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62화. 박람회 (2)
대규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이 다이어트 도시락과 컵밥으로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손님 층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다이어트 도시락과 컵밥뿐만 아니라 탕꼬로 만든 컵밥과 도시락도 인기가 좋았다.
부스 앞의 여성 손님들이 사진을 찍으며 반응을 보이자 다른 부스 앞에 서 있던 손님들도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다이어트 도시락하고 컵밥이라는데?”
손님들이 몰려와 다이어트 도시락과 컵밥을 주문해 시식하다가 옆에 놓인 발열 도시락 종이 상자를 보고 물었다.
“사장님, 이건 뭐예요?”
“자체 발열되는 발열 도시락입니다.”
대규가 종이 상자를 열고 줄을 잡아당기며 시범을 보여 줬다.
치치칙-
“우와, 진짜 신기하다!”
“사장님, 제가 잡아당겨 봐도 돼요?”
심지어 연기가 나는 발열 종이 상자의 동영상을 찍는 손님도 있었다.
“이거 캠핑 갈 때 딱이겠다.”
“군대 있을 때 생각나는걸.”
이제 부스의 모든 음식을 종류별로 하나씩 다 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생겼다.
어느새 손님들이 부스 앞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박람회장 입구를 넘어서서 바깥쪽까지 서 있었다.
다른 업체들의 부스보다 압도적으로 잘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넉넉하게 챙겨 왔다고 생각한 음식들이 생각보다 빨리 동이 났다.
준섭에게 연락하자 준섭은 바로바로 물품들을 챙겨 오며 대규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번 박람회 성공적입니다.”
“이게 다 준섭 형… 아니 부사장님 덕분이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손님들은 늘어났다.
한창 바쁘게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낯익은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뚜벅뚜벅.
“김대규 씨?”
“네?”
고개를 들자 예전에 탕꼬를 찾아왔던 제일 푸드 시스템의 기획본부장 배정현이 서 있었다.
정현이 대규에게 말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 네.”
“부스가 인기가 많군요.”
“그러게요.”
“메뉴는 뭐죠? 도시락과 컵밥이 주인가요?”
“그렇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정현은 부스 위에 놓인 도시락과 컵밥을 바라봤다.
뻔한 메뉴 선정이었다.
가정 간편식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일반적인 메뉴는 도시락과 컵밥이다. 간단하고 한 끼 무난히 때울 수 있는 식품 구성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특히 대규처럼 자신의 브랜드 음식을 간편식으로 가공해서 사업을 하는 경우엔 말이다.
식당 음식을 도시락과 컵밥으로 가공하게 되면 가공식품의 특성상 본래의 식당 음식보다는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떨어지는 맛을 식당 브랜드 이름으로 커버하는 것이 이 사업의 주요 포인트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본래의 음식과 도시락, 컵밥으로 가공된 음식의 맛 차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자신의 회사 제일 푸드 시스템의 경우 식당 이름을 딴 브랜드 도시락 사업을 했다가 손해를 본 적이 있었다. 꽤 인지도가 있었던 자영업 곱창 포장마차의 브랜드 네임을 사서 ‘곱창 술안주 도시락’을 개발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음식마다 최상의 맛을 끌어 낼 수 있는 조리법이 존재한다.
곱창의 경우 기름지기 때문에.
곱창이란 기름진 음식으로 불판에 구워 조리해야 고소한 맛이 나서 풍미가 생기고 맛도 좋아진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의 경우 간편해야 하니까 보통 전자레인지만으로 조리할 수 있는 식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국, 완성된 전자레인지 곱창 도시락은 맛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곱창 자체가 동물의 내장이라 쉽게 상하고 냄새가 나는 부위다. 누린내를 완전히 잡지 못해 그걸 자극적인 양념으로 커버하려 했지만 오히려 실패했다.
너무 짜고 매워져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제일 푸드 시스템은 그 곱창 도시락 사업을 접고 말았다.
‘이 도시락 사업 역시 힘들 것이다.’
대규는 발열 도시락에 들어 있는 탕꼬 조각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탕수육 치킨은 튀김 음식이다.
튀김의 생명은 뜨거운 내용물보다도 겉의 튀김옷이 바삭함이다.
하지만 이를 가공 혹은 즉석식품으로 만들어 팔면 이 튀김옷은 필연적으로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진다.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업을 추진하다니……. 이 역시 젊은이의 패기인 건가.’
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젓가락을 들고 데워진 발열 도시락의 탕꼬를 집어 먹어 봤다.
“뭐, 뭐야 이건!”
정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정현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미친 듯이 젓가락질을 하며 발열 도시락을 비웠다.
도시락의 탕수육 튀김은 맛있었다. 심지어 눅눅한 느낌이 들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비운 도시락 상자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 정도면 도시락이 아니라 웬만한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수준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모습을 본 대규가 말을 걸었다.
“어떻습니까? 맛이 괜찮습니까?”
“…맛있습니다.”
“그런데 본부장님께서 여긴 어떤 일로?”
정현은 대답 대신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멍하니 도시락 상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원래는 여러 부스를 둘러보며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할 만한 업체를 컨택하려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맛의 차이가 느껴졌다.
대규의 탕꼬 부스에 비하면 나머지 부스들의 음식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때 준섭이 부스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준섭을 본 정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니, 당신은……!”
그러자 대규가 준섭을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전준섭 부사장님이십니다.”
정현도 잘 알고 있었다.
대한제당의 최연소 과장 전준섭.
외식 사업계에서 유명한 인재였다. 자신의 회사 역시 헤드헌팅을 통해 준섭을 몇 번이나 자기 회사로 끌어들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이곳의 부사장이라니.
‘설마 대한제당의 자본이 투입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전준섭이 대한제당을 박차고 나와 이 탕꼬로 들어왔다고? 대체 김대규가 어떤 인간이기에?’
정현은 고개를 들어 대규를 바라보았다.
전에 봤을 때는 단순히 패기만 넘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성급한 젊은이로 보였는데 오늘은 좀 달라 보였다.
젊은 나이지만 자신보다 훨씬 윗사람처럼 보이는 위엄이 느껴졌다.
‘전에도 이런 느낌이었나……?’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배 본부장 아니야!”
탕꼬의 부스 앞에 다가온 또 다른 중년의 남자.
정현은 남자를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런. 신 본부장. 자네도 여기 온 건가?”
남자의 이름은 신강혁.
제일 푸드 시스템과 라이벌인 MPK의 외식 사업부 기획본부장이었다.
‘MPK도 탕꼬를 노리고 있다고 했으니…….’
정현과 강혁이 묘한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초로의 신사가 대규에게 빈 도시락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이봐, 젊은이. 아주 맛있는걸. 나 한 개 더 줘.”
“여기 있습니다.”
도시락을 받은 신사는 젓가락을 들고 열심히 도시락을 먹었다.
우물우물.
신사는 커다란 덩치에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거의 환갑의 나이였다. 양복을 빼입고 있는 정현, 강혁과 달리 후줄근한 등산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 풍채 좋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를 본 정현과 강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은……!’
그때 부스에 서 있던 준섭이 신사를 보고 황급히 달려 나가 그에게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했다.
“이재신 전무이사님!”
대한제당의 전무이사, 이재신.
그가 준섭에게 말했다.
“고개 들어, 들라구. 이제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니잖아.”
“여긴 어쩐 일로…….”
“자네처럼 뛰어난 인재가 우리 회사를 박차고 들어간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와 봤지. 어이, 제일푸드랑 MPK에서도 왔나? 근데 이거 엄청 맛있잖아.”
재신은 말을 마친 뒤 열심히 도시락을 비웠다.
정현과 강혁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회사들보다 훨씬 잘나가는 대한제당의 전무다.
도시락을 다 비운 재신은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맛이 좋은데. 이 맛의 비법이 궁금해지는구먼.”
“감사합니다.”
재신은 대규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 대한제당에서 이 상품에 투자를 하겠네.”
그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준섭은 넋 나간 표정으로 간신히 이렇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전무님. 자세한 건 일정을 잡고 이쪽에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라구.”
대한제당 전무이사 재신은 말을 마친 뒤 나머지 도시락과 컵밥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맛있구만. 사장이 누군지 궁금한걸?”
그러자 준섭이 대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이 저희 탕꼬의 김대규 사장입니다.”
호오?
컵밥을 먹던 재신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조리복을 입고 있어서 주방장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장이었다니.
“김대규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대규는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한 뒤 손을 내밀었다.
재신은 먹던 컵밥을 내려놓고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악수 했다.
‘응? 뭐야, 이 기운은?’
대규의 손을 잡은 재신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예사롭지 않은 아우라가 대규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인데… 이 위압감은 대체 뭐야?’
재신 정도면 외식 업계에서 알아주는 거물이었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잘나간다고 자부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인 제일 푸드 시스템과 MPK의 기획본부장인 배정현과 신강혁도 재신 앞에선 저렇게 쩔쩔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여태껏 대부분의 사람은 재신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다. 하지만 이 젊은 남자는 달랐다. 오히려 자기보다 윗사람을 대면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이 남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흠흠… 반갑습니다.”
게다가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이상한걸.’
대규 역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대한제당의 전무이사면 자기와는 그 지위가 하늘과 땅 정도 차이가 난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대면했을 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오히려 이쪽이 여유 있다.
‘설마 아말테이아의 젖으로 확 높아진 권위 스탯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몰랐다.
권위란 일종의 카리스마와 같은 능력이다.
그 강력한 힘을 지닌 마신들로부터 능력을 거리낌 없이 빌려 오려면 당연히 마신들을 납득시키고 휘어잡을 수 있을 만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할 것이다.
‘권위 스탯이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쓰이기도 하는구나.’
이 스탯이 높다면 나이가 어리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이 감히 자신을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대규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신에게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무척 예의 바른 말투였지만 흘러나오는 카리스마는 남달랐다.
무릇 전쟁터를 지휘하는 대장군 같은 기운처럼 느껴졌다.
‘흥미로운 젊은이로군.’
재신은 대규를 가만히 바라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전 과장… 아니 이젠 부사장이지요. 전 부사장을 통해 회의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 * *
대한제당에게 투자를 받으려면 본격적으로 회사를 만들어야 했다.
현재 대규는 개인 사업자니까 이제 법인을 설립해야 할 때였다.
‘식당 사장에서 이제 정말 기업가가 되는구나.’
법인 설립에 대한 절차는 준섭이 착착 밟았다.
하지만 대규가 결정해야 할 사안도 있었다.
우선, 회사 상호의 결정.
현행법상 자신이 쓰고자 하는 상호명이 같은 관할 지역 내에 존재하면 안 된다.
대규는 기업 상호명을 자신의 이름을 딴 ‘(주)대규식품’으로 정했다.
이름을 따면 상호명이 겹칠 확률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 몰라 인터넷 등기소에서 동일한 상호가 있는지 확인도 했지만 다행히 다른 곳과 겹치지 않았다.
그 다음은 본점 소재지의 결정이었다.
이건 식당 본점이 아니라 기업의 본점, 즉 본사를 말한다.
대규는 영등포의 건물을 (주)대규식품의 본사로 결정했다. 영등포의 건물은 매장뿐만 아니라 입소문 양념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설비에 사무실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내용 기재는 준섭이 전부 알아서 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식당 사업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할 도시락, 컵밥 등의 즉석식품 유통 사업과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일일이 다 기재해 등록했다.
그 이유는 등록 내용에 한해서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등록되지 않은 사업을 벌이게 되면 추가로 그 내용을 등록해야 하고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모두 한 번에 다 기재해 놓으면 귀찮은 일과 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그 외에 대규가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초본, 인감도장이었다.
이후 법인 설립은 준섭이 착착 진행했다.
대한제당과의 투자 미팅도 수월하게 진행됐다. 확실히 그쪽 회사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서 별다른 마찰 없이 진행됐다.
지금도 투자자들이 흥미를 보이고 있지만 곧 벌일 홈쇼핑 유통 사업 성공하기까지 하면 더욱 투자 유치가 공고해진다.
대규는 아예 준섭에게 인재 채용도 맡겼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알아서 채용하도록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더더욱 메뉴 개발과 음식 사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대규는 준섭과 영등포 건물 5층 사무실에서 미팅을 진행했다.
준섭은 사업 계획서를 내밀며 대규에게 말했다.
“우선 당분간은 도시락과 컵밥 등 즉석식품 유통 사업 위주로 하려고 합니다. 유통 사업의 경우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에 먼저 물품을 유통하고 그 이후에 편의점을 공략하려구요.”
편의점의 경우 전국에 그 지점이 수백, 아니 수천 개에 육박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몇백 배의 즉석식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인력과 설비로는 모자란 게 현실이었다.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투자자들이 몰리면 공장 등의 설비를 확장하고 편의점을 공략합니다. 편의점에까지 저희 즉석식품이 퍼지면 어느 정도 인기도 얻겠죠. 그리고 그 이후에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그 이후면 좀 늦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