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53화. 장사에서 기업으로 (2)
그날 오후, 대규는 직원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마포구 도서관으로 갔다.
근성 스킬이 신체 능력 말고 다른 능력도 올려 주는지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도서관 열람실은 한산했다.
대규는 책장에 가서 두꺼운 경영 관련 서적들을 꺼내 왔다. 하나같이 대학교 교재처럼 두꺼웠다.
책장을 펴고, 천천히 내용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엔 책만 읽으면 그렇게 졸음이 쏟아졌는데.
심지어 재미있었다. 어쩌면 높아진 지능 스탯이 한몫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능력이 학교 다닐 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꺼운 책을 한 시간도 안 돼서 독파했다.
사업 계획 수립에 관련한 B/C 분석, SWOT 분석,
마케팅과 재무에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들…….
그전 같았으면 무슨 소린지 모를 것들이 머리에 쑥쑥 들어왔다.
여러 지식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트윈슈머(Twinsumer)’ 개념이었다.
트윈슈머란 쌍둥이를 뜻하는 단어 트윈스(Twins)와 소비자를 뜻하는 단어 컨슈머(Consumer)가 합쳐진 용어로 동일한 생각이나 반응, 취미, 취향 등을 가진 소비자들을 뜻한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의 후기나 리뷰 등 타인의 소비 경험을 참고해 물건을 구매한다.
한마디로 리뷰를 통해 구매를 결정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지금 탕꼬의 입소문 양념이나 요리 스킬 역시 이런 트윈슈머들을 유치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신규 유입 고객들 대부분은 스킬의 효과인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고객들이니 말이다.
‘경영 지식을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에 접목시키니 상당히 흥미로운걸.’
그때 메시지 창이 눈앞에 떴다.
[경영 +1]
근성 스킬이 발휘됐다. 책을 읽고 이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향상된다니.
다른 책들을 읽자, 여태껏 생각지 못했던 경영 전략 아이디어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향상된 능력의 효과인 것 같았다.
경영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세무 쪽에 관련한 상식도 필요할 것 같았다.
이제 자신은 그전처럼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장사하는 게 아니라 엄연히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였다. 이에 따라서 취득세니 양도소득세니 하는 여러 세금이 적용될 것이다.
게다가 영등포 건물 1층의 경우 삼겹살집이 세 들어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사업뿐만 아니라 임대업까지 하는 게 되니까 그에 대한 허가도 받아야 하고, 부가세나 각종 세금도 해결해야 한다.
‘으와! 엄청 복잡하다. 내일은 세무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아야지. 기왕이면 회계 업무까지 같이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래도 세무사를 만나기 전에 세금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은 쌓아야 할 것 같았다.
대규는 책을 다 씹어 먹어 버릴 듯한 기세로 열심히 독서를 시작했다.
[경영 +3]
[세무 +1]
경영 및 세무 지식이 오르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대규는 한국 외식업 중앙회에 가입했다.
그동안은 장사도 안 되고, 가게 규모도 작아서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랐다.
중앙회에 가입하면 위생 교육이나 경영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세무 관련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세무사도 연결해 준다고 했다.
대규는 바로 가입해서 상담을 받은 뒤 세무사를 안내받았다.
세무사 사무실로 가서 직접 만나 공략집으로 속마음을 들어 보니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세무 업무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었다.
대규는 장사하면서 발생하는 세금뿐만 아니라 건물 매입으로 발생한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등도 그를 통해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젠 전문 경영인이 문제인데…….’
전문 경영은 세무 업무와는 다르다.
세무 업무의 경우 단순히 세무 관련 문제만 처리해 주면 되지만 경영은 자신이 앞으로 하려는 사업을 열정적, 의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
공금 횡령이라든가, 뒤통수를 때리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안 된다.
물론 공략집으로 속마음을 들어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순 있지만 애당초 그런 속내를 지니지 않은 안전한 사람을 쓰고 싶었다.
막역한 친구 사이, 혹은 가족 사이라도 같이 사업을 하다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만큼 사업의 경우 일도 잘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고민을 더 해 봐야겠어…….’
그날 장사를 마감하고, 직원들이 퇴근할 때까지도 전문 경영인 유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섭이 대규에게 물었다.
“대규야, 무슨 생각 하냐?”
“좀 고민되는 게 있어서.”
“뭔데? 내가 술 한 잔 살 테니까 말해 봐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아니, 그럴 필요까진…….”
그러자 진섭이 호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네 덕분에 취업도 했는데 이 정도는 보답하게 해 줘.”
“그래. 그럼 간만에 맥주나 한잔하러 가자.”
“콜!”
그들은 가게 문을 닫고 주변에 있는 맥줏집으로 갔다.
주문한 생맥주가 나왔고 대규는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맘 편하게 술을 들이켜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너무 바빴다.
생맥주를 들이켠 진섭이 물었다.
“그런데 고민이 뭐야?”
대규는 그에게 전문 경영인 문제와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대강 말해 줬다. 얘기를 들은 진섭이 입을 열었다.
“흠… 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너 정말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있구나. 잠깐만! 그런 거면 우리 형한테 상담해 보는 게 어때?
“너희 형?”
“그래. 우리 형 지금 대한제당 외식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잖아. 혹시 알아? 형은 그쪽 일 하니까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도.”
진섭의 형 준섭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전교 1등을 항상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결국,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대한민국의 대기업 대한제당에 취업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학교 재학 시절, 커다란 경영 동아리를 만들고 운영해 교내에서 상을 받은 이력도 있었다.
다행히 어린 시절부터 진섭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같이 대화도 나누고 안면도 터서 대규와도 꽤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진섭아, 고맙다. 그럼 부탁해도 될까?”
“이미 형한테 메시지 보냈다. 어, 답장 왔다!”
“뭐래?”
진섭이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 브레이크 타임에 한번 들르겠대. 우리 형 평일엔 무지 바쁘거든. 최근에 과장까지 달아서 맨날 야근의 연속이야.”
“그 나이에 벌써 과장이라고?”
“응. 팀 내 최연소 과장이라나……. 참 세상은 불공평해. 우리 형한테 좋은 유전자가 몰빵됐다니까. 얼굴도 잘생겼지, 머리도 좋지, 능력도 좋지. 부모님은 맨날 나보고 니가 형 반만큼만 해도 소원이 없겠대.”
말을 마친 진섭은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토요일 브레이크 타임.
진섭의 형 준섭이 탕꼬를 방문했다.
준섭은 삼십 대 초반의 남자로 큰 키에 멀끔하게 생겼다. 저런 훤칠한 외모에 공부까지 잘해서 어린 시절부터 동네의 공식 ‘엄친아’로 불렸다.
“준섭이 형!”
대규는 준섭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야, 대규! 오랜만이다. 이젠 김 사장님인가? 진섭이한텐 얘기 많이 들었다.”
“형, 이리 들어와서 앉아. 커피라도 한잔할래?”
“좋지.”
준섭은 테이블에 앉으며 탕꼬의 내부 전경을 둘러봤다.
의외로 인테리어나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커피를 내오는 대규와 진섭을 보며 말했다.
“니들이 조금 있으면 서른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하루가 멀다고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셋이 게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셋이 게임은 무슨. 형은 맨날 공부만 했으면서.
옛날 생각이 나자 대규는 씩 웃었다. 준섭 형제 집엔 당시 고가였던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어서 맨날 놀러 갔었다. 준섭은 그들과 같이 게임을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방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곤 했다.
“형은 요즘도 잘나가신다면서요. 진섭이한테 들었어요. 이번에 팀에서 최연소 과장이 되셨다면서요.”
“하하, 고맙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진섭이 말로는 나한테 상의할 게 있다고…….”
“아, 준섭이 형. 제가 요즘 사업을 더 확장할까 생각 중이거든요…….”
대규는 앞으로 계획한 자신의 사업과 전문 경영인 유치에 대해 말했다.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 사업 계획, 그리고 도시락 사업에 대한 대략적인 아이디어 등.
그리고 나름대로 사업들의 수익을 분석해 만든 보고서를 꺼내 보여 줬다.
진섭이 보고서를 흘끗 보더니 놀라서 외쳤다.
“야, 이거 뭐냐? B/C(비용대비수익) 분석에 SWOT 분석이라니… 대박이다. 경영학과 나온 나보다 훨씬 잘했네.”
며칠 동안 근성 스킬을 이용해 경영 능력을 8까지 올린 효과였다.
준섭은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현실적인 분석이구나. 특히 SWOT 분석은.”
“네. 여러 전략 중에서도 강점을 부각시키고 기회를 잡는 SO(Strength-Opportunity) 전략으로 가려고요. 탕꼬의 경우 남들과 다른 강점으로 승부를 보고 있거든요.”
물론 강점인 입소문 양념과 요리 스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사업을 벌일 때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이미 자리를 잡은 대규모의 기업, 그러니까 형네 회사 대한제당 같은 경우엔 드러난 약점을 보완하며 리스크를 피하는 안정적인 WT(Weakness-Threat) 전략이 더 적합하겠지만 말이에요.”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대규를 보며 준섭이 말했다.
“분석만으론 나무랄 데가 없구나. 하지만 분석대로 사업이 굴러가진 않지. 실제로 사업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작용하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준섭이 형, 상담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어요.”
“뭔데?”
대규는 준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전문 경영인 유치 말이에요. 형도 알다시피 저는 요리로만 외길 인생을 살아온 인간이고… 경영이란 걸 뭐 제대로 해 봤어야 말이죠.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 좀 조언을 구하려고 이렇게 뵙게 됐습니다.”
그러자 준섭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주고 싶지만, 나도 이제 막 과장을 단 사람이라, 누군가를 추천할 만한 짬이 안 되네.”
말을 마친 준섭은 잔을 들고 남은 커피를 마셨다.
그때 그의 속마음이 들렸다.
‘솔직히 대규의 분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계획대로 사업이 탄탄대로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 게다가 전문 경영인 유치는 힘들 거다. 현재 지점을 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사업 규모도 작고 투자자들이나 거대 자본이 투입된 것도 아니니까……. 고객뿐만 아니라 투자자들까지도 확 휘어잡을 만한, 남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강점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이 얘기를 대놓고 하면 상처받을지도 모르고…….’
그렇구나.
준섭의 속마음을 들은 대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겉으로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저 속마음은 자신의 계획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냉정하고 현실적인 분석이었다.
‘아직은 사업을 더 벌이기엔 시기상조인 걸까?’
대규는 공손한 목소리로 준섭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형.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지. 오히려 내가 고마워.”
“뭐가요?”
“사람 구실 못 하는 내 동생 녀석 취업시켜 줘서.”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진섭이 입을 삐죽 내밀며 외쳤다.
“아, 형! 쫌!”
대규는 주방 쪽으로 가며 준섭에게 말했다.
“형,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탕꼬라도 한 접시 드시고 가세요. 마침 브레이크 타임 안 끝났으니…….”
“그렇게 할까? 그럼 난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준섭은 진섭과 대규가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는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엉?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아직 브레이크 타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골목 초입까지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진섭이한테 장사가 잘된다고 얘기를 듣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심지어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 대기 손님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테이블 위에 탕꼬 한 접시가 나와 있었다.
준섭은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소스가 묻은 탕수육 치킨 한 조각을 베어 먹었다.
“……!”
준섭은 미친 듯이 탕수육 치킨을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먹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꼭 치킨에 마약이라도 바른 것 같았다.
찰칵!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한 접시를 다 비운 준섭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빈 접시를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미친 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