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화. 스킬 체험
대규가 묻자 준섭이 대답했다.
“하지만 대신 일반 프랜차이즈 사업과 좀 다르게 구상해 봤습니다.”
준섭은 이제 대규에게 완전히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처음 일할 때만 해도 동생 친구인 대규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어색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솔직히 박람회를 기점으로 뭔가 바뀌었다.
박람회 전까지만 해도 사장과 부사장이니까, 비즈니스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존댓말을 의무적으로 썼다. 대규가 직급은 사장이라지만 그래도 심정적으론 동생 진섭의 친구라는 사실이 더 강했다.
하지만 박람회 이후 어느새 대규가 동생의 친구라기보단 정말 자기의 윗사람으로 느껴졌다. 준섭은 대규에게 알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게 상승한 권위 스탯 때문이란 건 몰랐지만.
“다르게 구상했다고요?”
준섭은 대규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예, 사장님. ‘엔젤투자(Angel investment)’ 아시죠?”
대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있다. 경영 서적을 읽으며 근성 스킬로 올려놓은 경영 지식 덕분에.
엔젤투자란 자금을 지닌 개인들이 창업 초창기 자금이 부족한 벤처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고 주식으로 그 대가를 받는 투자 형태다. 통상 여럿이 돈을 모아 투자하는 투자 클럽의 형태를 띠곤 한다.
물론 투자한 기업이 성공하면 기업 가치가 올라가 수십 배 이상의 이득을 얻지만, 반면 실패하면 손실이 어마어마하다.
기업을 창업하는 입장에선 천사 같은 투자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걸 프랜차이즈에 접목해 ‘엔젤 프랜차이즈(Angel franchise)’를 하는 겁니다.
준섭의 제안은 이랬다.
보통 가맹점주가 10평 정도의 탕꼬 매장을 열려면 필요한 비용은 대략 1억 원 정도다.
하지만 그 반인 5,000만 원만으로도 매장 오픈을 하게 해 준다. 대신 건물 임차나 시설 비용은 본사가 댄다.
그 대가로 가맹점주는 일정 기간 본사에 수수료처럼 월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방식이다.
물론 가맹점의 장사가 망하면 본사도 타격이 온다.
“하지만 사장님의 음식은 절대로 망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하하, 무슨 말씀을. 감사합니다.”
대규는 넉살 좋게 웃었다.
하지만 준섭의 말이 맞다.
탕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대량생산된 입소문 양념을 가맹점에 공급하면 망하기는커녕 무조건 성공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타깃 층은 정년퇴직한 중장년층으로 잡고 있습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서 퇴직하고 자영업을 하고 싶어 하는 중장년들이 많거든요.”
“좋은 아이디어네요.”
준섭은 미소를 지으며 대규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제 막 사업이 궤도에 올랐군요. 참, 보여 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뭐죠?”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가시죠.”
준섭은 건물 밖으로 대규를 안내했다.
검은색의 멋있는 자동차 한 대가 건물 앞에 세워져 있었다.
“이건……?”
국내산 그랜저 자동차.
값비싼 외제차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좋은 자동차였다.
준섭이 깍듯하게 말했다.
“회사용 자동차입니다. 사실 그간 자동차가 한 대도 없어서…….”
“아…….”
대규는 요리만 해서 그런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차원의 틈을 오간 이후 보상을 통해 현실에서도 돈을 마구 벌어들였지만 정작 자기를 위해 돈을 쓴 적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오피스텔 이사와 신체 단련을 위해 산 피칭 머신, 헬스 머신 등이 전부였다.
본래 자동차 욕심도 없었지만 도약의 장화를 얻은 이후엔 그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젠 헤르메스의 신발까지 얻었으니, 뭐.
‘하지만 기업의 사장이 되면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할 일도 생기는 거겠지. 그래도 막상 이렇게 보니까 간지난다.’
사업이 안정적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되면 자신을 위해 돈을 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랜저 옆에는 커다란 탑차 두 대가 있었다. 준섭이 차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임시로 대여한 것들입니다. 즉석식품 사업이 활성화되면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으로 물류들을 보내야 하니까요.”
탑차까지 보니 정말 자신이 기업인이 됐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때 준섭이 대규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네?”
“다이어트 도시락 말고 혹시 다른 메뉴 도시락 개발도 하십니까?”
“왜요?”
“지금은 다이어트 도시락을 제외하면 기존의 식당 메뉴인 탕꼬 도시락 말고는 뭐가 없잖습니까.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도시락 사업은 크게 성공할 것입니다. 그에 발맞춰 다른 종류의 도시락들도 나왔으면 합니다.”
“그렇겠군요.”
“기왕이면 다이어트 도시락처럼 특정 타깃 층을 공략할 수 있는 상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보양에 초점을 맞춘 스테미너 도시락이라든지 말입니다.”
흠, 그거 좋은 아이디어인걸.
* * *
그날 장사를 마치고 오피스텔로 돌아와 평소처럼 옥상에서 신체 단련을 했다.
검술, 반사 신경, 근력, 지구력 등.
땀이 비 오듯 났지만 능력은 조금씩 상승해서 기분이 좋았다.
오피스텔에 돌아와 샤워하고 소파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특정 타깃 층을 공략할 도시락 개발이라…….’
솔직히 다이어트 도시락, 컵밥이야 메뉴의 독창성을 발휘한다기보다 본래 다이어트 음식으로 알려진 것들을 맛있게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비교적 쉬웠다. 메뉴 구성에만 신경 쓰면 될 일이었다.
‘준섭 형 말대로 스테미너 도시락 같은 걸 만들어 볼까?’
대규는 잠깐 동안 고민하다 그건 나중에 사무실 출근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다 확인하지 못했던 나머지 마신들의 스킬이나 살펴보자.’
라의 목걸이를 꺼내 스킬들 목록을 띄웠다.
붉은 스킬 7개 중 호루스의 눈과 죽음의 군대 호령, 그리고 아포피스 소환은 봤다.
이제 남은 스킬은.
오시리스의 정원출입과 죽음의 지배,
라의 파라오의 저주와 아포칼립스.
대규는 우선 오시리스의 정원 출입을 바라보았다. 곧 공략집이 스킬의 설명을 띄워 줬다.
<정원 출입-오시리스가 신비한 약초들을 재배하는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음. 정원에 들어가면 약초들을 채집해 올 수 있다. 권위 1당 채집할 수 있는 약초의 개수가 늘어난다. 마나 소모 100.>
신비한 약초들이 있는 정원으로 들어간다니.
공간 이동 같은 건가.
설명만 읽어선 도무지 어떤 스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체험판을 발동해 보자.’
<체험판 스킬이 발동됩니다.>
스스슥.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평소 체험판 스킬 풍경인 동굴이나 공터가 아니라 맑은 하늘에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푸른 풀밭이었다.
‘이곳이 오시리스의 정원?’
잘 가꾸어진 풀밭에는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풀들이 잔뜩 자라 있었다.
발밑에 거대한 붉은 고사리처럼 생긴 식물이 보였고 대규는 그것을 만져 봤다.
공략집이 떴다.
<오시리스의 붉은 고사리>
<이 고사리를 먹으면 질병을 고치거나 완화할 수 있다.>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인데?
호기심이 일어 여러 종류의 풀들을 만져 공략집을 띄워 봤다.
<행운의 식용 네잎 클로버>
<이 네잎 클로버를 먹으면 하루 동안 행운 수치가 일시적으로 +3 상승한다.>
<경험의 열매>
<이 열매를 먹고 몬스터와 전투를 벌여 해치우면 경험치를 2배로 받는다.>
이 정원은 완전 보물 창고였다.
심지어 이런 풀들도 있었다.
<매혹의 미니 죽순>
<이 미니 죽순을 먹으면 신체적 매력이 10% 상승한다. 상대방을 유혹하는 유혹 계열 스킬을 발휘할 때 용이하다.>
<정력의 뿌리>
<근력 3과 지구력, 그리고 정력이 추가로 강해진다.>
꿀꺽.
정말일까……?
그때 체험판이 종료됐다는 메시지가 떴고, 대규는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 * *
대규는 오시리스의 정원에서 봤던 약초들을 떠올렸다.
약초들은 비단 전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매혹의 미니 죽순이나 정력의 뿌리 같은 것은 현실에서도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초였다.
엄밀히 말하면 행운의 식용 네잎 클로버도 그런 약초다. 행운 수치가 올라가면 현실에도 분명 영향이 있을 테니까.
‘혹시 이 약초들을 채집해 와서 요리를 하면 어떨까?’
하지만 대규는 곧 생각을 포기했다.
문제는 권위 1당 채집할 수 있는 식물의 개수가 1개라는 제한이다.
자신의 현재 권위는 20이니까, 총 20개의 식물밖에 채집해 오지 못한다. 거대한 사이즈의 오시리스의 붉은 고사리야 한 개만 갖고 와도 요리를 여러 인분 만들 수 있지만 매혹의 미니 죽순 같은 경우 일반 죽순보다 훨씬 그 크기가 작았다. 죽순 하나가 거의 새끼손톱만 했다.
그 경우 20개를 꽉 채워서 가져와 요리마다 1개씩 넣는다고 해도 20인분이 한계다.
‘차라리 저 약초들을 가져와서 국물을 우려 버릴까?’
그게 나을지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효과가 희석되는 게 아닐까.
그건 일단 천천히 생각해 보자.
시험해 볼 스킬이 3개나 남아 있으니까.
이제 남은 건 아포칼립스와 파라오의 저주, 그리고 죽음의 지배였다.
대규는 파라오의 저주를 바라보았다.
<파라오의 저주-이 저주에 걸린 상대방은 1시간 동안 온갖 능력과 스탯이 50% 감소하게 된다. 마나 소모 150.>
만약 자신이 이 저주에 걸리게 된다면 레벨 22, 23 수준으로 전 스탯이 감소한단 소리다. 그뿐만 아니라 장비로 높인 공격력이나 방어력, 회피율 등도 떨어진다.
‘후덜덜한 저주군.’
목숨이 걸린 전투에서 상대방이 이 저주를 쓴다고 생각하니 몸이 절로 떨렸다.
제2 타르타로스에서 이 스킬을 소유한 마신, 라의 피라미드에 가지 않은 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 파라오의 저주 스킬의 경우 효과가 너무 명확해서 굳이 체험판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젠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강력한 광역 범위 공격. 반경 20m 이내의 땅이 갈라지며 용암이 끓고 적들을 집어 삼킨다. 마나 소모 200.>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스킬인 비산의 결계 같은 광역 범위 공격 스킬이었다.
대신 반경은 20m로 비산의 결계의 4배였다.
어떤 방식의 공격인지 알아보고 싶어 이건 체험판을 발동시켜 봤다.
스스슥.
이번에 도착한 장소는 광활하게 펼쳐진 널따란 들판이었다.
광역 범위 공격 스킬의 체험판이라 그런지 들판에는 몬스터 부대 수백 마리가 떼거지로 달려오고 있었다.
<체험판 스킬이 발동됩니다.>
우르릉…….
하늘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고, 거센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곧 자신의 몸 주변엔 네페르티티의 쉴드 같은 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됐다.
‘뭐지?’
콰과과과과광-!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이 들리면서 자신이 서 있는 땅바닥이 강력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방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촤아악-
갈라진 대지의 틈 사이로 붉은 용암이 파도처럼 솟구쳤다.
물론 대규 자신은 몸 주변에 쳐진 방어막 덕분에 무사했지만 몬스터 부대는 그렇지 않았다.
거대한 용암 파도는 땅 위에 있던 몬스터 부대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키에엑-!”
몬스터들은 비명을 지르며 용암 속으로 사라져 갔다.
반경 내에 있는 몬스터들을 집어삼킨 용암은 다시 대지의 갈라진 틈으로 쑥 들어갔다. 동시에 갈라졌던 땅바닥도 원상 복구되며 체험판은 종료됐다.
“허어…….”
대규는 아포피스의 소환을 체험했을 때처럼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같은 광역 공격 스킬이지만 비산의 결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산의 결계는 고작 검격이 쏟아지는 정도지만 이건 땅이 갈라지며 용암이 모든 걸 삼켜 버린다. 비주얼도 그렇고, 그 효과도 엄청나다.
게다가 반경 20m라니.
공격의 범위는 지름 40m 원의 넓이, 거의 5,000㎡.
‘역시 괜히 상급 스킬이 아니구나.’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남은 스킬인 죽음의 지배를 바라보자 뜬 설명창이었다.
<검붉게 빛나는 스킬은 최상급 스킬로 권위가 30 이상이어야 신들이 능력을 빌려줍니다.>
<권위가 모자라서 설명을 볼 수 없습니다.>
상급 스킬만 있는 것 아니었나.
대규는 죽음의 지배라고 적힌 글자를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다른 스킬명에 비해 검붉은 빛을 띠고 있긴 했다.
‘상급 스킬들도 위력이 이 정도인데 대체 최상급 스킬은 어떻다는 거야…….’
생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게다가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죽음을 지배한다니.
‘일단은 넣어 두자.’
대규는 목걸이를 다시 보관함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