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화. 웹드라마 (2)
다음 날, TM 엔터테인먼트에서 대규식품의 사무실로 연락이 왔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대규가 준섭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TM 엔터테인먼트라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연예 기획사였다. 그곳에서 다이어트 도시락을 주문하다니?'
그러자 준섭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블루핑크의 한채아 양이 드라마 촬영 중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고 단단히 반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엔터테인먼트에서 대량 주문을 하다뇨.”
“단순히 채아 양이 먹고 싶어서 한 게 아닙니다. 연예인들은 화보 촬영이다, 뭐다, 해서 몸 관리를 해야 하는데 우리 회사의 다이어트 도시락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나 봅니다. 그래서 한 달간 계약을 맺고 당장 내일부터 매일 납품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요?”
“좀 급작스럽긴 한데… 당장 한채아 양이 속한 그룹, 블루핑크가 촬영 스케줄 때문에 몸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는군요. 그래서 다이어트 도시락을 몸 관리 식단으로 쓰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연예인들에게 협찬하게 되다니.
“부사장님… 이거 좋은 일인가요?”
얼떨떨한 목소리로 묻자 준섭이 외쳤다.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걸 그룹 아이돌이 이 도시락으로 몸 관리를 한다고 소문이 나면 일반 여성들의 도시락 수요도 급증하게 될 겁니다. 연예인이 소비한다고 소문난 물건은 따로 마케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니까요.”
이른바 스타 마케팅.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똑같은 고가의 화장품이라도 연예인이 바른다고 소문이 나면 그 제품의 매출은 몇 배로 뛴다.
몇 년 전 유명 배우가 프랑스의 고가 화장품 브랜드인 입생로랑 틴트를 바르고 다니자 그 색깔의 틴트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시장에서만 불티나게 팔렸다.
결국, 한국에선 품절이 되고 국내에선 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자 사람들은 해외 직구 사이트까지 알아보며 그 틴트를 구매하는 등, 틴트 대란이 일어났었다.
스타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게다가 벌써 소문이 돈 모양입니다.”
“채아 양이 SNS에 입소문이라도 낸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특히 채아 양은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길 아주 즐기는 골수 SNS 유저거든요.”
준섭은 말을 마치고 태블릿의 인터넷 화면을 보여 줬다.
블루핑크의 채아가 멤버들과 트레이닝하면서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는 사진을 올린 게시글이 보였다.
[드라마 촬영하면서 먹고 완전 반한 다이어트 도시락! 넘 맛있어서 우리 블루핑크 다이어트 식단도 다 이걸로 바꿨다능… 이거 광고 절대 아닙니다. 채아가 맛 보장해요. (하트)(하트) 맛이 너무해, 너무해. ᕙ(•̀▽•́‶)ᕗ ᕙ(•̀▽•́‶)ᕗ]
그녀의 게시글엔 좋아요 1만 개가 넘었고 댓글도 수백 개였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계속 공유되고 있었다.
이게 연예인의 파워인가.
댓글들에는 역시 대규식품과 탕꼬가 언급되고 있었다.
-저거, 대규식품 도시락 아님? 대규식품 또 한 건 했네!
-걸 그룹까지 장악하는 도시락의 위력. ㄷㄷㄷ 도시락으로 세계 정복할 기세네.
-채아 너무 귀엽다. 쿰척…….
-님들아, 저희 동네에 드디어 혼밥탕꼬 생겼어요! ㅠㅠ 이제 말로만 듣던 신촌의 그 유명한 탕꼬를 먹을 수 있게 됐다능…….
대규식품의 다이어트 도시락이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블루핑크 도시락, 한채아 도시락 등의 이름을 달고 말이다.
그간 탕꼬 도시락에 밀려 찬밥 신세였던 다이어트 도시락의 매출은 급상승했고, 대규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웹드라마는 준섭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주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살짝 바뀌었는데 오히려 그게 한채아의 이미지에 잘 맞아 더더욱 여주인공과의 싱크로율이 높아졌다고 했다.
“웹드라마가 잘되면 저희 도시락 PPL 효과도 몇 배로 뛸 겁니다.”
준섭의 희망찬 목소리를 들으며 대규 역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리고 두 달 후.
인터넷에 웹드라마 ‘환골탈태’, 대망의 1화가 공개됐다.
대규는 가까운 친구들인 준섭과 진섭 형제, 상민, 진희 등과 함께 가게를 정리한 후 준빌딩의 매장에서 드라마를 보았다.
“오오, 나온다!”
상민이 컴퓨터 화면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화면 속에는 뚱보 특수 분장을 한 채아가 열심히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키야, 한채아 먹는 모습 좀 봐. 뚱땡이 분장을 했는데도 진짜 예쁘다. 저 정도면 CF 몇 개 들어오겠는걸.”
“대규야, 우리 아예 도시락 CF 한채아한테 맡기면 안 되냐?”
상민과 진섭이 흥분하고 있는데 진희가 이렇게 말했다.
“그것보다 사장님, 이거 조회수 장난 아니에요. 완전 대박 각인데요?”
진희의 말이 사실이었다.
1화의 조회수는 엄청났고, 모든 인터넷 기사들은 ‘환골탈태’가 역대 방영된 웹드라마 중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스타트를 끊었다고 감탄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반응도 꽤 좋았다고 했다.
특히 1화에서 특수 분장한 채아가 다이어트 도시락을 폭풍 흡입하는 장면은 꽤나 강렬했는지 그 부분만 편집돼 인터넷 등지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다이어트 도시락은 더욱 유명해졌고, 이에 대규식품의 다른 도시락들도 그 버프를 받아 매출이 증가했다.
이제 아예 인터넷엔 ‘대규식품 도시락 짤’이라는 제목의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탕꼬 도시락을 먹은 쇼 호스트들의 사진들과 채아의 드라마 속 장면 사진들이 합쳐진 것이었는데 인터넷에서 꽤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것 말고도 패러디 게시글은 넘쳐났다.
심지어 몇 년 전, 모 후보의 대통령 선거 대자보를 패러디해 만든 게시글의 경우엔 방송에 나온 대규의 얼굴을 박아 놓고 밑에 이렇게 적어 놨다.
[도시락으로 대동단결!]
1인 식당 혼밥탕꼬와 테이크아웃 전문점 프랜차이즈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제 젊은 층 사이에서 대규식품과 탕꼬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렸다.
대규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인터넷 사이트의 검색창에 ‘탕’이라고 쳐 봤다.
‘됐다!’
서든어택 ‘탕카페’와 유명 배우 ‘탕웨이’를 제치고 탕꼬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내친김에 대규식품의 ‘대’ 자도 쳐 봤지만 아쉽게도 대법원경매정보가 처음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의 홈페이지와 함께 말이다.
‘그래. 아무리 대규식품이 잘나가도 대한민국 사법기관의 심장부인 대법원을 이길 순 없지.’
가슴 떨리는 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웹드라마 첫 화가 방영된 다음 날, 준섭이 대규의 사무실로 들어와 태블릿을 건넸다.
“사장님, 중국에도 우리 회사의 도시락과 탕꼬가 소문나기 시작했습니다.”
태블릿에는 중국의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웨이보(Weibo)의 화면이 떠 있었다.
게시글과 댓글엔 중국식 한자들이 가득 적혀서 알아볼 수 없었는데, 바로 공략집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략집이 언어를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모든 언어는 사용자의 모국 언어로 보입니다.>
대부분 채아가 드라마에서 먹은 도시락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얘기와 먹어 보고 싶다는 반응 등이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알아낸 건지 탕꼬 도시락에 대한 정보까지 알고 있는 듯했다.
대규는 진심 감탄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인들의 정보력은 대단하군요.”
“한국 여행 와서 먹어 본 관광객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예전에 준빌딩의 탕꼬에서 일할 때 종종 중국인들이 보인 적도 있었다.
심지어 한 댓글을 보니 탕꼬가 닭으로 만든 꿔바로우 같은 음식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중국인도 있었다.
아무래도 탕수육 치킨이다 보니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음식이라고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결과는 생각지 못했네요. 다이어트 도시락뿐만 아니라 탕꼬 도시락이나 탕꼬 자체도 중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네요. 확실히 탕수육이 베이스라 거부감도 덜 할 테고…….”
대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화면 속의 댓글들을 바라보았다.
‘세계인들이 나의 음식에 관심을 갖다니!’
그때 준섭이 희망적인 목소리로 대규를 보며 말했다.
“그럼 중국이나 일본 쪽으론 진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 한번 해외 진출을 생각해 보십시오. 소스의 풍미나 맛을 현지 사람들 입맛에 맞게 살짝 가공한다면 의외로 대박이 날 수도 있겠는데요?”
“알겠습니다. 해외 진출이라… 꿈같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준섭을 바라보자 그는 씨익 웃었다.
“그만큼 사장님의 요리가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저는 틈나는 대로 중국과 일본 쪽 시장조사를 꼼꼼하게 하겠습니다.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메뉴라 생각하고 급하게 해외 진출을 했다가 망한 사례들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국내 프랜차이즈 사업과 도시락 유통에 신경을 더 써 주세요.”
* * *
“휴, 정신없다~”
오피스텔로 돌아온 대규는 소파에 앉아 중얼거렸다.
현실 세계에서의 시간은 항상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오늘이 소환 날이었다.
‘벌써 석 달이나 흘렀단 말인가.’
하긴, 그동안 홈쇼핑 방송에도 출연했고 공장도 세웠다. 게다가 드라마와 연예 기획사에 도시락 협찬까지 했으니.
현실에서의 사업들이 정신없이 진행되어 그전처럼 신체를 단련할 시간도 없었다.
‘소환 전에 불카누스의 사슬 검으로 검술 연습을 좀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불카누스의 사슬 검은 휘두를 때마다 불꽃이 일렁여서 현실에선 제대로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무한의 격투장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아무리 그래도 소환 전에 칼은 좀 휘둘러 봐야 하지 않을까?’
대규는 준 빌딩의 옥상으로 날아갔다. 그간 신체 단련을 하지 못해 운동 기구에는 새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검을 꺼내 한번 휘둘러봤다.
휘리릭-
화르륵!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불꽃이 일렁이며 춤을 췄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휘둘렀지만, 숨이 전혀 차지 않았다.
‘세미데우스가 된 이후 확실히 덜 피곤해지는 거 같아.’
심지어 요즘엔 사업 때문에 너무 바빠서 잠을 4시간밖에 자지 못했는데도 항상 쌩쌩했다.
‘이러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확실히 육체가 그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정 안 되면 오시리스의 고사리 육수를 마셔 가며 체력 보충을 하려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검을 실컷 휘두른 대규는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 순식간에 오피스텔로 순간 이동한 뒤, 포탈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번에 넘어가면 아테나 여신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다.
분명 지난번 판테온의 신전에서 여신이 그렇게 말했다.
‘아마 전투에 투입되면 이곳 현실의 일들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싸움에만 집중하겠지.’
항상 그런 식이었다.
한쪽 세계에 있으면 그곳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세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런저런 잡생각 없이 당장 내 앞에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시간은 놀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만큼의 보상도 주어졌고.
‘그런데 아테나 여신과 함께 하는 전투는 어떨까?’
‘동부 전선에서 봤던 기가스 팔라스 같은 적장들이 잔뜩 나오려나?’
하지만 이제 세미데우스가 된 자신은 기가스 팔라스가 떼거지로 덤벼도 아무렇지 않았다.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 같은 녀석이라도 나타난다면 모를까…….
‘나, 너무 자만하고 있는 건가?’
그것보다 자신과 같이 아테나 여신의 군대로 투입된 인간 영웅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들은 이제 레벨 30 언저리 정도 수준이니 동부 전선의 방어전 같은 어렵지 않은 전투에 일반 보병으로 투입되겠지.
‘불과 지난번 전투 소환 때만 해도 나는 그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불현듯 머릿속에 지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앞으로는 만날 일이 없겠지.’
그래도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와는 차원의 틈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봐 왔다.
이번에 소환돼서 만나면 제대로 작별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나와 그녀는 이제 다른 세계 사람이 돼 버린 거야.’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는 법.
앞으로는 새로운 영웅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