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2)
포탈에서 맨 처음 나온 남자가 대규의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규 역시 남자를 보고 흠칫했다.
피라미드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파티로 들어오라 권유했던 영웅 데이비드였다.
‘저들이 어떻게 이 피라미드를?’
저들이 자신처럼 이곳 피라미드가 가장 좋은 경로란 걸 알고 찾아온 것일 리는 없다.
아마도 우연히 자신이 선택한 곳과 그들이 선택한 곳이 겹쳐진 것일 뿐.
데이비드 뒤에 서 있는 지영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이제 너덜너덜한 가죽 갑옷이 아닌 멋진 미스릴 갑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완연한 여전사의 티가 났다. 공략집으로 보니 레벨도 21이었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지영을 포함한 아홉 명의 표정은 몹시 침울해 보였다.
‘사람 수가 줄었군!’
대규는 피라미드에 들어가기 전 데이비드가 합류를 제의했을 때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데이비드 뒤에는 적어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엔 그의 반도 안 되는 숫자인 아홉 명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두 개의 피라미드를 거쳐 오면서 험난한 일을 겪은 것 같았다.
한편 대규를 본 데이비드 역시 놀랐다.
‘김대규, 이 남자가 왜 여기에?’
게다가 같이 길을 떠났던 깡패 같은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홀로 살아남은 거겠지.
확실히 이 피라미드의 시련들은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
첫 번째 피라미드에서 그는 스즈키를 포함한 다섯 명을 놔두고 결국 먼저 떠났다. 얼마 후 데이비드는 그들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걸 직감했다.
그들은 추가 시련을 완수하자마자 데이비드의 일행들이 있는 두 번째 피라미드로 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신의 눈이 파괴 광선을 발사할 때까지 오지 못했다.
분명 그 추가 시련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피라미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첫 번째 시련에서 운 좋게 잔뜩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오른 그들이었지만 두 번째 피라미드를 장악하고 있는 마신 세트(Seth)는 너무 강력했다.
그들 파티는 상대적으로 쉽게 통과했던 첫 번째 시련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마신 세트는 모래 폭풍을 일으켜 파티 원들의 시야를 차단한 후 여기저기서 암습을 해 댔다.
민첩성이 높지 않았던 여덟 명의 파티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바람의 걸음 스킬을 연마한 지영과 가장 레벨이 높았던 데이비드가 모래 폭풍을 뚫고 나머지 파티원들이 합동 공격을 해 겨우 세트를 해치워 시련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은 여덟 파티원의 시체를 제대로 거둬 주고 싶었지만 마신의 눈이 파괴 광선을 발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결국 시체들을 버리다시피 팽개치고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데이비드는 피라미드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스핑크스를 바라보았다.
모래 폭풍을 일으켰던 세트보다도 훨씬 위압적이었다.
그때 스핑크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인간이 열 명이나 모였으니 슬슬 수수께끼를 시작하도록 하지.”
다행이다.
이번 시련은 피를 튀기는 전투가 아니라 머리싸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희생자가 좀 덜하지 않을까?’
아니다. 경험상 이 피라미드들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만약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전원 몰살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핑크스가 입을 열었다.
스핑크스의 근엄한 목소리가 피라미드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인간들이여. 우선 수수께끼를 가장 먼저 맞히는 단 한 명만 마신의 눈에 도전할 수 있다.”
이윽고 스핑크스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 뒤 위협적으로 앞발을 들쳐 올린 뒤 그들 앞의 땅바닥을 거세게 가격하며 말했다.
쿵!
“공포와 욕망을 발생시키고…….”
쿵!
“…불안과 슬픔의 근원지이며…….”
스핑크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피라미드 내부에 울려 퍼졌다.
“…모든 생명과 존재를 움직이는 열정을 지닌 것은 무엇인가?”
녀석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거센 모래 폭풍.
날아오는 모래를 막으며 데이비드는 이를 악물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수수께끼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었다.
파티원들을 둘러보니 그들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답을 고민하며 옆에 서 있는 대규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때 대규가 스핑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질문이 있다, 위대한 불멸자여.”
위대한 불멸자라고 말하자 스핑크스의 표정이 살짝 온화해졌다.
“드디어 조금은 예의를 갖추는구나. 나도 그럼 자비를 베풀어 그대의 질문을 받도록 하지.”
스핑크스는 다소 거만한 태도로 대규에게 대답했다.
녀석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대규는 최대한 예를 갖추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수수께끼를 맞히는 단 한 명만 마신의 눈에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낸 순간 공략집으로 정답은 이미 알아냈다.
‘하지만 자신 혼자 수수께끼를 맞히고 마신의 눈으로 향하면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피라미드의 시련은 곱게 그들을 살려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피라미드 말고 3층의 다른 피라미드에 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애초에 마신의 눈을 혼자서 해치워야 하는 거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조리 죽고 혼자 살아남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말은 제2 타르타로스의 최종 생존자는 대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스핑크스는 흥미롭다는 듯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수께끼를 맞히지도 못한 주제에 궁금한 게 많구나. 인간이여, 수수께끼의 답은 알고나 있으면서 그런 건방진 질문을 하는 게냐?”
“그래.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대규의 대답에 데이비드와 지영, 나머지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스핑크스 역시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거두고 대규의 코앞에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답을 모르면서 나를 상대로 까부는 거라면 여기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그렇게 하든지.”
하지만 대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스핑크스는 앞발을 쳐들어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쿠구궁-
피라미드 내부가 지진이라도 온 것처럼 흔들렸고, 대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보다 못한 데이비드의 파티원들이 소리쳤다.
“이봐, 정말로 수수께끼의 답을 알고 있는 것 맞아?!”
“대장, 저 자식 좀 어떻게 해 봐요.”
하지만 데이비드는 손을 내밀어 소리치는 파티원들을 저지했다.
일단 대규를 지켜보기로 했다.
대규는 제1 타르타로스에서도 혼자 행동하겠다고 말한 뒤 정말로 알키오네오스를 혼자 해치웠다.
여기서도 저렇게 자신 있게 나올 정도면 수수께끼의 답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영 역시 데이비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편 스핑크스는 대규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감에 차 있는 영웅 녀석들이라도 보통 자신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면 겁에 질려 주춤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인간 녀석은 겁에 질리기는커녕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2 타르타로스의 3층 피라미드를 수천 년 동안 지켜 오면서 여러 인간 영웅들과 전사들을 상대해 왔지만 이런 종류의 인간 녀석들은 흔히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하찮은 인간들 중 오래간만에 쓸 만한 녀석이 왔군.’
스핑크스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재미있는 인간 녀석이로군. 특별히 네 녀석의 용기에 감복했으니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 주도록 하지.”
커다란 목소리로 웃자 스핑크스의 몸에서 모래들이 다시 비처럼 후두두 떨어졌다.
대규가 손으로 온몸에 쌓인 모래를 털어 내자 스핑크스가 말했다.
“수수께끼를 맞힌 한 명이 마신의 눈을 제거하러 가면 나머지 녀석들은 나와 함께 이곳에 남는다. 꼴을 보아하니 이 건방진 인간 녀석이 마신의 눈이 있는 곳으로 갈 것 같군.”
스핑크스는 대규를 쓱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이 마신의 눈을 해치우는 데 성공하면 여태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제2 타르타로스의 미션을 완료하고 보상을 받은 뒤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하지만?”
“마신의 눈은 단순히 싸움 실력이 강하다고 해서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하찮은 네 녀석들이라도 저 눈의 무시무시한 파괴 광선을 봤을 것 아니냐? 그 광선은 너희들이 들고 있는 웬만한 무기들은 다 소멸시켜 버린다. 마신의 눈을 제거하기 위해선 특수한 도구를 사용해야…….”
그때 대규가 스핑크스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파라오의 헤카 말이냐?”
“이 몸이 말을 하는데 감히 끼어들다니! 잠깐만, 그런데 네 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스핑스크가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쳐다봤지만 대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공략집과 시련의 보상에 뜬 파라오의 헤카는 마신의 눈을 제거하는 도구 중 하나였다. 자신의 공략집은 그 도구들이 있는 피라미드의 경로를 골라 안내했다.
그때 데이비드의 파티원 중 몇몇이 끼어들어 물었다.
“마, 만약… 마신의 눈에 도전한 사람이 도전에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요! 우린 파괴 광선에 맞아 다 죽게 되는 겁니까?”
쿵!
스핑크스의 앞발이 다시 한 번 바닥을 가격했고, 이번엔 거대한 모래 폭풍이 피라미드 전체에 불어닥쳤다. 파티원들 대다수는 다시 휘청거리며 모래바닥 위로 쓰러졌다.
“이런, 불결한! 하찮은 인간 녀석들이 감히 이 몸에게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대답해 주도록 하지.”
스핑크스는 꽤 생색내는 투로 말을 이었다.
“마신의 눈에 도전한 자가 눈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면 너희들은 다시 맨 처음 아래층의 피라미드로 되돌아간다.”
그 말에 사람들이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래쪽의 피라미드들은 저 눈이 파괴 광선으로 다 소멸시켰는데.”
“맞아요! 우리 파티원들은 죽었다구요.”
스핑크스는 입가에 오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후후, 피라미드들은 재건됐다.”
“뭐라구?”
그 말을 들은 대규 역시 놀랐다.
2층 피라미드에서 암소 인간으로 변한 하토르랑 싸울 때, 하토르가 도끼로 피라미드 바닥을 가격해 구멍을 뚫었을 때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분명 구멍 아래쪽에는 텅텅 빈 모래사막뿐이었는데.
“생존자들이 3층까지 도달하게 되면 아래쪽의 피라미드들은 다시 리셋된다. 그리고 죽었던 마신들도 다시 살아나지. 물론 너희 인간들은 죽으면 영원히 소멸했지만.”
“그, 그게 대체…….”
“만약 마신의 눈에 도전한 자가 눈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면 생존자들은 맨 아래층의 피라미드로 내려가 다시 시련을 반복한다. 누군가가 마신의 눈을 제거할 때까지 시련은 계속된다. 당연히 눈을 파괴하기 전까진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지.”
‘시련을 반복한다고?’
데이비드와 파티원들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서렸다.
두 번째 피라미드에서 죽을 위기를 몇 번씩 넘기며 세트를 겨우겨우 해치웠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 번째 전투라 해도 분명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올 것이다.
게다가 다른 피라미드에 가면 어떤 시련이 있을지 상상도 안 갔다.
“빌어먹을! 안내인 여자는 그런 말은 없었다고!”
“이게 뭐야. 대체 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데이비드의 파티원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웅성거리자 스핑크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하하하. 네 녀석들의 절망한 얼굴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군. 내친김에 더욱 절망하게 해 주지. 안내인 계집이 말하지 않은 것도 말해 주마. 우리 마신들이 있는 피라미드들이 설치된 제2 타르타로스는 튜토리얼에 불과하다. 진짜 타르타로스의 전투는 훨씬 처참하고 험난하다.”
“튜, 튜토리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