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104화. 포르피리온 (2)
아테나 여신은 대체 어딨는 걸까?
대규는 일단 불카누스의 사슬 검을 꺼내 들고 적진의 거인족 수하 병사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공략집이 발동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
보상: 낮은 확률로 레드 등급 젬스톤 드롭
특징: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어 전설 등급 이상의 무기로만 상처를 입히는 게 가능함. 검술을 익히고 있어 칼싸움에 능하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여태까지 무식하게 몽둥이를 휘둘러 댔던 다른 거인 병사들과는 달랐다.
몸뚱이만 거인이지 실력은 거의 잘 훈련된 전사 수준이었다.
공격 영상을 보니 칼을 휘두르는 자세나 몸놀림이 꽤 수준급이었다.
약점은 심장이었다.
약점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녀석들은 가슴 쪽에 더욱 단단한 흉갑을 덧대고 있었다.
뿌우우우-
어디선가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전투가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쿵쿵쿵.
“우와아아아!”
“아테나 여신께 승리의 영광을!”
“아테나 여신께 승리의 영광을!”
아군이 요란한 함성을 내지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적진의 수하 병사들 역시 발을 구르며 다가왔다.
얼마 후, 아군과 적군은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맞부딪혔다.
챙! 챙! 챙!
휘리릭-
여기저기서 무기들이 맞부딪히며 내는 파열음과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근, 두근.
대규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주변의 공기가 느려지고 감각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전투 감각이 활성화됐다.
사슬 검을 들고 주위를 살피자 저 앞에서 수하 병사 한 녀석이 달려드는 게 보였다.
재빨리 불가누스의 사슬 검을 체인화시켜 휘둘렀다.
휘리릭-
화르륵!
불이 붙은 체인 칼날이 화염룡처럼 거인족 수하 병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거대한 몸뚱이를 유연하게 틀어 칼날을 피했다.
‘와, 저 몸뚱이로 저걸 피해?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타타탓!
빠르게 수하 병사 앞으로 달려가 헤르메스의 신발로 날아올랐다. 발밑에 거인족 수하 병사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대규는 검신화시킨 사슬 검을 머리 위로 쳐든 뒤, 녀석의 정수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화르륵- 번쩍!
불꽃을 품은 칼날이 녀석의 두개골을 따라 가슴까지 일직선으로 베어 버렸다.
갈라진 두개골 틈에 도화선처럼 불이 붙어 버렸다.
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수하 병사의 몸이 불길로 뒤덮였다. 대규는 놀라서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 재빨리 물러났다.
어느새 수하 병사의 시체는 까맣게 타 버려 잿더미가 됐다.
이 사슬 검을 적에게 직접 휘둘러본 건 처음이었다. 물론 수하 병사라 생각보다 강하지 않아서 쉽게 해치운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파워다.’
하지만 지금은 검의 위력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들은 적진에서 개떼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켄타로우스 장군, 케이른이 열심히 창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물리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 생긴 케이른의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창같이 생겼는데 그가 휘두를 때마다 창날에서 뇌전(雷電)이 번쩍였다.
창이 수하 병사의 단단한 갑옷을 손쉽게 뚫어 버리며 허벅다리를 찌르고 들어갔다. 그러자 병사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찌릿거리며 쓰러졌다.
그때 다른 거인 수하 병사가 케이른의 뒤통수를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여 칼날을 능숙하게 피한 뒤, 근육이 탄탄하게 붙은 말의 뒷다리로 병사를 거세게 차 버렸다.
그 힘이 엄청났던지 발길질 한 방에 거인 수하 병사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몸집이 케이른의 세 배나 큰데도 말이다.
그 틈을 타 수하 병사의 흉갑을 정확히 지르고 들어가는 케이른의 창날!
‘대단한걸.’
감탄하고 있는데 대규의 등 뒤에서 다른 수하 병사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아도 예민해진 전투 감각으로 기척을 눈치챘다. 바로 뒤돌아 녀석의 가슴 높이까지 점프한 뒤, 눈앞에 보이는 흉갑에서 심장 부위를 정확히 사슬 검으로 베어 버렸다.
화르륵- 펑!
심장 부위가 폭발하며 병사 녀석은 대규에게 제대로 공격도 못 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뒤이어 다른 두 명의 수하 병사가 또다시 대규의 등 뒤를 노렸다.
슉-
상체를 바닥에 밀착될 정도로 깊게 숙이자 녀석들의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헤르메스 신발의 날랜 이동 능력을 이용해 녀석들의 등 뒤로 날아갔다.
“끄으?”
녀석들이 아둔한 울음소리를 내며 사라진 대규를 찾아 헤맸다.
휘리릭-
불붙은 사슬 칼날이 녀석들의 목을 단번에 칭칭 휘감았다.
“끄으으윽!”
“키에에엑!”
녀석들은 괴롭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목 안으로 조여드는 불붙은 칼날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칼날은 녀석들의 목 안으로 파고들었다.
펑!
폭발음과 함께 녀석들의 목이 몸통에서 떨어져 나왔다.
대규는 사슬 칼날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 낸 후, 다른 수하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병사들을 해치울 때마다 연이어 폭발음이 들렸다.
다른 영웅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며 병사들을 물리치는 대규를 보고 놀랐다.
물론 다른 영웅들의 무기들 역시 공격할 때마다 대규의 사슬 검만큼 신비로운 이펙트를 뿜고 있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폭풍이 형성되거나 물보라가 치거나 하는 식이었다.
‘완전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무기들 같잖아.’
수하 병사들이 쓰러질 때마다 곳곳에 아이템과 젬스톤이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공중에 두둥실 떠올라 사라졌다.
아무래도 전투가 끝나면 배분하기 위해 지휘 사령부로 옮겨진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수하 병사들을 해치우고 있는데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를 20마리 이상 해치웠습니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에 대한 공략(중급)을 습득했습니다.>
<포르피리온의 수하 병사에 대한 공격력이 10% 추가 상승했습니다.>
수하 병사에 대한 공략 등급이 중급으로 올랐다.
‘벌써 혼자 20마리나 해치웠구나.’
하지만 병사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대규가 사슬 검에 찐득거리게 엉겨 붙어 있는 피와 재를 털어 내려는데.
우르릉!
콰콰쾅!
거대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처음 이곳 전쟁터에 왔을 때 들었던 소리와 동일했다.
‘날씨가 왜 저래? 이거 비라도 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졌고 대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늘 위엔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아테나 여신이 있었다.
그녀는 날개 달린 하얀 말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몇십 미터 앞엔 역시 날개 달린 까만 괴생물체를 타고 있는 검은 장군이 있었다.
‘저자가 기가스 포르피리온인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그를 봐도 공략집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아테나 여신보다 거의 다섯 배는 몸집이 컸다.
그는 자신이 타고 있는 괴생물체만큼 까만 갑옷을 입고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테나 여신이 들고 있는 창을 휘두르자 창끝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거인은 방패로 여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우르릉! 쾅!
눈부신 빛이 거인의 방패에 닿자마자 그 파열음이 천지를 울렸다.
‘이 소리는 번개나 벼락이 아니었어!’
저 둘이 공중전을 벌이며 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저것이 거인 대장 기간테스와 신의 싸움!
케이른은 분명 저들의 전투에 영웅들은 끼어들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이 전투의 룰이라고 했다.
‘아테나 여신이 이기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어. 그럼 나도 힘내서 수하 병사들을 해치우자.’
대규는 아테나 여신이 지휘 사령부 천막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수하 병사들이 열세에 몰리게 되면 티그리스 듀오라는 두 명의 대장군이 전쟁터에 소환된다고 했다.
아직 대장군들이 나타나지 않은 걸로 보아 적들은 열세에 몰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열세에 몰릴 것이다!’
그 증거로 수하 병사들은 계속 죽어 나가고 있지만 대규를 포함한 아군의 영웅들은 전혀 피해가 없다.
간혹 부상을 입긴 해도 다들 세미데우스 이상의 육체를 지닌 자들이어서 자가 치유 능력을 발휘해 저절로 치료를 하고 있었다.
“쿠어어어!”
그때 한 수하 병사가 대규를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덤벼랏!”
대규는 사슬 검을 들고 날아가 재빨리 녀석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화르륵-
대규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사슬 화염룡이 녀석을 맹렬하게 불태웠다.
* * *
한편, 전쟁터의 상공에서 아테나 여신은 거인 대장 기가스 포르피리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멀리 있는 기가스 포르피리온을 바라보았다. 검은 피부를 지닌 그의 얼굴은 전신 화상을 입어 추악하게 뭉그러져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엔 눈동자 대신 검붉은 빛만 뿜어져 나왔다.
여신은 경멸에 찬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1차 기간토마키아 때보다 더욱 추해졌구나.”
그러자 기가스 포르피리온이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이게 다 너의 아비 덕분이다…….”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전신의 거죽이 까맣게 타 버렸다. 그는 더욱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아테나에게 말했다.
“크크크, 너는 더욱 아름다워졌군그래. 이곳까지 군대를 이끌고 온 보람이 있군!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내 애첩으로 삼아 주도록 하지.”
“그 추악한 입, 닥쳐라.”
아테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기가스 포르피리온, 오늘이 네 녀석의 제삿날이다. 아버지와 달리 나는 너를 타르타로스로 보내 버릴 것이다!”
아테나는 말을 마친 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기가스 포르피리온에게 빠르게 돌진했다.
황금 투구 아래로 그녀의 하늘빛 머리칼이 영롱하게 휘날렸다.
그녀의 푸르스름한 창날이 기가스 포르피리온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려는 찰나,
“이랴!”
포르피리온은 자신이 타고 있는 검은색 괴생물체, 가고일(Gargoyle)의 고삐를 거세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가고일은 괴상한 울음소리를 낸 뒤 날개를 퍼덕이며 빠르게 수직으로 하강했다.
여신 역시 타고 있는 말의 경로를 바꿔 하강해 그를 뒤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강하던 포르피리온이 가고일의 머리를 돌려 다시 여신 쪽으로 수직 상승해 왔다.
“……!”
“케케케, 바로 덮쳐 주마!”
그는 들고 있던 거대한 검을 여신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챙!
여신은 재빨리 창대를 들어 그의 검을 쳐냈다.
두 개의 무기가 공중에서 부딪히자마자 눈부신 빛의 장막이 뿜어져 나왔다.
지상의 전쟁터에서 전투를 벌이던 수하 병사들과 영웅들은 눈이 부셔서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시력을 되찾은 대규는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대단하군. 이것이 신들의 전투.’
챙, 챙, 챙!
귀청을 때리는 듯한 파열음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기가스 포르피리온과 아테나 여신은 호각으로 다투며 싸우고 있었다.
대규가 멀리서 보니 호각인 것 같지만 그래도 아테나 여신이 좀 더 우세한 것 같았다.
여신 쪽이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고 적장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아무리 봐도 여신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바빠 보였다.
‘저 상태로 간다면 여신이 승리한다!’
슬슬 지상 쪽의 전세도 아군에게 유리해지고 있었다.
사기를 얻은 아군 영웅들은 나머지 수하 병사들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때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땅의 틈이 갈라지고 푸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영웅들은 눈을 반짝이며 모두 전투를 멈추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증기가 거인 병사들의 몸을 다 가릴 만큼 자욱하고 높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증기 너머로 보이는 두 개의 그림자!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가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