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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44화 (44/294)

# 44

44화. 진리의 저울 (1)

“그런데 무슨 일이야?”

“형님만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대규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대호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복수를 위해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김대규 이 자식이랑 같이가야 한다.’

대호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크게 외쳤다.

“형님! 앞으로 형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대규가 당황하자 대호는 더욱 소리 높여 말을 이었다.

“이제 조폭 생활도 청산하고 정말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형님께서 절 거둬만 주신다면 이 한 몸 다 바쳐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충성을 바치고 싶습니다!”

“이봐…….”

“몬스터에서 나오는 아이템도 다 필요 없습니다. 형님, 제발 절 거둬만 주십쇼!”

말을 끝마친 대호는 대규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까지 올렸다.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규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녀석이 또 내 뒤통수를 칠지 어떻게 알고?”

그러자 대호는 검집에서 파워 소드를 척 꺼낸 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다짐을 지금 당장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는 바닥에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댄 뒤 그 위로 파워 소드를 가져갔다. 그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제 손가락을 잘라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형님.”

파워 소드를 들고 있는 그의 오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대규는 그의 속마음을 들어 봤다.

‘씨발! 진짜 잘라야 되나? 하긴, 저 자식한테 절까지 한 마당에……. 복수하는데 이깟 고통이 대수냐! 내 손가락 하나를 내주는 대신 저 새끼 목숨은 무조건 끊는다. 옛말에 내 살을 베어 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말도 있잖아.’

“이야압!”

그가 기합을 외치자마자 칼날이 손가락을 향해 내려갔다.

서걱-

“끄으으…….”

대호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독한 놈! 복수를 위해 손가락까지 자르다니. 어차피 나도 저 자식을 처리하려면 같이 행동해야 하니까 이쯤에서 속아 주고 같이 가도록 하자.’

무릎을 꿇은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 진심은 잘 알았다. 앞으로 잘해 보자.”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새끼손가락을 집은 뒤 대호의 절단된 손가락에 붙였다. 그리고 회복 포션을 꺼내 반은 그 위에 붓고 반은 마시라고 건넸다.

포션을 받아 든 대호는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혀, 형님! 감사합니다! 죽을 때까지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포션을 마시자 절단됐던 그의 손가락이 원상 복구됐다.

“그럼 빨리 가자구. 시간 없으니까.”

대규는 공략집을 띄운 뒤 사막에 설치된 피라미드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을까.

바로 공략집창이 떴다.

<마신의 눈을 제거, 또는 봉인하기 위해선 필요한 도구를 피라미드에서 얻어야 합니다.>

<마신의 눈을 제거 또는 봉인하기 위한 도구를 보상으로 주는 경로로 안내하기 시작합니다.>

마신의 눈을 제거 또는 봉인하기 위한 도구?

알키오네오스를 쓰러뜨렸던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처럼 여기서도 특수 무기를 제작해야 하는 건가. 그럼 그렇게 하면 된다. 어차피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는 보관함에 있으니까, 장비 제작은 어렵지 않다.

그보다 봉인이라니.

‘마신의 눈은 그냥 제거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나.’

도통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공략집이 피라미드의 경로를 표시했다. 지상과 허공의 피라미드들이 모두 흑백으로 표시된 가운데 각층마다 딱 하나씩 황금색으로 표시된 피라미드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저 황금색으로 표시된 피라미드들을 선택해 들어가면 되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들어갈 지상의 피라미드는 동쪽의 모래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다행히 다른 영웅들과 전사들은 아직도 머뭇거리느라 그 피라미드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규는 누가 먼저 들어갈 새라 그 피라미드 쪽으로 달려갔다.

‘뭐야, 갑자기!’

대호는 갑자기 피라미드 쪽으로 달려가는 대규를 바라보았다.

‘저곳으로 가는 건가? 씨발 새끼, 말이라도 좀 해 주면 덧나냐!’

대호는 대규의 뒤를 쫓아가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헉헉… 달리기 한번 존나 빠르네. 어쨌든 같이 행동하는 건 성공했다.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라 수락 안 할 줄 알고 걱정했는데 손가락을 자른 효과가 있었군…….’

이제 녀석과 같이 다니면서 기습할 기회를 노리면 된다.

분명 김대규 저 자식은 보상에 대한 욕심이 강하기 때문에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면 혼자 해치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방금 봤던 하늘의 거대한 눈 광선도 그렇고, 안내인 여자 역시 ‘시련’이라는 표현을 쓴 걸로 봐서 이곳은 제1 타르타로스와 차원이 다르다. 저 자식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저 피라미드 안에는 저 자식도 해치우기 힘든 몬스터들이 존재할 것이다.

‘분명 녀석이 고전할 때가 온다. 그때를 노려 기습해 죽여 버리겠다!’

대호는 자신의 계획을 다짐하며 모래 언덕 위의 피라미드를 향해 달려갔다.

한편 지영은 영웅들과 전사들 틈에 서서 피라미드를 향해 달려가는 대규와 대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저 둘이 같이 행동하다니.

최대호는 비열하고 나쁜 놈이었다. 그리고 대규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지영이 알고 있는 대규는 혼자 다니는 걸 누구보다도 선호했다.

‘대규 씨도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영웅 데이비드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지영 씨.”

“예?”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저희 파티에 들어오지 않으시겠습니까?”

데이비드와 그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낯이 익었다. 제1 타르타로스에서 기간테스 성 전투를 하러 레툼의 숲을 지날 때 그녀와 함께 선봉에서 싸웠던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대규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강한 실력자들이었다. 성격도 다들 좋아 서로 협동도 잘했고 아이템 배분도 공평하게 했다.

실제로 그들과 같이 다니면서 지영은 레벨이 많이 올랐다. 아마 혼자 다녔으면 그 정도로 강해지진 못했을 것이다.

‘난 혼자 다녀선 대규 씨처럼 강해질 수 없어.’

그녀는 데이비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함께할게요.”

“지영 씨가 함께한다니 저희도 기쁩니다. 일단 이것부터 받아 주세요.”

데이비드가 자신의 보관함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우리 파티에 들어온 기념 선물입니다.”

그가 건넨 건 미스릴로 만들어진 새 갑옷이었다.

“당신의 가죽 갑옷은 다 헤졌잖아요. 여태까진 잘 버텼지만 앞으론 더욱 위험한 전투들이 벌어질 겁니다. 지영 씨 수준에 맞는 방어구를 착용해야죠.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란 말도 있듯이 방어구 또한 중요한 무기입니다.”

지영은 그가 건넨 미스릴 갑옷을 받았다.

[아테나 여신의 가호를 받은 미스릴 갑옷(희귀+1)]

[전쟁의 여신 아테나 여신이 가호를 내린 갑옷. 물리 방어력 20% 상승. 마법 저항력 5% 상승. 여성이 착용하면 아테나 여신의 신성한 가호가 발동돼 착용자의 운 스탯이 1 추가 상승함.]

물론 대규가 건네줬던 이 가죽 갑옷을 벗는 게 아쉽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들의 파티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면 이 갑옷을 입는 게 맞다.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더더욱 강해지겠어.’

그녀는 결심한 듯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잘 입겠습니다.”

가죽 갑옷을 벗은 뒤 미스릴 갑옷에 손을 댔다. 그러자 촤라락 갑옷이 입혀졌다.

그녀 몸에 딱 맞춰진 듯한 미스릴 갑옷은 가죽 갑옷보단 약간 무겁지만 훨씬 튼튼했다.

대신 여기저기 헤진 가죽 갑옷은 버리지 않고 잘 개어 보관함 한편에 고이 넣어 뒀다.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는 거죠?”

“저 피라미드로 갑니다.”

데이비드가 서쪽의 끝에 위치한 피라미드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대규와 대호가 간 방향과 정반대에 위치한 피라미드였다.

“그럼 출발합시다.”

지영과 데이비드를 비롯한 영웅들은 서쪽으로 향했다.

* * *

쿠구궁-

대호와 대규가 피라미드 앞에 서자 피라미드의 돌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은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가자 돌문이 다시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 어? 씨발!”

대호가 닫힌 돌문을 열려고 노력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피라미드 내부는 거대한 석실이었다. 사방의 벽에는 이집트의 관들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석실 중앙엔 동상 하나가 우뚝 세워져 있었다.

인간의 몸에 자칼의 얼굴을 지닌 반인반수의 동상. 옛날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이집트의 신을 닮았다.

이거 피라미드에 저쪽 벽의 관도 그렇고…….

“혀, 형님, 저기 보십쇼!”

최대호가 동상 뒤쪽을 가리켰다.

동상 뒤엔 평평한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엔 거대한 천칭 저울이 놓여 있었다.

저울은 거의 높이만 5m에 육박했고, 양옆에 달린 저울판은 성인 다섯 명이 충분히 설 수 있을 만큼 컸다.

하지만 저울과 동상뿐.

몬스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제1 피라미드의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아누비스의 ‘진리의 저울’을 통과하십시오.]

[시련의 보상: 다음 층의 피라미드로 가는 포탈이 열립니다.]

시련이 고작 저울을 통과하는 거라고?

게다가 보상도 보잘것없었다. 공략집이 황금색으로 표시해 준 피라미드라 못 받아도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냥 다음 층의 피라미드로 가는 게 전부라니. 살짝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대호가 방금 전 가리켰던 저 제단 위의 거대한 저울이 시련 내용에 적힌 ‘진리의 저울’인 것 같았다.

그때 새로운 메시지창이 대호와 대규의 눈앞에 떴다.

[진리의 저울 위에 올라가십시오.]

대체 저놈의 저울이 뭔지나 알아보고 올라가자.

대규는 메시지창의 진리의 저울 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략집이 떴다.

<진리의 저울>

<죽음의 신 아누비스의 저울. 아누비스가 지닌 깃털보다 무거운 존재는 죄가 많은 것으로 판단돼 저울을 통과하지 못한다.>

죄가 많은 자는 저 저울이 무겁게 측정하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는 어떨까?’

죄가 많은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무단횡단을 하거나 휴지를 길거리에 몇 번 버린 적은 있지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성인군자 수준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 정도는 된다. 저울의 판단 기준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어휴, 차라리 몬스터와 전투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대규는 제단 위의 저울로 향했다. 도약의 장화를 이용해 저울판으로 훌쩍 점프해 올라갔다.

팟!

반대편 저울판에 거대한 깃털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저울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두 개의 저울판의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얼추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깃털 쪽이 살짝 더 무거운 것 같기도 했다.

통과한 것 같다. 역시 자신은 죄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때 떠오르는 메시지창.

[저울판엔 피라미드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올라와야 합니다.]

뭐라고? 최대호 저 자식도 올라와야 한다고?

망했다. 백 퍼센트 통과 못 한다.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공략집이 뜨길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선 알려 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몬스터에 대한 공략도 직접 몬스터를 봐야 뜨니까…….

‘빌어먹을. 이런 미션인 줄 알았으면 저 자식하고 안 오는 거였는데.’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

한편 대호는 저울에 올라가라는 메시지창을 보며 생각했다.

‘씨발! 몬스터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웬 저울이람. 어쨌든 올라가자.’

대호는 저울 가운데 축을 타고 기어 올라와 저울판에 도달했다. 그러자 반대편 저울판에 깃털 하나가 더 생겼다.

쿠구구구구궁-!

“으아악!”

그들이 서 있는 저울판이 미친 듯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저울판은 심지어 제단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면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

대규가 속으로 한숨 쉬는 순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진리의 저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깨어납니다.]

쩌어억-

석실 한가운데 있었던 동상의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죽음의 신 아누비스를 해치우십시오. 0/1]

그래.

어쩌면 이게 더 쉬운 시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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