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108화. 아테나와 포르피리온 (2)
황금 벼락을 맞은 여신의 몸이 점점 커졌다. 크기는 기가스 포르피리온만큼, 아니 그보다 더 컸다.
그 모습을 본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검은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거대해진 여신은 포르피리온을 향해 외쳤다.
“비열한 거인족의 장군이여! 나 아테나가 그대를 해치우겠다.”
공중에 쩌렁쩌렁 울리는 여신의 음성.
말을 마친 여신은 창을 휘둘렀다. 여신의 몸집에 비례해 커진 창날이 정확히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팔뚝을 찔러 관통했다.
“크으윽!”
어느덧 거인의 얼굴에서 기분 나쁜 웃음기는 싹 가셨다. 옛날에 제우스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공포감이 들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제우스의 자식이긴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너무 얕본 것 같았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추악한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제기랄, 빌어먹을! 으으으…….”
포르피리온은 신음을 내며 자신의 팔에 박혀 있는 창날을 봤다. 창날에서 나온 푸른 기운이 그의 몸에 스며들자 팔 조직이 서서히 괴사하기 시작했다.
도망가야 한다. 여기서 순간 이동으로 도망가면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죽는 것보다 패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패배하고 돌아가면 그에 맞는 벌을 받긴 하겠지만,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칼을 높게 쳐들었다.
서걱-
아테나의 창날이 박힌 팔뚝이 몸뚱이에서 떨어졌다.
절단된 팔뚝에서 거무죽죽한 피가 흘러나와 타고 있는 가고일을 적셨다. 가고일은 뜨거운 피에 놀라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아테나가 다시 다가오는 게 보였고 그는 가고일의 고삐를 재빨리 돌렸다.
파밧!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곧 공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비겁한 거인 녀석…….”
여신은 그 모습을 보고 경멸스러운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그리고 페가수스를 타고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절단된 팔을 집어 든 뒤, 영웅들이 있는 전쟁터로 내려왔다.
그녀의 커진 몸은 거의 15미터 정도 되는 듯했다. 꼭 거대한 산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대규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테나 여신이 창대를 쿵, 소리 나게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아군이 승리했다!”
그러자 영웅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아테나 여신 만세!”
“아테나 여신 만세!”
쿵!
여신은 다시 한 번 창대를 바닥에 찧은 뒤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절단된 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적장은 겁에 질려 도망갔다. 녀석의 머리를 베어 가져오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쨌든 우리가 승리했도다!”
“와아아아아!”
“녀석은 대장군 부하들도 잃었고 수하 병사들도 잃었다. 이걸로 판테온 신들의 무서움을 알았기에 한동안 감히 도전해 오지 못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말을 마친 여신은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춰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여신의 눈동자가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여신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그대들 중 사망자는 아무도 없구나. 승리에는 그대들의 공도 크다. 이건 내가 그대들에게 내리는 선물이다.”
여신은 자신의 오른팔을 앞으로 척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황금빛은 정예군 영웅들의 머리 위를 떠돌다가 그들의 몸 안으로 흡수됐다. 그러자 모든 영웅의 몸에 난 상처들이 말끔하게 치유가 됐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아테나 여신이 가호를 내렸습니다. 운 수치가 영구적으로 1 증가합니다.]
어느덧 여신은 팔을 거두고 말했다.
“전쟁에선 역시 실력이 최고로 중요하지만, 운도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앞으로 그대들이 나가는 전쟁터엔 항상 나의 행운이 함께할지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신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 주둔지로 돌아간다. 각자의 공적에 대한 보상 수여식은 그곳에서 있을 것이다.”
그 말에 대규의 가슴이 뛰었다. 자신은 이번 전투에서 중간 보스인 티그리스 듀오 중 한 명을 해치웠다.
분명 적지 않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여신이 두 팔을 치켜들자 주둔지에서 이곳 전쟁터로 왔을 때처럼 투명한 막이 형성돼 영웅들과 여신의 몸을 감쌌다.
파바밧!
그들은 순식간에 주둔지로 이동했다.
투명한 막이 사라지자 대규가 판테온의 신전에서 봤던 황금 갑옷을 입은 여자 정령이 여신을 바라보며 깍듯한 태도로 말했다.
“돌아오셨습니까.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다른 전선의 장군들도 천막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대해졌던 여신의 몸은 어느새 다시 작아졌다. 여신이 투구를 벗자 정령은 공손한 태도로 그 투구를 받았다. 여신의 하늘빛 머리칼은 땀에 젖어 있었다.
정령은 투구를 받아 든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우스 신께서 이번 전투의 승리를 축하한다며 독수리를 보내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신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버지가 말인가!”
여신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만개했다.
지휘 사령부의 천막으로 들어가자 다른 전선으로 배치됐던 장군들과 영웅들이 모여 있었다. 커다란 천막의 내부가 가득 찰 정도였다.
영웅들 틈에서 대규는 지영을 발견했다. 그녀는 산양족 코르페우스 장군과 함께 서 있었다. 아무래도 코르페우스 장군의 군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지영 역시 대규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오는 은백색의 빛을 바라보았다.
‘대규 씨의 몸이 달라졌어.’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오묘한 위엄이 넘쳐흘렀다.
대규가 속해 있는 집단이 아테나 여신의 정예군 부대란 사실을 알고 그녀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다른 병사들에게 듣기로 저 부대에 들어가려면 전쟁에 적어도 수십 번은 참여해야 하는 것은 기본, 일전에 맞닥뜨렸던 적장 기가스 팔라스 정도는 무리 없이 해치울 수 있어야 했다.
대체 저 남자는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걸까? 꼭 자기 혼자 모터 엔진을 달고 성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곧 지영은 그 의문을 버렸다. 그건 차원의 틈에서부터 계속 가졌던 의문이다. 그녀가 내린 해답은 간단했다.
‘그냥 대규 씨는 그런 사람인 거야.’
하지만 대규는 더욱 강해졌다. 이제 자신이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다른 세계 사람이 돼 버렸다.
지영 역시 이곳 군대에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해 코르페우스 장군의 총애를 받는 영웅이 됐다. 이번 동부 전선 전투에서도 많은 공적을 거뒀다.
물론 대규는 그런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훨씬 강해졌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닐 만큼.’
대규와 눈이 마주치자 지영은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대규는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섭섭함을 느낄 틈도 없이 아테나 여신이 장군들을 해치고 척척 걸어가 자신의 왕좌로 다가갔다.
왕좌 앞에는 늠름하게 생긴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두 발로 서 있었다.
평범한 독수리들보다 몸집이 두 배는 크고 털에서는 좌르륵 윤기가 흘렀다. 독수리의 두 눈은 매서울 정도로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테나는 독수리 앞에서 최대한 예의를 표하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그러자 독수리의 단단한 부리 사이에서 인간의 말이 흘러나왔다.
“제우스 신께서 여신님의 전투 승리 소식을 듣고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이에 여신님께 선물을 하사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아시잖습니까?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제우스 님이 싫어하는 거인족 대장 중 한 명이니까요. 완전히 해치웠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당분간은 쳐들어오지 못하겠죠. 저는 이 선물을 여신께 드리러 이곳에 온 겁니다.”
최고 존재인 줄 알았던 여신도 보상을 받는구나.
말을 마친 독수리는 자신의 품속에서 상자를 꺼냈다.
독수리가 건넨 상자는 아테나가 영웅들에게 건네는 보상 황금 상자와는 좀 다르게 생겼다. 새하얀 백색의 상자로 중간에는 검붉은 인장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인장에는 거대한 벼락이 새겨져 있었다. 아무래도 제우스 신을 상징하는 인장인 것 같았다.
여신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상자를 받으며 말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신들의 아버지시여.”
상자를 건넨 독수리는 가슴을 내밀고 날개를 양옆으로 좍 폈다.
“그럼 제우스 님의 명령대로 선물을 전했으니, 전 이만… 참, 승전을 기념하는 신들의 파티가 일주일 후 판테온에서 있을 예정이니 여신님께서도 꼭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독수리는 천막의 천장 쪽으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대규와 모든 장군의 시선은 여신이 받은 백색의 상자로 향했다.
‘대체 제우스 신이 하사한 선물은 무엇일까?’
하지만 여신은 그 상자를 열지 않고 옆에 있는 정령에게 명령했다.
“이 상자는 판테온에 있는 나의 신전에 놓아두거라.”
“알겠습니다.”
정령은 상자를 갖고 본래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여신은 그제야 왕좌에 앉은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번 전투에서의 공적을 기리도록 하겠다. 보상은 기가스 포르피리온 전투뿐만 아니라 다른 전선의 전투에서도 공적을 쌓은 사람들에게 다 수여된다.”
우선 이곳에 있는 모든 영웅이 전투에서 적을 해치운 대가로 얻어 낸 아이템들을 받았다. 거의 젬스톤 보상이었다.
대규 역시 전쟁터에서 수하 병사들을 해치우며 얻은 아이템들을 한꺼번에 받았다.
다 합치니 레드 젬스톤 12개에 티그리스 듀오 중 한 명을 해치우고 얻은 블랙 젬스톤 1개였다.
이걸로 현재 가지고 있는 젬스톤의 재고는 그레이 20개, 레드 12개, 블랙 4개다.
젬스톤 보상이 끝나자 다른 전선에 참여한 장군, 영웅들부터 보상 수여식이 이뤄졌다.
아테나 여신은 직접 상을 받을 영웅들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에게 황금 상자를 하사했다. 상자 안에는 각각 진귀한 아이템들이 들어 있었다.
동부 전선의 공적 영웅 중엔 지영의 이름도 있었다. 여신에게 이름을 불린 지영은 앞으로 나가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지영을 본 여신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의 몸으로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공적을 세웠다지. 대단하구나! 게다가 그대가 입은 그 갑옷은…….”
여신은 지영이 입은 미스릴 갑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 제2 타르타로스에서 처음 데이비드 파티에 들었을 때 받았던 미스릴 갑옷이었다.
“내가 가호를 내린 갑옷이구나. 하지만 그 갑옷은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전투에서 그대를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보상 외로 내가 내리는 선물이다.”
우우웅-
지영이 입고 있는 갑옷에서 하얀빛이 발생했다.
얼마 후 미스릴 갑옷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갑옷의 설명창을 본 지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테나 여신의 축복을 받은 황금 갑옷(전설 +3)]
[전쟁의 여신 아테나 여신이 커다란 축복을 내린 갑옷. 물리 방어력 50% 상승. 마법 저항력 20% 상승. 여성이 착용하면 아테나 여신의 신성한 축복이 발동돼 착용자의 운 스탯이 영구적으로 3 추가 상승함.]
“나의 축복이 담긴 그 갑옷이 그대를 어느 전쟁터에서든 보호해 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아니다. 그대 같은 여성 영웅을 실로 오랜만에 보니 나의 가슴이 뛴다. 그럼 이건 내가 하사하는 선물이다.”
지영은 여신이 내미는 황금 상자를 받았다. 상자를 열자 초록빛의 동그란 올리브 열매가 5개 있었다.
지영이 열매를 받아 들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비의 올리브 열매]
[아테나 여신이 직접 기른 신비한 올리브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복용하면 5초간 불사 상태, 무적 상태가 된다.]
이런 귀한 아이템은 여태껏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대규 역시 지영이 받은 열매의 아이템 설명을 보고 놀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황금 양털 조끼의 효과와 비슷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만 사용 가능한 조끼와 달리 저 열매는 먹을 때마다 불사 상태가 될 수 있다.
‘물론 나는 조끼가 있으니까 저 열매를 갖게 되면 아이템 효과가 겹치는군.’
대규는 자신이 받을 보상이 갖고 있는 아이템과 효과가 겹치지 않기를 바랐다.
다른 전선의 장군, 영웅들이 보상을 받고 이제 아테나 여신과 함께 싸웠던 정예군 영웅들의 보상 수여만 남기고 있었다.
“그럼 기가스 포리피리온 전투에서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를 해치운 두 영웅에게 부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케이른과 김대규는 앞으로 나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