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46화. 진리의 저울 (3)
미라 떼들은 저울을 둘러싸고 모여든 뒤 저울대를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서서 가장 먼저 올라오는 대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으으…….”
대규는 미라가 된 대호를 똑바로 쳐다봤다.
공략집이 떴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아누비스의 미라(mummy)
보상: 낮은 경험치와 마나
특징: 아누비스가 지휘하는 미라 군대의 병사. 이미 죽은 자들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적을 공격한다.
<아누비스의 미라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아누비스의 미라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아누비스의 미라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아누비스의 미라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Yes/No>
영상을 보니까 정확히 머리를 절단 내거나 불에 타면 죽는다.
대신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을 치면 주춤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맹렬하게 달려든다. 저것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공격력도 그리 높지 않고 민첩성도 낮아 저들을 해치우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수가 너무 많다는 것.
하지만 녀석들이 최대한 자신에게 가까이 모여들게 만든 뒤 비산의 결계를 쓰면 된다.
마침 녀석들은 저울대로 몰려들어 기어오르느라고 반경 5미터 안에 대부분 들어와 있었다.
대규는 체인 블레이드를 들고 외쳤다.
“비산의 결계!”
번쩍!
허공 위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검격들.
형성되는 검격을 본 최대호가 괴상한 울음을 내지르며 앙상한 팔로 파워 소드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으으윽!”
“잘 가라.
서걱-
검격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체인 블레이드를 휘둘러 대호의 목을 따 버렸다.
앙상하게 마른 팔에서 파워 소드가 힘없이 떨어지자마자 빛의 검격들이 미라 떼를 가격했다.
파바밧-!
화르르륵-
체인 블레이드를 들고 스킬을 발동시켜서 그런지 검격들 주변엔 시뻘건 불꽃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키이이익!”
“그워어어억!”
반경 5미터에 있던 미라들은 까맣게 재가 돼서 타 버렸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저 멀리서 달려드는 녀석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대규는 저울 아래로 훌쩍 뛰어내린 뒤 체인 블레이드의 검신을 체인화 시켜 채찍처럼 휘둘렀다.
5미터로 늘어난 검날이 뱀처럼 춤을 췄다.
휘리리릭-!
“키이이이…….”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불꽃이 강렬하게 일면서 열댓 마리의 미라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비산의 결계로 많은 수를 해치운 덕분에 이미 녀석들에 대한 공략 등급은 상급으로 오르기도 했고.
게다가 애초에 이 미라들은 대규의 적수가 아니었다.
몰려오는 나머지 녀석들을 향해 아누비스로부터 빼앗은 창으로 녀석들의 몸을 꿰뚫었다.
그때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
아누비스가 칼을 머리 위로 쳐든 채 엄청난 속도로 대규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대호가 죽으면서 떨어뜨렸던 파워 소드였다. 급한 대로 네메시스의 방패를 들었다.
깡!
빌어먹을.
방패가 밀릴 정도로 무식한 힘이다.
같은 파워 소드지만 대호가 휘두를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파워 소드 같은 허접한 무기로도 이 정도의 위협적인 공격을 뽑아내다니.
원래 녀석이 지니고 있던 창에 제대로 가격당하면 한 방에 죽을지도 몰랐다.
파스스스…….
이상한 소리가 나서 방패 쪽을 바라보니 방패와 대치하고 있는 파워 소드 칼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칼날이 약간 부식됐다.
방패의 무기 부식 효과.
아누비스가 다시 칼을 높게 쳐들었고 대규는 뒤로 물러나 훌쩍 뛰어 저울판 위에 섰다.
하지만 순간 이동으로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녀석.
휙휙휙-
눈앞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파워 소드.
창만 잘 다루는 줄 알았는데 검술도 수준 이상이었다.
하지만 같이 공격할 생각은 없다.
깡! 깡! 깡!
파워 소드를 막을 때마다 무거운 충격이 방패를 타고 전해져 왔다.
팔목이 떨어질 것만 같지만 조금만 더 버티자.
파스스스…….
파워 소드의 내구도가 부식돼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대규는 체인 블레이드로 파워 소드 검신을 가격했다.
쨍!
검신이 산산 조각이 났다.
“……!”
녀석이 당황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체인 블레이드를 체인화시켜 녀석의 몸을 감았다.
휘리릭-
포박하듯 아누비스의 몸을 감는 체인 칼날들.
“흐아압!”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포승줄 같은 칼날과 녀석의 갑옷이 마찰을 일으키며 용접을 할 때처럼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으두두둑.
갑옷이 뜯겨져 나가고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칼날을 적셨다.
움직임이 완전하게 봉쇄된 지금이 기회다.
푹!
대규는 왼손에 들고 있던 아누비스의 창으로 녀석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내리 찔렀다.
길이와 무게가 상당한 창인 데다 힘 스킬로 늘어난 근력으로 내리찍으니 제아무리 보스급의 몬스터라 해도 이를 견딜 수는 없었다.
휘청.
아누비스가 무릎을 꿇었다. 죽음의 기운이 녀석의 허벅지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고통에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
이제 끝이다.
체인을 풀고 검신화시켜 녀석의 왼쪽 가슴에 정확히 내리꽂았다.
검신 끝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석실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아누비스의 몸 전체에서 죽음의 기운 같은 어두운 안개가 뿜어져 나왔고 녀석의 몸은 돌처럼 굳어졌다.
스르르륵-
돌처럼 굳어진 몸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미라 군대의 시체도 사라졌고 녀석이 들고 있던 창 역시 사라졌다.
석실엔 커다란 저울만 남아 있었다.
[제1 피라미드의 시련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습득했습니다.]
[마나를 20 흡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휴, 드디어 끝났군.
상태창을 보자 레벨이 올라 있었다.
김대규(영웅)
Lv.30(경험치 74.00%)
생명력 670/670
마나 165/220
근력 36(+5)
민첩 35(+7)
지능 35(+5)
운 4(+5)
권위 6
운과 권위를 제외한 나머지 스탯이 30을 넘었다.
그럼 아이템을 확인해 볼까.
보관함에서 아누비스를 해치우고 얻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우선 그레이 젬스톤 10개.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이제 총 갖고 있는 젬스톤은 레드 2개에 그레이 23개다.
그런데 모루로 레드 1개를 그레이 50개로 분해하는 게 가능했는데 혹시 반대로 그레이 50개를 모으면 레드 1개로 합치는 것도 가능할까?
사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레드 등급의 젬스톤이었다. 공략집을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는 레드 젬스톤 5개가 필요하다.
일단 그레이 젬스톤을 50개 이상 모은 다음 한번 시도해 보자.
게다가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명당의 눈처럼 그레이 젬스톤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스킬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러나저러나 젬스톤은 무조건 많이 모으는 게 답이다.
그리고 보관함엔 또 다른 아이템이 들어 있었다.
젬스톤 말고 아누비스가 떨군 아이템이다.
“이게 뭐야……?”
대규는 보관함에서 아이템을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목걸이였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펜던트, 혹은 보석이 박혀 있어야 할 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혹시 몰라서 아이템 설명을 봤다.
[비어 있는 펜던트 목걸이]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넣어야 기능하는 목걸이. 펜던트를 채워 넣으십시오.]
이상한걸.
비어 있는 펜던트를 채워 넣어야 기능한다니.
그때 피라미드에 입성하기 전 떴던 공략집의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마신의 눈을 제거하거나 봉인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피라미드에서 얻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목걸이가 마신의 눈을 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의 일종일지도 몰랐다.
목걸이를 쥐고 공략집을 띄워 봤다.
<목걸이의 펜던트 부분은 강력한 봉인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악한 마신의 눈을 이곳에 봉인하십시오.>
목걸이 펜던트의 비어 있는 부분에 눈동자를 봉인한다니.
피라미드 밖에서 봤던 눈동자의 크기는 적어도 고층 빌딩의 광고판만 했다. 그것도 땅 아래쪽에서 올려다봤을 때의 크기다.
도통 알 수 없는 설명이었지만 일단 다음 피라미드로 올라가고 생각하기로 했다. 좀 있으면 마신의 눈이 다시 파괴 광선을 발사할지도 몰랐다.
[다음 층으로 이동할 피라미드를 선택하십시오.]
메시지창과 함께 눈앞에 다음 층의 피라미드들이 일렬로 떠올랐다.
공략집을 이용하니 그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피라미드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규가 그 피라미드를 향해 눈짓을 하자 석실 한가운데 동그란 포탈이 생겨났다.
대규는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 *
데이비드와 지영, 나머지 파티원들은 숨을 몰아쉬었다.
[제1 피라미드의 시련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드디어 완수했군.’
데이비드는 주변에 널브러진 몬스터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피라미드에 들어왔을 때 주어졌던 시련은 단순했다.
피라미드 내부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
몬스터들은 약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강력하지도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실력에 딱 맞는 적당한 수준의 몬스터들이었다. 누군가가 알맞게 밸런스 조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떨어지는 보상은 거의 보스 몬스터 수준으로 화려했다. 데이비드의 파티는 1시간 반 동안 몬스터를 해치우면서 엄청나게 보상을 얻었다. 젬스톤의 경우 총 스물 세 명인 모든 파티원들에게 인당 5개씩 돌아갈 정도였다. 게다가 알맞은 난이도 덕분에 경험치도 잘 쌓였고, 레벨도 순조롭게 올랐다.
피라미드를 정말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가운데 다음 피라미드로 이동할 수 있는 포탈이 생겼고, 데이비드의 파티가 포탈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새로운 메시지창이 떴다.
[추가 시련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시겠습니까? Yes/No]
30분 뒤면 마신의 눈이 파괴 광선을 쏜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데이비드는 No를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모두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추가 시련을 선택해 완수할 경우 신들이 여러분의 용기를 높게 사 각자에게 다음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시련: 보스 몬스터 아뮤트를 해치우십시오.]
[보상: 레드 등급의 젬스톤 3개, 전설 등급의 선물 상자 1개]
“오오! 엄청난 걸! 이거 하고 갑시다! 대장!”
“그래요. 게다가 한 마리만 상대하면 되는데 완전 꿀이잖아. 안 하는 게 바보지.”
“우리도 레드 등급 젬스톤 한번 구경해 봅시다! 다들 레벨도 올랐는데!”
몇몇 파티원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 역시 마음이 흔들렸다. 레드 등급 젬스톤 3개에 전설 등급 선물 상자 1개라니.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찜찜했다.
‘그것보다 메시지창이 이런 식으로 보상을 보여 준 적이 있었나?’
안내인 여자가 제시하는 미션일 경우 말고는 보상이 이렇게 자세히 메시지창에 뜬 적이 없었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의 난이도가 어떨지 알 수도 없다.
데이비드는 파티원들을 향해 말했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지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몇몇 파티원의 반발이 엄청났다.
“그런 걸로 따지면 1시간 반 동안 이렇게 보상이 나온 것도 이상한 거 아니요? 하지만 아무 일 없었잖아요.”
“맞아요. 이상한 거면 진작 우리가 몬스터를 해치울 때도 뭔 일이 일어났었겠지!”
반박할 말이 없어진 데이비드는 결국 고민 끝에 파티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남으실 분들은 남아서 추가 시련을 하십시오. 말리진 않겠습니다.”
결국 다섯 명의 남자만이 남았다.
곧 포탈이 닫혔고, 피라미드의 한가운데 몬스터 하나가 소환됐다.
악어의 머리에 사자 갈기를 한 몬스터, 아뮤트였다.
“크어어…….”
아뮤트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공격이 수준급이었지만 위협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보스 몬스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여태까지의 몬스터들과 난이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열심히 아뮤트를 공격했다.
‘바보 같은 녀석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니!’
선봉에서 싸우는 일본인 남자 스즈키는 먼저 올라간 데이비드 무리를 속으로 비웃었다.
단기간에 이런 엄청난 보상을 얻을 기회는 적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의 스킬 ‘회심의 일격’을 발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