미루스 비덴스를 한 마리 훔쳐 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걸 실천에 옮기진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네 잎 클로버가 있으면 현실의 양도 미루스 비덴스처럼 만들 수 있다!’
‘대박인걸.’
대규가 앞으로 채집할 수 있는 12개였다.
'모조리 이 네잎 클로버로 채워야 할까?'
여기서 채집해 간 뒤 강원도 땅에 심는다 해도 이 네 잎 클로버가 무사히 잘 자라날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미루스 비덴스의 네 잎 클로버는 지표면 가까이에서 영양 번식을 합니다. 한 조각의 뿌리라도 남아 있으면 자신을 다시 복제하는 조직배양 능력이 탁월한 풀입니다.>
<어미 식물체의 줄기가 끊어져도 끊어진 대로 살아남습니다. 송두리째 뽑아 없애 버리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잡초에 버금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풀이군.
어쩌면 그래서 양의 먹이로 이용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규에겐 몹시 좋은 일이었다.
네 잎 클로버를 조심스럽게 뿌리째 뽑아냈다. 흙도 퍼내 보관함에 화분처럼 흙을 쌓고 그곳에 뿌리를 옮겨 심었다.
식물은 조심스럽게 분갈이를 해 주지 않으면 금방 죽어 버린다.
그래도 혹시 몰라 대규는 네 잎 클로버를 다섯 뿌리 더 챙겨서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지금 당장 강원도로 달려가서 판테온의 흙을 뿌려 보고 이 네 잎 클로버를 심어 보자.’
대관령의 목초지에 방문한 적이 있으니까 헤르메스의 장화로 순간 이동이 가능했다.
대규는 장화를 신고 순식간에 목초지로 이동했다.
한밤의 목초지는 컴컴했고 초록빛의 벌판 역시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단 네 잎 클로버를 심기 전에 여신으로부터 받은 판테온의 흙을 이곳에 뿌려야 한다.
대규는 보관함에서 판테온의 흙을 꺼냈다. 쥐어 보니 정확히 한 줌이었다.
마침 밤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있었다.
흙을 쥔 손을 피자 까만 흙들은 바람에 날아가다가 목초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촤아아악-
흙이 땅에 스며든 순간, 어두운 목초지가 한순간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얼마 후 그 빛은 사라졌다.
대규는 목초지를 바라보았다. 목초지는 흙을 뿌리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대체 이것만으론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네 잎 클로버를 심어 보면 알겠지.’
대규는 목초지의 한가운데 땅을 파고 보관함의 네 잎 클로버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