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56화. 장사에서 기업으로 (5)
<각 스킬들을 선택하시면 스킬의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공략집이 작동하자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7개의 스킬들이 보였다.
‘저것들은 뭐지?’
대규는 빛나는 스킬들 중 하나인 호루스의 눈을 손끝으로 눌렀다.
그러자 다음 같은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붉게 빛나는 스킬은 상급 스킬로 권위가 15 이상이어야 신들이 빌려줍니다.>
<권위가 모자라서 설명을 볼 수 없습니다.>
권위가 15 이상이어야 한다니. 정말 강력한 스킬인 것 같았다.
그런 스킬들이 14개의 스킬 중 절반인 7개나 됐다.
붉게 빛나는 7개의 스킬들은 다음과 같았다.
호루스의 ‘호루스의 눈’,
아누비스의 ‘죽음의 군대 호령’,
오시리스의 ‘정원출입’과 ‘죽음의 지배’,
그리고 태초 신이라 불린,
라의 ‘아포피스 소환’, ‘파라오의 저주’, ‘아포칼립스’.
대규가 저 중에서 겪어 본 것은 첫 번째 피라미드에서 만났던 아누비스의 죽음의 군대 호령뿐이었다.
죽음의 군대 호령은 미라들로 이뤄진 시체 군대를 거느리고 호령하는 스킬이었다. 대규의 경우 비산의 결계를 사용해 단번에 미라들을 처리하긴 했지만 상당히 위협적인 스킬이었다.
심지어 죽은 최대호가 바로 미라 군대의 일원이 된 걸로 봐서 미라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의 시체만 있다면 다 부활시켜 군대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태초신, 라는 엄청나군. 지니고 있는 세 개의 스킬이 모두 붉은빛이라니…….’
게다가 아포칼립스란 스킬은 딱 봐도 이름부터 무시무시했다.
파라오의 저주는 저주 계열의 스킬 같았고, 아포피스 소환은 소환 스킬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 아포피스라는 거,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대규는 이집트 신화 책을 꺼내 책장을 넘겼다. 거기엔 아포피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포피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라와 적대적인 악마이자 지옥의 큰 뱀이다. 매일 밤낮으로 라는 아포피스와 전투를 벌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포피스와의 전투에서 라가 고전하면 하늘이 거칠어지고 아포피스가 라를 잡아먹으면 일식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태초신 라가 고전할 정도면 엄청난 괴수인 것 같았다.
심지어 아포피스는 불사의 몸이라고 한다.
‘이런 괴물을 소환할 수 있는 스킬이라니. 후덜덜하군.’
어찌 됐든 이 7개의 스킬은 나머지와는 급이 다른 게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스킬들의 설명을 보고 싶었지만 모자라는 권위 때문에 불가능해서 일단 다른 스킬들의 설명을 보기로 했다.
대규는 네프티스 여신 밑에 적힌 스킬 중 하나를 손끝으로 눌렀다.
‘카노포스(Kanopos)’.
곧 공략집의 스킬 설명이 눈앞에 떴다.
<카노포스: 네프티스 여신이 소유한 카노포스 단지 속 고약이 전투 중 입은 내상을 치료함. 전투 중에 이 스킬을 사용하면 깎인 생명력의 100%가 단번에 차오른다. 마나 소모 10.>
<카노포스 스킬 체험판을 시행하시겠습니까? Yes/No>
‘체험판?’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여태까지 공략집은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 약점이나 그것의 공격 패턴을 보여주는 전투 영상만 보여 줬다.
‘혹시 체험판이면 직접 스킬을 시전하고 느껴볼 수 있는 걸까?’
망설일 틈 없이 대규는 Yes를 선택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오피스텔은 오간 데 없고, 대규는 웬 동굴 같은 곳에 서 있었다.
“그르르르…….”
눈앞에는 처음 보는 몬스터가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지금은 갑옷이나 검을 장착한 상태도 아니다. 보관함을 불러내려고 했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몬스터가 맹렬히 달려들었다.
휙-
그동안 올려놓은 반사 신경으로 공격을 피한다고 피했는데, 녀석의 앞발이 오른쪽 팔뚝을 강하게 스쳤다.
“으윽…….”
대규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피가 흘러나왔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체험판인데도 불구하고 고통이 이렇게 생생할 줄이야.
눈앞에 생명력이 줄어든 것도 보였다.
생명력 550/750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가 떴다.
<체험판 스킬이 발동됩니다.>
우우웅-
팔뚝의 상처에서 황금빛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면서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회복 약을 마신 것처럼, 아니 회복 약보다도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았다.
어느새 생명력이 가득 차 있었다. 온몸이 가뿐하고 경쾌했다.
스르륵-
스킬이 발동되자마자 곧 눈앞의 몬스터가 사라졌고 대규는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의 몸은 멀쩡했다.
체험판은 말 그대로 자신이 빌려올 수 있는 스킬을 체험해 보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봤던 공격 영상이나 약점 영상과는 달랐다. 그건 영화 관객처럼 영상을 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 체험판의 경우엔 스킬을 직접 써 보고 그 효과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마치 마트에서 음식을 사기 전에 시식해 보는 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사용해 보고 어떤 느낌인지 잘 숙지해서 마신들에게 스킬을 빌리라는 건가.’
확실히 글로 써진 스킬 설명을 보고 고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좋았다.
대규는 다른 스킬들도 한 번씩 체험해 보았다.
세트의 ‘모래폭풍’은 말 그대로 모래폭풍을 불러내 적을 공격하는 공격 기술이었다.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모래 때문에 눈이 좀 따가웠지만, 그 일격은 놀라웠다.
이시스의 ‘네페르티티 쉴드’는 몸 주변에 막이 형성되는 방어 기술이었는데, 적이 공격하는 걸 막아내는 소리와 그로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충격들도 제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체험판 스킬은 뭐니 뭐니 해도…….
하토르의 ‘색안’이었다.
색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방, 특히 이성을 유혹하는 저주 스킬, 색안!
후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대규는 재미로 스킬들을 체험한 건 아니었다.
게임의 설정집을 독파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꼼꼼히 체험하고 스킬을 숙지했다. 그리고 체험해 본 스킬을 나름대로 분류했다.
우선 총 14개의 스킬들 중 아직 쓸 수 없는 스킬은 절반인 7개.
따라서 현재 사용 가능한 스킬은 7개다.
대규는 7개의 스킬들을 공격 계열, 방어 계열, 회복 계열, 저주&유혹 계열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공격 계열-모래폭풍
방어 계열-네페르티티의 쉴드
회복 계열-카노포스 힐링
저주&유혹 계열-죽음의 기운, 색안, 복종안
기타 계열-순간 이동
* * *
영등포의 매장을 오픈하는 날이 다가왔다.
건물 1층에 세 들어 있는 삼겹살집은 가만히 놔뒀다. 세무사와 준섭이 임대업 신고를 해 줘서 잘 처리됐다.
준섭의 조언대로 2, 3층엔 1인 식당을 만들었다. 2층의 한 공간엔 조그맣게 컵’s 탕꼬를 테이크아웃해 갈 수 있는 창구를 따로 만들었다. 이렇게 포장 손님과 매장에서 먹고 가는 손님을 분리시켰다.
첫날 매출은 폭발적이었다.
탕꼬는 이제 SNS에서 유명한 식당이 됐다.
심지어 ‘서울 맛집 투어’라는 포스트에서 ‘커플끼리 데이트하기 좋은 식당 Top 5’에도 들어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4층.
입소문 양념 설비를 설치해 양념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이렇게 설비를 갖춰 놓으면 대규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양념에 들어갈 재료 다듬기와 배합 등 모든 걸 기계가 다 알아서 해 준다.
하지만 입소문 양념은 상급 요리스킬의 효과 중 하나로,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야 그 놀라운 맛이 유지된다.
기계가 양념을 다 만들면 그건 입소문 양념이 아니다. 그냥 일반 양념이지.
그래서 대규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직접 약간의 입소문 양념을 만든 뒤, 그 양념을 기계 속 재료에 기본 베이스로 투입한다.
자신이 직접 대량생산은 불가능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온종일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족할 만한 비율을 찾아냈다.
<대량생산된 입소문 양념>
<직접 만든 입소문 양념보다 효과가 감소합니다. 이 양념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1명의 지인에게 맛있다고 입소문을 냅니다.>
원래의 입소문 양념은 3명의 지인에게 소문을 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1명으로 줄었다.
효과가 약 66%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1명씩 입소문을 낸다 해도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정도로 가게가 확장되고 앞으로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벌이려면 양념의 양으로 승부하는 게 더 나았다. 만드는 데 시간도 덜 걸린다. 저 기본 베이스로 들어간 양념의 경우, 자신이 1시간만 투자하면 만들 수 있으니까.
혹시 몰라 대량생산된 입소문 양념을 사용해 탕꼬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시식해 봤다.
시식 결과 맛있다고 느끼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심지어 준섭조차도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입소문을 3명에게 내느냐, 1명에게 내느냐의 차이만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곧 확장된 사업의 구체적인 메뉴 개발이 완성될 것이다.
다이어트 도시락과 기타 등등… 준섭이 말한 박람회를 염두에 두고 HMR, 즉 가정 간편식 메뉴들을 개발했다.
메뉴들이 완전히 개발되면 준섭과 직원들을 모두 모아 자체적으로 시식회를 할 것이다.
얼마 후 대규는 자체 시식회를 열었다.
그날은 휴업을 했다. 그리고 매장 중 가장 널찍한 공간인 영등포의 건물 2층 1인 식당 매장에 개발한 메뉴들을 전시했다.
부사장인 준섭을 포함해 진섭, 상민과 진희,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다 모였다.
메뉴는 간편식인 도시락과 컵밥 위주로 총 네 종류였다.
다이어트 식품을 이용한 도시락과 컵밥,
그리고 탕꼬 도시락과 컵밥.
게다가 앞으로 사업을 크게 벌일 걸 예상해 이 메뉴들은 모두 대량생산된 입소문 양념을 사용했다.
진희를 비롯한 여직원들의 눈을 끈 것은 바로 다이어트 식품으로 만들어진 메뉴였다.
다이어트 도시락의 경우 삶은 닭 가슴살과 곤약, 고구마 샐러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이어트 컵밥은 살이 덜 찌는 현미밥에 닭 가슴살 토핑이 들어 있었고, 자극적이지 않은 심심한 맛의 간장 양념을 넣었다.
여직원들이 도시락의 닭 가슴살과 곤약을 먹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정말 맛있다! 사장님, 저 이거 출시되면 맨날 사 먹을래요!”
“맛있으면서도 건강한 맛이야.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인걸.”
준섭 역시 다이어트 도시락과 컵밥을 먹고 속으로 감탄했다.
몇 년 동안 외식사업부에서 근무하며 깨달은 사실은 다이어트 혹은 채식 위주의 메뉴는 성공하기 힘든 상품이었다. 왜냐면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선 ‘왜 저런 풀떼기를 돈 주고 사 먹냐! 사 먹었는데 여전히 배고프고 맛도 없다! 이게 무슨 음식이냐!’ 같은 인식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규가 만든 다이어트 도시락과 컵밥은 그런 인식을 완전히 깨부쉈다.
‘이건 대박이야… 거의 혁명 수준이라고.’
준섭은 대규에게 다가가 말했다.
“사장님, 차라리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레토르트 식품을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레토르트 식품이요?”
“예. 1인분씩 소분해서 기계로 급속 냉동시키면 됩니다. 바로 전자레인지에 가열해서 먹을 수 있도록. 그리고 발열 용기에 담아 발열 도시락이나 발열 컵밥을 만들어도 되고요.”
“군대 전투식량처럼요?”
그러자 준섭이 말을 이었다.
“요즘엔 발열 식품을 군대에서만 먹지는 않습니다. 야외 레저 인구가 많아지고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발열 식품 시장이 활발히 개척되는 중이죠. 게다가 탕꼬 도시락이나 컵밥의 경우엔 메뉴가 탕수육 치킨이라 뜨겁고 바삭바삭한 튀김의 느낌이 생명이니까요.”
준섭의 말이 맞다.
대규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부사장님, 발열 용기 제작은 어떻게 하죠? 그걸 만들려면 공장을 설립해야…….”
“사장님, 그런 건 용기 제조사에 하청을 주면 됩니다.”
맞다.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리고 HMR 박람회엔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정도 메뉴들이면 박람회에서도 성공을 거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