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화. 장사에서 기업으로 (1)
[근성(무 등급): 패시브 스킬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능력이 강화됩니다. 신체 능력 강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능력에도 유효합니다.]
무 등급의 패시브 스킬을 스킬북으로 얻은 건 처음이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해당 능력을 강화해 주는 스킬.
공략집의 설명에 따르면 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주력이, 적의 공격을 민첩하게 열심히 피하면 반사 신경이 오른다고 했다.
‘칼을 열심히 휘두르면 검술 실력이 오르려나…….’
대규는 커피를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의 검술은 초보자 수준이었다.
주방 일을 하며 칼을 다뤄 본 경험과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근력, 민첩 스탯 덕분에 그럭저럭 전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한계를 뛰어넘은 근력, 민첩 스탯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게다가 체인 블레이드의 진정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체인 블레이드의 경우 검을 체인화했을 때는 채찍처럼 휘두르는 것도 어렵고, 검신화한 상태에서 전투를 벌일 때는 확실히 기초적인 검술 실력이라도 필요했다.
‘제대로 칼을 휘둘러 보고 싶다!’
진짜 검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이것저것 공부해야겠지만, 이 근성 스킬을 사용하면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당장 내일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소환에서 최고의 성과…….
‘라의 목걸이!’
대규는 목걸이가 걸려 있는 자신의 목을 내려다보았다.
펜던트 부분의 검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설명에 따르면 이 목걸이를 이용하면 하루에 한 번, 이집트 마신들의 능력을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마신의 능력은 아누비스의 죽음의 기운과 순간 이동 능력, 그리고 죽은 자의 호령과 하토르 여신의 색안, 그리고 복종안이 있다.
자신이 직접 전투를 하며 겪어 봤기 때문에 그 능력의 위력은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의 마신들은 저 둘뿐만이 아니었다. 각 마신이 피라미드를 소유할 수 있다고 했고, 제2 타르타로스에 존재했던 피라미드는 여러 개였으니까.
‘시간이 나면 이집트 신화를 공부하면서 마신들의 능력을 알아봐야겠어.’
어쩌면 몬스터와의 전투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용하기 유용한 능력이 있을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차원의 열쇠……!’
대규는 안내인 여자가 건넨 황금색 열쇠를 보관함에서 꺼냈다.
마음대로 현실과 저쪽 세계를 오갈 수 있다는 건 매우 유용한 일이다. 앞으로는 소환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할 때마다 바로 넘어가서 신기한 보상들을 얻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다른 영웅이나 전사들과 함께할 필요 없이 혼자만의 독주가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인 점이다.
물론 어떤 몬스터와 미션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공략집이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었다. 조만간 한번 열쇠를 써서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대규는 두 손을 깍지 끼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다음번 소환에선 신들과 같이 전투를 벌이게 된다. 전투를 벌이게 될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건 지금 고민해 봤자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쨌든 이번 소환에서 얻은 것들을 이렇게 정산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대규는 남아 있는 커피를 마저 마신 뒤 식탁에서 일어났다.
* * *
새벽 6시.
대규는 잠든 지 3시간 만에 눈을 떴다.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두웠다. 장사 준비를 하기 전에 근성 스킬을 조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추리닝을 입고 오피스텔 옥상으로 올라간 뒤, 보관함에서 체인 블레이드를 꺼내 들고 전투를 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했다.
평소 전투할 땐 몰랐는데 이렇게 홀로 옥상에서 검을 꺼내 들고 있으니, 상당히 어정쩡하게 느껴졌다.
옥상에 올라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술에 대해 대충 검색을 해 봤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손을 검의 크로스 가드에 가깝게, 왼손은 퍼멀을 잡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크로스 가드란 칼날과 칼자루 사이에 직각으로 붙은 날 밑 부분이었고, 퍼멀은 칼자루 끝의 뭉툭한 부분이었다. 이 명칭들도 물론 검색해 봐서 알게 됐다.
‘검을 사용하면서도 이런 기초적인 명칭에 대해 몰랐던 게 좀 부끄럽지만…….’
검은 너무 세게 잡으면 오히려 그립의 힘이 떨어지고 손놀림이 느려져서 안 된다. 그렇다고 부딪혔을 때 칼을 놓칠 정도로 약하게 잡아서도 안 된다.
적당히, 부드럽게, 유연하게.
미묘한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한다.
대규는 최대한 힘 조절을 해 체인 블레이드를 쥐었다. 확실히 그전보다 검이 손에 쫙 달라붙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그때 공략집이 눈앞에 떴다.
인터넷으로 봤던 검술 영상이 눈앞에서 재생됐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볼 필요 없이 눈앞에서 바로 보이니까 편리했다. 연습하면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동작과 영상을 비교할 수도 있다.
‘이런 기능도 업데이트됐었구나…….’
그러고 보니 현실에 돌아와서 새롭게 공략집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사실 업데이트하기 망설여졌다. 이번 업데이트엔 레드 등급의 젬스톤 다섯 개가 필요했으니까.
말이 다섯 개지, 현금으로 환산하면 25억 원이다.
현재 보관함엔 딱 다섯 개의 레드 젬스톤이 있었고, 상황이 좀 애매했다.
사실 지금 당장 공략집을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정 업데이트가 필요하면 차원의 열쇠로 차원을 넘어가 젬스톤을 모아 온 뒤에 하자. 지금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대규는 눈앞에 떠오른 검술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처럼 다리를 벌리고 선 뒤 코앞에 몬스터가 있다고 상상하고는 체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휙-
칼날이 새벽바람을 갈랐다.
‘오! 확실히 다른데.’
그 전에 휘두를 때보다 속도도 빨랐고, 힘이 더욱 실려 있었다.
대규는 체인 블레이드를 들고 계속해서 휘둘렀다.
근성 스킬은 똑같은 행동을 하면 능력이 강화된다고 했다.
얼마 후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검술 +1]
‘뭐지?’
‘+1이면 능력이 1만큼 상승했다는 건데. 열심히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도 검술 능력이 오른 건가.’
기대를 하고 체인 블레이드를 휘둘러 봤지만 별 변화는 없었다. 어쩌면 너무 미세하게 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럼 근성을 발휘해서 많이 올려 주마!’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헉헉…….”
대규는 손등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검을 휘두르기만 하는 것이 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체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또한 휘두르는 베기뿐만 아니라 찌르기, 가드 같은 다양한 동작도 익혀야 했다. 게다가 발 간격 거리도 신경 써야 했고.
몇백 번을 휘두르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떴다.
[검술 +5]
열심히 검을 휘두를수록 +뒤의 숫자는 1, 2, 3… 상승했다.
저 수치는 노력한 만큼 늘어나는 검술 실력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확실히 검술 실력이 5가 되자, 어느새 블레이드를 쥔 손동작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칼자루를 쥘 때 필요한 미묘한 힘 조절도 이제 감을 어느 정도 잡은 것 같았다.
또한 두 다리의 간격이나 자세도 많이 안정됐고, 블레이드가 그리는 궤적도 좋아졌다.
‘앞으로 아침마다 매일 이렇게 수련을 해야지. 그럼 다음 소환 때까진 실력이 쑥쑥 오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검술 말고 다른 신체 능력들도 올려놓고 싶었다.
주력, 반사 신경, 지구력, 맷집 등…….
기초적인 신체 능력들을 상향시켜 놓으면 앞으로 훨씬 수월하게 전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신체 능력뿐만이 아니지.’
대규는 오피스텔 옥상에서 자신의 새로운 탕꼬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저건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자신의 사업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최대호로부터 넘겨받은 영등포 건물에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 컵’s 탕꼬… 그리고 앞으로 전국적으로 지점을 확장해 더욱 사업 영역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또한 탕수육 치킨 말고, 다른 음식도 개발할 계획도 세웠다. 입소문 양념이라면 다른 음식으로도 쉽게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자신은 단순한 뒷골목의 식당 주인이 아니었다.
요식 업계를 평정해 나갈 사업가였다.
근성 스킬은 신체 능력 강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능력에도 유효하다고 했다. 그 말은 이 스킬을 이용하면 자신에겐 아직 모자란 경영 및 관리자로서의 능력들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만큼의 근성을 보여 주마!’
대규는 미소를 지은 뒤 발을 굴러 들고 있던 체인 블레이드를 가볍게 휘둘렀다.
타다닷.
휙-
칼날이 상쾌하게 아침 공기를 갈랐다.
* * *
탕꼬의 장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영등포의 건물 리모델링 공사 역시 탄탄대로였다. 앞으론 1인 식당과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사업을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
대규는 다른 분야의 음식 사업에 대한 발상을 틈틈이 궁리해 봤다. 하지만 이렇다 할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당분간은 1인 식당&테이크아웃 전문 매장 오픈에 매진하기로 했다.
이틀 뒤.
늘 그렇듯 바빴던 점심 타임이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이 찾아왔다.
직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점심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대규가 직원들에게 물었다.
“왜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요? 나가서 더 맛있는 거 먹고 오지.”
“사장님! 요즘 편의점 도시락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이거 새로 나온 건데, 진짜 맛있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
한 직원이 젓가락으로 도시락의 함박 스테이크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대규는 그가 건넨 함박 스테이크 조각을 먹었다.
꽤 맛있었다.
가만보니 꽤 알찬 도시락이었다. 함박 스테이크에 계란말이, 감자 샐러드……. 요즘 편의점들이 경쟁적으로 맛있는 도시락을 내놓고 있단 말이 사실이었다.
그때 여자 직원 중 한 명이 플라스틱 통에 담긴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또 뭡니까?”
“전 다이어트 중이거든요. 따로 싸 왔어요.”
플라스틱 통에는 삶은 닭 가슴살과 계란 흰자, 그리고 야채샐러드뿐이었다.
“그걸로 배가 차나요?”
“안 차지만… 살은 빼야 하니까요. 안 그래도 우리 가게 탕수육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생각 없이 집어먹다가 완전 살쪘어요! 저한테 앞으로 탕수육 치킨 그만 주세요.”
울상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다른 직원들이 핀잔을 줬다.
“그만 주긴… 네가 주방에 막 찾아와서 뺏어 먹었잖아. 그냥 운동을 열심히 해라.”
“운동은 항상 해요. 그런데 이놈의 식이요법이 문제라니까……. 특히 이놈의 닭 가슴살은 꼭 삶아야 하는데 너무 맛이 없어요. 다이어트 음식은 누가 맛있게 못 만들어 주나…….”
그때 대규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일반적으로 맛없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입소문 양념의 최대 장점은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느끼게 해 주는 거니까.
예를 들면 다이어트 음식들.
보통 다이어트 음식들은 고단백 저지방이라서 맛이 없다. 샐러드만 해도 왜 저렇게 맛없는 풀떼기를 돈 주고 사 먹느냐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입소문 양념을 이용해 맛있는 다이어트 도시락을 만들어 판다면?
도시락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의 음식이다. 식당까지 올 필요 없이 집 앞 편의점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서 바로 구입해 한 끼 간단히 때우기 좋고 집에서 혼자 먹기에도 좋다.
파는 쪽에서도 매장 같은 직접 판매 창구 없이 편의점으로 납품하기만 하면 된다.
‘이거 괜찮은 아이템이다! 여태까진 내 건물을 마련해서 장사할 생각만 했었는데.’
괜찮은 사업 아이디어가 하나 추가됐다.
이젠 주먹구구식 장사를 탈피해 전문적인 기업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경영 전문 지식은 물론, 법인 설립을 위한 법률 및 행정 문제부터 세무, 회계까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못 할 것도 없다.
아니, 이 모든 것을 해내고, 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낼 것이다.
각오를 다지며 자신의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