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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78화 (78/294)

# 78

78화. 헤라클레스 (1)

쾅.

문이 닫혔고, 주변이 캄캄해졌다. 문을 열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삐그덕.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만들어진 신전 바닥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공략집의 지도창을 띄웠다.

신전 가운데엔 폭이 2미터 정도인 일직선의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몇백 미터 정도 죽 이어져 있었고, 통로 끝 막다른 곳에는 노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함정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저곳이 보상이라는 무한의 격투장인 것 같았다.

대규는 노란 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겉보기에 작아 보였던 신전은 주둔지의 지휘 사령부 천막처럼 그 내부가 완전히 달랐다.

일단 몹시 넓었으며, 통로의 돌바닥이나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은 꼭 낡은 고성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횃불들이 걸려 있었지만 통로는 인간의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밝았다.

혹시나 몬스터라도 튀어나올 걸 대비해 대규는 손에 체인 블레이드를 쥐고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앞으로 나갔다.

다행히 통로에선 그 어떤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았다.

얼마 후 통로의 끝, 막다른 지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드리운 커다랗고 검은 그림자.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누군가가 있다.

큰 덩치의 남자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에선 황금색의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걸로 보아, 신인 것 같았다.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신 이름: 헤라클레스(Heracles)

특징: 제우스가 인간 여자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로 최고의 인간 영웅이었다. 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인간 영웅 중 최고의 공적을 세워 인간에서 신이 돼 판테온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됐다.

<헤라클레스 신은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헤라클레스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할 수는 있습니다.>

<헤라클레스 신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1차 기간토마키아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안내인 여자가 후보생 시절, 그런 말을 했었다. 여러분들은 2차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하게 될 거라고.

그렇다는 건 이 기간토마키아가 예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었다는 뜻.

그땐 그렇게 짐작만 했지만 헤라클레스의 공략집 설명을 보니 확실해졌다.

‘그것보다 기간토마키아에서 최고의 공적을 세우고 인간에서 신이 됐다?’

그럼 이번 2차 기간토마키아에서도 최고의 공적을 세우는 인간 영웅은 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에이, 너무 나갔나. 헤라클레스는 어쨌든 제우스의 아들이잖아.’

하지만 그런 공적을 세운 인간 영웅에겐 필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질 거란 건 확실하다.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너무 머나먼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그때 헤라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진한 눈썹에 각진 얼굴. 얼굴엔 무수히 많은 상처가 나 있었다.

험난한 세월을 겪어 왔다는 게 보기만 해도 느껴졌다.

게다가 몸에서 황금빛이 나는 신이라 그런지 위엄이 느껴졌고,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그는 황금빛의 거대한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망토가 어찌나 큰지 남자의 온몸을 다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헤라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 영웅이여.”

헤라클레스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규와 비슷한 키였지만 몸집은 훨씬 컸다. 우락부락한 근육질로 다부진 몸에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몸에 두른 황금빛 망토는 자세히 보니 망토가 아니라 동물의 가죽이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 수사자의 머리가 박제된 걸로 봐서는 사자의 가죽인 듯했다.

헤라클레스는 대규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렇게 왜소한 녀석이 이곳에 오다니.’

그는 제우스의 명령을 받아 히든 미션 장소인 버려진 신전에서 인간 영웅을 훈련시켜 주기로 했다.

헤라클레스가 거인족과의 첫 번째 전쟁인 제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공적을 세우자 제우스는 왕의 권한으로 반신반인인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들어 줬다.

대신 헤라클레스에게 이 버려진 신전을 찾아오는 영웅을 훈련시키라는 퀘스트를 맡겼다.

물론 이 신전을 찾아오는 인간 영웅은 여태까지 아무도 없었다.

일단 판테온에 인간이 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설사 신의 권한을 이용해 인간이 판테온에 온다 해도 이곳 버려진 신전까지 찾아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초로 신전 문이 열려서 헤라클레스는 만사를 제치고 버려진 신전으로 왔다. 어떤 녀석이 온 건지 몹시 기대됐다.

하지만 저런 비리비리한 녀석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운 좋게 이 근처를 배회하다가 들어온 것 같았다. 하지만 제우스와의 약속은 어길 수 없었다. 저런 녀석이라도 훈련을 시켜야 한다. 저 녀석이 훈련을 극복하든 포기하든 상관없다.

“나는 헤라클레스다. 기대했던 것보다 왜소한 녀석이 왔군.”

깔보는 듯한 그의 말투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때 공략집이 떴다.

<히든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무한의 격투장에 입장해 헤라클레스의 훈련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신의 약속이니 훈련은 시켜 주겠다. 다만 너의 그 왜소한 체구로 나의 훈련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군.”

갑자기 어떤 훈련일지 좀 두려워졌다.

하지만 대규는 이를 악물었다.

‘뭐가 됐든, 버텨 주마.’

왜소하다고 자신을 무시하는 헤라클레스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

어쨌든 자신은 근성 스킬도 지니고 있었다.

훈련을 하면 할수록 능력은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무한의 격투장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격투장이나 혹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사방으로 가로막힌 돌벽만 있을 뿐.

설마 여기서 훈련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때 헤라클레스가 손뼉을 마주쳤다.

짝!

커다란 소리가 신전의 통로를 가득 메웠고 공간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은 격투장같이 생긴 공간에 서 있었다. 벽에는 검, 창, 화살 등 여러 무기가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심지어 검의 경우엔 일반적인 롱 소드부터 거대한 양손 검, 그리고 펜싱 검같이 가볍고 가느다란 검 등 그 종류가 수십 개에 달했다.

‘무기 박물관이야, 뭐야…….’

그때 헤라클레스가 격투장 한가운데로 걸어간 뒤 말했다.

“너는 앞으로 이곳에서 판테온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반신반인의 수준만큼 강해질 것이다. 몸 상태를 보니까 1년도 넘게 걸릴 것 같군.”

헤라클레스는 여전히 대규를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규는 그에게 물었다.

“1년이 넘게 걸린다구요? 하지만 전 아테나 여신께 부탁해서 이곳 판테온을 오늘 딱 하루, 한 시간 동안만 방문한 겁니다. 그것도 이제 20분 정도만 남았는데…….”

헤라클레스는 대규의 말을 자르며 툭 대답했다.

“상관없다. 이곳 ‘무한의 격투장’은 판테온이나 현실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헤라클레스가 말을 마치자 대규가 걸치고 있던 갑옷과 체인 블레이드가 저절로 벗겨지더니 보관함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무한의 격투장에선 당신의 무기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대규에게 귀속된 성장형 아이템들인 네메시스의 방패와 닥튈로이의 반지, 그리고 황금 양털 조끼마저 벗겨져 보관함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규의 몸에는 어느새 기본적인 가죽 갑옷만 입혀져 있었다.

“무기를 들어라.”

헤라클레스의 말에 벽으로 다가가 무기를 골랐다.

항상 검만 써 왔으니 검들이 걸려 있는 벽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롱 소드와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가 격투장 한가운데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덤벼라.”

“지금 말입니까?”

다짜고짜 덤비라는 그의 말에 대규는 당황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망토를 촥, 걷어 올리며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하급한 거인형 몬스터들이 들고 있을 법한 투박한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몽둥이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걸로 봐서, 겉은 허접해 보이지만 분명 만만치 않은 무기인 듯싶었다.

대규는 롱 소드를 들고 전투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급소를 치면 이기는 겁니까?”

“아니다.”

헤라클레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상대방을 죽이는 자가 이기는 거다.”

대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헤라클레스에게 외쳤다.

“이, 이거 훈련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그의 물음을 무시한 채 몽둥이를 휘둘렀다.

대규가 멍해져 있는 사이 나무 몽둥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

방패를 들어 날아오는 몽둥이를 막았다.

하지만 어느새 헤라클레스는 대규의 등 뒤로 순간 이동 한 상태였다.

몸을 돌릴 틈도 없이 대규는 날아오는 몽둥이를 정통으로 맞았다.

퍽!

엄청난 파열음이 들렸고, 뒤통수에 큰 충격이 전해져 왔다.

두개골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코와 입에선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알키오네오스에게 일격을 맞았을 때 봤던 주마등이 눈앞을 스쳐 가고 있었다.

의식이 서서히 흐려졌다.

눈을 뜨자 격투장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헤라클레스가 서 있었다. 대규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분명 죽지 않았습니까?”

두개골이 산산조각 날 때의 느낌과 전해지던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뼈저리게 아프다.’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게 됐다. 말 그대로 골수에 생생히 고통이 사무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 너는 죽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이곳 무한의 격투장에선 싸우다가 아무리 죽어도 계속 부활한다.”

시간도 흐르지 않고 무한히 죽었다 부활할 수 있다니.

훈련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럼 다시 일어나라. 나와 전투할 때, 오랫동안 버텨 낼수록 너의 능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때였다.

[맷집 +12]

그토록 테니스공을 맞아가며 열심히 수련해도 오르지 않던 맷집이 단번에 2가 올랐다.

경이롭다고 해야 하나.

단기간에 맷집 능력을 이렇게 빨리 올린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속 210km 테니스공에 맞는 거랑 헤라클레스의 저 몽둥이를 풀 파워로 맞는 건 차원이 달랐다.

일격에 죽을 정도의 충격이니까.

타탓.

어느새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달려오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대규의 미간 바로 위에서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크윽…….’

재빨리 몸을 숙여 피했다.

휘릭.

등 위로 몽둥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휴, 피했다.

퍽!

어느새 몽둥이는 대규의 척추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제기랄, 분명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끄아악!”

척추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대규는 이를 악문 채 격투장 바닥에 쓰러졌다. 고통이 온몸으로 빠르게 퍼졌다. 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끄으으…….”

바닥에 누워 침을 흘리며 벌레처럼 버둥거렸다.

제기랄, 주마등이 다시 한 번 보였다.

* * *

정확히 열 번 죽었다가 부활했다.

대규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격투장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활하면 몸의 상태는 레벨 업을 한 것처럼 완벽하게 멀쩡했다. 하지만 기분상 온몸이 쿡쿡 쑤시는 것 같았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맷집 +30]

빌어먹을, 또 올랐다.

한 번 죽을 때마다 맷집은 2씩 올랐다.

물론 전해지는 고통은 아직도 상상을 초월한다. 두려움? 당연히 엄청나지.

괜히 인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게 아니다.

더욱 처참한 사실은 열 번을 죽을 동안 대규는 들고 있는 롱 소드를 제대로 휘두른 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턴 이 고통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죽으면 확실히 세계 최고의 맷집 왕은 되겠다.’

맷집 왕이라니. 왠지 서글픈 칭호 같았다.

헤라클레스가 대규를 보며 외쳤다.

“꾸물대지 말고 다시 덤벼라.”

저 양반은 지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대규는 다시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는 헤라클레스를 바라봤다. 두려웠다. 그리고 절망적이었다.

머릿속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기하면 편해…….

어느새 몽둥이가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저걸 피하면 분명 가슴이나 명치를 향해 저 빌어먹을 몽둥이가 날아올 것이다.

여태까지 항상 그런 패턴이었다.

그냥 시원하게 옆구리를 내주고 맷집이나 올릴까.

‘아니, 잠깐만! 내주긴 뭘 내줘! 나 지금 공격 궤도를 예상하고 있잖아.’

대규는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하는 척하며 들고 있는 방패로 상체 정면을 막았다.

까아아앙!

몽둥이와 방패가 큰 파열음을 내며 맞부딪혔고 대규의 몸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퍽!

주르륵.

격투장의 벽에 부딪힌 몸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처음으로 헤라클레스의 일격을 막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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