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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103화 (103/294)

# 103

103화. 포르피리온 (1)

‘혹시 알아? 지영 씨 역시 기연을 얻어 빠른 시일 내에 성장할지도 모르지.’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녀는 아마 이곳에서 잘 살아남을 것이다. 강인한 여자니까.

대규는 갑옷을 입고 아이템을 장착했다.

거미줄을 쏠 수 있는 전술 장갑과 불카누스의 사슬 검도 잘 챙겼다.

이제 소환 시간이 됐다.

보관함에서 황금빛 차원의 열쇠를 꺼내 손에 쥔 뒤 침대에 누웠다.

파바밧-

빛이 뿜어져 나오며 자신의 몸이 침대 안쪽으로 서서히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도착한 곳은 맨 처음 전투에 소환됐을 때 봤던 아테나 여신의 주둔지였다.

대규는 여신의 지휘 사령부 천막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카페르족 산양 병사가 그를 맞이했다.

“세미데우스 영웅이시여, 아테나 여신님과 장군 및 영웅들은 천막 안에 있습니다.”

대규는 병사의 안내를 받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여신은 철 왕좌에 늠름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일전에 판테온의 신전에서 봤을 때와 달리 단단한 황금 갑주 차림이었다. 영웅들은 여신이 앉아 있는 왕좌 앞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으응?’

대규는 장군들의 머릿수를 눈으로 헤아리며 의아해했다.

일전보다 영웅들이 현저히 줄어있다.

게다가 지영과 다른 신입 영웅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왕좌에 앉은 여신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그대들은 나와 함께 싸울 정예군이다. 다른 영웅들은 이미 다른 전선으로 배치돼 그곳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

벌써 떠났구나.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대규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천막 안의 영웅들을 보았다. 정예군이라는 여신의 말처럼 그들은 모두 반신반인, 혹은 정령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일반 인간 영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딱 한 명,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휘황찬란한 은빛 갑옷을 입고 있는 켄타로우스족 장군, 케이른.

그는 일전에 기가스 팔라스를 해치울 때 아테나 여신이 보냈던 지원군의 수장이었다.

한편, 케이른 역시 대규를 알아보았다.

모를 리가 있나.

동부 전선 전투에서 고작 신입 영웅 주제에 산양족 장군인 코르페우스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기가스 팔라스를 단번에 해치웠던 불가사의한 녀석인데.

‘저 자식도 정예군에? 잠깐, 저 빛은 뭐야.’

케이른은 대규의 흑린갑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는 은백색의 빛을 바라보았다. 세미데우스의 육체를 지녔다는 증거다.

‘뭐야, 그사이 레벨 100을 달성하고 판테온의 시련을 통과했다고?’

눈앞의 대규의 모습을 믿을 수 없어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봤다. 여전히 대규의 몸에선 은백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도통 알 수 없는 녀석이구먼.’

그때 아테나 여신이 좌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들 정예군은 나와 함께 ‘포르피리온 전투’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 반신반인, 정령 영웅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케이른이 앞으로 나서서 여신에게 물었다.

“여신이시여,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기가스 포르피리온(Gigas Porphyrion)은 원래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께서 상대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기가스 팔라스처럼 이름 앞에 ‘기가스’가 붙는 걸로 봐서 거인 대장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러자 아테나 여신은 경멸에 찬 목소리로 케이른에게 말했다.

“그랬지. 하지만 그 사악한 녀석은 상대를 바꿨다. 녀석은 오로지 나를 노리고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예?”

여신은 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기가스 포르피리온 녀석은 천한 거인족 중 일인자지만, 여색을 밝혀 대는 호색한이다. 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신들의 어머니, 헤라 여신과 맞붙었을 때 녀석은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신을 겁탈하려고 하다니, 정말 흉포한 녀석이군.

“다행히 헤라 여신의 도움 요청을 들은 제우스께서는 녀석을 벼락으로 내리쳐 단번에 물리쳤다. 벼락을 맞은 녀석은 혼쭐나서 도망갔었지.”

“알고 있습니다.”

대규를 뺀 나머지 영웅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여신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대규는 그런 영웅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영웅들은 다들 1차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한 적이 있는 건가?’

하긴, 좀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곳엔 인간 영웅은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다들 전투에 수십 번은 참여한 것 같은 노련함이 느껴졌다.

여신은 계속 말을 이었다.

“녀석은 제우스 신에 대한 적의를 불태워 왔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감히 제우스께는 덤벼들지 못하고 대신 그 자식 중 한 명인, 그중에서도 제우스가 가장 아끼는 나를 쓰러뜨린 뒤 욕보이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

여신은 왕좌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외쳤다.

“나는 녀석을 혼쭐낼 것이다! 특히 다시는 우리 판테온의 여신들을 욕되게 하지 못하도록 녀석의 가운데 다리를 잘라 버려 신들의 영광을 드높일 것이다!”

“우와아아아!”

영웅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아테나 여신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왕좌 옆에 높인 커다란 테이블로 걸어갔다. 영웅들 역시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럼 이제 전술을 세우도록 하지.”

테이블 위에는 전쟁터의 모형도가 있었다. 그곳엔 거대한 황금 장기말이 하나 보였다.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지 황금 장기말은 모형도 위를 난폭하게 쏘다니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손가락으로 쏘다니는 장기말을 붙잡으며 말했다.

“적장 기가스 포르피리온은 오로지 내가 홀로 상대한다. 포르피리온은 그대들 같은 반신반인이나 정령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신은 붙잡고 있는 황금 장기말 주변에 모여 있는 수북히 쌓인 작은 붉은 장기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들은 내가 기가스 포르피리온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녀석의 수하 병사들을 해치우면 된다. 대부분은 거인족 졸개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어 해치우는 게 힘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게 두 녀석 있다.”

여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붉은 장기말들 속에서 은백색의 중간 사이즈 장기말들이 홀연히 솟아올랐다.

은백색의 두 장기말들이 나타나자 아무렇게나 산재돼 있던 붉은 장기말들이 다시금 대열을 갖춰 모이기 시작했다.

두 은백색 장기말들은 수하 병사들을 통솔하며 신속하게 아군의 진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포르필리온의 수하, 두 명의 대장군이다. 호랑이 같은 용맹한 기세를 지녔다고 해서 티그리스 듀오(Tigris Duo)라 불리지. 이들은 거인족 수하 병사들이 열세에 몰린다고 판단되면 전쟁터에 나타나 병사들의 전력을 가다듬어 맹렬하게 덤벼온다. 이들이 나타난 이후엔 수하 병사들의 힘이 몇 배나 강해진다. 그러니까 이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이들부터 해치워야 한다. 물론 그대들 중 이들을 해치운 영웅에겐…….”

여신은 손끝으로 딱밤을 때리듯 은백색의 두 장기말들을 차례로 툭 쳤다.

그러자 장기말들이 부서지며 그 안에서 작은 황금 상자가 나왔다. 대규가 여신에게 받은 전술 장갑이 들어 있던 황금 상자의 미니어처였다.

“…그에 걸맞은 보상을 내릴 것이다.”

대규는 두 개의 황금 상자 미니어처를 보며 여신의 말을 염두에 뒀다.

사실 대규뿐만 아니라 모든 영웅들이 모형 위의 황금 상자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럼 천막 밖으로 나가 전투 준비를 하고 있으라. 곧 전투가 벌어질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정령들과 반신반인 영웅들은 천막에서 나와 자신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대규 역시 불카누스의 사슬 검과 각종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

케이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규가 인사를 하자 케이른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여기서 너를 보게 될 줄이야.”

그때 케이른의 시선이 불카누스의 사슬 검에 머물렀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건 신화 등급의 무기 아닌가?’

불의 신 불카누스의 입김은 신화 등급 무기에만 쓰일 수 있는 재료였다. 신입 인간 영웅이 갑자기 세미데우스가 돼서 나타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신화 등급 무기까지 갖고 있다니?

“훌륭해 보이는 무기로군.”

케이른이 묻자 대규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기회가 돼서 바꿨습니다. 참, 그런데 케이른 장군님.”

“응?”

“당신은 1차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하셨습니까? 아까 보니 저를 제외한 다른 영웅들은 모두 1차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했던 것 같아서요.”

그러자 그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여기 정예군의 영웅들은 대부분 그때 전투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는 자들이지. 여신과 함께 싸우는 정예군에 초짜 인간 영웅은 들어올 수 없다. 하긴, 너도 이제 인간 영웅은 아니군…….”

“그렇군요.”

“하지만 포르피리온이라니… 너도 알겠지만 아테나 여신과 함께 싸우는 이번 전투는 일전의 동부 전선 방어전과는 좀 다를 거다.”

당연히 다르겠지. 적들도 훨씬 강력할 거고.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자 케이른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적의 병력이 강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번엔 전투의 양상이 다르다. 아테나 여신은 우리와 함께 전쟁에 출격하시지만 그녀는 적장 포르피리온과 따로 싸우신다.”

“따로요?”

“그래. 적장과 전투에 우리 같은 일반 영웅들은 끼어들 수 없다. 그것이 신들의 전투 룰이다. 우리 같은 영웅들은 적장의 수하 병사들과 대장군 티그리스 듀오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그 몫이다. 그리고 여신이 포르피리온을 완전히 해치워야 전투가 끝나게 된다.”

“만약… 여신님이 패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케이른은 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불경한 소리를! 여신은 불사의 존재다!”

신들이 불사의 존재라는 건 대규도 공략집을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사의 존재라고 해서 필승의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케이른의 화난 모습을 보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시는 그런 불경한 말은 하지 말아라! 아테나 여신은 전쟁의 여신이고 전쟁터에선 항상 백전백승인 분이다. 네가 곧 전쟁터에서 여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런 불경한 말은 쑥 들어가겠지만…….”

그때 천막 안에서 여신이 걸어 나왔다.

“준비는 다 됐는가? 이제 시간이 됐다.”

여신은 손에 거대한 창을 들고 있었다. 창대는 거의 2미터 정도였고 그 끝에는 뾰족하고 날렵하게 생긴 다이아몬드형의 창날이 박혀 있었다.

창날에선 푸르스름한 기운이 뻗어 나왔고 햇빛을 받아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휘릭-

여신은 허공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여신과 대규, 케이른, 모든 영웅들을 감싸 안은 거대한 투명한 막이 형성됐다.

그들을 투명한 막이 감싸며 떠올랐다.

두둥실.

팟!

어느새 투명 막은 주둔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도달한 곳은 거대한 사막 같은 곳이었다.

정확히는 판테온의 마지막 시련에서 일곱 문지기를 통과했을 때 거쳤던 유황 지옥 땅 같았다.

땅 곳곳에선 뜨거운 증기들이 피어올랐고 갈라진 틈으로 검붉은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풀이나 나무 같은 생명체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번쩍-!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벼락이 쳤다.

콰콰쾅! 우르릉!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대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영웅들은 대열을 잡고 전투태세를 갖춘 뒤 서 있었다.

쿵쿵.

저 멀리 땅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땅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증기 너머, 수많은 거인족 수하 병사들이 대열을 맞춰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아군 쪽을 보며 발을 위협적으로 구르고 있었다.

그들은 기가스 팔라스처럼 붉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몸집은 3미터 정도로 거인족 중에서 작은 축에 속했지만 여태까지 천 쪼가리만 겨우 갖춰 입은 거인족 졸개 병사들과 달리 단단한 철갑을 제대로 입고 있었다.

척, 척, 척.

아군 쪽 영웅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대규의 불카누스의 사슬 검만큼 다들 위력적인 무기들이었다. 거인족과 아군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일렬로 좍 서서 대치 중이었다.

하지만 아군 중에서 아테나 여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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