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화. 아테나와 포르피리온 (1)
아테나 여신은 멀리 도망가는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쫓았다.
이번 전투는 확실히 아군의 승리였다.
여신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저 앞에 도망가는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향해 소리쳤다.
“항복해라, 거인 녀석아!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타르타로스에서의 종신형으로 끝내 주마!”
“웃기지 마라!”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거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방금 맞은 벼락 때문에 전신엔 화상을 입었고 연기가 파스스 피어올랐다.
그가 타고 있는 가고일 역시 괴롭다는 듯 울부짖었다.
그때였다.
한창 도망치던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지상의 전쟁터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거냐! 멈춰라!”
여신은 페가수스를 몰며 그를 뒤쫓아 따라갔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전쟁터 바로 위를 날고 있었다. 그의 눈에 아직 살아남아서 싸우고 있는 거인족 수하 병사들이 보였다.
병사들은 하늘에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대장을 알아보고 예를 취했다.
휘릭-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그중 수하 병사 한 명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마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 같았다.
그는 낚아챈 수하 병사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병사의 얼굴엔 공포가 서렸다.
“…나의 육체가 되어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뒤 그는 수하 병사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우적.
우두둑.
수하 병사의 머리를 뼈째 씹어 먹는 그를 보며 아테나 여신의 얼굴은 굳어졌다.
“뭐, 저런…….”
저건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지니고 있는 스킬 중 하나인 ‘포식’이었다.
포식은 전투 중 자기편인 아군을 잡아먹으면서 상처를 빠르게 치유하는 스킬이었다.
특히 스킬 시전자에게 깊은 충성심을 지닌 아군일수록 치유 효과는 더더욱 컸다.
아무래 그래도 자신을 위해 싸워 온 아군 병사들인데 저렇게 쉽게 잡아먹다니.
아군 영웅들과 병사들을 아끼는 아테나 여신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광경이었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계속해서 전쟁터를 낮게 날아다니며 상처를 회복할 때까지 수하 병사들을 낚아채 잡아먹었다.
어느새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약해졌고 화상은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했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수하 병사의 남은 팔뚝을 게걸스럽게 씹어 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병사의 시체를 씹다 말고 굉음이 터져 나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곳에선 자신의 뛰어난 부하이자 군대의 두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티그리스 듀오가 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그 모습을 보고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쓸모없는 녀석들! 대장군의 칭호를 달아 줬구만!”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병사의 시체를 다시 씹은 뒤, 다른 수하 병사를 낚아채러 전장으로 날아갔다. 일단은 자신의 몸부터 회복하는 게 중요했다.
* * *
티그리스 듀오는 이제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그들의 단단한 갑옷엔 커다란 균열이 생긴 상태였다. 대규와 케이른의 합동 공격이 잘 먹힌 것이다.
케이른은 사슬 검을 휘두르며 달려가는 대규를 바라봤다.
‘엄청난 실력이다. 대체 그 짧은 기간 사이에 어찌 이토록 빨리 성장한 거지?’
티그리스 듀오는 이제 완전히 갑옷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옷이 부서진 틈으로 그들의 진짜 육체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갑옷 그 자체가 육체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절대 도망치지 않고 대규와 케이른에게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적군만 아니라면 참으로 훌륭한 장군들이다.
“이제 거의 마지막입니다. 녀석들을 완전히 보내 버리자구요.”
대규가 케이른에게 말하자 그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른은 은색 갑옷에게 대규는 황금 갑옷에게 달려들었다.
황금 갑옷 장군은 맹렬한 기세로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칼을 휘두르는 몸놀림만 보면 결코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대규는 투구의 눈구멍과 마주쳤다. 물론 컴컴한 암흑뿐이었다.
장군의 칼날이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슉.
몸을 깊게 숙여 피한 뒤 높게 점프했다.
사슬 검을 머리 위로 쳐들고 내리치려 하자 장군은 자신의 칼을 들어 막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사슬 검은 장군의 흉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레툼 익투스! 이게 마지막이다.”
일격의 기운을 품은 검광이 정확히 갑옷의 심장 부위를 뚫고 들어갔다.
“#[email protected]$%”
장군에게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신음 같기도 했고 기계음 같기도 한 괴상한 소리였다.
확실한 건 급소를 가격한 공격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것!
심장 부위를 둘러싸고 있는 갑옷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검은 암흑이 보였다.
대규는 그 암흑을 사슬 검의 칼날 끝으로 힘껏 찔렀다.
하지만 뭔가 단단한 것이 칼끝을 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온 힘을 다해 집요하게 사슬 검의 칼날을 밀어 넣었다.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들어가라!”
“#%#@[email protected]$”
다시 한 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는 장군.
콰직- 콰지지직-
갑옷 전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사슬 검의 화염이 온 갑옷에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금 갑옷은 모래성 무너지듯 순식간에 부서져서 무너져 버렸다.
갑옷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부서진 갑옷은 재가 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 중 한 명을 해치웠습니다.]
[높은 양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마나를 100 흡수하였습니다.]
[레벨이 1단계 올랐습니다.]
온몸에서 하얀빛의 기운이 뻗어져 나왔고 얼마 후, 몸이 가벼워졌다.
대규는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김대규(세미데우스)
Lv. 2(86.00%)
생명력 3140/3140
마나 112/885
근력 137
민첩 136
지능 136
운 8(+5)
권위 20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 2
레벨 업 보상에서 인간 영웅이었을 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인간 영웅이었을 땐 한 단계 레벨 업마다 생명력이 20씩 올랐는데 이젠 50씩 올랐다. 게다가 5씩 올랐던 마나 역시 10씩 올랐다.
‘세미데우스의 레벨 업은 좀 다르구나.’
하지만 근력, 민첩, 지능 같은 스탯은 전과 똑같이 1씩만 올랐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상태창 맨 아래쪽에 쓰여 있는 스탯 포인트란 것이었다.
‘대체 이건 뭘까?’
대규는 스탯 포인트를 손끝으로 눌러 봤다.
그러자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세미데우스가 돼서 레벨 업을 하면 스탯 포인트가 추가로 2씩 주어집니다.>
<스탯 포인트란, 사용자가 자유롭게 지정해 원하는 특정 스탯을 올릴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포인트 1당 스탯 1씩 올릴 수 있습니다. 특정 스탯에 몰아서 포인트를 배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운과 권위 같은 고정 스탯은 스탯 포인트로 올릴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솔직히 레벨 업만으로 올릴 수 있는 스탯의 수치엔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이 스탯 포인트란 렙업할 때마다 추가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스탯을 총 2씩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하는가, 그 선택에 따라 개인이 지닐 능력은 달라진다.
‘이거 좋은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골라서 성장시킬 수 있잖아.’
근력에 포인트를 왕창 투자해 힘센 천하장사형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민첩을 키워 스피드 왕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지능에 모든 걸 투자한다면 머리가 잘 돌아가는 책략가형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골고루 배분해서 모든 스탯을 균형 있게 키우거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아직은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 사용해야 하는 건가?’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추가로 떠올랐다.
<스탯 포인트는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아도 소진되지 않습니다.>
창을 보고 일단은 킵해 두기로 했다.
현재 사용 가능한 스탯 포인트는 2인데, 올릴 수 있는 스탯은 근력, 민첩, 지능 3개다.
포인트를 똑같이 배분하려면 차라리 3의 배수만큼 포인트가 쌓였을 때 골고루 올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니면 특정 스탯이 과도하게 필요한 임무나 전투가 생겼을 때 쌓인 포인트를 몰아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옆을 보니 케이른 역시 은색 갑옷 장군을 막 쓰러뜨렸다.
하지만 대규와 달리 그의 몸에선 하얀빛이 나오지 않은 걸로 봐선 레벨 업을 한 것 같진 않았다.
아무래도 케이른의 레벨이 자기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뇌염룡 소환 기술만 봐도 그가 꽤 실력자란 걸 알 수 있었다.
‘레벨이 몇일까?’
대규는 슬쩍 공략집으로 케이른의 레벨을 알아봤다.
세미데우스 정령, 레벨 14.
역시 엄청난 실력자다.
그런데 레벨 1인 자신이 황금 갑옷 장군을 쓰러뜨렸는데도 레벨 업이 한 단계만 되다니.
‘세미데우스 육체부턴 레벨 업이 인간일 때보다 훨씬 어렵구나.’
그때 케이른이 대규에게 말했다.
“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지?”
“아, 아닙니다.”
“휴, 어쨌든 수고했다. 다른 영웅들도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 같군.”
전쟁터를 둘러보니 다른 영웅들 역시 수하 병사들을 거의 대부분 물리쳤다. 그때 대규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저게 뭡니까?”
저 멀리 하늘에서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수하 병사를 잡아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걸 본 케이른이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녀석이 포식 기술을 사용했군. 아테나 여신이 그만큼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었단 말이다.”
“그럼 여신님께서 이긴 건가요?”
“당연하지!”
케이른은 여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여신님께선 아직 자신의 실력을 완전히 보여 주지 않았다. 여신님이 들고 있는 저 아이기스 방패는 단순히 제우스 신의 벼락만 빌려 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우스 신에게서 벼락을 빌려 왔었나?’
자신은 황금 갑옷 장군과의 전투에 집중하느라 몰랐다.
강렬한 빛이 허공에서 한 번 반짝였던 것밖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제우스의 벼락을 빌려 온다니… 신들이 지닌 무기의 위력은 확실히 차원이 다르구나.’
수하 병사를 잡아먹고 완전히 몸을 회복한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아테나 여신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테나의 방패를 피해 공격할 수를 찾았다.
공격이 방패에 막히는 순간 그 빌어먹을 벼락이 떨어질 테니까.
어쨌든 자신은 저 계집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그리고 포식 기술로 수하 병사를 잡아먹으며 상처와 체력을 모조리 회복해 현재 컨디션은 최상이다.
그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피리온은 아테나 여신에게 다가가 그녀를 공격하는 대신 그녀가 타고 있는 말, 날개 달린 페가수스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여신이 외쳤다.
“이런, 비겁한……!”
탈것을 공격하는 건 신들의 싸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투에선 오로지 서로를 공격해야만 한다.
아테나는 긍지 높은 전쟁의 여신이라 탈것을 공격하는 거인의 비겁한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아군 부하도 잡아먹는 비열한 녀석이다.
페가수스가 주춤거리며 균형을 잃자 포르피리온은 거대한 팔로 아테나 여신의 머리를 노렸다.
여신은 고개를 들고 진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비겁한 자식! 이 판테온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그대를 살려 두지 않겠다!”
여신은 들고 있던 아이기스 방패를 하늘 높게 쳐들었다.
우우우우-!
방패의 괴물 아이기스가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하늘이 검게 변했고, 폭풍이 휘몰아쳤다.
“크윽! 다시 벼락이 치려는 건가!”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그 모습을 보며 긴장했다.
우르르릉-
콰콰쾅!
황금 벼락이 쳤다.
하지만 벼락은 포르피리온을 공격하는 대신 아테나 여신의 몸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대규가 놀라서 외쳤다.
“왜 저 벼락이 여신을 공격하는 겁니까?”
하지만 케이른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잘 지켜보기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