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82화. 무한의 격투장 (1)
어느새 몸의 피로가 싹 가셨다. 종일 기침을 해 대서 따가워진 목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준섭이 놀라서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건강 차라니까요. 그럼 개발한 메뉴들을 봐주세요.”
준섭은 된장찌개와 삼첩반상을 먹고 맛봤다.
맛은 훌륭했다. 이 정도면 사업을 벌여도 될 것 같았다.
특히나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집에서 끓인 평범한 된장찌개 같았다. 하지만 분명 묘한 감칠맛과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이 맛은 대체 뭐야?’
그 묘한 감칠맛이 된장찌개의 맛을 200% 끌어 올려 주고 있었다.
삼첩반상을 맛본 준섭의 표정이 환해졌다.
게다가 정말 이상한 것은 이 찌개를 먹을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기 기운과 피로로 온몸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그 피로가 어느새 싹 가셨다.
‘기분 탓일까?’
기침도 멎었고 줄줄 흘렀던 콧물도 멈췄다.
“사장님, 이 정도 맛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대규는 준섭에게 말했다.
“메인은 밥, 찌개의 반찬들인데 반찬들은 더 종류를 많이 만들어서 매일 조금씩 다르게 로테이션을 돌리려고 해요. 추가 메뉴론 생선구이, 제육볶음 같은 거도 시킬 수 있게 하려구요.”
“아주 좋군요.”
“대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만.”
“뭡니까?”
준섭이 묻자 대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특수한 육수가 필요합니다. 제가 개발한 거지요.”
대규는 준섭에게 가스레인지 위, 국통에 들어 있는 고사리 육수를 보여 줬다.
“이건 저만의 비법으로 만든 거라 부사장님게도 레시피를 알려 드릴 수 없다는 점, 이에 대해 일단 양해부터 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부탁하실 일이라는 건?”
“이 백반 사업을 프랜차이즈화하려면 탕꼬에 들어가는 양념처럼 이 육수 역시 무조건 본사에서 공급해야 합니다. 이 육수가 없으면 된장찌개의 맛이 살아나지 않아요. 시판 된장을 사서 끓인다고 해도 맛을 내려면 이 육수는 꼭 필요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육수 상태로 공급하기에는 유통 기간도 그렇고, 유통 과정도 냉동 상태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상승하는 문제도 있고 해서 분말 스프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준섭이 알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분무 건조 시설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대규는 전날 밤 붉은 고사리로 우릴 수 있는 육수의 양을 계산해 봤다.
일단 붉은 고사리 한 개의 무개는 100kg 정도다. 육수를 20리터 우리려면 고사리 500g이 필요하니까 붉은 고사리 한 개로 우릴 수 있는 육수의 양은 총 4,000l다.
백반 정식 된장찌개 1인분을 끓일 때 필요한 육수의 양은350ml. 그렇다면 4,000l로는 대략 된장찌개 1만 2,000인분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대규가 오시리스의 정원에서 하루에 가져올 수 있는 고사리는 스무 개. 따라서 하루에 24만 인분을 만들 수 있는 육수를 얻게 된다.
한 개의 매장이 하루에 팔 수 있는 식사의 양을 넉넉잡아 대략 300인분이다. 그렇다면 총 800개의 매장까지만 오픈하는 게 가능하다.
혹시 나중에 권위가 올라 가져올 수 있는 고사리의 개수가 늘어나면 프랜차이즈 매장 개수도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육수를 분무 건조시켜 분말로 만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일단 분무 건조를 해 육수를 분말로 만들어 보고 자신이 만든 입소문 양념과 섞었을 때도 붉은 고사리의 효능이 잘 나타나는지 실험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고사리 육수를 분말을 시범적으로 생산해 봐야 한다.
준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럼 일단 시범 생산만 하도록 하지요. 나중에 사업이 확장되면 공장을 세워 분무 건조 시설을 설치하면 되구요. 일단은 그럼 된장도 기존 제조 업체에 하청을 맡겨 OEM(주문자위탁생산) 방식으로 들여오면 되겠군요.”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가맹점이 현지에서 구매해야 하는 재료와 본사에서 공급하는 재료를 잘 구분하는 것이다.
그것을 구분한 뒤, 본사에선 자신들이 공급하는 재료들을 어떻게 대량생산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단 사장님 말대로 이 육수는 분무 건조 방식을 사용해 분말 스프 형태로 가공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건 제가 알고 있는 분무 건조 공장 몇 군데와 컨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대규는 준섭의 말을 들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준섭이 말을 이었다.
“참, 사장님. 1인 식당 ‘혼밥탕꼬’의 가맹점 의뢰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맹점주들을 받기 위해 점포 개발팀을 꾸렸습니다. 현재 가맹점주들과 상담을 하고 점포 계약을 하기 전, 시장조사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몇몇 점포는 이미 선정돼서 점포 계약을 체결했구요.”
가맹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가맹 계약을 맺어 주진 않는다.
상담을 한 뒤, 본사에서 사람을 보내 시장조사를 한다. 개점 후보지를 찾아가 입지 및 라이벌 가게들과의 경합 상황들을 여러 각도로 조사해 가장 적합한 점포를 선정해야 한다.
그 이후에 점포 계약이 완료되면 가맹점과 본사가 가맹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점포 설계, 시공에 들어가고 가맹점주들은 본사에서 프랜차이즈를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지금 상황이라면 빠르면 한달 뒤, 혼밥탕꼬 1호 가맹점이 오픈될 것 같습니다.”
가맹점 오픈이라니. 정말 탕꼬가 프랜차이즈가 되는구나.
‘대기업의 자본을 빌리지 않고, 오직 나만의 힘으로 일궈낸 프랜차이즈라…….’
자신만의 힘이 아니다. 옆에서 저렇게 힘써 주는 준섭이 있으니까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자본이 많지 않으니, 심사숙고해서 골라 딱 열 곳의 매장만 시범 운영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부사장님.”
대규는 감회에 젖은 눈빛으로 준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사장님이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저도 열심히 메뉴 개발에 힘쓰겠습니다. 빨리 우리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아니, 준섭이 형.”
“감사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의기투합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혼밥탕꼬 프랜차이즈 가맹점 열 곳이 오픈했다.
열 곳의 혼밥탕꼬 프랜차이즈 매장들은 모두 서울의 주요 도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특히 회사나 오피스텔이 많은 곳들 위주로 점포를 선정해 매장을 열었다.
오픈 일주일 후.
각 매장들은 하루 매출을 약 120~130만 원 정도 올렸다. 10평 이내인 1인 식당에서 이 정도 매출이면 대성공이었다.
심지어 몇몇 매장은 피크 타임 때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과 SNS에도 화제가 됐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혼밥탕꼬가 생겼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순항을 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투자 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준섭과 대규는 그중 몇 곳을 컨택해 투자를 받기로 했다. 그러면 더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는 빨리 집밥 백반 프랜차이즈 사업도 궤도에 올리고 싶었다. 메뉴 개발은 이제 거의 다 완성됐고, 준섭은 집밥 백반 본점 식당을 오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밥탕꼬는 추가로 가맹점 열 곳을 더 오픈하기로 했다. 마케팅 및 가맹점 관리를 위한 부서와 인원 등은 준섭이 알아서 진행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한 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대규는 홀로 오피스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헤라클레스에게 가야 할 날이었다.
사업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한 달간 10번의 훈련을 했다.
‘정말 힘들어 미칠 것 같았지.’
목도 많이 잘렸고 심장도 수없이 꿰뚫렸다. 하지만 그만큼 강해졌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대규는 자신의 상태창을 띄워서 봐 왔다.
지금도 상태창을 보고 싶었다.
김대규(영웅)
Lv. 81(경험치 51.00%)
생명력 1,710/1,710
마나 480/480
근력 87(+5)
민첩 86(+7)
지능 86(+5)
운 5(+5)
권위 17(+3)
단기간에 빠르게 올라간 레벨과 스탯을 보면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근성 스킬로 올린 능력들도 한번 봐 볼까.
[검술 78] [맷집 152] [반사 신경 75] [공격 감지력 45] [체력 85] [주력 78] [지구력 80] [경영 20] [세무 18] [신화 10]
맷집이 152라. 이젠 몇 번이나 죽었는지 감도 안 잡힌다.
훈련 첫날엔 한 번 죽을 때마다 맷집이 2씩 올랐는데, 훈련이 거듭될수록 아무리 죽어도 잘 오르지 않았다. 이건 다른 능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감안해도 단기간에 엄청 올랐다.
이젠 훈련 도중 죽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초반엔 고통 때문에 너무 괴로웠는데 이젠 ‘아, 또 죽는구나.’ 하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확실히 맷집이 오르긴 했군.’
경영, 세무, 신화는 헤라클레스의 훈련이 아니라 책을 스스로 읽고 지식을 쌓아야 오르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근성 스킬로 올린 능력이니까 점검하는 김에 같이 점검했다.
가맹점 오픈으로 바빴지만 그래도 틈틈이 독서를 하며 지식을 쌓아 올렸다. 앞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더욱 확장하려면 저런 지식들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신화 책의 경우 앞으로의 소환에 대비해서 읽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신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벌써 레벨이 80을 넘었다니…….’
자신과 같이 전투에 참여했던 인간 영웅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내 모습을 보면 더욱 놀라겠군.’
그들이야 아마 끽해 봐야 레벨이 40 근처일 터. 이미 대규는 그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공략집을 지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른 세계 사람이었지만.’
하지만 정말 처참한 일은 레벨이 80을 넘었는데도 단 한 번도 훈련에서 헤라클레스를 이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 그의 공격을 열 합까지는 받아 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공격을 받아 내며 방어는 해도, 아직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헤라클레스는 아직도 대규를 무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놈의 눈빛! 오늘은 정말 한 대 먹여 주고 싶군.’
그보다 공략집에 따르면, 이 훈련이 끝날 때쯤이면 판테온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단 말은 훈련이 끝날 땐, 인간 영웅의 한계 레벨인 100을 달성하게 된다는 걸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11단계… 레벨 100이 되면 헤라클레스의 훈련이 끝나는 건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레벨 100을 달성한다고 신들이 내린 판테온의 시련을 무조건 극복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한다.
애초에 그 판테온의 시련이란 게 뭔지도 모르겠고.
우우웅-
까만 격투장 열쇠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곧 격투장으로 이동된단 신호다.
대규는 열쇠를 쥐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헤라클레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기를 기도하며 격투장으로 이동했다.
* * *
무한의 격투장에 도착했다.
질릴 만큼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느새 몸에는 가죽 갑옷이 입혀져 있다.
대규는 벽으로 가서 항상 자신이 쓰는 롱 소드와 방패를 가져왔다.
‘오늘은 제발 헤라클레스에게 한 번이라도 치명타를 가했으면…….’
확실히 실력이 늘긴 했나 보다.
훈련 초반의 목표는 ‘오늘은 제발 좀 적게 죽었으면 좋겠다.’였는데 이젠 공격을 할 생각도 하고 있다.
“뭘 꾸물대고 있느냐?”
등 뒤에서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미세하게 변하는 공기의 흐름.
대규는 황급히 뒤를 돌아 롱 소드를 휘둘렀다.
까아앙!
칼날끼리 맞부딪혔다.
대규는 이를 악물고 헤라클레스를 마주 보며 말했다.
“등짝을 보이고 있을 때 공격하다니, 너무 비겁하신 거 아닙니까?”
“흥, 실전에서도 그런 변명이 통할 것 같으냐?”
타탓.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대규는 검과 방패를 들고 본격적인 전투 자세를 취했다.
등을 곧게 편 뒤 약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물론 몸에 힘은 빼고 긴장은 풀어야 한다.
긴장하면 쉽게 피로가 몰려오며 제대로 된 스피드를 낼 수 없다.
무릎은 약간 구부린 뒤, 무게중심을 앞발 쪽으로 쏠리게 했다.
그냥 보면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자세지만, 기본적인 롱 소드 검술 자세로 최대한의 힘과 스피드를 발휘할 수 있는 자세다.
처음엔 자세가 잘 잡히지 않아 고생했지만, 이제는 안정적이고 유동적이었다.
검술 자세의 기본은 이동성과 안정성, 균형 있고 유연한 자세에서 나오는 힘이다.
아무리 근력이 높아도, 심지어 힘 스킬로 근력을 단번에 높여도 자세가 이상하면 그만큼 힘이 검에 실리지 않는다.
반면 자세가 잘 잡히면, 상대적으로 근력이 낮아도 검에 큰 위력이 실린다.
대규는 방패로 몸을 막고 천천히 롱 소드를 머리 위로 쳐들었다.
상단 가드(High Guard)의 자세.
방패를 든 검술에서 가장 많이 취하는 공격형 자세였다.
보다 강력한 공격을 하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리는 자세이며, 큰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위협도 가할 수 있다.
헤라클레스 역시 검을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타탓!
그의 검을 피하며 대규는 이리저리 자신의 롱 소드를 휘둘렀다.
휘릭- 휙- 휘릭-
대각선, 상하좌우로 바람을 가르며 현란하게 움직이는 롱 소드의 칼날.
칼날과 함께 대규의 발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타탓, 타탓!
상단 가드의 장점은 어느 방향으로나 칼날 공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대규의 공격들을 가뿐하게 피한 뒤, 머리 위로 검을 쳐들고는 높게 점프했다.
헤라클레스의 장기, 일격의 슬래시(Slash)!
점프해서 상대방의 정수리 위로 검을 강하게 내리친다. 적보다 속도와 힘에 자신감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보통 방패로 머리 위를 막을 새도 없이 상대방은 저 일격에 그냥 정수리가 갈라진다. 대규 역시 저 일격으로 열 번 넘게 머리통이 반 토막 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재빨리 정수리 위로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까아앙!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방패로 충격이 전해졌다.
“으윽…….”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막아 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진짜 무서움은 지금부터다.
일격의 슬래시가 준 충격으로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주춤하는 사이 펼쳐지는 헤라클레스의 현란한 찌르기 공격!
헤라클레스는 검을 45도 각도로 향해 든 채,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팟팟팟!
칼날이 대규의 빈틈을 노리며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왔다.
휘익-
바람을 가르며 뾰족한 칼날 끝이 대규의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몸을 간신히 돌려 방패로 칼날을 막아 냈다.
턱! 턱! 턱!
쉴 새 없이 방패로 칼날을 막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 사이 급소를 노리고 검날이 날아왔다.
대규는 다리 사이를 방패로 가리려고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궤도를 바꿔 턱을 향해 날아오는 검날!
‘이럴 줄 알았지!’
다리 사이를 가리는 척하면서 방패를 바로 얼굴 쪽으로 들어 공격을 막아 냈다.
까앙!
방패에 충격이 전해졌다.
“제법이구나.”
헤라클레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렴, 여태까지 수없이 당해 왔는데…….
훈련 동안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바로 헤라클레스가 속임수를 잘 쓴다는 사실이었다.
훈련 초반 다리 사이 급소를 향해 날아오는 칼날을 보고 대규는 기겁했었다.
어차피 죽어도 부활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다리 사이를 방패로 가렸다. 그곳을 칼날에 꿰뚫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아찔했고 뭔가 치욕적인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대규의 방패가 다리 쪽으로 향하자마자 헤라클레스의 칼날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처음에 그 속임수 공격을 당했을 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갑자기 변하는 공격 궤도를 대체 어떻게 간파하란 말이냐!
계속 훈련을 하면서(혹은 죽어 가면서) 공격 감지력이 늘었고, 이제는 그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준이 됐다.
하지만 공격할 틈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챙챙챙!
지금도 열 합이 넘는 공격을 받아 내고 있지만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기적같이 빈틈이 생겼다.
대규가 기습적으로 찌른 공격을 급하게 막느라 헤라클레스가 방패를 들어 공격을 튕겨 낼 때였다.
주춤.
급하게 튕긴 탓에 헤라클레스의 발이 살짝 균형을 잃었다.
1초도 안 되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대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뒤로 재빨리 물러난 뒤 점프해 공중에서 발을 굴렀다.
그리고 검을 머리 위로 높게 쳐들었다.
“흐아압!”
헤라클레스의 일격의 슬래시와 동일한 기술!
대규의 롱 소드가 헤라클레스의 정수리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감히 이 몸의 기술을 따라 한단 말이냐!”
가소롭다는 듯 방패를 들어 머리 위를 박는 헤라클레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공격은 이쪽이라고!
대규의 칼날이 순식간에 궤도를 바꿔 헤라클레스의 빈틈인 상체를 향했다.
푹-
자신의 목을 꿰뚫는 칼날의 서늘한 감촉.
예리한 고통과 함께 입에서 뜨뜻한 피가 흘러나왔다.
“쿨럭!”
빌어먹을, 또 죽는구나.
텅!
헤라클레스의 갑주에 닿았던 롱 소드가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젠장, 진짜 이길 줄 알았는데…….’
대규의 몸이 격투장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