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51화. 마신의 눈 (2)
대규가 도착한 곳은 좁고 기다란 통로가 쭉 이어져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나 있었고, 옆으로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동상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동상들은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채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통로 끝에는 커다란 손바닥 모양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손바닥 위에는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좁고 기다란 통로를 지키는 황금 동상들은 몽환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꿈속 어디선가 어둡고 우울한 곳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대규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좁은 길을 향해 걸어갔다.
길 입구에 발을 디디자마자,
우드드드득-
퉁, 퉁, 쿠웅.
둔탁한 소리를 내며 통로 옆에 일렬로 서 있던 황금 동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 쉽게 통과하는 구간이 하나도 없군.’
대규는 방패와 체인 블레이드를 꺼내 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2미터가 훌쩍 넘는 동상이 열다섯.
꽤 힘든 전투가 될 것 같았다.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파라오의 헤카를 꺼내 머리 위로 높게 드시오.>
보관함을 보니 갈고리 모양의 지팡이 헤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상들은 칼을 들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체인 블레이드를 휘둘러 그들을 막아내는 대신 대규는 공략집의 말대로 헤카를 꺼내 들었다.
주춤.
동상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스스슥…….
쿠웅!
동상들이 각자 무기를 내려놓고 대규 앞에서 깍듯하게 서 있었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떴다.
[헤카에 담긴 파라오의 권능을 알아본 장군들이 충성심을 표합니다.]
헤카가 밝은 황금빛이 빛나며 대규를 감싸 주고 있었다.
대규는 머리 위로 헤카를 번쩍 들고 길을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걸어가는 걸음마다 황금 동상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길 끝의 손바닥 동상 앞에 다다랐다.
손바닥 안에서 황금빛을 발하고 있는 물체를 본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신의 눈동자……?”
분명 손바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건 마신의 눈동자였다.
피라미드의 눈동자는 대형 광고판 크기였는데, 이건 사람의 머리 정도의 크기였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공략집이 눈앞에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마신의 눈의 정수(The essence of evil sprit’s eye)
특징: 거대 피라미드 위에 위치한 마신의 눈을 조종하는 핵심 눈동자. 이를 제거하면 마신의 눈은 사라진다. 제거하는 대신 비어 있는 펜던트에 눈을 봉인하면 ‘라의 목걸이(necklace of Ra)’를 만들 수 있다.
<마신의 눈을 봉인할 수 있는 세 개의 아이템을 모두 모았습니다. 마신의 눈을 봉인할 방법을 영상으로 보시겠습니까? Yes/no>
‘그러니까, 파괴 광선을 뿜는 바깥의 거대한 눈동자는 껍데기 같은 거고, 진짜 눈동자는 바로 이것이로구나.’
‘그것보다 비어 있는 펜던트에 눈을 봉인하면 만들 수 있다는 ‘라의 목걸이’는 대체 뭘까.’
봉인할 방법보다 그게 더 궁금했다.
대규는 라의 목걸이라고 적힌 글자를 바라봤다.
<라의 목걸이(전설 권위 +3)>
<이집트의 전설적인 태양신, 라의 권위가 깃든 목걸이. 하루에 한 번 이집트의 마신 중 한 명의 능력을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
<착용자의 권위 스탯이 높을수록 마신들이 능력을 잘 빌려준다.>
이집트의 마신들의 능력을 빌려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자신이 싸웠던 아누비스나 하토르, 심지어 스핑크스의 능력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누비스가 지니고 있는 능력인 죽음의 기운을 빌려서 사용하면 상대방의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하토르의 복종안을 사용하면 나를 공격하는 적을 내 앞에서 복종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아직 모르고 있는 이집트의 마신들의 능력도 있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가면 이집트의 신들을 조사해 봐야겠다. 근성 스킬도 익혀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대규는 손바닥 동상 위에서 빛을 발하는 눈동자를 보며 저걸 꼭 펜던트에 봉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신의 눈에선 은은한 황금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시험 삼아 버리지 않고 놔뒀던 숏소드를 보관함에서 꺼내 눈 근처에 대 봤다.
사르르르륵-
황금빛이 닿자마자 숏소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스핑크스의 말대로 다른 무기, 혹은 직접 손으로 눈을 만질 수는 없었다.
헤카를 꺼내 들고 시험을 해 보려다 참았다. 공략집이 제공하는 영상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략집을 다시 떠올렸다.
<마신의 눈을 봉인할 수 있는 세 개의 아이템을 모두 모았습니다. 마신의 눈을 봉인할 방법을 영상으로 보시겠습니까? Yes/No>
Yes.
눈앞에 영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선 파라오의 헤카를 마신의 눈동자에 가까이 갖다 대자, 헤카의 갈고리 부분이 쫘르륵 늘어나며 눈동자를 감쌌다.
다음으로 갈고리에 알맞게 걸쳐져 있는 마신의 눈동자를 태양 원반에 가까이 갖다 대자 태양 원반이 눈을 쑥 흡수했다.
황금 원반 한가운데 검붉은 눈동자의 홍채가 박혀 들어갔는데, 그 모양이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다.
마지막으로 검붉은 홍채가 박힌 태양 원반을 목걸이의 비어 있는 펜던트 부분에 올려놓자…….
스스스-
눈동자를 흡수한 태양 원반이 목걸이의 펜던트 크기에 맞게 줄어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검붉은 눈알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목걸이가 완성되자 공략집의 영상은 종료됐다.
‘이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의외로 쉽네.’
대규는 파라오의 헤카를 눈동자 가까이로 가져갔다.
헤카의 갈고리 끝부분이 눈 주변의 황금빛을 뚫고 감겨 있는 눈꺼풀을 건드리자 눈꺼풀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번쩍 떠졌다.
쑤욱.
공략집의 영상처럼 헤카의 갈고리 길이가 늘어나더니 눈동자를 빙 둘러 감쌌다. 헤카로 눈동자를 집어 들고 태양 원반을 갖다 대자 눈동자는 영상에서 본 것처럼 원반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머지 과정 역시 공략집의 영상과 같았다.
검붉은 눈동자가 박힌 목걸이가 완성되자 목걸이가 공중에 붕 떠올랐다.
촤아악.
펜던트 부분에서 황금빛이 눈부시게 뻗어 나왔다.
[마신의 눈 봉인에 성공했습니다.]
[미션 5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라의 목걸이(necklace of Ra)를 완성했습니다.]
대규는 공중에서 빛을 발하는 라의 목걸이를 집었다. 아이템 설명이 떴다.
[라의 목걸이(전설 권위 +3)]
[이집트의 전설적인 태양신 라의 권위가 깃든 목걸이. 하루에 한 번 이집트의 신들 중 한 명의 능력을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
[착용자의 권위 스탯이 높을수록 신들이 능력을 잘 빌려줍니다. 최소 7은 되어야 합니다.]
공략집에서 본 설명과 동일했다.
대규가 목걸이를 목에 두르자마자 주변이 암흑으로 변해 버렸다.
* * *
촤르륵.
암흑 속에서 푸른 마법진의 불빛이 솟아올랐다.
정신을 차리자 대규 앞에는 안내인 여자가 서 있었다.
“이번에도 마신의 눈을 제거한 건 당신이로군요, 김대규 씨.”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미션 완수에 따른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메시지창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레벨이 3단계 상승했습니다.]
[운과 권위 스탯이 추가로 1씩 상승했습니다.]
레벨 업을 알리듯 몸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대규는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김대규(영웅)
Lv. 34 (경험치 92.00%)
생명력 770/770
마나 135/245
근력 40(+5)
민첩 39(+7)
지능 39(+5)
운 5(+5)
권위 7(+3)
레벨은 34로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운과 권위의 스탯도 각각 올랐다.
특히 권위의 경우 신들의 능력을 빌리려면 최소 7 이상이어야 한다는데, 라의 목걸이 덕분에 추가로 3이나 더 상승해서 10까지 올랐다. 올라간 권위 탓인지는 몰라도 뭔가 당당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보관함을 확인해 보시면 레드 등급 젬스톤 3개도 있을 겁니다.”
확인해 보니 여자의 말대로였다.
“레드 젬스톤은 한 개당 5억입니다. 현금으로 바꾸시겠습니까? 현실에서 추적당할 걱정이 없도록 다 행정적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다시 대규에게 말을 했다.
“…그런데 김대규 씨.”
“예?”
안내인 여자는 대규가 목에 걸고 있는 라의 목걸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 참 특이한 목걸이로군요.”
그녀는 이 목걸이가 마신의 눈동자를 봉인해 만든 목걸이란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신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더욱 분발해 주세요.”
신들이 주목하고 있단 말을 들은 대규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번 소환 때부턴 신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운과 권위 스탯도 되게 중요해진다고 했고…….”
“그렇습니다.”
제2 타르타로스까지는 튜토리얼에 불과하다는 스핑크스의 말이 떠오른 대규는 여자에게 물었다.
“다음 번 소환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 겁니까?”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당신은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을 비롯한 다른 영웅과 전사들은 앞으로 삼 개월에 한 번씩 이쪽 세계로 소환될 것입니다. 정확히는 전쟁터로 소환된다는 게 맞는 말이겠죠. 그곳에서 신들과 함께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전투를 벌이게 될 것입니다.”
신들과 함께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해 왔던 식으로 홀로 미션을 수행하거나 몬스터를 잡는 게 다소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거 골치 아파지겠는걸.
“그런데 당신의 경우엔 어떤 전쟁터로 소환될지 궁금하군요. 당신을 눈독 들이는 신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신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쟁터는 한곳이 아니라 여러 곳인 것 같았다. 대규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전쟁터가 가장 핵심 장소입니까?”
전쟁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여러 전쟁터가 있다면 분명 핵심적인 전투를 하는 주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대규는 이왕이면 핵심적인 전투를 하는 곳으로 소환되고 싶었다. 그런 곳이라면 분명 전투는 힘들겠지만, 보상은 확실할 테니까.
그러자 안내인 여자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고 해도 이제 제2 타르타로스, 즉 훈련장을 막 벗어난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젊은 신들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으로 소환이 되겠죠. 더 이상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참, 하나 더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뭡니까?”
여자는 대규를 향해 오른손을 쭉 뻗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작은 황금 열쇠가 둥둥 떠 있었다.
“이걸 받으시지요.”
열쇠를 잡자 아이템 설명창 같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차원의 열쇠]
[이 열쇠를 사용하면 현실과 타르타로스를 잇는 차원 문을 자유롭게 열 수 있다.]
“앞으로는 전투에 소환될 때 말고도 원하시면 언제든지 이 열쇠를 사용해 이쪽 세계로 출입이 가능합니다.”
“이 열쇠를 사용하면 어디로 가게 됩니까?”
“그건 콕 집어서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곳 세계는 타르타로스뿐만 아니라 다른 기이한 공간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김대규 씨라면 그 공간들을 아주 잘 활용하시리라 믿습니다.”
말을 마치자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촤르륵 뻗어 나왔다.
이제 현실 세계로 돌아갈 때였다.
* * *
눈을 뜨자 자신의 오피스텔 침대였다.
물론 시간은 침대에서 누운 뒤 1분도 흐르지 않았다.
새벽 3시지만 대규는 누워서 자는 대신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돈을 벌고 구입한 최신 드립기로 커피를 내린 뒤 잔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쌉싸름한 커피의 향기가 코를 기분 좋게 찔렀다.
앞으로 저쪽 세계에 다녀올 때마다 이렇게 정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래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나 목표를 명확하게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우선 이번 소환에서 보상으로 얻은 것들을 확인했다.
첫 번째, 젬스톤.
마신 아누비스와 하토르를 해치우고 그레이 젬스톤을 각각 5개씩 총 10개를 얻었고, 미션 완료 보상으론 레드 젬스톤 3개를 얻었다.
그렇다면 현재 갖고 있는 젬스톤은 레드 5개에 그레이 23개.
돈으로 환산하면 총 27억 3,000만 원!
어마어마한 액수다.
하지만 물론 현금으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젬스톤들은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
두 번째는 하토르를 해치우고 얻은 스킬, ‘근성’.
대규는 보유 스킬란을 불러내 다시 한 번 스킬 설명을 읽었다.
[근성(무 등급): 패시브 스킬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능력이 강화됩니다. 신체 능력 강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능력에도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