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80화. 홈쇼핑 박 PD
눈앞에 놓인 방패와 가죽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다가 보관함에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모루가 떠올랐다.
‘혹시 모루를 이용하면 방패에 가죽을 덧댈 수 있지 않을까? 무기도 제작하는 모루인데.’
그때 공략집이 떴다.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이용해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을 아이템에 덧댈 수 있습니다. 덧대는 비용으로 그레이 등급 젬스톤 3개가 필요합니다.>
된다.
대규는 보관함에서 모루를 꺼냈다.
제1 타르타로스의 클리티오스의 동굴에서 체인 블레이드를 조합한 이후 처음으로 꺼내 보는 것이다.
모루 위에 우선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을 펴서 올려놓았다. 가죽이 모루 전체를 식탁보처럼 덮어 버리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기가스 팔라스 가죽을 다른 아이템에 덧대기 위해선 그레이 등급 젬스톤 3개가 비용으로 필요합니다. 그레이 젬스톤 3개와 덧댈 아이템을 가죽에 올려놓으십시오.]
대규는 네메시스의 방패와 그레이 젬스톤 3개를 꺼내 가죽에 올려놓았다.
방패는 팔찌의 형태로 변한 상태였다.
모두 올려놓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재료들이 모두 구비됐습니다. 네메시스의 방패에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을 덧대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모루가 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과 팔찌 형태로 변한 방패, 그리고 그레이 젬스톤 3개가 모루 위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곧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이 방패와 젬스톤을 보자기처럼 감싸기 시작했고 모루 주변에 투명한 막이 형성됐다.
투명한 막 안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얼마 후 모루 위에는 붉은 팔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가스 팔라스의 붉은 가죽이 덮인 팔찌형 방패였다. 팔찌를 둘러싸고 있는 가죽에선 윤기가 쫘르륵 흘렀다.
팔찌를 집어 들자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기가스 팔라스의 가죽을 덧댄 네메시스의 방패(중급)]
[기존 네메시스의 방패(중급)에서 기가스 팔라스 가죽을 덧대서 물리 방어력이 30% 추가됐다.]
성공이다.
대규는 새로운 방패를 왼손 팔목에 찼다.
팔찌형 방패가 손목에 착 감겨들었다.
지잉-
손목을 허공에 휘두르자 붉은 방패가 손목 위에 생성됐다. 그전까지 은빛으로 빛났던 방패의 몸은 이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반사 데미지에 물리 방어력까지 갖춘 방패라니, 아주 좋아!’
대규는 만족스런 얼굴로 가죽을 덧댄 네메시스의 방패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모험 정산 타임은 끝났다.
대규는 장비들을 보관함에 잘 넣어 둔 뒤 침대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 * *
국세청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고, 제일푸드시스템과 MPK의 회사 이미지는 점점 안 좋아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민심과 여론도 썩 좋지 않았다.
반면 대규식품과 탕꼬 도시락, 컵밥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명을 밝힌 뒤 영주에 추가로 지원한 구호 도시락들의 반응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며칠 동안 올랐고 인터넷 기사까지 올라왔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온종일 탕꼬 도시락과 대규식품 이야기뿐이었다.
-탕꼬 도시락 개맛있음! 우리 회사 이번에 야유회 가는데 단체 주문하고 싶다.
-왜 이건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으로 안 팔지? 팔면 대박일 텐데. ㅠㅠ
-윗님 모름? 몇 주 전에 탕꼬 도시락 ㄷㅇ 홈쇼핑에서 한 번 광고했었음. 근데 그때 갑자기 반품 사태 일어나고 폭망했음.
-왜 반품 사태가 일어났지? 이렇게 맛있는데… 진짜 이상하다.
-울 학교 급식을 탕꼬 도시락으로! 탕꼬 도시락으로!
-ㅈㅇㅍㄷ랑 다른 경쟁자 회사에서 일부러 한 번에 주문했다가 반품했다는 카더라 썰이 있었음. 만약 진짜면 거의 옛날 삼양라면 우지파동급 아니냐? ㄷㄷㄷ
-ㅈㅇㅍㄷ면 이번에 탈세로 걸린 데 아님? 인성 보소. 오늘부로 도레미 피자 OUT!
-혹시 그 홈쇼핑 회사도 한통속이었던 거 아니냐? 탕꼬 차라리 다른 홈쇼핑하고 계약해서 대박 났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터넷에서 대규식품과 탕꼬 도시락의 이야기는 퍼져 나갔다.
도시락이 인지도와 명성을 얻자, 전국의 홈쇼핑 업체들이 다시 전화를 해 왔다. 각자 자신들의 회사와 계약을 맺자는 것이었다.
결국, 준섭과 대규는 그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K홈쇼핑과 계약을 맺기로 했다.
K홈쇼핑은 그전에 계약했던 다원 홈쇼핑과 규모가 비슷한 라이벌 업체였다. 이번 도시락 구호 물품 때문에 인지도가 확 높아져서 그런지 이쪽에서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먼저 연락을 취해 왔다.
준섭과 대규는 기분 좋게 계약을 했고, 광고 방송도 전일권을 따냈다.
홈쇼핑 방송이 나가기 시작하자마자 탕꼬 도시락과 다이어트 도시락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주문량은 다원 홈쇼핑 광고 때보다 몇 배나 많았다.
팔리자마자 구매 후기와 별점들이 좌르르 달렸고 블로그나 SNS엔 인증샷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유튜브에서 먹방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한 BJ가 탕꼬&다이어트 도시락, 컵밥을 종류별로 사 놓고 모조리 먹는 먹방까지 해서 더더욱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로 인해 구매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대규도 유튜브 먹방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그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도시락과 컵밥의 매출은 연일 고공 행진을 이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대규식품 사무실로 찾아왔다.
30대 중반의 남자. 준섭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봤다.
다원 홈쇼핑 방송의 박 PD!
‘저 사람이 이곳에 찾아오다니.’
준섭은 내심 놀랐다.
원래 홈쇼핑 회사, 그것도 다원 홈쇼핑처럼 잘나가는 홈쇼핑 회사의 피디는 갑 중에서도 갑이다. 그들은 보통 이렇게 상품을 파는 회사로 찾아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찾아가서 굽실거려도 잘 만나 주지도 않는다.
특히 다원 홈쇼핑의 박 PD는 업계에서도 유명했다. 완벽한 방송을 만들어 주지만, 그만큼 자존심이 엄청나 대규식품 같은 중소업체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박 PD가 친히 이곳에 행차한 것이다.
준섭과 대규는 박 PD를 손님용 소파에 안내했다. 우선 준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박 PD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박 PD는 비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하하, 전 부사장님과 우리 김 사장님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그 말에 대규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쁘게 지냈습니다만,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당시 다원 홈쇼핑은 반품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보통 그런 반품 사태가 일어나면 먼저 원인을 파악하고, 계약을 파기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상품에 하자가 있어서 반품된 게 아니라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진 않는다.
준섭 말로는 아무래도 대규식품이 중소 업체다 보니까 이런 불합리한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원 홈쇼핑같이 잘나가는 업체들은 중소 업체를 신경 쓰지 않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라며, 더럽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규에게 말했었다.
물론 대규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다원 홈쇼핑의 당시 행태는 용서할 수 없었다.
대규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은 박 PD가 비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 사장님, 전에 그 계약 파기 건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도 정말 그러기 싫었는데 윗선에서 지시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대규는 이렇게 말한 뒤 공략집을 사용해 박 PD의 속마음을 들어 봤다. 절박해 보이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이씨,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람! 반품 사태 터졌을 때, 중소기업이라서 걍 윗선에 보고 들어가기 전에 내 선에서 나가리 쳤는데… 이렇게 대박이 날 줄이야.’
역시 겉으론 거짓말을 하고 있었군.
대규는 기분이 나빠졌지만, 얼굴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어디 한번 들어 보자.
박 PD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계속 윗선에 건의해서 대규식품의 컵밥과 도시락을 다시 방송하기로 결정한 것 아닙니까! 하하, 제가 얼마나 대규식품을 생각하는데요. 지금 와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전 솔직히 처음부터 컵밥과 도시락이 잘나갈 거라 확신했습니다!”
‘웃기는군.’
대규는 뻔한 아부를 하는 박 PD에게 말했다.
“어쩌죠. 저희는 이미 K홈쇼핑과 광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방송 봤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하지만 저희 다원 홈쇼핑과도 같이 계약을 맺고 방송을 하는 게 어떨까요? K홈쇼핑도 좋지만, 저희도 아시다시피 이쪽 업계에서 꽤 경쟁력 있거든요.”
박 PD는 몹시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런, 젠장! 왜 하필이면 K홈쇼핑이야. 나 여기서 계약 못 따 내면 잘리는데… 아, 진짜 그놈의 반품 사태는 왜 일어나서…….’
“이런 대박 상품은 여러 홈쇼핑에서 나눠 팔아야 합니다. 그 편이 한군데에서만 계약을 맺고 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일 거구요. 그리고 이런 좋은 상품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온화한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죽으려고 한다.
칼같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걸 떠올리니 아주 고소했다.
대규는 박 PD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PD님 말씀대로 하고 싶은데… 이미 K홈쇼핑과 독점 계약을 한 상태라서요. 이번 계약이 끝나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죠.”
계약이 끝나도 너희랑은 안 한다. 이미 신뢰를 잃었으니까.
그러자 박 PD가 대규의 옷깃을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김 사장님, 제발… 저 진짜 이 계약 못 따 가면 회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제품이라도 제발…….”
개인적으로 안타깝긴 하지만 앞뒤 사정 안 보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 내친 회사와 다시 계약을 맺고 들어간다는 건 좀 그랬다. 또 상황이 안 좋다고 판단되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입 싹 씻고 휴지 버리듯 내쫓아 버릴 테지.
대규는 박 PD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PD님, 홈쇼핑이 우리 중소기업을 우습게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
“우, 우습게 알고 있다뇨…….”
당황한 박 PD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대규는 말을 이었다.
“우리 대규식품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얘기 끝났으니까 가 보도록 하세요.”
그 말에 박 PD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대규를 바라볼 뿐이었다. 말을 마친 대규는 준섭과 함께 매몰차게 사무실을 나섰다.
도시락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슬슬 자본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규는 영등포의 본사 사무실에 앉아 준섭의 보고를 들으며 생각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발돋움했구나.’
준섭은 현황 보고를 마친 후 대규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젠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입니다. 이곳 영등포의 1인 식당 ‘혼밥탕꼬’를 내세워 가맹주들을 모집할까 합니다.”
1인 식당 ‘혼밥탕꼬’의 경우 10평 내외의 작은 공간만 있으면 매장을 오픈할 수 있어 기존 신촌 준빌딩의 탕꼬보다 프랜차이즈로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준섭은 말을 이었다.
“우선 우리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곳에 가맹주의 요건 및 가맹 신청 절차 등을 세세하게 넣을 예정입니다. 그게 완성된 뒤 본격적으로 가맹주들을 모집하려구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준섭은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장님, 이제 탕수육 치킨 말고 다른 메뉴들도 개발할 때입니다. 언제까지나 탕수육 치킨과 다이어트 도시락만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흐음.”
“프랜차이즈 사업이 성공하려면 여러 메뉴가 나와 줘야 합니다. 차차 사업 분야를 넓혀서 요식업계에서 대규식품의 입지를 세워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항상 메뉴 개발은 생각하는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네요. 부사장님이 보시기에 어떤 음식이나 메뉴가 프랜차이즈에 적합하다고 판단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