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105화. 티그리스 듀오 (1)
영웅들은 일제히 눈을 반짝대기 시작했다.
다들 티그리스 듀오를 해치우고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대규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기가 걷히고 드러난 티그리스 듀오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은 각자 거대한 검은 말을 타고 있었고 온몸엔 단단해 보이는 금속 갑옷이 둘러싸여 있었다.
대규와 영웅들의 키는 그들이 타고 있는 검은 말의 다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 중 한 명은 황금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고 한 명은 은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둘 다 투구를 내리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외관으로는 꼭 한 쌍의 거대한 갑옷 인간들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티그리스 듀오(Tigris Duo)
보상: 블랙 등급 젬스톤 각 1개, 추후 아테나 여신의 보상
특징: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휘하에 있는 두 대장군. 단단한 갑옷 그 자체가 육체이며 물리 방어 및 마법 저항력이 매우 높다. 전설 등급 이하 무기로는 뚫을 수 없는 마법의 갑옷.
보유 스킬-아군 버프: 수하 병사들의 능력을 일정 시간 높여 준다. 버프를 받은 병사들은 몸집이 두 배로 커지고 공격력 및 파워는 20% 증가한다.
<티그리스 듀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티그리스 듀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티그리스 듀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티그리스 듀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 * *
그들은 말고삐를 쥐고 천천히 타고 있는 말을 움직였다.
아군의 영웅들은 무기를 쥐어 들고 쉽사리 덤비지 못했다. 저 두 명은 적진의 중간 보스로,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큰일이 날지도 몰랐다.
대규 역시 공략집의 영상을 보고 저들의 공격 패턴이나 약점을 숙지하기 전엔 덤벼들지 않기로 했다.
티그리스 듀오는 대규와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오지 않고 뒤를 돌아 거인족 수하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인족 수하 병사들은 대장군 두 명을 알아보고 무기를 거둔 뒤 대열을 신속하게 정비하기 시작했다.
척척.
거인들은 아주 잘 훈련된 군대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대부분 부상당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놀림은 민첩하고 절도가 있었다.
병사들이 대열을 정비하자 티그리스 듀오는 자신들의 검을 꺼내 허공 위로 쳐들었다.
챙!
그들이 쳐든 한 쌍의 검이 사선으로 교차하며 맞부딪혔다.
“크어어어!”
맞부딪힌 검들을 보며 거인 수하 병사들은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첫 열부터 차례로 대장군들을 향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우우웅.
서로 맞닿은 대장군들의 검에서 심상치 않은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안개 같은 검은 기운은 수하 병사들의 머리 위를 떠돌다가 그들의 몸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 광경을 본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보유 스킬, 아군 버프!’
전쟁터에 오기 전 아테나 여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들은 거인족 수하 병사들이 열세에 몰린다고 판단되면 전쟁터에 나타나 병사들의 전력을 가다듬어 맹렬하게 덤벼온다. 이들이 나타난 이후 수하 병사들은 그 힘이 몇 배나 강해진다. 그러니까 이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이들부터 해치워야 한다.’
대규는 영웅들을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빌어먹을! 저 대장군들을 지금 당장 막아야 합니다!”
말을 마친 뒤 불카누스의 사슬 검을 대장군 중 한 명인 황금색 갑옷에 휘둘렀다.
휘리릭-
척!
“……!”
황금 갑옷을 입은 장군은 황금 장갑을 낀 손으로 화염을 휘날리며 날아오는 사슬 검의 칼날을 붙잡아 버렸다.
그의 손에서 사슬 검의 화염이 맹렬하게 타올랐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들의 갑옷이 마법 저항력과 물리 방어력이 높다고 공략집이 알려 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때 황금 갑옷 장군이 대규를 바라보았다.
투구 속의 눈동자 구멍이 대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구멍 안에는 눈동자는커녕 컴컴한 암흑뿐이었다.
‘저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그때 황금 갑옷 장군은 손에 쥐고 있던 사슬 검을 힘껏 패대기쳤다.
“으악!”
대규는 그 바람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대규에게 날아온 사슬 검이 흑린갑을 살짝 스쳤다.
‘정말 강하다. 괜히 대장군이 아니었어!’
중간 보스가 이 정도라면 아테나 여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적장,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대체 얼마나 강력한 걸까?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검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은 수하 병사들의 몸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이후 놀랄 만한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우둑, 우두둑.
“끄르르르…….”
“키이이…….”
병사들의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공략집의 설명처럼 그들의 몸집은 두 배로 불어났다. 눈빛은 더욱 흉포해졌고 그들이 입었던 부상도 말끔히 치료됐다.
아군 버프를 마친 티그리스 듀오는 각자의 칼을 거뒀다.
더욱 강력해진 수하 병사들은 다시 아군을 향해 돌진해 왔다.
“크어어어어!”
대규와 영웅들도 함성을 지르며 다시 돌격했다.
수하 병사 하나가 대규 앞에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휘릭-
뭐 이렇게 빨라?
헤르메스의 신발로 날아서 간신히 피했다. 병사의 칼은 대규가 방금까지 서 있는 땅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크르릉!
땅이 갈라지며 검붉은 용암이 튀어나왔다.
‘무식한 힘이로군. 이러다가 땅이 무너지면 다 용암에 휩쓸려 죽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수하 병사는 대규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몹시 빠른 스피드였다. 게다가 버프를 받기 전에 비해 공격이 훨씬 강력해졌다.
하지만 버프는 나도 받을 수 있다.
‘수하 병사들을 상대로 스킬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대규는 힘이여 솟아라를 외쳤다. 녀석들의 몸집이 더욱 커져서 좀 전보다 훨씬 높게 날아올랐다.
높아진 근력의 버프를 받아 사슬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좀 전보다 더욱 거세진 화염 칼날이 병사의 흉갑을 향해 날아갔다.
화르륵!
흉갑이 불타며 수하 병사가 쓰러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케이른과 다른 영웅들 역시 스킬을 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저건 뭐야?’
케이른이 창날을 한 번 휘두르자 허공에 뇌염룡이 소환됐다.
소환된 뇌염룡은 반경 10미터 내에 있는 수하 병사들을 단번에 무찌르기 시작했다.
‘광역 스킬인가 보군. 그런데 정말 대단하다…….’
대규가 감탄하고 있는데 케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왜 넋을 놓고 있어! 위를 보라구!”
고개를 드니 거대한 칼날이 정수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피할 틈도 없이 기가스 팔라스 가죽을 덧댄 방패로 막아냈다.
깡!
엄청난 충격에 대규의 두 발이 땅속으로 꺼졌다.
기회를 틈타 사방에서 수하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계속 몰려들어라. 이쪽도 광역 스킬을 쓰면 되니까.
수하 병사들이 자신의 몸 가까이 다가오자 대규는 힘차게 외쳤다.
“비산의 결계!”
번쩍!
파바밧!
화르르륵-
화염구를 품은 검광들이 병사들의 머리 위로 맹렬하게 쏟아져 내렸다.
“끄르르!”
“키에엑!”
병사들은 괴로운 신음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대규는 산처럼 쌓인 병사들의 시체를 밟고 올라갔다.
저 멀리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두 명의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각자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대규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 황금 갑옷을 입은 장군이었다.
속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녀석이 좀 전에 자신의 사슬 검을 너무도 쉽게 패대기쳤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숨 좀 고를 수 있게 됐다. 주변의 수하 병사들은 광역 스킬로 다 때려잡아 놨다.
대규는 티그리스 듀오의 약점 영상을 보기 위해 흑린갑으로 몸을 숨겼다.
스스슥.
영상으로 보니 저들이 입고 있는 갑옷의 위력이 더욱 실감 났다.
저들의 갑옷은 마법으로 이뤄진 특수 갑옷으로 무기들의 물리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다.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면 대규의 흑린갑처럼 갑옷 표면에서 비늘이 돋아나 방어한다.
‘그래서 아까 사슬 검 공격이 먹히지 않았던 것인가.’
게다가 저 갑옷은 그들의 육체, 그 자체였다. 저 갑옷을 뚫지 못하면 그들은 절대 죽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선 물리 공격 말고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을 써야만 했다.
‘정 안 되면 라의 목걸이로 마신의 능력을 빌려야 하냐?’
지난번 기가스 팔라스를 상대했을 때처럼 아포피스를 소환하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포피스의 힘은 정확히 어느 정도인 거지?’
그 점이 가장 의문이었다.
가장 최근 아포피스를 소환한 건 지난번 전투에서 기가스 팔라스를 만났을 때다. 그때 자신의 레벨은 40쯤이었고, 그래서 기가스 팔라스를 상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포피스는 기가스 팔라스를 거뜬히 죽였다.
‘하지만 현재 세미데우스인 나도 기가스 팔라스는 그냥 죽일 수 있잖아.’
어쩌면 자신이 지금 아포피스만큼 강해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 티그리스 듀오는 지금의 자신도 상대하기 힘든 상대다. 과연 아포피스를 소환한다 해도 기가스 팔라스를 죽였던 것처럼 쉽게 티그리스 듀오를 해치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시험 삼아 해 볼 수는 있겠지만 마신의 능력은 하루에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
그리고 지난번 전투 후, 아테나 여신은 마신의 능력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었다. 그녀를 포함한 신들은 라의 목걸이와 그것을 알려 준 공략집의 정체를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대규는 최대한 신들에게 공략집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신들 앞에서 라의 목걸이를 사용하는 걸 최대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 마신의 능력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내 힘으로 잡아야 해. 정말 죽기 직전에만 소환하는 거다.’
우선 레툼 익투스로 황금 갑옷 장군을 공격해 보기로 했다.
대규는 검을 들고 황금 갑옷 장군 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그가 타고 있는 검은 말이 입을 벌렸다.
“히이잉!”
말의 입안에서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물론 이 역시 공략집의 영상으로 봤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지이잉-!
닥튈로이의 반지와 다른 방어구들의 마력 저항이 발동해 대규를 막아 줬다.
“레툼 익투스!”
화염을 머금은 수십 개의 검광들이 장군을 향해 날아갔다. 장군은 칼을 뽑아 들고 능숙하게 검광들을 쳐냈다.
그때 장군의 급소를 급습하는 일격의 기운!
하지만 장군은 일격의 기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결국, 일격의 기운은 갑옷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군이 대규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목으로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자마자 이번엔 정수리로 칼날이 날아왔다.
수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피드였다. 게다가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시퍼런 검기가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검기에 닿기만 해도 칼에 베인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저 검의 움직임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때 자신이 끼고 있는 전술 장갑이 퍼뜩 떠올랐다. 아테나 여신이 아라크네의 거미줄 주머니를 장착해 준 스파이더맨 장갑.
칼을 쥐고 있는 장군의 팔을 향해 거미줄을 발사했다.
쉬익-
“……!”
하얗고 얇은 거미줄이 순식간에 장군의 팔과 검을 둘둘 감아 버렸다.
좋았어, 움직임이 봉쇄된 지금이 기회다.
“레툼 익투스!”
이번엔 일격의 기운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갑옷의 표면에 커다란 균열이 간 것이 보였다.
‘좋았어, 이대로만 간다면 해치울 수 있다!’
게다가 거미줄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장군은 여전히 움직임이 봉쇄된 상태였다.
이대로 레툼 익투스를 한 번만 더 명중시키면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저 멀리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히이잉!”
나머지 대장군 중 한 명인 은색 갑옷 장군이 대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금 갑옷 장군이 위기에 처하자 급하게 도우려고 오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2 : 1은 무리인 것 같은데.
휘릭-
투두둑-
어느새 다가온 은색 갑옷 장군이 칼을 휘둘러 거미줄을 끊어 버렸고 동시에 황금 갑옷 장군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이제 티그리스 듀오는 완벽하게 대규를 포위하고 있었다. 대규는 재빨리 위를 올려다봤다.
서슬 퍼런 두 개의 칼날이 대규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어 왔다.
그때 케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과 스킬을 이용해서 최대한 마법 저항력을 높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