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화. 장사에서 기업으로 (3)
준섭은 외식사업부에서 일하면서 어지간한 식당 음식들은 다 먹어 봤다.
그런데 이 음식은 여태까지 먹어본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는 식당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이 정도 맛이라면 충분히 차별화된 강점이 되고도 남는다!
식당 사업의 성공 요인은 마게팅이나 투자 등등 여러 개가 있지만 결국 기본은 ‘음식의 맛’이다.
맛이 이 정도로 월등하다면 이건 엄청난 경쟁력이었다.
‘이 사업… 가능성이 있다! 내가 키워 보고 싶기도 한걸?’
주방에 있던 대규는 준섭의 속마음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빈 접시를 치우러 테이블에 가서 입을 열었다.
“준섭이 형.”
“응?”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저랑 같이 이 사업 해 보실래요?”
그 말에 준섭은 당황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하하, 농담하지 마.”
“형, 농담 아니에요. 형 능력은 제가 잘 알고 있잖아요. 우리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형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고.”
“대규야, 이건 비즈니스야. 비즈니스는 친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대규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준섭이 형, 옛날에 대학 다닐 때 경영 동아리 일구시고 상 탔을 때 기억 안 나요?”
“응?”
“형이 그때 상 타고 진섭이랑 저한테 술 사 주시면서 그랬잖아요. 형 꿈이 자기 사업체를 만들어 직접 경영하는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준섭의 눈이 흔들렸다.
이 녀석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니.
물론 지금 다니는 회사와 직급, 연봉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대학 시절 경영 동아리를 이끌며 솟구쳤던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마음속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그땐 정말 내 사업체를 일궈서 경영하고 싶었다.
‘게다가 이 정도 맛이라면 리스크는 극히 적을 것 같다.’
이런 미친 듯한 맛이라면 분명히 이 사업은 손익분기점을 무난히 넘길 수 있다.
대규는 준섭의 마음속 고민을 낱낱이 다 듣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됐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확실히 회유할 수 있을까.
보관함에 있는 라의 목걸이가 떠올랐다.
목걸이로 하토르 여신의 복종안을 빌려 준섭을 복종시켜 볼까?
아니다.
복종안은 두려움과 공포를 빌미로 상대를 복종시킨다.
이런 전문 경영인, 혹은 사업 파트너를 유치할 땐 그런 굴복에 가까운 복종보단 그 사람의 진심을 받아야 한다.
그때 준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번 고민해 볼게.”
“급하게 결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러자 준섭이 대규에게 말했다.
“너도 사업을 진행시켜야 할 테니 일주일 내로 답을 줄게.”
* * *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대규는 늘 그렇듯 아침 6시에 기상했다.
현실에 돌아온 지 일주일 정도 흘렀다.
그동안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검술을 훈련하는 시간으로 정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오피스텔 옥상에서 체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일어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옥상으로 향했다. 우선 스트레칭으로 몸을 슬슬 풀었다.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얼굴을 거세게 때렸다.
‘벌써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작년 이맘때쯤 뒷골목에 탕꼬를 오픈했었지.’
그때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성공했다.
게을러지지 말고 더욱 열심히 훈련해야겠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보관함에서 체인 블레이드를 꺼냈다.
일주일 동안 빼놓지 않고 검술 연습을 한 결과 칼자루를 쥔 폼이 제법 그럴듯해졌다.
[검술 +10]
근성 스킬로 검술 능력도 이만큼 늘었다.
휙휙-
대규는 안정적인 자세로 체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처음보다 훨씬 빨라진 발놀림과 칼날의 궤적.
이 정도면 그럭저럭 기본기는 익힌 것 같았다. 이제 좀 더 난이도 있는 훈련을 해야 할 때였다.
‘그러기 위해 며칠 전부터 검술 관련 책들도 도서관에서 읽었지.’
검술 교본서에 따르면 검술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고대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까지 전해졌으며, 기사도 정신의 확립과 함께 저명한 검객들이 배출됐고 고도의 검기(劍技)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거운 갑옷에 롱 소드(Long sword)류의 커다란 장검들이 대세였지만 16세기 이후 화약과 기타 무기들이 발달하면서 전투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고대부터 쓰였던 장검들이나 그 검법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라피에르(Rapiere)라 불리는 에스파냐식의 날이 가늘고 긴 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라피에르란 검은 현재 올림픽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 펜싱 검의 조상 격인 검이었다. 참고로 라피에르는 프랑스 말로 ‘찌르기’를 의미한다.
대규는 바로 이 라피에르 검술에서 파생된 펜싱에 주목했다.
자신의 체인 블레이드 역시 이들 검만큼 칼날이 가늘지 않았지만 높아진 근력으로 이젠 가볍게 쥐고 들 수 있었다. 그래서 상대의 급소를 찔러 급습하는 펜싱에 호기심이 일었다.
특히 사슬 검의 검신이 늘어나는 특성과 펜싱의 찌르기를 접목하여 5m 밖의 적을 찌를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면 좋을 것 같았다.
펜싱은 찌르기나 베기 등 검술의 동작으로 점수를 득점해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다. 알다시피 검이 가늘고 날카로워 일반적인 검술보다 정교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능숙한 실력자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신속하게 상대의 급소를 정확히 노려 공격할 수 있다.
펜싱은 공격 동작과 부위에 따라 플뢰레(Fleuret), 에페(Epee), 사브르(Sabre) 총 세 개의 종목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대규는 사브르를 눈여겨봤다. 사브르의 경우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허용되고 머리와 손을 포함한 상체의 모든 부위를 공격할 수 있는 종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기가 시작되면 견제 없이 신속하게 상대를 맹렬히 공격하는 게 특징이다.
몬스터와의 실전 전투에선 찌르기는 물론 베기도 해야 했다. 게다가 공략집으로 확인한 대부분의 몬스터 급소는 목이나 심장, 즉 상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실전 검술 실력을 높이기 위해선 사브르를 연습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어제부턴 열심히 공략집으로 사브르 경기 영상을 눈앞에 켜 두고 검을 휘둘렀다.
심지어 사람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나무판자를 세워 두고 체인 블레이드 끝으로 급소들을 멀리서 빠르고 정확하게 찌르는 훈련도 했다.
타탓.
휙휙.
체인 블레이드와 대규의 두 발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술 실력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검술 +11]
[검술 +12]
수백 번 펜싱 기술 동작을 연습하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굴엔 비 오듯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습을 할수록 팔의 힘이라든지 찌르는 칼의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뭔가 모자라…….’
지금보다 훨씬 완벽한 전투를 위해선 단순히 검술 능력만 높인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지구력이라든지 반사 신경 등의 다른 능력들도 같이 올라가야 더욱 전투 실력이 상승한다.
물론 혼자 올릴 수 있는 신체 능력은 틈틈이 노력해서 올리고 있었다. 오래 달리기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주력이나 지구력, 유연성을 5까지 만들어 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올리기 곤란한 능력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상대의 공격을 빠르게 회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반사 신경.
특히 가늘고 날카로운 검을 사용하는 펜싱 검술의 핵심은 재빠르게 공격하면서도 상대의 빠른 공격을 피하는 고도의 반사 신경이 필수였다.
‘반사 신경을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걸 올리려면 실제로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며 그 공격을 피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당연히 전투를 벌일 수 없다.
그렇다고 차원의 열쇠를 써 저쪽 세계로 넘어가 전투를 벌인다 해도 문제였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 피하는 동작만 미친 듯이 반복해야 할 테니까.
뭔가 다른 의미로 노가다였다.
‘모르겠다. 일단 혼자 올릴 수 있는 거나 올려놓자.’
대규는 열심히 체인 블레이드로 나무판을 찔렀다.
* * *
일요일 장사 역시 성공적이었다.
손님들은 항상 많았고 대규는 주방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짬이 날 때마다 공사업자들에게 연락해 영등포 건물 공사 현황을 보고받았다.
보고받은 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 이내에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 컵’s 탕꼬를 오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곳 가게를 오픈했을 때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번엔 단순히 식당을 하나 더 늘리는 게 아니라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이란 차별화를 둔 매장이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더 공을 들이고 싶었다.
어느새 가게를 마감하고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규가 카운터에서 매상을 확인하고 있는데,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남자 직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야, 집에 가는 길에 볼 좀 던지고 갈래?”
“좋지! 대신 꼴찌가 계산하기.”
“콜!”
대규는 그들에게 물었다.
“어디 가려는 거예요?”
그러자 그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아, 사장님. 여기 근처에 24시간 야구 게임장 하나가 크게 생겼잖아요. 요즘 저희 퇴근 때마다 거기 들러서 가끔 볼 던지러 가거든요.”
“사장님도 같이 가실래요?”
야구 게임장이라.
옛날엔 몇 번 갔던 것 같은데 장사가 본격적으로 바빠지고 나서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좋네요. 같이 가죠. 게임비는 제가 쏠 테니.”
“사장님, 최고!”
가게를 나선 그들은 근처 야구 게임장에 도착했다.
볼을 던지는 피칭과 볼을 방망이로 치는 배팅, 모두 가능한 게임장이었다.
그들은 피칭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사장님, 먼저 던지세요.”
대규는 게임장 안으로 들어가 바구니에 쌓여 있는 야구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근력은 인간의 한계를 진즉 넘어선 상태.
전력을 다해 던졌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최대한 힘을 빼고 살살 던졌다.
휙-
팡!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헐! 157km?”
직원들이 입을 떡 벌린 채 소리쳤다.
“대박이다…….”
“기계 오류 아냐? 괴물 투수 오타니가 165km인데…….”
‘힘을 너무 줬나?’
대규는 손에 온 힘을 다 뺀 뒤 나머지 공들을 툭툭 던졌다.
132km.
130km.
135km.
그래도 엄청난 기록이다.
게임장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저 사람 야구 선수야?”
“대박이다.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대규가 게임장에서 나오자 직원들이 놀라서 외쳤다.
“사장님, 야구하셨어요? 완전 장난 아닌데…….”
“대박! 저 영상으로 찍어 놨어요! 와 씨, 이건 진짜…….”
대규는 머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거예요.”
직원들은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하며 차례로 게임장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규는 자신의 오른손을 쳐다봤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때 귓가에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깡! 깡!
옆에서 방망이를 들고 볼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피칭 머신이 내뱉는 볼을 치는 배팅 게임장이었다.
대규는 공을 빠른 속도로 내뱉는 피칭 머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혹시 저거라면……?’
대규는 베팅 게임장 안으로 들어갔다.
신호가 울리고 게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방망이를 쥐는 대신 맨몸으로 피칭 머신 근처로 다가갔다.
“이봐, 미쳤어? 뭐 하는 거야!”
게임장 주인이 대규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늦었다. 피칭 머신은 이미 공을 뱉어 냈다.
휘릭-
빠르다.
대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안면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가까스로 피했다.
공이 얼굴을 따갑게 스쳤다.
펑! 펑!
쉴 틈 없이 연속해서 공들이 날아왔고 대규는 재빨리 스텝을 밟으며 피했다.
[반사 신경 +1]
역시 오른다.
놀란 게임장 주인은 기계를 멈추려다 대규의 신들린 몸놀림을 보고 입을 벌렸다.
대규는 공들을 피하며 점점 피칭 머신 가까이로 다가갔다.
가까이 서 있으면 더욱 피하기 힘드니까.
공들이 몸을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했지만 대규는 여전히 민첩성을 발휘해 공들을 피했다.
퍽!
그러다 한 개의 공이 그의 옆구리를 강력하게 때렸다.
윽.
근력이 워낙 높아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아팠다.
휘청거리고 있는데 그의 안면을 향해 날아오는 또 다른 야구공.
빌어먹을.
이번엔 얼굴에 맞았다.
그때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떴다.
[맷집 +1]
뭐야, 얻어맞으면 맷집 능력도 오르는 거였냐.
이거 일석이조잖아. 반사 신경도 키우고, 맷집도 생기고.
얼마 후 피칭 머신이 멈췄고, 게임장 주인이 뛰어들어 소리쳤다.
“당신, 뭐야! 왜 머신 쪽으로 다가가고 그래요? 정신 나갔습니까!”
“죄송합니다.”
대규는 고개 숙여 주인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론 당장 피칭 머신을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