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화. 마신의 눈 (1)
파티원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곳은 튜토리얼의 마지막 훈련장.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자 녀석들을 거르기 위해서 설계된 곳이지."
모두 충격받은 표정으로 스핑크스를 쳐다봤다.
솔직히 이들 중 대부분은 제1 타르타로스로 가기 전에 겪었던 차원의 틈 세계가 튜토리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제1 타르타로스를 겪으며 어느 정도 이 세계에 적응하고 영웅이 되어 꽤 강력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 중 레벨이 높은 몇몇은 안내인 여자가 질리도록 언급하는 신들과 대면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자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튜토리얼일 뿐이라니!
앞으로 어떤 것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규는 의연한 표정으로 스핑크스를 바라봤다.
녀석이 말한 본격적인 타르타로스 전투는 어쩌면 기간토마키아의 일부일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타르타로스들도 튜토리얼이었다니! 대체 이놈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도통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이곳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누구보다 빨리 강해져서 보상을 왕창 얻고 그걸 현실에서 사용해 빠르게 성공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빨리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파라오의 헤카를 얻어 마신의 눈을 제거하러 가는 것이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군. 이젠 수수께끼를 풀어라.”
스핑크스는 대규를 훑어보며 덧붙였다.
“정답을 대답하지 못하면 맨 아래층으로 내려가 시련을 반복하기는커녕, 여기에서 너희들 모두를 죽이겠다.”
대규는 스핑크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이 낸 수수께끼는 이거였지. 공포와 욕망을 발생시키고 불안과 슬픔의 근원지이며 모든 생명과 존재를 움직이는 열정을 지닌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바로…….”
스핑크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자아(ego)다.”
우우우우우-!
대규가 답을 말하자마자 스핑크스는 피라미드 내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괴성을 지른 뒤 이렇게 말했다.
“정답이다. 이걸 맞히다니. 약속은 지키겠다.”
모두 놀라서 대규를 쳐다봤다.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맞다. 자아는 피아(彼我) 구분의 본능적인 자기 방어 기재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서부터 발생한다.
우선으로 ‘나’라는 개념이 확립되면 자신의 파멸에 대한 공포나 개인적 향락에 대한 욕망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내가 맛있다고 느껴지면 그 음식을 탐하고, 내가 돈을 쓰는 데 쾌락을 느끼면 더더욱 돈을 탐하게 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욕망도 생겨나고 공포나 불안, 슬픔 같은 감정도 생겨난다. 그리고 욕망이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 행동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나’라는 개념이 없다면 이런 모든 것들은 무의미하다.
‘수수께끼의 답을 저리도 빠르게 알아내다니…….’
지영은 내심 감탄한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았다.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한 듯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대규의 눈앞에 은은한 빛이 빛나며 갈고리처럼 생긴 작은 지팡이가 떠올랐다.
스핑크스가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몸이 마신의 눈 도전자에게 내리는 보상이다.”
지팡이를 잡자 설명이 적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파라오의 헤카]
[파라오의 권능을 표시하는 지팡이. 고대 보호 마법이 깃들어 있음.]
곧바로 공략집이 떠올랐다.
<파라오의 헤카는 모든 것을 다 녹여 버리는 마신의 눈을 제거하거나, 봉인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봉인이라는 말이 또 나왔다.
대규는 아누비스를 해치우고 펜던트가 비어 있는 목걸이를 얻었을 때 떴던 공략집 메시지 창을 떠올렸다.
<목걸이의 펜던트 부분은 강력한 봉인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신의 눈을 이곳에 봉인하십시오.>
아무래도 파라오의 헤카, 태양 원반, 그리고 펜던트가 비어 있는 목걸이는 마신의 눈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봉인하게 해 주는 도구들인 것 같았다.
대규는 파라오의 헤카를 보관함에 넣었다.
그러자 눈앞에 동그란 포탈이 생겼다.
우우웅-
“마신의 눈에 도전하는 도전자만 통과할 수 있는 포탈이다.”
스핑크스가 이렇게 말했고, 대규는 포탈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주변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 * *
휘이이잉-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거센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피처럼 붉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으왓!”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대규 앞에는 감겨 있는 거대한 마신의 눈이 보였다.
대규가 서 있는 이곳은 마신의 눈이 있는 거대 피라미드의 내부가 아니라 외벽이었다.
거대 피라미드는 여태까지의 피라미드들과 달리 돌벽이 아니라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황금으로 된 경사진 외벽은 몹시 미끄러워 도약의 장화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했다.
대규는 피라미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스핑크스의 말대로 아래층의 피라미드들은 어느새 재건되고 있었다.
마신의 눈을 덮고 있는 눈꺼풀과 속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더욱 징그럽다.
‘이 경사진 피라미드 외벽에서 거대한 마신의 눈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 메시지창이 뜬다.
[마신의 눈에 도전합니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스스슥-
황금빛 외벽이 갈라지면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작은 공간이 생겨났다.
대규는 공간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꿀렁.
투명한 젤리를 뚫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피라미드의 널찍한 내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대규의 눈앞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펼쳐졌다.
절벽 아래쪽에는 뾰족한 창들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창끝에는 백골이 된 해골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반대편 절벽까지는 거의 100미터의 길이 정도.
심지어 반대편 절벽의 높이는 지금 대규가 서 있는 곳보다 몇십 미터는 높았다.
아무리 도약의 장화를 신고 허공을 한 번 디뎌 점프한다 해도, 저 정도 거리를 점프만으로 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도약의 장화는 말 그대로 점프를 한 번 더 하게 해 주는 거지,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게 해 주는 날개 달린 신발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이건 마신의 눈을 제거하러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함정인 듯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걸까.
휘이이이잉-
절벽 사이에서 거센 모래 폭풍이 불기 시작했고, 대규는 팔을 들어 눈가를 막았다.
스핑크스가 등장했을 때 불었던 모래 폭풍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거셌다.
정신없이 날리는 모래들은 이윽고 계단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래로 만들어진 여러 개의 계단은 반대편의 높은 절벽과 이어져 있었다.
문제는 저 계단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폭풍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
심지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 버리는 계단도 있었다.
계단들이 움직이는 방향과 사라지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건널 수 있었다.
저 계단을 보기만 해서는 그것을 숙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때.
공략집의 영상이 눈앞의 광경과 겹치면서 한쪽의 계단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대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황금 계단을 향해 달렸다.
타다닷!
도약의 장화로 점프해 첫 번째 계단에 무사히 안착했다. 하지만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아래쪽부터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모래 계단.
재빨리 다음 황금빛 계단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허공을 한번 박차고 올랐다.
“흐아압!”
계단 아래쪽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했지만 폭풍에 쓸려 온 모래가 시야를 가렸다.
모래를 털어 내는 사이 발을 대고 있던 계단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휘청.
대규의 몸은 뾰족한 창두가 박혀 있는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재빨리 체인 블레이드를 꺼내 있는 힘껏 위쪽으로 휘둘렀다.
휘리릭-
남아 있는 위쪽 계단에 박히는 체인 칼날.
살았다.
온 힘을 다해 칼자루를 쥐고, 사방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계단들을 장화로 박차며 높게 점프!
타탓.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뒤, 다음 황금 계단에 무사히 안착했다.
‘휴, 체인 블레이드가 아니었다면 저 해골들 꼴 날 뻔했다.’
물론 안심하긴 이르다.
이 계단이 사라지기 전에 저 반대편 절벽으로 점프해야 한다.
대규는 계단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폭풍이 불어닥치고, 눈, 코, 입으로 모래가 엄청나게 들어와 따가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막 점프!
새처럼 비상하는 대규의 몸.
마침내 반대편 절벽 위로 여유 있게 착지했다.
반대편 절벽에 도착하자마자 모래 계단들과 폭풍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드디어 함정을 하나 통과한 건가.’
대규는 갑옷과 머리에 수북이 쌓인 모래들을 탈탈 털어 내고, 앞에 보이는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문 안에는 좁은 복도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대규는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 *
복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아누비스, 하토르와 전투를 벌였던 석실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이 나왔다.
이곳 역시 상당히 어두웠다. 빛이라곤 벽에서 타오르는 횃불 몇 개가 전부였다.
바닥엔 자신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있었다.
석실 가운데부터는 반질반질한 화강암 바닥이 체스판 모양으로 깔려 있었고, 바닥의 각 칸 안엔 알록달록한 이집트 상형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곳엔 또 무슨 함정이 있는 걸까?’
대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실은 텅 비어 있었다. 좀 전의 절벽처럼 날카로운 창들이 빽빽이 박혀 있지도 않았고 동상이나 조형물도 없었다.
오직 화려한 화강암 바닥뿐.
하지만 수상했다.
대규는 화강암 바닥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바닥을 밟기도 전에 자신의 기다란 그림자가 화강암 바닥에 드리워졌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본능적으로 뒤로 훌쩍 물러났다.
“아얏.”
따가운 기분이 들어 손을 뺨에 대 보니 뜨뜻미지근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뭐야?!’
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투명화를 구사하는 몬스터인가?
체인 블레이드를 꺼내 든 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다시 화강암 바닥 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다시 바닥에 자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
“……!”
그림자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텅!
네메시스의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았지만 전해져 오는 충격은 컸다.
몸이 석실 구석으로 단번에 밀려났다.
대규는 자신의 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를 향해 체인 블레이드를 겨눴다.
하지만 그림자는 조용했다.
그때 공략집이 떴다.
-차원의 틈 공략집-
함정 이름: 저주의 바닥(Shadow curse floor)
특징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지면 그 그림자를 조종해 상대방을 공격한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은 상태로 바닥을 지나야 한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은 상태라니.
말도 안 된다.
이 어두운 석실에 빛이라곤 대규의 등 뒤 벽에 위치한 횃불뿐.
그림자는 항상 광원(光原)의 반대쪽에 드리워지기 때문에, 횃불을 등지고 있는 한 자신의 그림자는 무조건 대리석 바닥을 향해 드리워지게 된다.
흑린갑의 투명화를 써 볼까도 생각해 봤다.
그림자란 본래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해 드리워지는 것이다. 투명화를 사용해 투명 인간이 되면 빛도 신체를 통과해 버리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투명화 상태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때 공략집이 떴다.
<태양 원반을 이용하면 저주의 바닥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태양 원반은 본래 하토르의 머리 위에 있던 물건이었다. 그녀의 두 뿔 사이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지.
대규는 보관함에서 태양 원반을 꺼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황금빛 구체에선 밝은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규는 하토르처럼 자신의 머리 위에 태양 원반을 올려놓았다.
강력한 빛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천천히 화강암 바닥 위로 자신의 발을 올려놓았다. 태양 원반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온몸을 감싸서 그림자는 전혀 드리워지지 않았다.
무사히 대리석 바닥을 건넌 뒤 태양 원반을 다시 보관함에 넣었다.
“휴.”
마신을 제거하는 데뿐만 아니라 이 피라미드의 함정을 통과하는 데도 이 도구들이 필요한 거였구나.
괜히 공략집은 이 도구들을 얻을 수 있는 피라미드를 골라 안내한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 대체 마신의 눈을 상대하기 위해선 몇 개의 함정을 통과해야 하는 걸까?
그때 피라미드 밖에서 미세한 진동음이 울렸다.
우우웅-
마신의 눈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가서 눈을 제거하고 보상을 받아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대규는 건너편 벽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