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77화. 아테나의 보상 (2)
아테나 여신이 직접 내리는 보상이라.
명령을 받은 병사는 지휘 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보석이 박힌 황금 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 상자는 레드 젬스톤이 담겨 있던 황금 상자보다 외관이 훨씬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열어 보거라.”
여신이 온화한 목소리로 명령했고 대규는 상자를 열었다.
촤아악.
은백색의 빛이 상자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빛이 가시자 보이는 물건은 은색의 미스릴 장갑이었다.
대규가 장갑을 집어 들자 아이템 설명창이 떴다.
[아테나 여신의 전술 장갑(전설)]
[아테나 여신이 전투에서 가장 뛰어난 공적을 이룬 병사에게 직접 선사하는 미스릴 장갑.]
[검술, 창술의 숙련도를 30% 향상시켜 주고, 공격력도 추가로 10% 상승됨.]
가만히 보니 일반 병사들은 몰라도 아테나 여신 곁에 있는 높은 장군들은 모조리 이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 장갑은 전투에서 뛰어난 공적을 이룬 자들에게 주는 여신의 선물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장갑을 낀 장군들이 지닌 무기는 주로 검 아니면 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술 장갑은 단순히 공격력만 올려 주는 게 아니라 검술, 창술이라는 구체적인 무기술의 숙련도도 올려 준다.
‘저번에 차원의 문지기와 만났을 땐, 아폴론을 선택하면 궁술을 올려 준다고 했었지.’
앞으로 나올 무기 아이템들은 공격력 상승 같은 단순하고 포괄적인 효과뿐만 이 아니라 각 무기술의 숙련도 같은 구체적인 공격 능력들도 개발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역시 근성 스킬로 검술을 자세히 훈련하길 잘했다.
대규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뒤, 공손한 목소리로 여신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아테나 여신은 대규를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그대 덕분에 아군의 큰 전력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온화한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들꽃 같은 미소.
평소 무표정하고 차가운 여신의 얼굴에서 저런 미소를 보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책없게 왜 이러냐…….’
그녀는 이쪽에선 감히 고개를 들고 쳐다볼 수도 없는 여신이다.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불쑥 떠올랐다.
<아테나 여신이 첫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영웅인 당신에게 크게 주목하고 호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부탁하면 아테나 여신이 수락할 확률이 30% 상승합니다.>
뭐라고?
여신이 나에게 호감을 보이다니.
물론 남성으로서의 호감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공략집의 설명에 따르면 실력이 뛰어난 영웅에게 보이는 인간적인 호감일 것이다.
‘하지만 저 얼굴은 너무…….’
대규는 흘끗 여신의 얼굴을 훔쳐봤다.
살짝 상기된 얼굴에 말똥말똥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뭐랄까…….
여신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표정이었다.
사랑과 미의 여신이 아닌, 전쟁의 여신이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기분이 상당히 묘해졌다.
‘그런데 부탁을 하면 수락할 확률이 30% 상승한다고…….’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판테온으로 가면 히든 미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진짜 판테온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아폴론을 따라간 건 가상 판테온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판테온의 히든 미션이라니.
헤르메스는 분명 판테온의 세계엔 차원의 틈이나 타르타로스와 달리 진기한 보상들이 많다고 했다. 그런 곳의 히든 미션이라면 그 보상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의 다를 터.
‘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인간은 판테온에 갈 수 없다.
머릿속에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이걸 부탁해도 될까?
대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테나 여신이여, 드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여신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그대는 뛰어난 공적을 세운 영웅. 웬만하면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그녀가 ‘들어주겠다.’라고 하자 헤르메스 때처럼 손목에 빛나는 징표가 새겨졌다.
아무리 나에게 호감이 있다 해도, 저렇게 쉽게 말해 줘도 되는 건가? 확실히 그녀는 강한 영웅 앞에선 몹시 관대해지는 것 같았다.
대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들의 도시 판테온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여신이 놀라며 말했다.
“판테온이라니. 그곳은 반신반인 이상의 존재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의 권한이 있으면 저와 같은 인간들도 들어갈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으음…….”
여신이 침음을 흘렸다.
대규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라이벌인 신 아폴론은 그런 식으로 신입 영웅들을 유혹했다.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면 신의 권한을 발휘해 인간들도 판테온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아테나 여신은 항상 그게 못마땅했다.
어쨌든 판테온은 반인반신 이상의 존재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아폴론이 권한을 그런 식으로 남용해 아무나 막 들어오게 한다면 판테온의 질서를 해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런 방법으로 뛰어난 신입 영웅들을 끌어들여 사익을 취하는 아폴론도 짜증 났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대규의 말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 번복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단 한 번의 방문이라니까 크게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여신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다. 첫 전투 승리의 기념으로 특별히 딱 한 번의 방문만 허락한다. 대신 방문 시간은 한 시간으로 제한한다.”
‘한 시간이라, 좀 짧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신발은 방문한 장소를 기억하니까 한 번만 다녀오면 그다음엔 여신의 권한이 없어도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여신이 대규의 속마음을 읽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신발이 판테온을 기억하고 있다 해도, 그대는 인간이기 때문에 차후 판테온의 방문은 불가능할 것이다.”
“황송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대규가 묻자 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게 해라. 판테온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 주마. 이번 소환에서의 전투는 끝났으니 그대는 판테온의 방문이 끝나면 바로 현실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여신이 손을 휘둘렀다. 여신의 손은 그녀가 입고 있는 육중한 황금 갑옷에 비해 몹시 가녀렸다.
저 손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전장을 지배한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손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대규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 * *
대리석으로 지어진 원형 경기장과 신전의 모습이 보였다.
전에 아폴론과 함께 거닐던 가상 판테온의 모습과 똑같은 장소에 대규는 도착했다.
하지만 이곳은 진짜 판테온!
토가를 입고 걸어가는 남녀 신들과 반인반신, 그리고 신기하게 생긴 정령들…….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전에 봤던 가상 판테온과 그 어떤 차이도 없었다.
광장의 한가운데 놓인 분수대에선 무지갯빛 물이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규는 일단 판테온의 거리를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전에 봤던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도 보였고, 희귀한 아이템을 파는 상점 거리도 보였다.
그때는 아폴론과 영웅들을 따라 돌아다니느냐고 마음대로 이곳을 구경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넋 놓고 둘러볼 수는 없다. 빨리 히든 미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체 미션 장소가 어디지? 우선 공략집의 지도창부터 띄웠다.
공략집은 가상 판테온에선 작동되지 않았지만, 진짜인 이곳에선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공략집 지도창의 한곳이 노란색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판테온의 도시 가장자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뭐지?’
도시의 변두리로, 저번에 가상 판테온에 왔을 땐 가 보지도 않았던 지역이었다. 상업, 신전, 주거 구역과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대규는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점을 손끝으로 눌러 봤다.
그러자 미션창이 떠올랐다.
-히든 미션-
장소: 버려진 신전
미션 내용: 신전 안으로 들어가라.
보상: 무한의 격투장에 들어갈 수 있음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냥 신전 안에 들어가는 게 미션 내용이라니.
더욱 이상한 건 보상이다.
무한의 격투장이 뭔지 궁금해 손끝으로 눌러 봤다.
<무한의 격투장>
<반신반인이 될 수 있도록 헤라클레스에게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제일 먼저 입장한 단 한 명의 인간 영웅만 훈련받을 수 있다.>
인간이 못 들어오는 판테온이라도, 신의 권속을 이용해 들어오는 인간 영웅들이 꽤 있었다. 당장 광장에만 해도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인간 영웅들이 두 명 보였다.
대규는 지도창의 노란 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헤라클레스라니.
신화 책에서 읽었던 헤라클레스를 떠올렸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인간 여자 알키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이었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이었으나 제우스의 아내 여신 헤라가 내린 광기에 의해 자신의 가족들을 살해하고, 결국 그 대가로 12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12과업은 특이한 괴수들과 몬스터를 해치우거나, 희귀한 아이템을 구해 오는 것 등 요즘 말로 하면 퀘스트에 가까웠다.
헤라클레스는 결국 12과업을 무사히 달성한 뒤, 신과 거인간의 전쟁, 그러니까 제1차 기간토마키아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다. 결국, 제우스는 그를 반신반인에서 신으로 격상시키고 신들의 세계에서 같이 살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런 영웅에게 훈련을 받으면 확실히 지금보다 강해질 것이다.
대규는 공략집에 나와 있는, 반신반인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앞으로 기간토마키아 전투를 본격적으로 치르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했다. 이번 첫 전투에서 만났던 기가스 팔라스만 해도 지금 자신의 수준으로 이기기엔 턱도 없었다.
‘쫄리면 아포피스 소환해서 다 죽여 버리지, 뭐.’ 하는 안일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포피스 소환은 1일 1회로 한정되었다. 그런데 만약 기가스 팔라스 같은 강력한 적들이 소환 뒤에 또 나타난다면? 바로 사망이다.
‘마신의 스킬도 스킬이지만, 일단 내가 강해져야 한다!’
어쩌면 이 훈련은 여태까지 히든 미션에서 받았던 아이템 보상보다 훨씬 귀한 걸지도 몰랐다. 신이 직접 시켜 주는 훈련이니까.
자신은 여태까지 옥상에서 홀로 외롭게 훈련을 해 왔다.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확실히 판테온의 히든 미션이라 보상도 남다르군. 아차, 팔자 좋게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지. 빨리 저곳으로 가야겠다!’
대규는 버려진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히든 미션 장소인 버려진 신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노란 점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판테온의 가장자리 구역까지 왔다. 그곳은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판테온의 번화가와 같은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름한 구역이었다.
기둥이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신전이 널려 있었고, 신전의 기둥에는 담쟁이덩굴과 가시 덩굴들이 아무렇게나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대체 히든 미션 장소는 어디지?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얼마 후 노란점이 표시된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 쓰러져 가는 작은 신전이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미션 장소인 버려진 신전 같았다.
신전 앞에 다가가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히든 미션 장소인 버려진 신전에 도착했습니다.]
[미션 내용: 신전 안으로 들어가라.]
천천히 신전의 닫힌 문에 다가가 귀를 댔다. 하지만 안쪽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덜컹.
신전의 문이 갑자기 열렸고 대규는 문틈으로 안을 살펴봤다.
하지만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서 공략집의 지도창을 띄워야겠다. 대규는 천천히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