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티그리스 듀오 (2)
한편, 대규가 황금 갑옷 장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케이른은 이제 막 쓰러뜨린 수하 병사의 몸에 박힌 자신의 창을 빼내고 있었다.
쾅쾅!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폭발음에 창을 빼낸 케이른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티그리스 듀오 중 한 명인 황금 갑옷 장군과 싸우고 있는 대규의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 언제 저기에!’
심지어 황금 갑옷 장군은 팔이 하얀 실 뭉치 같은 걸로 꽁꽁 묶인 채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벌어지고 있는 전투 광경으로만 보면 대규가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은색 갑옷을 입은 나머지 장군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자기편이 위기에 처하자 구해 주려고 다급하게 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지닌 대규라 해도 티그리스 듀오와의 2 : 1 싸움은 무리일 것이다.
케이른은 창을 들고 말발굽을 박차며 대규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방금 본 대규의 실력이라면 둘이서 함께 티그리스 듀오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저 녀석의 실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은색 갑옷 장군이 어느새 황금 갑옷 장군의 팔을 봉쇄한 실 뭉치를 칼로 베어 버렸고, 어느새 두 대장군의 칼날이 대규의 목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케이른은 아직도 그들과 수십 미터 떨어져 있는 상황.
빠르게 달려가고 있지만 저곳에 도착하면 대규의 목은 이미 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 정도 거리에서 저들을 공격하려면 수하 병사들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뇌염룡 소환 스킬을 써야 했다.
하지만 그 스킬은 광역 스킬인 게 문제였다. 소환된 뇌염룡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공격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 벼락을 떨군다. 오직 스킬의 시전자만 빼고 모두 공격한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아군인 대규도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케이른은 대규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봐!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과 스킬을 이용해서 최대한 마법 저항력을 높여라!”
티그리스 듀오 중 한 명과 호각을 다툴 실력이라면 뇌염룡의 벼락으로 부상은 입을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다.
케이른은 창을 거세게 휘두르며 뇌염룡을 소환했다.
파스스스.
창날 위에서 푸르스름한 빛 덩이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거대한 용의 형상을 갖췄다.
좀 전에 수하 병사들을 쓰러뜨릴 때보다 몇 배는 커다란 용이었다.
사실 이 스킬은 시전자가 소모하는 마나량을 조절해 용의 크기과 그 위력을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었다.
티그리스 듀오는 나름 적장의 수하 대장군이자 이 전쟁터의 중간 보스였다. 따라서 케이른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수하 병사들을 공격할 때보다 더욱 강한 뇌염룡이 필요하다고 판단, 마나량을 늘려서 스킬을 시전한 것이었다.
허공에 뇌염룡이 나타나자 티그리스 듀오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용이 거대한 주둥이를 벌렸다.
번쩍! 번쩍!
우르릉, 쾅쾅!
거대한 벼락이 주둥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때 대규의 손가락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력 저항 아이템인 닥튈로이의 반지가 마력 저항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반지의 효과만으론 무리였다. 뇌염룡이 소환됐을 때부터 온몸이 감전된 듯 찌릿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벼락이 티그리스 듀오와 대규를 향해 내리쳤다.
“끄윽!”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대규는 이를 악물었다. 찌릿한 벼락이 온몸을 관통해 태워 버리는 것 같았다.
생명력도 3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
다행히 자가 치유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3분 정도면 생명력이 다시 차오른다.
그래도 마법 저항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 있었으니 다행이다. 만약 이 스킬을 아무런 마력 저항 없이 정통으로 맞았다면 세미데우스인 자신조차 치명상을 입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저 두 대장군을 보면 된다.
티그리스 듀오는 자신들에게 내려오는 벼락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벼락이 칼날에 닿는 순간,
파지직!
벼락은 전자기파처럼 검신을 타고 장군들의 팔, 상체,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이 타고 있는 말에게까지 옮아갔다.
“히이잉!”
말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앞다리와 뒷다리를 미친 듯이 구르다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쿵!
두 대장군들은 살짝 비틀거렸지만 이내 정신을 되찾고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의 벼락 공격 덕분에 그들의 투구 쪽엔 커다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케이른의 스킬이 먹힌 것이다.
공격하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대규는 말에서 내리고 있는 대장군들을 향해 사슬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레툼 익투스!”
화염구를 품은 검광들이 사방에서 두 대장군들을 에워싸며 날아갔다.
한편, 뒤늦게 달려온 케이른은 대규가 두 대장군에게 날린 화염 검광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엄청나군.’
저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구는 아마도 무기의 재료로 들어간 불카누스의 입김의 효과일 것이다.
콰직!
대장군들이 수십 개의 검광을 쳐내는 사이 일격의 기운이 장군들에게 명중했다.
이번에도 그들의 갑옷에 커다란 균열이 갔다.
‘좋았어! 이제 조금만 더 공격하면…….’
어느새 다가온 케이른이 대규에게 말했다.
“이봐! 스킬이 위력적인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킬을 그렇게 남발하는 건 그만두지그래. 이제 물리적인 공격만으로도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대규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저들의 저 갑옷엔 절대 물리적인 공격이 먹히지 않습니다. 좀 전에도 장군님이 스킬을 발휘해 공격했기 때문에 저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던 겁니다.”
“뭐라고?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공략집이 알려 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황금 갑옷 장군이 자신의 사슬 검을 붙잡고 패대기친 일이 떠올랐고 대규는 냉큼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수하 병사들에게 아군 버프 스킬을 걸었을 때, 제가 사슬 검으로 저들 중 하나를 공격했던 거 기억나십니까? 그때 그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킬을 사용하니 공격이 먹히더군요. 마나 소모는 크지만 저들을 쓰러뜨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장군님께서도 마나량을 충분히 비축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대장군들은 이제 검을 들고 케이른과 대규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대규는 칼을 휘두르는 대신 양팔을 앞쪽으로 쭉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른이 놀라서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쉬리릭-
양손의 손목 부분에서 그물 같은 거미줄이 뻗어 나갔다.
뻗어 나간 거미줄은 정확히 티그리스 듀오의 각 오른팔을 칭칭 동여맸다.
“지금입니다! 제가 황금 갑옷 쪽을 맡을 테니 장군님께서 은색 갑옷 쪽을 맡아 주십시오.”
“알겠다.”
둘은 각자 무기를 들고 티그리스 듀오에게 달려들었다.
케이른은 창을 거세게 휘두르며 외쳤다.
“뇌전일참(雷電一斬)!”
케이른이 스킬명을 외치자 창끝에서 푸르스름한 전기파 같은 것이 형성돼 대장군들을 향해 날아갔다.
대규 역시 사슬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레툼 익투스!”
공격은 정확히 대장군들의 급소에 명중했다.
콰지직!
대장군들의 갑옷이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한편 아테나 여신과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여전히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챙챙챙!
여신은 창을 들고 열심히 공격하며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거인은 방패로 여신의 공격을 막아내기 바빴지만, 입가엔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여신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나왔고 숨소리가 가빠졌다.
그러자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말했다.
“이제 슬슬 힘든가 보군.”
“닥쳐라.”
하지만 실제로 여신은 힘들었다.
녀석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할 뿐, 제대로 공격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여신 쪽의 체력 소모가 훨씬 컸다.
‘설마 저 거인 자식, 내가 힘이 빠진 상태가 되길 기다린 건가?’
씨익-
아테나의 마음을 읽은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 기가스 포르피리온.
‘그랬군. 이 방법까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여신은 자신의 어깨에 달린 동그란 방패, 아이기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휙!
어느새 그는 가고일을 타고 매섭게 아테나 여신에게 날아들었다.
여신의 목덜미로 칼을 들이밀었다.
여태까진 볼 수 없었던 날래고 적극적인 공격.
“윽…….”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기분이 좋다는 듯 웃음소리를 흘렸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 아주 매력적이로구나, 흐흐흐…….”
“닥쳐라!”
하지만 칼이 목 가까이 들어와 있어 도저히 창으로 방어할 수 없는 거리였다.
여신의 목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신은 몸을 재빨리 틀었다.
그러자 칼날은 그녀의 목덜미 대신 그녀의 어깨에 맞았다.
정확히는 왼쪽 어깨에 달린 술 같은 방패, 아이기스에 맞았다.
텅!
둔탁한 파열음이 났고 여신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칫, 아깝군.”
그는 다시 공격하려고 아테나 여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여신의 표정은 좀 전과 달랐다. 자신에게 공격당했는데도 오히려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냐, 그 표정은?”
“넌 이제 끝났다.”
“뭐라고?”
그때였다.
우우우-
이상한 울음소리가 여신으로부터 들렸다. 정확히는 방금 전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공격을 막아낸 왼쪽 어깨에서 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방패에 새겨진 괴물 조각이 슬며시 눈을 뜬 상태였다. 괴물은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는데 그 입에서 울음소리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아테나는 왼쪽 어깨에 달려 있는 방패, 아이기스를 떼서 왼손에 척 들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신들의 아버지인 위대한 제우스시여! 저에게 힘을 빌려주소서!”
그러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크윽…….”
제우스의 이름을 들은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얼굴이 구겨졌다. 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자신의 몸뚱이를 추악하게 만들어 버린 그의 벼락 공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이름, 말하지 마라!”
이성을 잃은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칼을 뽑아 들고 맹렬하게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테나는 창으로 공격을 받아 내는 대신 아이기스로 막아냈다.
텅! 텅!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방패에 새겨진 괴물 아이기스의 눈동자가 점점 크게 떠졌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계속해서 공격을 했다.
번쩍!
아이기스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그때, 천지를 개벽할 만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우르릉! 콰콰쾅!
곧 하늘에서 거대한 황금 벼락이 떨어졌고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끄아악!”
그가 타고 있는 가고일 역시 균형을 잃고 심각하게 휘청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분명 제우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벼락… 그런데 네가 어떻게?”
아테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말이 맞다. 나의 아이기스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의 벼락을 담은 방패다. 아이기스가 완전히 눈을 떴다. 네가 아이기스를 공격하면 그 대가로 아이기스 역시 지금처럼 너를 공격할 것이다.”
여신은 이렇게 말한 뒤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추억이 샘솟지 않는가? 아버지 제우스의 벼락은 너에게 소중한 추억일 텐데.”
“크으으…….”
벼락을 맞은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쉽사리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여신은 재빨리 창 끝으로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끄아악!”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피를 쏟으며 가고일을 타고 후퇴했다.
여신은 그를 따라잡으며 지상의 전쟁터를 내려다보았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들은 거의 다 전멸한 상태였다. 조금 남은 병사들을 영웅들이 척살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는 대규와 케이른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티그리스 듀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여신은 열심히 싸우고 있는 대규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저자가 티그리스 듀오를 상대하고 있다고?’
케이른은 아테나 여신의 부대에서도 워낙 뛰어난 장군이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대규는 이제 막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얻은 상태였고 정예군 중에서도 가장 경험이 없는 신입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웅이로군.’
하지만 대규를 바라보는 여신의 입가엔 야릇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