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위기 (5)
분식회계를 기록한 이중장부.
준섭 말대로 이건 월척이었다.
분식회계는 한마디로 장부 조작이다.
정확히는 기업이 자산이나 이익을 실제보다 부풀려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고의적으로 왜곡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분식회계 행위는 주주와 채권자들의 판단을 왜곡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현행 상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공인회계사의 감사 보고서를 통해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업들은 그 맹점을 노려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의 가치를 장부에 과다로 기재하거나 팔지도 않은 물품의 매출 전표를 끊어 매출채권을 부풀리기도 한다.
불황기에 주로 이런 분식회계 수법이 자주 이용되는데 이는 주주, 채권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탈세와도 연관이 있는 엄연한 불법 행위다.
“한국의 경우 97년 IMF 이후 기업들의 영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분식회계가 급증했습니다. 불법이고 감사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이죠. 최근 국내 최대 규모 조선해양 기업의 분식회계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대규는 얼마 전에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 얼핏 본 것 같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해양 기업은 최근 수조 원대의 분식회계를 했지만 회계사들은 감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적정’이란 감사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나중에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이 까발려져 회계 법인의 상무이사들도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불법이지만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세무조사에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많이 하고 있다고요?”
대규가 놀라서 묻자 준섭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위법 행위이고, 이 장부는 제일 푸드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랬군.
하지만 대규는 나중에 자신이 사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분식회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불법 행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거나 탈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사장님, 그렇다면 혹시 MPK에도 분식회계를 한 이중장부가 숨겨져 있을까요?”
대규가 묻자 준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MPK는 최근 사업들이 잘 안 돼서 업계에서도 경영 상태가 불안하단 소문이 돌 정도니까요. 아마 주주들과 채권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분식회계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거 제일 푸드시스템뿐만 아니라 MPK까지 한 방 먹이는 일타 쌍피를 칠 수도 있겠다.
어차피 홈쇼핑 반품 사태는 제일푸드시스템만의 단독 행동이 아니다. 제일푸드시스템과 MPK가 서로 손을 잡고 합작한 것이다.
대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섭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내일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준섭이 사무실을 나서자, 대규는 인터넷으로 MPK의 본사 건물 위치를 검색했다.
위치를 파악한 후 헤르메스의 신발을 신고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다음 날, 대규는 준섭에게 MPK의 분식회계 장부가 담긴 USB를 건네며 말했다.
“부사장님, 이것도 같이 처리해 주십시오.”
내용물을 확인한 준섭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대체 제일푸드시스템도 그렇고 이걸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차후 문제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어제도 헤르메스의 신발과 흑린갑의 투명화를 사용해 성공적으로 장부를 빼왔다. 게다가 도어락이나 컴퓨터 암호는 공략집이 해결해 줬으니 증거는 남지 않을 것이다.
준섭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규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사장님, 무자비하게 해 주세요. 다시는 우리 회사에 허튼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준섭은 대규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동자.
어린 시절부터 대규를 알고 지냈지만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무서우면서도 차갑고 냉정한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 감히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참, 사장님.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뭐죠?”
“재난대책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재난대책본부요?”
“예. 이번에 구호 물품으로 보낸 도시락을 비상식량으로 1만 개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확실히 도시락의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대규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굳이 판매하지 말고 재난 지원하는 기부 형태로 보내는 게 어떨까요? 대신 이번엔 익명으로 하지 말고 정식 브랜드명을 걸고 보내는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이제 자신을 성장시켜야 할 때다.
최근 반품 사태를 수습하느라고 너무 정신이 없었다.
대규는 판테온에서 봤던 신들과 반신반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장 다음 소환부턴 그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자신은 그에 비해 너무 격차가 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전쟁터엔 같은 인간이지만 자신보다 더욱 수준이 높은 인간 영웅들도 많다. 게다가 훨씬 강력한 무기들도 지니고 있다. 대규는 아폴론이 보여 줬던 가상 판테온에서 화염룡이 담긴 트라이던트를 휘둘렀던 영웅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아마 신들의 가호로 인간이지만 판테온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인간 영웅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들만큼, 아니 어쩌면 신들만큼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규는 공략집을 업데이트한 뒤 아폴론을 봤을 때 떠올랐던 추가 정보를 기억했다.
<아폴론 신은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아폴론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을 할 수는 있습니다.>
<아폴론 신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이 정보에 따르면, 신과 전투가 가능하단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준으론 당연히 불가능하다.’
일단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도 없다.
판테온의 대장간에 가면 신화 등급 무기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아폴론에게 귀속되지 않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다.
판테온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탐나지만, 아폴론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게 좀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신과 전투를 한다니…….’
대규는 자신이 봤던 헤르메스와 아폴론을 떠올렸다.
확실히 신들은 다른 존재들과 차원이 달랐다. 만나기만 해도 위엄이 느껴지고 고개도 감히 못 들겠는데 그들과 전투는 꿈도 못 꿀 것 같았다.
‘혹시 내가 인간 영웅이라서 그런 건가? 만약 내가 인간 영웅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대규는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 봤다.
상태창 상단에 적혀 있는 정보를 바라봤다.
‘만약 인간 영웅보다 다음 등급이 있다면?’
김대규(영웅)
Lv. 45(경험치 19.00%)
이름 옆의 괄호 안에 적힌, 영웅이란 글자를 혹시나 손끝으로 눌러 봤다.
그러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영웅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등급입니다.>
<영웅의 최대 달성 가능 레벨은 100입니다.>
이런 정보는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레벨 100이 한계란 뜻이다.
‘100 이상으로는 강해질 수 없다는 건가.’
아직 레벨 100을 달성하려면 한참 남았지만, 왠지 보이지 않는 천장에 벌써부터 가로막힌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데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최고 레벨인 100에 도달하면 인간에서 반신반인의 존재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반신반인의 존재로 넘어가려면 판테온의 시련을 꺾고 신들에게 그 자격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인간에서 더 뛰어난 존재인 반신반인이 될 수 있다.
영웅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인이라…….’
대규는 가상 판테온에서 봤던 반신반인의 모습을 기억했다.
외관은 인간과 같지만 용모는 몹시 뛰어났고 몸에서는 은백색의 옅은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금빛이 흘러나오는 신들만큼 위엄이 넘쳐흐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신비롭고 경이로워 보이는 존재들이었다.
만약 자신이 반신반인이 된다면 굳이 아폴론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아도 판테온에 자유자재로 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판테온의 시련이 대체 뭘까?’
아마 단순한 미션 완수는 아닐 것이다.
인간에서 반신반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레벨 업이 아닌 종(種)의 진화다.
하지만 그 시련을 견뎌 내고 반신반인이 된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대체 판테온의 시련이란 게 뭔지 궁금해서 손끝으로 눌러 봤지만,
<영웅 최고 레벨 100을 달성해야 시련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이란 아쉬운 내용만 뜰 뿐이다.
‘하루빨리 레벨 100이 되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 4일 앞으로 다가온 다음 소환 때 차원을 넘어가 몬스터를 마구 해치우고 경험치 많이 주는 미션들을 해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좋은 전쟁터를 담당하고 있는 신과 함께 싸워야겠지만.
‘일단 능숙한 전투를 위해 검술 및 신체를 열심히 단련하자.’
대규는 신체를 단련하러 준 빌딩 옥상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준섭은 대규에게 보고를 했다.
“담당 변호사와 의논을 해서 그 분식회계 자료를 언론에 흘리고 국세청에도 자료를 이미 넘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보통 이런 식으로 특별 세무조사가 들어가게 되고 심한 경우 회사의 폐업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일푸드시스템과 MPK 정도 규모의 회사면 폐업까진 안 되더라도 엄청난 세금과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업무도 당분간 마비될 거고요.”
“그게 끝인가요?”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팍 떨어질 겁니다. 국민들은 기업의 탈세나 돈 관련 관련 범죄에는 아주 민감하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국세청은 언제쯤 움직일까요?”
대규의 물음에 준섭이 대답했다.
“아마 지금쯤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제일푸드시스템 본사.
척척척-
국세청에서 나온 직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뭐, 뭡니까?”
“특별 세무조사입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이닥친 국세청 직원들은 온갖 서류와 장부들을 모두 챙겨 가기 시작했다.
8층의 기획본부장 배정현의 사무실에도 국세청 직원들이 들어왔다.
놀란 정현이 국세청 직원들을 보며 외쳤다.
“이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그의 질문에 국세청 직원 한 명이 대답 대신 종이 한 장을 그의 마호가니 책상 위에 보란 듯이 내려놓았다.
압수수색영장.
“…….”
영장을 본 정현은 할 말을 잃었다.
국세청 직원들은 정현의 사무실에 있는 온갖 자료들을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 시각, MPK의 본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혁 역시 얼빠진 표정으로 국세청 직원들이 회사 자료들을 들고 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 * *
곧 인터넷에 속보가 떴다.
대규는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속보] 제일 푸드시스템, MPK 분식회계 의혹 관련 세무조사 돌입.
국세청이 국내 프랜차이즈 기업인 제일푸드시스템(이하 제일푸드)과 MPK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XX일 국세청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제일푸드와 MPK의 회계재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중략)
이 회사들은 2014~2015 회계연도에 영업 손실을 축소하는 등 수백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세무조사가 진행되면 회사 임직원의 횡령과 탈세 등 추가적인 범죄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그 밑에는 두 기업에 대한 악플들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
두 회사의 홈페이지는 마비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프랜차이즈 매장 불매 운동까지 벌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특히 제일푸드시스템의 대표적인 체인 ‘도레미 피자’에 대한 이미지 타격이 가장 컸다.
대규는 인터넷 화면을 보며 씩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