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3화. 제2 타로타로스로 가다
[제2 타르타로스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습니다.]
메시지창이 떴고 암흑은 사라졌다.
주위엔 수십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전에 제1 타르타로스에서 봤던 얼굴도 많이 보였다. 모두 전사, 혹은 영웅 등급의 무리들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소환 됐을 때처럼 암흑과 푸른 마법진은 없었다.
대신 눈에 들어온 것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모래사막!
게다가 하늘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붉은 하늘 위엔 사각뿔 모양의 수십 개의 물체가 일렬로 층층이 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피라미드였다.
물론 사막 위에도 열 개가 넘는 피라미드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사막 같은 곳이 제2 타르타로스?’
대규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 봐!”
“미친, 저게 뭐야!”
그들의 시선은 붉은 하늘 위쪽을 향하고 있었다. 대규 역시 그들을 따라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
수십 개의 피라미드 위엔 엄청나게 거대한 피라미드 한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머지 피라미드들을 다 합친 것보다 커다란 크기였고, 외벽에는 괴상한 알파벳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Annuit Coeptis]
더욱 기괴한 건 피라미드 꼭대기에 달려 있는 커다란 눈동자.
까만 홍채를 지닌 눈동자는 졸린 듯 눈꺼풀을 반쯤 감은 채 사막에 서 있는 영웅과 전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 주변에선 옅은 후광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그 거대한 눈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대규 옆에 서 있던 한 백인이 중얼거렸다.
“섭리의 눈(eyes of providence)이다…….”
섭리의 눈?
옆에서 중얼거린 그를 바라보았다. 레벨 15짜리 전사였다.
“섭리의 눈이 뭐지?”
대규가 묻자 백인이 대답했다.
“세상만사를 굽어보시는 신의 눈이다. 세계적인 비밀 단체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라는 소문도 있지.”
프리메이슨.
들어 본 적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비밀 단체.
겉으론 인도주의적 박애주의를 내세우는 친목 단체라지만 실제로 세계의 정치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의 정치를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돈 적도 있었고, 실제 미국 역대 대통령 중 3분의 1이 그 회원이기도 하다.
“그럼 저 문구는 무슨 뜻이지?”
대규가 피라미드의 외벽에 새겨진 알파벳 문구를 가리키며 묻자 그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하시니라.’란 뜻이다. 우리 미합중국 국새 뒤에 새겨져 있는 문구기도 하지. 그런데 대체 저게 왜 이곳에……?”
신이라고?
설마 저 거대한 피라미드 안에는 안내인 여자가 계속 언급했던 신들이 존재하는 건가.
그때였다.
휘이잉-
사막 모래바닥 한가운데서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자 모래 바닥엔 푸른 마법진이 드러났다.
촤아악!
마법진에서 빛이 솟아올랐고 안내인 여자가 등장했다.
“제2 타르타로스에 오신 전사와 영웅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곳 제2 타르타로스는 신들께 도전하는 마신(魔神)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안내인 여자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영웅과 전사들을 둘러본 뒤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땅에 설치된 피라미드들 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간 후 각 피라미드 안에서 시련을 통과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련을 통과하면 다음 층의 피라미드로 이동합니다.”
퀘스트 미션 형식으로 진행되는 건가.
“그렇게 시련을 통과해 올라간 후 최종적으로 저 꼭대기의 거대한 피라미드에 도달해 ‘사악한 마신의 눈’을 가장 먼저 파괴하면 됩니다.”
대규는 옆의 백인에게 물었다.
“이봐, 세상만사를 굽어보는 신의 눈이라고 하지 않았어?”
“나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군. 마신이라니…….”
여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악한 마신의 눈을 가장 먼저 제거하는 사람에겐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미션 5: 마신들의 피라미드 시련들을 무사히 통과한 후 거대 피라미드 위에 설치된 ‘사악한 마신의 눈’을 제거하라.]
[보상: 레벨 3단계 추가 상승, 레드 등급 젬스톤 3개, 운과 권위 스탯 추가 1 상승]
운과 권위 스탯이 올라간다고?
운과 권위는 처음 차원의 틈에서 시청 포탈에 제일 먼저 도달했을 때 말고는 올라간 적이 없는 스탯이다.
그런데 그걸 올려 준다니.
여태까지와는 다른 희귀한 종류의 보상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씨근덕거렸다.
“쳇! 운과 권위가 다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전설 등급 무기가 들어 있는 선물 상자들이나 줄 것이지!”
그러자 안내인 여자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각자 지닌 운과 권위 수치는 다음 소환 때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대체 다음 소환 때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아니지. 지금은 다음 소환에 대해 궁금해하기보다는 저 피라미드들을 어떻게 잘 헤쳐 나갈지를 고민할 때다.
대규는 안내인 여자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사악한 마신의 눈을 제거한 영웅 혹은 전사는 보상뿐만 아니라 신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신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고?
“그전부터 그놈의 신들, 신들, 하는데 대체 그놈의 신들 정체가 뭡니까?”
“그래, 궁금하다구!”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따져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안내인 여자의 행동 패턴으로 볼 때 분명 그녀는 입을 다물어 버릴 것이다. 그녀는 이쪽에서 정작 궁금한 걸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조만간 가까운 시일 내에 신들과 만나게 될 겁니다. 물론 이번 제2 타르타로스의 시련들을 무사히 겪고 살아남는다면요.”
“흥, 우린 실력자들이라고. 몬스터 전투 따윈 이제 식은 죽…….”
우르르르릉!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거대한 굉음이 붉은 하늘 위쪽에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굉음은 거대한 눈동자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걸 봐!”
“저건, 대체…….”
번쩍!
반쯤 감겨 있던 눈동자가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의 까만 홍채와 동공이 황금색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눈동자 주변에서 발하던 빛들이 눈동자 한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강렬한 황금빛 광선이 눈동자에서 땅을 향해 일직선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때 안내인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을 척 들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위로 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됐다.
텅!
실드 위로 가볍게 튕겨져 나가는 황금빛 빔.
하지만 실드로 보호받지 못한 사막 위의 피라미드들은 빔을 그대로 맞았다.
콰과과과광!
광선을 맞자마자 피라미드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거대한 눈동자는 광선을 발사하자마자 피곤하다는 듯 다시 눈꺼풀을 반쯤 감아 버렸다.
“으어어…….”
“저, 저게 대체…….”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안내인 여자는 실드를 해제하며 말했다.
“2시간에 한 번씩 저 마신의 눈은 파괴 광선을 발사합니다. 광선은 차례로 아래 열에 있는 피라미드들부터 소멸시키죠.”
그 말은 2시간이 지나기 전에 들어간 피라미드의 미션을 해결하고 신속히 위층 열의 피라미드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각 피라미드에서 시련을 해결하는 데 제한 시간이 최대 2시간이 있다는 것.
만약 시간을 넘겨 버린다면 방금 전 피라미드들처럼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이제 영웅과 전사들은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제1 타르타로스까지 겪으면서 어느 정도 몬스터와의 전투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저런 파괴 광선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미션을 시작하세요. 다행히 아직 사막 위엔 피라미드들이 몇 개 남아 있군요. 피라미드에 입장하는 인원수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겪는 시련들은 달라지겠죠. 그리고 피라미드의 시련들은 여태까지 해 왔던 것 같은 단순한 몬스터 사냥은 아닙니다.”
스스슥-
모래 위에 회오리바람이 다시 일면서 푸른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마법진 중앙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팟!
여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 미친… 이게 대체 뭐야.”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고? 제기랄…….”
영웅, 전사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2 타르타로스는 여태까지 겪었던 곳들과 확실히 달랐다. 게다가 좀 전에 봤던 눈동자의 파괴 광선은 압도적이었다.
다들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대신 머뭇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저 안에 도통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2시간이 지나면 저 눈동자는 다시 그 끔찍한 광선을 발사할 것이다.
‘공략집을 보자! 어떤 피라미드로 가야 할지 알려 주겠지.’
대규가 남아 있는 피라미드를 보며 공략집을 열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제1 타르타로스에서 봤던 남자.
영웅들을 이끌었던 중년의 외국인 사내 데이비드였다.
“김대규 씨,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데이비드 뒤에는 열 명이 좀 넘는 사람이 서 있었다.
“우린 대규 씨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는 제1 타르타로스에서 대규의 실력을 눈여겨봤다. 특히 알키오네오스를 혼자 잡았던 전투는 아직도 생생했다.
현실로 돌아간 그는 파티를 조직했다. 그들은 지금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로 기간테스 성 전투에서 그와 함께 선봉에 섰던 영웅들이기도 했다. 현실 세계에서 다들 어느 정도 성공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컨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대규를 꼭 포섭하고 싶었다.
물론 현실에선 대규에게 연락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대규가 유명해졌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막 인지도를 알리기 시작한 식당 사장일 뿐이니까.
그래서 제2 타르타로스에 오자마자 그를 포섭하려고 계획했다. 그가 자신의 파티에 들어오면 엄청나게 유리할 것이다. 그는 엄청난 실력자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레벨이 30이 넘는 실력자들입니다. 우리들과 함께 가시면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김대규 씨, 저는 줄리앙이라고 합니다. 저희 파티는 어떻습니까? 제1 타르타로스에서의 당신의 활약은 아주 잘 들었습니다.”
줄리앙이란 남자 역시 영웅이었다. 공략집으로 확인해 보니 데이비드와 맞먹을 정도의 레벨을 지녔다.
“저희랑 함께 가시면 최고의 대접을 해 드리겠습니다. 아이템 배분도…….”
“이봐,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구!”
“김대규 씨, 저희 파티는 어떻습니까…….”
온갖 사람들이 붙기 시작했고 대규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특출한 행적이 영웅들과 전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물론 같이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이템 배분의 문제도 있고 여럿이 몰려다니면 분명 갈등 상황이 불가피하게 벌어진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자신이 공략집을 갖고 있다는 걸 들킬지도 모른다.
자신은 무조건 혼자 다녀야 한다.
아니다. 이번 미션에선 ‘그 녀석’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대규는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른 사람 알아보시죠.”
그러고는 뒤를 돌아 그곳을 떠났다.
데이비드는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라니. 대체 누굴까? 저 남자가 같이 가기로 결심을 한 걸 보면 엄청난 실력자일 것이다.
그때 한 남자가 대규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비굴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혀,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최대호였다.
안 그래도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제 발로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겉으론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누가 당신 형님이야? 게다가 전에는 동생이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리고 앞으론 내 앞에 다신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땐 제가 몰라뵙고 그랬습니다. 앞으론 영원히 형님에게 충성하겠습니다!”
속마음을 들어보니 충성은 얼어 죽을.
하지만 대규는 속내를 감추고 대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형님만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대규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