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65화 (65/294)

# 65

65화. 아폴론 (2)

“그렇다. 다음 소환 때 처음으로 전쟁터로 배속될 인간 영웅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나 아폴론이 연회를 열고자 한다. 그래서 그 연회에 초대하려고 이렇게 찾아왔다.

“신께서 이렇게 직접 저를 찾아오시다니, 영광입니다.”

그러자 그는 우쭐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이지만 본래 인간과 신의 관계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리 말거라.”

음.

공략집은 아폴론이 인간을 무시하고 하등하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우리 위대한 신들과 같이 싸울 너희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절대 같이 싸워 달라고 회유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말거라.”

그는 마지막 문장에 유난히 힘을 줘 말했다.

그러니까 더욱더 대규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 신도 솔직하진 않군.’

헤르메스 역시 자기의 아들들을 부하라고 속였었다. 그리고 이 아폴론 역시 말로는 인간과 신은 평등한 관계라고 하면서 이 연회는 ‘위대한 신’들이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연회는 대규를 포함한 인간 영웅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장치인 것 같았다.

아폴론은 대규에게 물었다.

“그럼 따라오겠느냐?”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우선 공략집의 설명이 걸렸다.

‘온순하지만 자존심이 몹시 세서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하거나 거부당하면 상대방에게 공격적으로 복수한다.’

자신은 한낱 인간이고 아폴론은 신이다.

만약 거절했다간 어떤 화를 입을지 몰랐다.

게다가 저쪽에서 저렇게 연회를 베풀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그 연회에 가서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 올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좋아. 그럼 차원의 열쇠를 꺼내 내 손에 올려놓거라.”

대규는 보관함에서 차원의 열쇠를 꺼내 아폴론의 손에 올려놓았다.

“응? 네 녀석의 열쇠는 소환 시기와 상관없이 사용 가능하구나. 이 열쇠를 받은 자는 흔치 않은데… 알수록 묘한 놈이구나.”

“안내인에게 받았습니다만, 다른 사람들도 종류는 달라도 열쇠가 있군요.”

“그렇다. 차원의 열쇠는 일종의 증표다. 특히 네 것은 소환 시기에 상관없이 다닐 수 있는 것으로 흔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마친 아폴론이 손에 올려진 열쇠를 움켜쥐었다.

열쇠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 포탈이 열렸고, 대규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포탈을 건너 도착한 곳은 휘황찬란한 연회장이었다.

헤르메스의 지휘 사령부 천막 내부처럼 넓고 고급스러운 공간이었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바닥에 천장까지 솟아오른 대리석 기둥.

연회장 가운데는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거기엔 대규 말고 미리 도착한 몇십 명의 영웅이 앉아 있었다.

제2 타르타로스의 생존자들이다.

몇몇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중에선 지영의 모습도 보였다.

대규는 지영에게 인사했다.

“지영 씨,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대규 씨.”

그들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대규는 지영의 모습을 보며 내심 놀랐다.

스핑크스의 피라미드에서 봤을 때보다 그녀는 더욱 늠름해졌다. 몸에 딱 달라붙는 미스릴 갑옷에 쌍검을 찬 모습은 꼭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전사 같았다.

‘아마조네스 같군.’

지영은 나름 살아남은 생존자 영웅 중 실력자였다. 물론 대규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다른 영웅들에 비해 너무 강력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특히 여자 영웅 중에서는 가장 강했다.

공략집으로 상태를 살펴보니 레벨도 30이 넘었고, 몇몇 고급 스킬도 익힌 상태였다.

지영을 제외한 낯익은 얼굴들도 나름 타르타로스에서 전투를 좀 한다는 실력자였다.

대규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확신했다.

‘아폴론은 영웅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 연회를 베푼 게 확실하다.’

영웅들이 테이블 앞에 앉았지만, 테이블 위엔 아무런 음식도 없었다. 각자의 앞에 놓인 술잔도 역시 비어 있었다.

그때 아폴론이 상석에 앉아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웅들이여, 나의 주둔지 델포이에 온 걸 환영한다.”

그는 잘생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연회에서 마음껏 먹고 즐겨도 좋다. 이 연회는 절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타르타로스를 무사히 벗어난 것에 대해 베푸는 일종의 선물이다.”

말을 마친 아폴론은 테이블에 대고 손가락을 딱, 튕겼다.

팟!

“어어……?”

“우와!”

영웅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순식간에 비어 있던 테이블 위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빈 잔에도 붉은 포도주가 가득 채워졌다.

“여기 음식들은 신들이 먹는 음식으로 너희 인간 세상의 요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마음껏 들라!”

대규는 그의 말에서 살짝 인간 세상을 경시하는 것 같은 태도가 보여 기분이 불편했다.

테이블 위엔 온갖 산해진미가 잔뜩 있었다. 영웅들은 처음엔 쭈뼛거리다가 마침내 하나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대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신들이 먹는 음식이라…….’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했다.

상급 요리 스킬을 발휘해 만든 자신의 탕꼬보다 맛이 있을까?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서양식 코스 요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식전 빵과 수프, 그리고 애피타이저에 본 메인 메뉴.

갓 구워 낸 식전 빵은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따끈했고, 고소한 버터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한입 베어 먹어 보니 몹시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꼭 일류 파티쉐가 구운 빵 같았다. 수프 역시 훌륭했다. 꼭 일류 호텔의 주방장이 요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음식은 메인 메뉴였다.

접시 위에는 양 갈비 스테이크 한 점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일반 양 갈비와 달랐다.

금가루라도 뿌린 듯 고기가 은은하게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규는 칼을 들어 스테이크를 썰어 봤다.

스슥-

고기가 생크림을 가르듯 부드럽게 썰렸고, 그 사이로 선홍빛 육즙이 반짝반짝 흘러나왔다.

침샘이 폭발하며 식욕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돌았다.

대규는 저도 모르게 칼로 스테이크 썰기를 중단하고 고기에 튀어나와 있는 뼈를 잡은 채 마구 뜯어먹기 시작했다.

‘으와, 이게 대체 무슨 맛이냐!’

입안에서 화려한 파티가 일어났다.

씹을 때마다 팡팡 터지는 육즙과 이빨에 착 감겨드는 부드러운 육질.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감칠맛에 고소하고 진한 풍미가 가득했다.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기 아쉬운 맛이었다.

대규는 미친 듯이 양 갈비 스테이크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러자 빈 접시에 스테이크가 하나 더 생겨났다. 심지어 와인 잔에도 새로 와인이 채워졌다.

양 갈비는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에 들어갔다.

자신이 만든 탕꼬도 먹으면 3명에게 입소문을 낼 만큼 맛있었지만 이 양고기는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대규는 핸드폰을 붙잡고 바로 최소 100명에게 입소문을 냈을 것이다.

게다가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서 힘이 조금씩 솟아나는 것 같았다.

‘무슨 고기가 이래?’

대규는 자신이 게걸스럽게 먹고 있던 고기를 바라보았다.

그때 공략집의 설명창이 떴다.

<미루스 비덴스(Mirus bidens)로 만든 갈비 스테이크>

<아폴론의 목장에서 사육하는 전설의 양, 미루스 비덴스로 만든 갈비 스테이크. 부드러운 육질에 뛰어난 맛을 자랑하며 먹으면 5시간 동안 근력, 체력이 상승함. 추가로 정력도 오름. 아폴론은 전쟁에 나가기 전, 자신의 병사들에게 이 요리를 먹인다.>

<한번 이 미루스 비덴스로 만든 음식을 먹은 자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그 음식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된다.>

그랬군.

그래서 온몸에서 힘이 넘쳐났구나.

‘그것보다 아폴론이 목장에서 사육하는 양이라면 그는 이 양들을 엄청 많이 갖고 있다는 건가?’

‘현실에서 이 양고기로 요리해 장사하면 대박 나겠다.’

근력, 체력에 정력까지 상승한다니, 전에 준섭이 언급했던 스테미너 도시락 메뉴로 딱 맞다.

‘그렇게 만들면 정말 대박 상품이 되겠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이 양고기를 현실로 가져가야 한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미친 듯이 양 갈비 스테이크를 먹는 인간 영웅들을 보며 아폴론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하, 맛있나 보구나. 하지만 우리 신들이 살고 있는 판테온의 세계에 가면 더 맛있고 진귀한 음식들이 많지.”

판테온의 세계! 헤르메스도 언급한 적이 있다.

엄청난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던 곳.

아폴론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곳은 반인반신(半人半神) 이상 되는 존재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귀중한 아이템과 무기를 구할 수도 있고 평화롭게 쉴 수도 있지. 너희들이 만약 다음 소환에서 나와 같이 싸워 준다면… 그러니까 내 권속으로 들어온다면 그 판테온의 세계에서 신들과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마.”

영웅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귀중한 아이템과 무기도 구할 수 있고, 신들과 같이 지낼 수 있다니.

그때 대규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아폴론이 묻자 대규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곳에 가면 이 미루스 비덴스도 구할 수 있습니까?”

양의 이름을 들은 아폴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이 양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역시 특이한 녀석이다.’

사실 신들은 새로 들어오는 영웅들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기간토마키아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 오면 그들은 완전한 초짜다. 반면 신들은 이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과 같은 존재다.

따라서 새로 들어온 인간 영웅이 아무리 튜토리얼인 차원의 틈과 제1, 2 타르타로스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해도, 신들은 그 인간 영웅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이등병이 훈련소의 사격 훈련에서 총을 좀 잘 쐈다고 사단장이 그를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규가 차원의 틈의 세 가지 히든 미션을 모조리 성공한 이후, 아폴론을 비롯한 신들은 그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사실 차원의 틈과 타르타로스에 존재했던 히든 미션은 신들이 만들어 숨겨 놓은 것이었다.

차원의 틈에 들어오는 일반적인 인간 후보생들은 히든 미션의 장소도 잘 찾지 못했다. 애초에 미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후보생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저 김대규란 인간 녀석은 그 모든 미션들을 알아내고 착착 수행했다.

안내인 정령을 통해 모든 히든 미션을 빼놓지 않고 수행한 인간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신들은 그때부터 대규란 존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아폴론은 대규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히든 미션을 수행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아폴론이 만든 미션은 차원의 틈의 세 번째 히든 미션이었다.

[보상이 들어 있는 황금 상자를 찾아라(제한 시간 3분).]

아폴론은 자신이 만든 그 미션을 성공하는 인간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수백 개의 상자 사이에서 보상이 들어 있는 상자를 3분 안에 찾아내라니.

인간의 능력으론 할 수 없다. 아무리 능력이 개화된 후보생이라도 말이다.

모든 사물의 내부를 꿰뚫어 보는 스킬 ‘투시안’을 익히면 가능하지만, 그 스킬은 고급 스킬로 차원의 틈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따라서 애초에 실패하라고 만들어 놓은 미션이었다.

사실 차원의 틈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성장하다 보면 후보생들은 자만심을 갖게 된다. 아폴론은 인간들에게 그 자만심을 경계시키고 싶었다.

미션 수행을 실패하게 만들어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지라는 의미.

그래서 보상으로 빈사 상태에서 무적 상태에 돌입하는 아이템인 황금 양털 조끼를 마음 놓고 넣어 둔 것이었다. 당연히 그걸 가져가는 후보생은 없을 거라 굳게 믿었으니까.

하지만 대규는 그 미션을 보란 듯이 성공했다.

수백 개의 상자 속으로 뛰어들어 단번에 보상이 담긴 상자를 잡아내고는 황금 양털 조끼를 보란 듯이 가져갔다.

그뿐 아니었다. 이후에도 대규는 제1 타르타로스의 클리티오스의 동굴에 모루를 숨겨 놓은 헤파이스토스의 미션도 성공했고, 결국 알키오네오스도 홀로 해치웠다.

그의 행보를 보면서 신들은 대규를 점점 주목하게 됐고,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최근 헤르메스는 저 녀석에게 자신의 신발까지 내줬다고 한다.

‘도통 뭔지 모르겠군. 그것보다 저 녀석… 어떻게 감히 인간 주제에 신들만 알고 있는 미루스 비덴스를 알고 있는 거지?”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 녀석이다.

‘저런 녀석을 내 부하로 둘 수 있다면 상당히 좋겠지만…….’

동시에 신으로서의 자신의 권위가 살짝 침해받는 느낌도 들었다. 아폴론은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다. 구할 수 있지.”

“그게 정말입니까?”

대규가 묻자 아폴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특별한 걸 보여 주도록 하마. 판테온의 모습을 보여 주마.”

말을 마친 아폴론은 자신의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의 손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오더니 곧 주변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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