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83화. 무한의 격투장 (2)
다시 부활했다.
꿰뚫린 목은 멀끔하게 돌아왔고 몸은 가벼웠다.
하지만 몹시 아쉬웠다
‘젠장, 심장을 찌를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상황에서 목을 꿰뚫릴 게 뭐람!’
분통이 터질 만큼 아쉬웠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심하고 잘 방어하지 못한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빨리 일어나라.”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렸고 대규는 천천히 일어나서 롱 소드와 방패를 들고 전투 자세를 잡았다.
헤라클레스 역시 빛이 나는 롱 소드를 쥐고 대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헤라클레스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내심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기인 일격의 슬래시를 따라 한 것도 놀라웠고, 그걸 속임수로 써서 심장을 공격하러 들어온 것도 놀라웠다.
간발의 차이로 녀석의 목을 꿰뚫지 않았다면 정말 당했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저런 녀석이… 아무리 레벨이 81이라고 하지만…….’
레벨이 81이라도 대규는 고작 인간 영웅이었다. 한계 레벨 100에 도달한 인간 영웅들도 신인 자신에게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고작 저 녀석이 감히 나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 와?’
믿기지가 않았다.
게다가 한 달간 대규를 훈련시키면서 놀란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엔 비리비리하고 왜소한 녀석이 운 좋게 우연히 판테온을 떠돌다가 이곳 버려진 신전으로 들어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꽤 전투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잔뜩 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의 공격을 감지하고 막아 내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재능인 건가? 아니지. 그 정도로 재능이 있는 녀석이라면 훈련 초반에 그렇게 쉽게 죽진 않았을 텐데…….’
대규는 싸우면 싸울수록, 죽으면 죽을수록 확실히 점점 강해졌고, 헤라클레스가 훈련시켰던 다른 영웅들에 비해 그 성장 속도가 확연히 빨랐다.
물론 그만큼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한다. 죽어도 항상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나 전투 자세를 잡는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힘들어하면 좌절하는 기색이라도 보일 텐데, 녀석은 그런 것도 없었다.
꼭 훈련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 같았다.
1차 기간토마키아를 거치고 여러 인간 영웅들을 그간 봐 왔지만, 이런 녀석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우연히 이곳에 들어온 게 아닐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훈련할 맛이 나는 인간 영웅 녀석이다!
대규는 다시 전투 자세를 잡고 헤라클레스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달려오는 대규를 향해 씨익 웃으며 역시 검을 휘둘렀다.
챙챙챙-!
검날이 맹렬하게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 * *
‘아오, 아깝게 죽은 게 대체 몇 번이냐?’
대규는 또다시 부활해 무한의 격투장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아주 아까웠다.
30번의 합 끝에 겨우 빈틈이 보였다. 그 빈틈을 뚫고 대규는 자신의 롱 소드를 재빨리 휘둘렀다.
휘릭-
롱 소드의 검날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헤라클레스의 심장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갔다.
공격의 주도권은 확실히 대규가 잡았었다. 결정적으로 칼날이 헤라클레스의 목을 꿰뚫으려는 찰나,
푹!
“쿨럭!”
대규의 복부가 먼저 꿰뚫렸다.
튀어나오는 내장을 보며 의식을 잃었고 다시 이렇게 깨어났다.
‘아, 진짜 쫌! 어떻게 공격 한 번을 못 하냐.’
사실 오늘 훈련으로 대규는 이미 엄청나게 성장했다.
검술 실력은 90을 넘었고 반사 신경은 이제 80이다. 공격 감지력도 벌써 53이 됐다.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이기고 싶다. 이기는 건 무리라도 딱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공격을 먹여 주고 싶다! 특히나 저 표정을 보면 말이지.’
헤라클레스는 아직도 거만한 표정으로 ‘역시 넌 안 돼.’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훈련 첫날부터 저 표정은 바뀐 적이 없다. 아무리 그가 위엄에 넘치는 신이라지만, 대규는 언젠가 저 표정을 납작하게 눌러 주고 싶었다.
대규는 타타탓 스텝을 빠르게 밟으며 헤라클레스를 향해 전진했다.
“하아압!”
하이 가드 자세로 칼을 있는 힘껏 크게 휘둘렀다. 손목의 힘과 스냅에 의해 칼날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헤라클레스의 몸으로 떨어졌다.
헤라클레스 역시 칼을 들어 공격을 막아 냈다.
까아앙!
두 칼날이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대치했다. 대규는 이를 악물고 칼날을 밀어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며 이렇게 내뱉었다.
“한 번 더 하게 해 달라 해서,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하는지 보려고 했는데… 이건 시시하고 힘만 잔뜩 들어간 공격이로군.”
힘이 잔뜩 들어간 칼날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대규는 순식간에 몸을 낮춘 뒤 칼날을 싹 거뒀다.
과하게 대규의 칼날을 밀어내던 헤라클레스의 검이 힘의 방향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때를 기다렸다!’
몸을 숙여 낮추자 바로 눈앞에 헤라클레스의 두 다리가 보였다. 대규는 그의 다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이 자식이……?”
대규의 칼날이 헤라클레스의 허벅지에 파고들려는 찰나,
깡!
방패가 허벅지를 막았고 대규는 뒤로 물러났다.
타타탓.
그사이 헤라클레스가 높게 점프해 일격의 슬래시를 쓰려고 했다.
대규의 정수리를 향해 찬바람이 날아왔다.
몸을 돌려 피하자마자 내려치는 슬래시의 궤도가 바뀌었고 헤라클레스의 검은 이제 대규의 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무슨 저 커다란 검을 저렇게 빨리 휘둘러?’
깡깡깡.
대규는 방패로 그의 공격을 막기 바빴다.
“으윽!”
어느새 헤라클레스의 칼이 방패를 들고 있던 대규의 왼쪽 팔을 찔렀다.
입에서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고, 흘러나온 피가 가죽 갑옷을 적셨다. 하지만 대규는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시시하군!”
헤라클레스가 거만한 목소리로 말하며 대규의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아까만큼 맹렬하지 않았다.
‘방심하고 있다.’
공격의 주도권은 저쪽으로 넘어갔지만, 그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파고들 수 있다. 아무리 상대가 부상을 입었다 해도 전투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대규는 틈이 나자 칼자루를 쥐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손을 향해 공격했다.
헤라클레스는 칼자루와 칼날 사이 수평으로 난 크로스 가드로 황급히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이어서 살짝 주춤했다.
지금이다.
대규는 그의 가슴팍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런 무엄한!”
휘릭-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계획대로다.
자신의 목을 치는 데 집중한 나머지 헤라클레스의 가슴은 비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가슴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물론 대규의 목은 그의 칼날에 떨어질 것이다. 여태까지 대규는 무의식적으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방어를 하려다 오히려 헤라클레스의 속임수에 역공격을 당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무의식적 습관을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수밖에 없다.’
헤라클레스 같은 실력자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면 이쪽도 그만큼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계책이랄까.
‘이렇게 해서라도 그에게 치명상을 먹일 수 있다면…….’
설사 여기서 죽는다 해도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대규는 헤라클레스의 가슴을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크헉!”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대규 역시 목뼈가 산산조각 나는 고통이 느껴지며 호흡을 할 수 없었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지만 대규는 헤라클레스의 가슴을 꿰뚫은 자신의 롱 소드를 놓지 않았다.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세게 쥐었다.
드디어 그에게 처음으로 공격을 가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대규는 만족감을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얼마 후 다시 격투장 바닥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몸은 멀쩡했다. 물론 헤라클레스 역시 멀쩡한 몸으로 깨어나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약간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나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던 것이다.
[헤라클레스에게 공격을 성공시킨 대가로 공격 능력들이 대폭 상승합니다.]
[검술 100] [반사 신경 90] [공격 감지력 70]
단 한 번의 전투로 검술이 10이 올랐다.
반사 신경 역시 10이 올랐고 공격 감지력은 17이나 올랐다.
‘엄청난 결과다.’
헤라클레스는 여전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날 무시하던 인간 영웅 녀석에게 심장이 꿰뚫렸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대규는 그런 그를 씩 웃으며 바라보며 만족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훈련은 끝인가 보군요. 그럼 사흘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기다려라.”
뭐지? 설마 계속 훈련을 하잔 소린 아니겠지.
‘혹시 나한테 공격받은 것에 대해 화가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안 봐주고 난도질하려는 거 아니야?’
살짝 두려워졌는데 헤라클레스의 입에선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뿐만 아니라 나와 하는 모든 훈련이 종료되었노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대는 판테온의 시련을 겪을 만한 수준을 갖추게 됐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거만함이 싹 가셨고, 예를 갖춘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헤라클레스의 훈련은 모두 마쳤습니다. 따라서 판테온의 시련에 도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레벨이 100으로 상승합니다.]
[인간 영웅으로서 최고 한계 레벨이 도달했습니다.]
[판테온의 시련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촤아악.
온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레벨이 올랐단 증거였다.
하지만 대규는 기분이 몹시 얼떨떨했다.
여태까지 보스 몬스터를 잡거나 미션 수행 보상으로 3단계 정도 한꺼번에 오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19단계나 한꺼번에 레벨이 오른 적은 없었다.
자신은 단지 헤라클레스에게 치명상을 한 번 입혔을 뿐인데!
‘아무리 훈련이라도 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건 엄청난 일인가 보구나.’
대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말로 레벨이 100이 되어 있었다.
김대규(영웅)
Lv. 100(MAX)
생명력 2,090/2,090
마나 575/575
근력 106(+5)
민첩 105(+7)
지능 105(+5)
운 5(+5)
권위 17(+3)
헤라클레스가 대규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제 판테온의 시련에 도전할 수 있다. 일주일 뒤에 소환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 기간토마키아 전투는 어떻게 됩니까?”
“그대가 그 시련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반신반인이 된 상태로 기간토마키아 전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시련에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는 죽어 있겠지.”
간단명료하군.
대체 그 시련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헤라클레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훈련을 무사히 마친 걸 축하한다. 이건 내가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진기한 아이템이라도 주려나? 기대감을 가득 안고 대규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헤라클레스의 손 위에 떠오른 것은 빛이 나는 작은 책이었다.
‘스킬북!’
간만의 스킬북이었다. 대규는 떨리는 손으로 스킬북을 받았다.
신이 주는 스킬북이라니, 확실히 엄청난 스킬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스킬북은 여태까지 봤던 스킬북들과 다르게 생겼다. 일단 책장이 황금빛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책 표지에 스킬명이 적혀 있는데 여기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대규는 일단 책장을 열었다.
그러자 황금빛이 책 안에서 파도처럼 뿜어져 나와 그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