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67화 (67/294)

# 67

67화. 위기 (2)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번 사태로 타격을 입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이번 일로 브랜드의 이미지는 많이 떨어져 버렸다.

탕꼬는 애초에 입소문으로 시작돼 SNS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 인지도를 이용해 도시락과 컵밥 사업을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이나 쉐프의 이름을 딴 도시락 상품만큼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름 SNS에선 유명했고 홈쇼핑 방송도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그만큼 반품 사태의 여파도 생각보다 컸다.

어느 날 매장의 직원 중 한 명이 울적한 표정으로 대규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

화면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이 떠올라 있었다.

제목: 홈쇼핑 탕꼬 도시락 주문 취소하고 난리 났다며?

내용:

폭주 주문이다 뭐다 홈쇼핑에서 그토록 난리 쳤는데 30% 넘게 반품하는 클라쓰~

SNS에서 인간들이 모조리 그놈의 탕수육 치킨 사진 좀비처럼 올려 대더니 결과는 정작 반품이라니. ㅋㅋㅋㅋ ㅠㅠ

댓글들도 수없이 달리고 있었다.

(itojunji88) ㄷㄷㄷ 너무 빨리 사업 벌이는 거 같더라니 결국…….

(jurio2002) 늬들 왜 그렇게 탕꼬가 맛있는지 암? 거기 음식에 존나 마약 같은 거 넣는다는 소문 있음. 내 친구의 친구가 거기 잠깐 알바했는데 주방에서 사장이 이상한 가루 같은 거 넣는 거 봤다고 함. 이거 레알 팩트임.

(taro34) 맞다, 그 소문도 있음!!! 영등포에 1인 식당 연 건물 있잖아. 그것도 원래 조폭 건물이었다고 함!!!!! 사장 새끼 원래 영등포에서 알아주던 조폭인데 이걸로 신분 세탁했다는 소문도 있음!!! 근데 탕꼬 솔직히 맛은 겁나 있지 않냐?

(qqqzsd11) 미친 조폭 ㄷㄷㄷ 맛있어서 신촌 매장 자주 갔었는데… 근데 솔직히 맛은 ㅇㅈ.

(이준영) 난 경기도 안양의 이준영이다!

“마약이라니! 아무리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라지만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팩트는 얼어 죽을!”

대부분이 탕꼬의 맛과 영등포의 건물에 대한 괴상한 루머들이었다.

“사장님, 헛소리 지껄이는 녀석들 다 고소해 버려요!”

직원들은 댓글들을 보며 분통을 터뜨렸고 대규 역시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틈틈이 맛있다는 얘기가 보인다는 사실이다.

성난 직원들에게 준섭이 차분한 말투로 얘기했다.

“이 정도 루머는 일단 무시해도 돼. 대신 정말 고의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엔 법적으로 대응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행히 입소문 양념의 효과로 탕꼬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쉽게 감소하지 않았다.

준섭과 대규는 차근차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사업 설계를 시작했다.

우선 기존 매장들을 기반으로 매장 사업의 경우 세 가지로 종류를 나눴다.

첫째, 주류와 안주 메뉴를 기본으로 하는 기존의 준 빌딩에 있는 탕꼬 매장이다.

준섭이 대규에게 물었다.

“준 빌딩의 매장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신촌 골목 준 빌딩에 그대로 유지하실 겁니까?”

“네, 그렇게 할 거예요.”

대규의 대답을 들은 준섭이 물었다.

“사장님,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죠?”

“사실 준 빌딩의 탕꼬 매장은 탕꼬의 원조 격인 매장, 즉 본점으로 아주 중요한 매장입니다.”

“알고 있어요. 궁금한 게 뭐죠?”

“대체 왜 하필이면 대로변도 아니고 골목 안쪽에 위치한 준 빌딩에 그 매장을 굳이 유지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지금 있는 영등포 빌딩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으면 더 좋은 목에 있는 빌딩을 매입할 수도 있을 텐데……. 아니, 지금 영등포의 매장을 탕꼬 본점으로 삼으시면 오히려 유동 인구나 접근성 측면에선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준섭 말이 맞다.

하지만 2년 뒤엔 사정이 달라진다.

대규는 당시 준 빌딩을 매입할 때 명당의 눈으로 봐 뒀던 내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향후 1년 이내 건물 값이 오를 확률: 100%

손님 증가율: 100%+α

재개발 여부: 서대문구에서 도로확장 사업 기획 중(기밀 사항)

물론 준섭은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걸 솔직하게 말해 줄 수도 없지.

대규는 대충 준섭에게 둘러댔다.

“그냥… 그 빌딩은 제가 처음으로 돈을 모아 매입한 건물이기도 하고, 또 신촌의 골목이란 곳이 제가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저에겐 여러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그 말에 준섭은 수긍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 건물을 임대해 장사하던 첫 번째 매장은 계약이 만료되면 당장 장사를 접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형의 건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예정입니다. 그 건물은 안전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거든요.”

물론 이 역시 공략집이 알려 준 내용이다.

나머지 매장 사업들은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이다.

준섭은 새로운 사업 계획서를 꺼내며 대규에게 말했다.

“그 임대 건물을 나와서 10평 정도 되는 작은 매장을 매입해 따로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차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 영등포 건물엔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 창구가 같이 있으니까 확실히 혼란스러운 감이 있습니다. 창구로 구분을 지어 놓기는 했지만 그게 완벽히 분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결국, 결론은 이렇게 났다.

세 가지 종류의 매장-원조 탕꼬 식당, 1인 식당,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들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그리고 이 사업들에 잘 어울리는 메뉴들을 더 개발해 고객들이 다양하고 풍성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사업 확장에 필요한 돈은 영등포의 건물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하기로 했다.

‘최대호에게 그 건물을 받아 두길 잘했다.’

건물, 즉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화폐나 주식 같은 동산(動産)들은 불안해진다.

하지만 부동산은 그럴 일이 없다. 게다가 이를 통해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타격을 입은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

게다가 반품되거나 주문 취소된 도시락과 컵밥들도 처리해야 했다.

말이 30%지, 실제 재고량은 엄청났다.

종 주문 건수는 도시락 종류별로 다 합해 약 4만 건.

그것의 30%면 1만 2,000건이다.

문제는 주문 건수 한 건당 도시락 한 개씩만 주문한 게 아니다.

어떤 손님들은 5개, 10개 세트를 주문했고 심지어 박스 단위로 주문한 손님도 있었다.

다 계산해 보니 최소 2만 개 이상의 도시락이 재고로 남을 예정이었다.

대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준섭을 보며 물었다.

“부사장님,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 *

강남의 고급 한정식집.

조용한 방에서 정현과 강혁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정현이 강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신 본부장. 그쪽에서도 도와줘서 고맙네.”

“하하, 뭘!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일인데.”

그들은 채운 잔을 건배하며 술을 들이켰다.

술의 향긋한 풍미를 음미하며 정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나저나 30% 반품이면 그 건방진 자식도 이걸로 정신을 차렸겠지?”

그러자 강혁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아보니까, 대한제당의 투자자들이 다 발을 뺐다고 하더만. 홈쇼핑 광고 방영도 취소된 것 같고. 그 녀석은 완전히 망했지. 사업 초창기에 그 정도로 망하면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어.”

말을 마친 강혁은 술을 들이켠 뒤 은근한 표정으로 정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애초에 제일푸드시스템에선 탕꼬를 노리지 않았었나? 꽤 아쉬웠겠어. 안 그래?”

자신을 간보려는 강혁을 보며 정현은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를 욕했다.

‘뱀 같은 녀석! 자기도 노려 놓고선.’

둘 사이엔 미묘한 기류가 흘렀지만 어쨌든 겉으론 하하, 호호, 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들은 대규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고 그를 곤경에 빠뜨렸으니 지금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전준섭은 똘똘하니까 당연히 의심하겠지. 하지만 그쪽에선 증거가 없어. 이봐, 배 본부장. 증거는 제대로 다 없앴지?”

“혹시 몰라 다 없앴어. 자네와 주고받은 메일들도 전부.”

“좋아! 증거가 없으면 말짱 꽝이야. 그럼 한 잔 더 하자구!”

그들의 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맞부딪혔다.

* * *

다음 소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규는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있었다.

이놈의 홈쇼핑 반품 사태 수습 때문이었다.

이로 인한 손해는 엄청났다. 영등포의 건물로 대출을 받아 이미 빚더미에 올라가 버렸다.

심지어 정 급하면 소유하고 있는 젬스톤을 현금으로 바꿔버릴까도 생각했다.

현재 갖고 있는 젬스톤은 레드 10개에 그레이 23개.

현금으로 환산하면 52억 3,000만 원이다.

그 정도 금액이면 투자자들이 원래 투자하기로 했던 투자 금액을 단번에 메꿀 수 있다.

‘하지만 젬스톤이 앞으로 저쪽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쓰일지 알 수 없으니 성급하게 결정할 수는 없지…….’

한숨이 절로 났다.

요 며칠 신체 단련도 못 했다. 할 시간도 없었고 고민도 많았다.

브레이크 타임에 직원들과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창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바닥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어디서 공사라도 하는 건가?’

그때 직원들이 핸드폰 보며 소리쳤다.

“헐! 사장님, 영주에서 지진이 일어났데요.”

“그럼 방금 그게 지진 진동이었다는 거야?”

매장의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뉴스 속보도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단정한 남자 앵커가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경북 영주 지방에서 규모 5.8의 역대 최고급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동이 충청도와 서울까지 울릴 정도로 강력했다고 합니다. 지금 영주 시민들은 관할 지역의 대피소로 대피하고 있는 상태로…….’

규모 5.8?

일본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의 지진이 일어나다니.

텔레비전 화면에는 무너진 주택의 모습과 마트에 물건들이 마구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번화가 상점의 유리는 총이라도 맞은 듯 와장창 깨져 있었다.

피해 건수는 몇천 건이 넘었고 부상자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영주 시민들은 다급하게 대피소로 대피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구호 식품을 배식받으며 재난으로 입은 피해가 복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몇 차례의 위협적인 여진이 찾아올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때 대규의 핸드폰이 울렸다.

준섭이었다.

대규는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

“여보세요? 부사장님이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사장님, 혹시 지금 뉴스 보고 계십니까?”

“네, 보고 있어요. 영주 지진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후덜덜하네요. 우리나라에서 5.8 규모의 지진이라니…….”

그때 준섭이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우리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시킬 만한 계획이 떠올랐습니다.”

“계획이요?”

“그렇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저곳에 구호품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기업들이 잘 쓰는 방식입니다.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사회에 환원하고 봉사 활동을 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 지금 영주 지진은 전국적으로 심각한 재난 상황. 구호품을 보내면 확실히 이미지 재고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대기업들이 종종 써 왔던 방법이다.

태풍 수재민들이 많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수재민을 돕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었다.

국내 최대의 자동차 그룹은 몇십억 원의 수재 복구 성금을 모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라는 특성을 이용해 수해 차량 무상정비 및 수리비 할인 이벤트도 벌여 10억 원 규모를 지원하기도 했다.

“사장님,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이게 브랜드 이미지에 엄청 중요합니다.”

준섭 말에 의하면 해외의 기업들 경우 이런 국가적 재난이 터지만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규모 업체들도 자선 모드로 전환한다고 한다.

특히 각 기업이나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좋은 구호품이 된다. 게다가 음식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구호품이다.

“저희도 이번에 반품 사태로 남은 도시락과 컵밥을 구호 물품으로 보내는 겁니다.”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대규는 말꼬리를 흐렸다. 불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가 재난을 이렇게 이용해도 될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