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64화. 아폴론 (1)
그동안 홈쇼핑 즉석식품 유통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해 왔다.
오늘은 드디어 홈쇼핑 채널에 다이어트 도시락, 컵밥과 탕꼬 발열 도시락 등이 처음으로 방송되는 날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에 대규는 직원들과 같이 모여 앉아 매장의 TV로 홈쇼핑 광고를 시청했다.
“저기, 저기… 나온다!”
빠른 비트의 음악 소리가 들리며 여성 호스트들이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오늘 소개해 드릴 상품은 다이어트 도시락, 컵밥과 탕꼬 발열 도시락입니다.
SNS에서 유명한 그 탕꼬가 드디어 도시락으로도 나왔어요. 조리도 이렇게 간편해요!
호스트들을 본 직원들이 외쳤다.
“저 호스트 진짜 잘나가는 호스트인데… 대박이다. 사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부사장님 덕분이죠.”
그랬다. 준섭 덕분에 잘나가는 호스트 섭외는 물론 온종일 방송권도 따낼 수 있었다.
대한제당에서 일하면서 친분이 두터웠던 홈쇼핑 방송 PD와 호스트가 있어서 그 인맥을 통해 일이 쉽게 진행됐다.
“그런데 왜 저렇게 음악이 쿵작쿵작 시끄러운 거죠?”
“홈쇼핑이 원래 그래요. 빠르고 화려한 비트 음악을 틀어서 정신없게 만들어요. 빨리 주문 전화를 하도록 재촉하는 효과도 있고. 저기 계속해서 벨소리 효과음 나오는 거 들려요?”
화면에선 계속해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역시 홈쇼핑의 상술 중 하나다.
주문 고객들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사람들의 주문을 유도하는 효과.
화면에선 호스트들이 도시락을 시식하고 있었다.
“어머머머! 너무 맛있다. 이거 리액션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데요?”
맛깔스럽게 음식을 먹는 호스트들을 보니 대규 역시 도시락이 먹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 다이어트 도시락 정말 맛있네요. 입에서 사르르 녹네, 녹아!”
“닭 가슴살인데 하나도 안 퍽퍽해요. 어쩜 이렇게…….”
“발열 도시락, 뜨거워서 입천장을 델 것 같은데, 계속 젓가락이 가요!”
호스트들은 얼굴이 빨개진 채 뜨거운 김을 뿜어내면서도 열심히 도시락을 먹었다.
화면 속 호스트들의 리액션을 본 대규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일류 호스트답게 리액션이 좋네요.”
그러자 직원 중 한 명이 화면에 얼굴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사장님.”
“네?
“제가 진짜 홈쇼핑 중독자라서 집에서 홈쇼핑 맨날 보는데요. 저건 리액션이 아니라 진짜예요. 다른 음식 시식했을 때랑 완전 달라요. 저건 진짜 대박인 거예요.”
그때였다.
화면 속에서 미친 듯이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앗, 뜨거……. 입천장 다 까졌는데 멈출 수가 없는 맛이에요. 어머, 주문 전화가 폭발하고 있어요. 뭐라구요? 5분 뒤면 품절? 이런 경우는 호스트 생활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5분 안에 빨리 주문하세요! 자동 주문 전화, 모바일, 인터넷으로 하면 상담원 연결 필요 없이 바로 주문됩니다!”
* * *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네, 다원 홈쇼핑입니다. 탕꼬 도시락 세트 한 박스 주문이요? 죄송합니다. 해당 상품은 품절이…….”
“다이어트 도시락 두 박스요? 고객님, 죄송한데 현재 재고가 남아 있지 않아서…….”
“지금 발열 도시락은 조기 품절됐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판매될 예정입니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홈쇼핑 사무실엔 전화벨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본 사무실 직원 한 명은 침음을 흘렸다.
“대박이다…….”
몇 년 전 전국적으로 히트를 쳐서 홈쇼핑 전성시대를 열었던 잭 필드 바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벌써 들여온 물량은 재고가 바닥났고, 주문 전화 건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공 행진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멍 때리고 있는 직원에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거 놀고 있지 말고 빨리 대규식품에 물량 더 달라고 연락해!”
홈쇼핑 사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주문 전화 건수는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고, 이에 탄력받은 준섭은 벌써 ‘00번가’나 ‘0마켓’ 등 인터넷 쇼핑 사이트와 계약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현재 세 곳의 매장에서 하루에 평균 6,000만 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었다. 재료비와 인건비 시설 유지비 등을 제외하면 하루 2,000만 원가량의 이익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한 달에 25일 동안 영업하면 월 5억가량의 이익이 발생한다. 사무실 운영 비용과 다달이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갚고도 상당한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메뉴 개발과 시설 투자를 위해 당분간은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쏟아붓기로 했다.
그리고 이젠 편의점을 공략할 차례였다.
하지만 편의점의 경우 전에 준섭이 말한 것처럼 유통해야 하는 물류량이 엄청나다.
전국에 있는 편의점만 해도 지점이 수천 개는 된다.
그 많은 곳에 유통할 식품들을 생산하려면 거대한 공장을 세워야 했다.
대규는 앞으로 공장 부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명당의 눈을 다시 활용할 때다.’
서울이나 번화한 도시에선 아마 부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인적이 드문 벌판 같은 곳에 가격이 괜찮은 부지를 찾아 그곳에 공장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도 공장을 세우게 되는구나.’
장사를 막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대기업 혹은 중견 기업 외식 업체들이 세운 공장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살면서 저런 공장을 세울 날이 올까 생각을 했었다.
자신의 사업 성공을 자축하고 싶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대규는 그날 밤, 오피스텔에 가는 길에 주류 할인점에 들러 비싼 양주를 샀다.
발렌타인 30년산.
주류 할인점에서도 병당 90만 원 정도 하는 고급 양주다.
차원의 틈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사치를 부린 적 없지만 오늘만큼은 마음껏 부려 보고 싶었다.
오피스텔에 도착해 양주를 뜯었다.
그리고 찬장에서 자신의 전용 술잔을 꺼냈다.
바로 맨 처음 안내인 여자가 나타났을 때 건넸던 요리 실력 상승 포션의 빈 병이었다.
‘처음 이 포션을 마시고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땐 이 병이 행운을 가져다줬다 생각하고 여기에 술을 따라 마셨지. 그러자 안내인 여자가 나타나서 날 차원의 틈으로 안내했고.’
되게 옛날 같은데, 돌이켜 보면 고작 3개월 전이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제2 타르타로스에서의 귀환으로부터 3개월 뒤였던 다음 소환은 당장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소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신들과 함께 전투를 벌인다고 했지.
진짜 기간토마키아 전쟁터는 어떤 모습일까.
헤르메스를 따라서 갔던 곳에선 적의 주둔지와 지하 감옥밖에 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나는 어떤 신과 함께 싸우게 될까. 에이, 모르겠다. 그건 신들을 만나 보고 나서 결정할 문제지. 오늘은 축배를 즐기자!’
대규는 미래의 고민은 접어둔 뒤, 빈 병에 양주를 따라 그때처럼 경건한 태도로 쭉 들이켰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한 느낌이 기분 좋았다. 불현듯 현관문을 봐라보았다. 그때처럼 안내인 여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못 보니 새삼 그 무표정한 얼굴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오피스텔 현관은 조용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술에 취했나. 그런데 비싼 술이 맛있긴 맛있군.’
그때 대규의 눈앞에 황금빛 포탈이 생겨났다.
스스슥.
‘뭐, 뭐야?’
놀라서 포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포탈 안에서 잘생긴 미남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남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계란형의 잘생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눈, 코, 입은 조각 같았으며, 완벽한 비율로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자의 완벽한 외모에 비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미남 배우들은 오징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황금 갑옷이 둘러싸고 있는 몸은 건장하고 탄탄했으며, 전신에선 역시 황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네가 인간 영웅 김대규로구나.”
노래하는 듯 영롱한 목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마저 완벽하다.
남자와 눈을 마주치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자신을 단번에 압도해 버리는 위압적인 포스.
헤르메스를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대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그러자 남자의 선홍빛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아폴론이다.”
두 번째 신이 나타났다.
소환 전에 나타나는 신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찾아오니까 놀라웠다.
대규가 고개를 들어 멍하니 아폴론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신 이름: 아폴론(Apollon)
특징: 제우스의 아들로 태양, 음악, 궁술을 관장하는 신이다. 궁술 신답게 뛰어난 궁술 실력을 갖추고 있다. 신들 사이에선 기본적으로 바르고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으나, 인간은 무시하고 자신보다 열등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길 좋아한다. 온순하지만 자존심이 몹시 세서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하거나 거부당하면 상대방에게 공격적으로 복수한다.
<아폴론 신은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아폴론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할 수는 있습니다.>
<아폴론 신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공략집을 업데이트했기 때문일까.
신의 특징 밑에 새로운 내용이 떠올랐다.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할 수 있다니. 저 말은 신과 전투를 벌일 수도 있다는 뜻일까? 신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이 세계의 최고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으로 봉인할 수 있다니.
하지만 자신에게 그런 아이템은 없다.
공략집의 추가 정보를 이용한다 해도 자신은 아폴론 신을 봉인시킬 수 없다.
‘봉인이 웬 말이냐. 감히 눈도 못 마주치겠는데…….’
아말테이아의 젖으로 권위가 10이나 올랐어도 여전히 신을 대면했을 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확실히 신은 한낱 인간인 자신과 달랐다.
‘결국 지금 당장은 소용없는 추가 정보란 거군.’
하지만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단 알아 둔다고 손해 보는 일은 없겠지.
가만히 눈앞에 뜬 공략집의 추가 정보들을 숙지하고 있는데 아폴론이 물었다.
“뭘 그렇게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느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규는 공략집 창을 눈앞에서 없앴다.
이걸로 신들의 눈에 공략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공략집은 오직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
“그런데 신께선 무슨 일이십니까?”
깍듯한 목소리로 묻자 아폴론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 영웅이여, 그대는 혹시 다른 신과 함께하기로 벌써 맹세를 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넌 인간이면서 신화 등급 아이템을 지니고 있지 않으냐.”
“예?”
아폴론은 대규의 발을 바라보았다.
헤르메스의 신발.
아폴론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본래 신화 아이템은 신에게 귀속된 것인데, 신으로부터 그걸 얻어 내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걸 어떻게…….”
“신들은 모든 걸 알고 있다. 그것보다 헤르메스와 같이 싸우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냐?”
그 물음에 대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아폴론이 자신의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아폴론도 헤르메스처럼 나에게 뭔가 부탁을 하러 온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스카우트하러 온 걸까.
아직까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
아폴론의 속내를 알아내야 그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잘난 신이라 해도 어쨌든 그는 대규를 만나기 위해 직접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렇다면 부탁하는 쪽은 아폴론이고,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그가 날 찾아온 이유를 신중히 파악하고, 얻어 낼 수 있는 건 얻어 내야 한다!’
신들이 지니고 있는 아이템은 몬스터와 전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헤르메스의 신발만 해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 가 본 장소로는 순간 이동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침내 대규는 신중한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했다.
“헤르메스 신께 제의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섣불리 결정을 내릴 만한 사안이 아니라서요. 헤르메스 신도 분명 대단하신 분이고, 제안하신 조건도 훌륭했지만 다른 신들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고개까지 깍듯이 숙인 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아폴론 신이시여, 이렇게 먼저 찾아와 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경쟁 상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단 소식을 일부러 흘려 경계심을 심어 주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을 띄워 줘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대규의 전략에 아폴론은 안도한 표정을 지은 뒤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랬군.”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오신 겁니까?”
아폴론은 잘생긴 얼굴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친히 부탁할 게 있어서 이렇게 왔다. 내 연회에 초대하고 싶구나.”
“연회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